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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대한민국의 보수라는 가면을 쓴 자들이 두려워했던 전설적인 인물, 그의 이야기

작성자기니피그|작성시간24.11.15|조회수4,238 목록 댓글 20

출처: 마이클럽 강남구학생님

 

해당 글의 초기 출처는 비공개 카페이며 링크도 사라져 텍스트로만 기재함을 우선 알림.

글쓴이가 직접 "진실을 위한 민주주의 무단 무한 펌질 대환영"이라 기재해 두었기에 이렇게 불펌함

(여시 내 게시물이 있는데, 18년도 이전 글뿐이고 사진이 모두 깨져서 구글링 해서 다시 새롭게 글씀)

💙물론 무단 무한 펌질 대환영임💙

 

 

지금부터 보시는것들은 전부
영화같은 역사적 실화이며 진실입니다.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항상 보수라는 가면을 쓴 독재가 지배해 왔었다.

그 불편한 진실, 금기를 깨고 도전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재미있는 사실은

이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국인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자신의 업보를 인정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넬슨 만델라와 비슷한 동점에서 본다는 것

한국안에서는 이 사람을 비교할 인물이 없다는 게 외국의 시각이다.

 

이 남자는 인생에서 4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다.

 

어느 언론에서 했던 설문조사...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모든 사람들의 답변...

.

.

.

 

인동초 "김·대·중"

 

이 사람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꿈은 만족하지 못하는 데서부터 태어난다. 만족한 인간은 꿈을 꾸지 않는다.

 

작은 새는 큰 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위대한 사람의 뜻 같은 건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뜻의 크기는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다.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비웃거나 깔보지 마라.

 

-경상도 부산 선거 유세-

 

"부산의 파도야! 광주의 무등산아! 너희에게 넋이 있다면 나 김대중이를 버리지 말아다오!"

"하이고~마 전라도에서 인물이 나온 기라 김대중이가 인물이데이~"

 

구식인 박정희를 유일하게 이길 수 있었던 젊은 패기 김대중...

부산 유세 당시 302,452표 반 이상 획득 박정희와 막상막하...

 

하지만 경남과 부산은 그를 택했다.

 

그 후 실질적인 김대중의 승리인데도 박정희의 투표 조작 부정 선거로 패배...

박정희는 경남의 심장부 부산 민심을 확인하고서 김대중을 두려워하고 견제하게 된다.

 

그 뒤 박정희는 언론과 합세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 조작...

김대중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호남 차별을 만들고 고립 지역감정을 만들게 된다.

소위 먹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호남에서 계속 나올 것을 두려워해

호남의 산업화를 막고 자금이 끊기게 한 것이다.

 

분명히 이전까지는 지역감정이란 확실히 존재하지 않았다.

 

호남에서는 그전까지 박정희를 지지했으니 말이다.

 

 

드디어 우리 현대사에서 '지역주의의 정신병'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경상도는 개밥에 도토리가 될 것이다.''

-국회의장 이효상-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중앙정보부의 선동문구-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다.''

-경상도 공무원들에게 공화당 의원이-

 

''경상도 사람치고 박정희 안 찍는 사람은 미X놈.''

-1971년 4월 18일 조선일보-

 

''우리 신라 경상도가 똘똘 뭉쳐 계속 우리만의 시대를 이어 가자.''

-1971년 동아일보-

 

 

그 후 독재에 맞선, 이 젊은 정치인은 총칼 든 군사독재와 약자 편에 서주지 않았던 언론에

야만적인 빨갱이라는 낙인과 함께 늙은 노정객이 된 오늘날의 이 순간에도

서양의 인종차별보다 더한 비논리적인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눈물과 고통으로 살아가게 된다.

 

1997년 김대중은 망령 같은 차별 앞에 극적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독재를 했던 사람들에게 일절 보복을 하지 않았으며

먼저 다가가 용서와 화해를 하고 손 내밀어 평화를 자청했다.

 

 

박정희 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 촛불 1세대 민주당과 김대중 총재...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국민이 내 편이기 때문에 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

 

-군사독재재판 마녀사냥으로 불리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김대중-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게 죄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결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김대중 납치사건-

 

김대중을 두려워했던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려 했던 음모...

이 사건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다리에 평생 장애를 갖게 됨.

그 후 유신헌법으로 박정희는 평생 국민선거 없이 자신이 대통령 할 수 있는 박정희 왕국 건설...

