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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아이돌 덕질을 해본 사람이라면 꼭 읽어봤으면하는 탈덕문

작성자솜사탕몽글몽글|작성시간24.10.19|조회수5,732 목록 댓글 13

출처 : http://mykpoint.tistory.com/116




(원문 트위터
https://twitter.com/Aka_De_Me/status/975405248402505728?s=20)

안녕하세요 아카데미입니다.


긴 글이지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태초에 연습생이던 한 사람을 좋아했고, 프로젝트로 잠시 데뷔했다 다시 연습생이 되었던 진호가 데뷔에서 좌절할때마다, 회사와 계약이 끝나고 불투명한 미래를 보며 지낼 때, 다시 회사를 찾아 데뷔 해냈을 때도 늘 진호가 모르는 자리에서 진호의 안녕을 빌고, 성장을 기뻐한 사람 중 한명입니다. 그 결과 저는 사진을 찍는 재능으로 진호의 인생에 관여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좋아한다, 응원한다.로 시작해 내가 역할을 해냈다 라는 자부심을 갖고싶었습니다. 사실 그 내면에는 진호와 관련없이 내가 '유명해지고 관심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싶다' 라는 질낮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사실 오랜 시간 진호를 좋아하며 참 많이 행복했지만 공허했습니다.




애초에 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어릴 적부터 자존감이 낮았던 제 인생에서 제가 없었고, 아이돌과 연예인만 있었습니다. 잘생긴 사람을, 멋있는 사람을 소비하고 그 곳에 제 사랑과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 결국 그 사람의 성장과 성공에 기대어 저의 암담한 현실을 부정했습니다. '나'로써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성장시킨 일부분의 사람으로써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지난 한 해를 포함해 진호를 좋아한 수많은 시간동안 진호와 상관없이 저는 저를 갉아 먹으며 덕질을 많이 했습니다. 지방에서 지낼 때는 수요일 밤 12시에 퇴근하여 밤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목요일 첫 차도 다니기 전 새벽 서울에 도착해 아무도 없는 상암에서 펜타곤 사전 녹화를 기다렸고, 사녹이 끝나면 바로 여의도로 넘어가 다음날 뮤직뱅크 출근까지 노숙을 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출근과 아침 사녹이 끝나면 케이티엑스를 타고 금요일 오후 출근을 했습니다. 이후 더 이상 본업과 팬 활동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게 되어 홈을 쉬었을 때는 불안증과 강박증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대기업을 그만두었고 방송국에 다니기 쉽도록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월세를 감당하고 활동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네시부터 새벽 두시까지 일하고 아침과 새벽에는 방송국에 가서 공방에 참여했습니다. 벌어낸 모든 돈을 다 팬싸인회 앨범 구입에 사용했고 해당 활동기 동안 거의 모든 팬사인회과 스케줄을 소화했습니다 가져본 적 없는 비싼 물건들을 선물해보기도 헀습니다. 나를 알아달라고, 그렇게 몸부림 쳤습니다. 정작 저는 옷 한 벌 사입은 것 없이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핸드폰 요금을 미납하면서, 공방에 대기하며 밥값이 아까워 자주 굶었습니다. 뚱뚱한 내가 가치있는 인간으로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선 밥을 굶은 돈으로 앨범을 사서 팬싸에 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홈마로써 팬으로써 가수가 얼굴을 기억하고 알아보는 '사람'이라는 '가치'를 얻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조금은 인정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늘어나는 팔로워와 사진을 찍자마다 올리는 프리뷰에는 리트윗의 숫자가 실시간으로 올랐고, 진호가 팬사인회에서 틈틈히 제 카메라에 아이컨택하고 인사해주며 부름에 대답 해줄 때 저는 제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열등하고 가치 없는 인간이 아니라, 많은 팬들이 내 사진을 봐주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내 얼굴을 기억해주는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진호가 더 성장하고 유명해질 때마다 나도 그에 빗대어 유명해지고 사랑받을 거라고 계속해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생긴다고 믿었습니다. 과거 일을 하며 벌었던 돈도 다 써버렸습니다. 수천명의 관심을 받는데 취해서 말입니다.




애석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제서야 그 애석함을 인지하고, 조금은 초연해지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결코 들어낼 수 없었던 지난 몇 년간의 저의 시간 속엔 사랑하고 소중한 진호가 있었지만 저는 없었습니다. 여전히 진호가 좋고 응원할테지만 진호를 위해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저를 쥐어짜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할 만큼 했다. 할 만큼 했다. 정말 나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관두고 뛰어들었던 덕질, 이제 와 배운 것은 나의 가치를 타인에게 기대어 타인의 기준으로 설정하면 언제고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팬과 가수, 이토록 죽어라 했음에도, 그것은 팬인 저의 선택뿐, 진호가 바란 일이 아니며, 내가 망각한 나의 가치는 진호의 빛남만큼만 부풀려진 거품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한계까지 와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뭘 바라고 시작한 일인지도 잊었습니다. 이렇게나 공허합니다.. 진호를 좋아하고 응원한 시간동안 제가 제 스스로를 사랑한 역사가 없음을 이제는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때문에 더이상 진호에게 어떻게든 관여되어 있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 집착하지 아니하고 저를 위한 시간에 조금 힘을 주기로 나의 삶을 되찾기로 했습니다. 제가 망가뜨려온 제 삶, 이젠 제 앞가림에 대한 생각들이 진중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저에게 있어 큰 성장임을 조금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지 못한 마음으로 진호를 응원한 것이, 그 우울과 공허함이 어쩌면 진호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제가 진호를 핑계로 스스로를 좀 먹은 시간동안 자신도 모른채 참 많이 아프고 망가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진호를 원망한 시간들이 있었을까 두렵습니다.



