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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현대그룹의 정주영이 진짜로 망할뻔했던 사건

작성자세차|작성시간24.10.21|조회수4,833 목록 댓글 9

출처: https://www.fmkorea.com/7589893394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

 

삼성의 이병철과는 달리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진짜 맨손으로 한때 삼성을 제끼고 재계1위, 세계 10대 부자에 랭크됐던 인물

 

 

 

 

 

 

 

 



쌀가게부터 시작해서 자동차공업소로 자릴 잡았던 정주영은

어느날 관공서 자동차들을 수리하고 수리대금을 받으러 갔는데

 

 

자기 옆 사람이 자기보다 몇십배는 많은 돈을 타가는걸 보곤

따라가서 <뭐하는 사람인데 그리 큰 돈을 받냐?>라고 물었고

<토건업>이라는 대답을 들었음

 

 

 

그길로 현대토건 현판을 파고 공업소 한칸에다 사무실을 냄

 

 

 

 

 

 

 

 



전설의 시작이였음

 

 

 

 

 

 

 

 

 

 



그러나 얼마후 한국전쟁이 터지고 모든걸 잃어버린채 부산으로 피난간 정주영과 가족들

 

다행히 영어를 하던 동생 정인영이 미8군의 통역장교로 일을했고,

또 그 와중 건설회사를 찾던 미군에게 자기 형이 건설업을 했었다며 추천함

 

 

 

 

 

 

 

 

 

 

 

성실하게 일을 해내던 정주영은 미8군의 공사를 도맡아하듯 따내면서 기반을 닦았고,

 

회사의 규모는 직원이 80여명에 달할정도로 커짐

 

 

 

 

 

 

 

 

 



현대건설은 미군 공사 외 정부 공사도 수주하고 있었는데

그 중 1952년 동래 한국조폐공사 사무실 건설을 수주함

 

 

적자가 예상된 공사였지만 추후 정부공사 수주 때 신뢰를 위해 진행했는데

하필 1953년 정부가 화폐개혁을 하면서 극심한 물가상승까지 시작됨

 

 

 

 

 

 

 

 



그리고 1953년 4월.

정주영은 역사적인 공사를 수주함

 

공사시한 24개월. 계약금 5478만환

당시 정부 발주 공사중 최대 규모의 공사, 고령교 공사를 입찰에서 따낸 것

 

 

 

1950년 8월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위해 폭파시켰던 다리인데,

이 다리의 복구공사를 맡은 것임

 

 

 

 

 

 

 

 

 



 

호기롭게 의욕을 가지고 따낸 정주영이였지만

 

이게 그의 일생의 악몽이 될 공사인건 몰랐을 것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우선 말이 복구공사지 

 

교각은 기초만 남아있고, 상부 구조물은 강 바닥에 처박혀 있어

그냥 신축공사나 다름 없었고

 

 

더 큰 문제는 현대건설은 그간 막사나 창고를 짓는 공사를 주로했지

다리같이 난이도가 있는 공사는 이게 처음이였음

 

 

 

 

 

 

 

 

 


그래도 우선 공사를 시작한 현대건설이지만....


장마로 불어난 물때문에 공사는 처음부터 난항이였고,

빠른 물살때문에 착공한 지 1년이나 지났지만 교각하나 아직 박지 못했었음

 

 

 

 

 

 

 

 

 



장비도 부족하고 기술이나 노하우도 부족하기에

인부들을 이용한 원시적인 방법으로 우선 교각을 세웠으나

 

그마저도 홍수에 쓸려감...

 

 

그와중 정부의 화폐개혁으로 천정부지 치솟은 물가때문에

착공때 700환으로 책정된 기름단가가 공사 중 2300환까지 올라버림;;

 

이미 막대한 적자는 안봐도 뻔한 상황

 

 

 

 

 

 

 

 



여기에 동래 조폐공사 사무실이 완공됐지만

결과는 7000만환의 어마어마한 적자를 봄

 

그간 미군공사로 번 돈을 

이 조폐공사 사무실 건설에 다 쏟아 부어 이미 재정이 바닥나 있었는데

 

 

 

엎친데덮친격으로 고령교 공사 중 막대한 물가상승으로 인해

건자재값과 노임비도 무려 120배나 상승해버림

 

 

심지어 공사를 얼른해도 모자란판에

일당을 못받은 인부들은 파업까지했고,

사무실엔 빚쟁이들이 몰려와 돈 갚으라며 아우성이였음

 

 

 

 

 

 

 



이미 고령교 공사를 24개월안에 마친다는건 불가능이고,

마치는게 문제가 아니라 이걸 계속 할수있을지가 문제인 상황에 

 

 

회사 재정까지 바닥나 버렸으니

해봤어?를 외치던 낙관론자 정주영도 이때는 앞이 깜깜했을거임

 

 

 

 

 

 

 

 

 

 

정주영은 우선 가족과 친인척을 다 모아놓고 

우선 집이라도 팔아야겠다 했는데

 

동생들이 

<차례는 지내야 하니 형님집은 놔두시고 우리 집들을 우선 팔겠다>

라며 집 4채를 처분함

 

 

 

 

 

 

 

 



그렇게 집까지 판돈에 회사 자본금까지 다 끌어모아

다시 1억환을 만든 정주영은 다시 정신을 잡고 공사를 시작했고

 

 

 

 

 

 

 

 



마침내 1955년 5월, 당초 계약 기간보다 2달을 넘겨 공사를 완공했다

 

계약금 5478만환, 총 공사비용 약 1억 2천만환

총 적자가 약 6500만환이였으며, 

이 적자금액을 상환하는데 거의 20년이 걸렸다 함

 

 

 

 

 

 

 

 

 


그러나 이 일로 현대건설의 정주영은 정부에 엄청난 신뢰를 쌓았고,

 

이후 한국정부의 큼지막한 공사 대부분은 현대건설이 도맡아 함

 

 

 




 

 

 



신용의 중요성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던 현대건설은 

국내건설사 중 독보적 위치에 올랐고

 

후에 동남아, 중동 건설시장에도 뛰어들어 

당시 군인과 간호사,광부등 인력파견으로 외화벌이를 하던

한국에 막대한 외화를 안겨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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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24년은 나의 해 | 작성시간 24.10.21 디에이치..
  • 작성자0000132 | 작성시간 24.10.21 안그래도 독한인간인데 저런상황에 집안 전체가 달렸으니 얼마나 악을쓰고 했을까..정주영 일하는거나 말하는 방식 체험해보고싶다…
  • 답댓글 작성자탈룰라아아 | 작성시간 24.10.21 2222 정주영이라 버틴듯
  • 작성자이발소 | 작성시간 24.10.21 이야...
  • 작성자봉숭아꽃이물들기전에 | 작성시간 24.10.21 이야..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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