그는 정의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폭력과 야만 따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부마항쟁-

 

경남과 부산에서 박정희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 항쟁...

박정희와 그의 충복 차지철은 경남과 부산에 학살 명령을 내린다.

 

야만적이고도 군사독재정권의 비열함 무식함이 드러나는 가벼운 그들의 말이었다.

다행인지 부하 김재규가 그것을 막은 격이 되었다.

 

자신이 만든 유신헌법으로 선거가 다시는 필요 없음에...

경남 부산은 이제는 이용가치가 없다는 판단에...

말을 안 듣는단 이유로 학살을 자행하려 했다.

 

하지만, 예언이라도 된 것처럼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그 뒤를 잇는 신 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켜 경남 부산에서 일어나려 했던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데...

 

 

-신 군사독재정권과 5공화국 공포정치의 상징 전두환의 등장-

 

"군은 절대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은 당연하다는 듯 국민을 깔보면서 비웃듯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박정희가 죽어도 그 독재란 이름의 전통은 유지되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정권,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

 

"정치적 누명과 보복은 내가 죽어서도 나 하나로 끝나야 할 것입니다."

전두환 독재군사정권에 사형선고를 받고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김대중...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인간의 마음은 어떠할까...

 

해방 후 지금까지 독재적 군사통치가 판을 칠 때 많은 사람이 비판을 외면했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다. 나는 정치와 관계없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봐왔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는 황희 정승의 처세훈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언뜻 보면 공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비판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이것이 결국 악을 조장하고 지금껏 선을 좌절시켜왔다.

지금까지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이렇듯 비판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한 자들을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김대중의 잠언집 中에서-

 

"저희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 알 것 없다. 우리 최강 공수부대는 각하의 명령으로 빨갱이 잡으러 간다! 작전명 화려한 휴가다."

"그런데 말입니다. 서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광주 아닙니까?????"

"상부의 명령이다. 이놈들은 전부 빨갱이다. 때려잡아라."

"예?????"

"까라면 까라 새끼들아."

 

"이곳은 다른 지역과는 좀 다릅니다. 저항이 심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요!"

 

"......네 알겠습니다......"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 전부 쏴죽여버려!"

"...................."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항쟁-

 

대한민국을 지키는 공수부대가 대한민국 국민을 자국민을 학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위 사진의 아비 잃은 어린 소년 눈 안에 대한민국 모든 세상의 슬픔이 담겨 있다.

그 후 호남에서의 정치투표는 투표라기보단 차라리 피눈물 맺힌 한이 담긴 저항이라고 봐야 했다.

 

광주..... 광주..... 서러워 울지마라 광주야..........

 

"전라도 새끼들은 다 죽여야 된다. 빨갱이 새끼들 어디서 전두환 각하한테 대느노!"

독재정권과 언론에서 빨갱이소굴이라 떠들던 그곳...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던 역사의 현실과 진실...

유일하게 전두환에게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 지역의 이름...

"호남 그리고 빛고을 광주"

독재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대인들처럼

광주의 호남인들은 꽃잎처럼 그렇게 죽어갔다.

김대중은 옥중에서 신문언론을 접하고 신문을 다 적실 정도로

가슴 찢어지는 통한의 오열을 하게 된다.

힘없던 자신과 지켜주지 못했던 자책감은 평생의 짐이 된다.

광주 민주화 운동 후 외국 유명인사들의 적극적인 김대중 석방운동...

궁지에 몰린 전두환은 김대중을 석방...

감옥에서 해방되고 난 뒤 곧장 광주로 직행 망월동 광주 민주화 영령들과의 만남.

한 서린 서러움의 통곡... 지울 수 없는 상처...

콩을 콩이라 하고 팥을 팥이라 하는 그들이 대체 무엇이 죄일까...

호남과 광주...대한민국 평생의 상처와 아픔이자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딱 맞는 도시였다.

죽어도 죽은 게 아닌 그들은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그후 광주만의 전쟁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전쟁이 되어 전두환은 항복한다.

 

독일의 어느 목사의 글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므로.

그들이 동성애자들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운동권 대학생 유시민 27세-

 

판사들에게 외친 그의 한마디

"전 대가리의 개들아 백 년 만 년 잘 처먹고 잘 살아라!"