진호는, 또 아이돌은, 뚱뚱한데 성격이 당당하다는 이유로 나댄다며, 얼평 몸평을 당하고 왕따당하며 사랑받지 못하고 억압당한 우울한 제 삶에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저는 나이를 이렇게나 먹고서야 그것에 의존적이던 나약함 같은게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많은 시간을 거치고서야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를 둘러싼 차별과 내 자존감을 갉아먹던 것들이 사회가 폭력적으로 정의한 '가치있는 여자'라는 코르셋임을 인식했고 벗어날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외모는 남들에게 있어 가치없는 여성의 상징이지만, 사실 그것을 무기로 저는 틀린 인간으로 몰아졌을 뿐입니다. 제가 잘못된 게 아니라, 실제로 가치없는 여성인 것이 아니라, 가치 없는 인간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례하다는 것을 인지 하는 것만으로 저는 제 스스로 가치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쁜 여자가 아니어도, 홈마가 아니어도, 팔로워가 많지 않아도, 내 가수가 내 이름을 알지 못해고 저는 제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뚱뚱해도 나는 당당해도 되고 나대도 돼, 못생겨도 나는 내 목소리를 내고 나를 사랑할 자격이 있어, 나는 모든 공개방송에 참여하지 않아도, 모든 팬싸인회를 가지 않아도 진호의 목소리를 사랑하고 진호를 응원하는 마음만으로도 가치있는 팬일 수 있어. 나는 나를 혐오하지 않아도 돼, 그냥 보통의 나도 사랑해도 된다,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기를, 유명하기를, 원했던 나의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공허함과 자기 혐오는 결국 나의 욕망이 아닌 사회의 욕망이었음을.



'가치있는 팬'의 '가치' 역시 유명하기를, 무리하여 모든 가수의 시간에 함께 있기를, 요구하는 타인의 욕망이었음을 인정하고 저는 벗어나려합니다. 저와 같은 행동을 하셨던 분들이 망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저에게 있어 무리한 행동을 하기까지 가졌던 마음이 건강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순전히 여건이 되고, 가수를 향한 열정으로 저와 같은 활동기를 보내셨던 홈마분들을 여전히 존경합니다.



탈덕해가는 과정이 이렇게 초연하고 기쁜 건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남의 기준에서 나이가 많아져서, 사회적 책임이 생겨서 등 내 스스로 진심을 다해 납득할 이유 없이 아.. 이젠 그만 좋아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놓을 수 없지만 놓아야 해, 사람들이 한심해 해. 라는 강박과 불안감으로, 이제 돈이 없는데, 활동에 따라다니지 못하는데, 나는 가치 없는 홈마가 될 것이고 잊혀질거야. 라는 조급함으로 진호에게 매달려 있었다면, 이제는 순전하고 온전히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과 마음으로 서서히 멀어져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듭니다.



진호가 싫어져 팬 활동을 그만 두는 게 아니라 제가 제 마음을 돌아보고 치유하여 제대로 성장해내기 위한 팬 활동 중단이라는 점이 정말 감사하고 기쁩니다. 제가 몸과 마음이 온전해져 진호를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을 때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긴 시간동안 만났던 너무나도 좋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같이 덕질했던 홈 이름과 트친들 이름 나열 생략) 정말 감사합니다.



3월 19일 기점으로 아카데미는 문을 닫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카데미와 함께 해주셨던 모든 분들이 자신의 가치를 알고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 탈덕문이 올라온 지 하루가 지나고 올라온 펜타곤 진호의 공식 팬까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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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율무맴맴맴 | 작성시간 24.10.19 스스로를 사랑하지못하는 사람이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대신 위로받고싶었나봄.....
  • 작성자조쉬 코헨 | 작성시간 24.10.19 비슷하게 나도 뮤지컬에 번돈 다 태우는 뮤덕이었는데 어느순간 초연히 탈덕하게 된게 나는 나를 키워내야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던거 같음 내가 작품을 사랑하듯 나를 사랑했으면 나를 이렇게 대할 수는 없더라
  • 작성자봄봄봄보미 | 작성시간 24.10.19 글을 이렇게나 잘 쓰시는데...
    사랑도 이렇게나 가득한데....
    앞으로도 많은 일 하실 수 있겠지 응원합니다
  • 작성자초녹 | 작성시간 24.10.19 그저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 작성자너무 귀찮아서 문제 | 작성시간 24.11.28 new 이 분이 정말 성장하고 깨달았다는게 느껴지는 글이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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