 

이 젊은 청년의 눈빛은 군사독재에 대한 원망으로 살기가 가득했다.

그의 살기 어린 눈빛은 386세대 젊은 시절 독재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젊은 386세대들의 등장과 밑에 한 남자의 등장으로 김대중을 이을 제2의 민주화 항쟁은 시작된다.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을 해야 합니다!"

 

김영삼이 3당 합당...민자당(김영삼, 전두환, 노태우, 김종필)...

독재와 손잡고 대구+경북+경남+충청 지역주의로 민주주의를 배신하려 하자 거세게 항의한다.

 

"친일군사독재 민자당(한나라당)은 해체돼야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주당 경선에 관심 두지 마십시요!"

 

-1988년 혜성같이 등장한 5공 청문회 정치스타 노무현-

 

"와~~~저 양반 대단하네. 전두환 대통령각하한테 저렇게 해도 되나?"

청문회에서 독재자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진 젊은 정치인 노무현...

그 후 독재와 3당 합당으로 민주주의를 배신한 김영삼을 떠나 민주당으로 입당 후

호남비방만 하는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어처구니없게도 부산에서 계속 낙선한다.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서도 콩이고 대전에서도 콩이다."

 

경상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오신다 해도 동네 이장도 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말씀하셨습니다.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지식이 없는 자가 대통령이 됩니까?

진짜 지성이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민주당 김대중 총재는 그럴 자격 충분히 있습니다.

 

 

조선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고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음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거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보란 듯이 결국 고개를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생애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가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가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저는 경상도에서 깃발만 꼽으면 당선되는 지역주의자들과 싸울 것입니다.

사람을 봐주십시요! 더럽고 아니꼬운 꼴 안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 부산에 관심을 끊지 않았다.

그 뒤 지역주의자들과의 전쟁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에게 붙여진 별명....

 

" 바 · 보 "

 

 

정치인이기 전에 투사로서의 이미지는 국민에게 각인되었다.

 

이 사람은 후에 제2의 민주당출신으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다.

 

"호남이 선택한 영남 대통령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평생 민주화 운동 동지였던 팔순이 다 된 늙은 노정객의 통곡...

"평생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했던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입니다."

노무현이란 사람은 그에게 사랑하는 자식 같은 존재였다.

같은 민주당 출신인 그 둘의 관계는 핏줄이었다. 아니 피보다 진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 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이내의 범위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연부역강(年富力强: 나이가 젊고 기력이 왕성함)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평소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했던 미국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

늙어서도 공부와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지성 김대중 대통령을

세계지도자들은 존경한다고 말한다.

 

 

1981 Bruno-Kreisky 인권상 /

 

1983-현재 미국 Robert Kennedy 인권상위원회 고문 /

 

1983-현재 국제고문희생자 구원위원회 고문 /

 

1983-현재 미국 Pittsburgh La Roche 대학교 이사 /

 

1983 미국 에모리대 명예법학박사 /

 

1987 미국 George Meany 인권상 수상 /

 

1987 북미주 한국인권연합 인권상 수상 /

 

1992 모스크바대학교 외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

 

1992 미국 가톨릭대 명예법학박사 /

 

1993 제3회 애서가 상(한국 애서가 클럽) 수상 /

 

1994 미국 New York Union 신학대학교 Union Medal 수령 /

 

1994 Russia 국제생태학협회 정회원 /

 

1995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 명예인문학박사 /

 

1998. 2 무궁화 대훈장 / 1998. 4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 /

 

1998. 6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 / 1998 UN 인권협회 인권상 /

 

1999. 7 Philadelphia 자유메달 /

 

2000. 11 [라프토] 인권상 수상 / 2000. 12 노벨 평화상 수상

 

/ 2001. 9 세계정치지도자상 수상 /

 

2002. 1 민주주의 수호자상 수상 / 2003. 5 제8회 늦봄 통일상 수상 /

 

2003. 8 제7회 만해 평화상 수상 /

 

2003. 12 칠레공화국 대 십자훈장 수상 /

 

2003. 12 춘사 나운규 영화예술제 공로상 수상 /

 

온갖 명예로운 상이란 상은 다 탄 김대중,

그에게 열등감을 가진 일부 정치 세력들이 온갖 시기 질투를 하며 그를 깎아내렸지만,

국내의 양심세력과 세계의 양심 세력은 그의 업적을 기꺼이 인정해주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 오랜 정치적 역정을 통해 쌓은 업적으로 받은 상을

돈 주고서 받았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만 든다.

 

외국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김 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삶의 스승이자 길잡이다."

(조스팽 프랑스 총리),

"김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

(라우 독일 대통령)

하는 식이었습니다.

선진국에 갈수록 그는 넬슨 만델라와 동격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 '20세기 영웅'이었습니다.

현지 언론들은 그의 방문에 맞춰 DJ 일대기를 특집으로 제작하고 특집 면을 만들었습니다.


에이펙이나 아셈처럼 세계 강대국들이 모두 참석하는 국제회의에서도

DJ는 거의 언제나 첫 번째의 발언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열린 아셈 때는 주최국인 덴마크의 라스무센 총리가 각국 정상들을 소개하면서

오직 DJ에게만 "excellent leadership, President Kim"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블레어와 시라크, 주롱지와 고이즈미 같은 쟁쟁한 인물들도

아무 수식어 없이 이름만 소개됐는데 말입니다.

그만큼 DJ에 대한 특별대우는 국제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였습니다.

DJ가 참석하는 기자회견이나 투자유치 설명회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일단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정상들 간의 외교적 수사(修辭)는 늘 과장되게 마련이지만

DJ에 대한 것은 수사라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한 기자는 이렇게 술회했다.

"대한민국의 CEO인 그가 이런 'DJ 상표'를 갖고 있었으니

이것이 한국에 대한 투자유치와 IMF 극복, 그리고

우리나라의 외교적 위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이름값에 만족하지 않고 발로 뛰면서 한국 경제와 햇볕정책을 판매했습니다.

외국순방 때마다 저는 80에 가까운 DJ가 강행하는 빡빡한 일정에 먼저 녹다운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모들의 만류에도

DJ의 공식일정은 전임 대통령들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유력 언론들이 자신의 국정이념을 제대로 전해주지 않으니

직접 뛰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연설문은 밤을 새워가면서 직접 작성했고

지난해 2월 '악의 축' 발언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을 때는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느라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역대 81번째, 아시아인으로서는 일곱 번째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기록된

김 대통령이 노벨상에 처음 후보로 추천된 것은 1987년이었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앞장서 서독 사민당 의원 73명이 추천한 것이 최초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추천 사유는 ‘한국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과

3단계 통일방안을 제창해 남북 평화에 이바지한 공로’였다.

이후 인권 향상과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의 공로로 매년 추천되어

올해까지 14회에 걸쳐 후보로 올랐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동안 몇 차례나 수상 직전까지 갔었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 1992년으로 남아공의 만델라 당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장,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 등과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재미있는 것은 198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리아스 산체스 코스타리카 전 대통령이

올해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매년 빠짐없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됐다.

1987년의 경우처럼 초기에는 주로 그의 민주화 투쟁에 공감한 외국인들이 추천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맞붙어 패배하고서 수차례에 걸친 죽음의 고비와

감옥 생활 등을 거치면서도 굽히지 않았던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투쟁에 공감한 결과였다.

외국의 정치인들을 비롯해 김대중 대통령과 친분이 각별한 인사나 교수들이 추천에 앞장섰다.

예컨대, 지난 1990년엔 스웨덴 웁살라대 닐 엘반더 교수를 비롯한

스웨덴 프랑스 노르웨이의 학자, 정치인, 문인 등 35명이 김대중 대통령을 추천했고,

스웨덴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추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로마 바티칸 주교단체, 미국 가톨릭 계열 대학, 앰네스티 등

외국 인권단체 등도 자주 추천한 단체들이다.

노벨 평화상 추천 자격은 노벨위원회 전·현직 위원과 노벨연구소 자문위원,

각국의 현직 각료와 의원, 국제사법재판소 및 국제중재재판소 재판관,

정치학·법학· 철학·역사학 전공학자,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 등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나 단체만이 가능한데,

김대중 대통령은 이들로부터 여러 해에 걸쳐 복수 추천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동안 노벨 평화상에 추천된 사유는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에 집중돼 있지만,

해마다 약간씩 추천 사유가 달라졌다.

예컨대, 1999년 추천 사유는 IMF 환란 극복 노력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한 공로였고,

올해 1월에는 아시아 국가 간 관계를 발전시킨 공로로 추천되었다.

조셉 바이든 (부통령)
오바마와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된 바이든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분과 나는 매우 친분이 두텁다."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한다고 한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루빈은 오바마 정권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오바마 경제팀이 거의 다 '루빈 사단'에 속해 있다.

'스타군단'으로 알려진 오바마 경제팀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로런스 서머스 NEC 위원장 등이 루빈 인맥이다. 루빈 역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대중 대통령이다."라며 공개적으로 자랑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말이 필요없는 대표적인 친DJ다.

현직 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반해

김대중만 졸졸 따라다니며 미국의 대북정책을 지휘했다.

스스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시간을 자랑스러워 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한국정부가 '국가원수' 대접을 하면 목에 힘이 들어갈 만도 한데,

촉박한 시간에도 김대중 대통령님께 '안부인사' 드리는 걸 잊지 않았다.

티모르의 오르타장관(현 대통령):

'김대중은 가장 유명한 독재자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사람이었다.

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 싶다. 질투 때문인가?"


라우 독일 대통령:

"김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

미셸 깡드시 前 IMF총재:

"한국은 김대중 씨를 대통령으로 두고 있다는 자체를

행운(luck)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몇 가지 고비가 있었지만

IMF와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 전반은 김 대통령을 믿고

한국을 밀어준 측면이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엄청난 탄압에도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뤄낸 김 대통령은 만델라의 삶을 연상시킵니다."

조스팽 프랑스 총리:

"김 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도덕적 스승이자 길잡이다."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

"민주화뿐 아니라 경제의 재구축에 성공한 김 대통령은 세계를 감동시키는 지도자입니다..."

세계적 경제전문 통신 블룸버그:

"김 대통령은 경제ㆍ정치ㆍ외교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반세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

77세의 김대중 씨는 한 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지도자의 업적을 이뤘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세계에서 단임 5년에 김대중 씨만큼 변화시킨 대통령은 거의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김대중 씨처럼 한국 경제에 공헌한 대통령은 없어서

한국민은 떠나가는 김대중 씨를 마음으로부터 감사해야 한다."

 

노벨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이

반국가적 반이성적 수구보수 패권세력들의 이러한 행태를 두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한국'이라면서

"나는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고 한국인들로부터 로비 시도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할 수 없고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 통이 전달되었다."라는 사실을 밝히고

"내가 노벨 위원회에 들어온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는 나라에서 반대 편지가 대량 전달된 것이

경상도라는 특정지역에서 날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 지역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노벨상 중에서도 가장 노벨의 염원을 담는 평화상이 로비를 받아낼 수 있는 상이라면

과연 세계 제일의 평화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 편지를 보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노벨상은 로비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상이 얼마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더더욱 그 가치가 찬란히 빛나는 것이다.

왜 다수 한국인이 김대중의 위대함과

그의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감명받지 못하는지

그 이유가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라며 통탄을 금치 못하였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바 있는 현 동티모르의 오르타 대통령도

월간 조선기자가 "김대중이 노벨상을 받으려고 로비를 한 게 아니냐?"라며 집요하게 묻자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 김대중은 가장 유명한 독재자에 목숨 걸고 항거한 사람이었다.

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 싶다.

질투 때문인가?"라고 대답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유럽연합의 맹주 격인 독일 쪽의 대통령들도

바이든 이상으로 DJ에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퇴임 후 훈장도 수여하고 직접 도서관에 방문해 안부도 묻고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미주지역까지 그 위상은 상상 이상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 제2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목하고 추천했으며

 

함께 서러움과 외로움을 느끼며 아꼈던 한 경상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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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그분은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한 시대의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죠.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분을 평가할 때 그 점을 우리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퇴임 5년이 지난 지금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내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이 정부의 구석구석에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있었습니다.

 

 

내가 창조적이라고, 내가 처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런 것이 한두 개가 아니고 상당히 많습니다.

 

정부 혁신 부분에도 그런 것이 있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모든 것에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 스스로 비전, 전략, 정책에서

역시 탁월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강대강 주변의 학자들이 적어준 것이 아니라, 머리를 빌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한 수준을 뛰어넘는 거죠.

머리를 빌려서 하는 지도자와는 다릅니다.

 

말하자면 철학과 가치, 전략, 정책 모두 탁월한 정치인입니다

 

외국 다니면서, 외교 하면서 제가 받은 느낌인데요,

한국이 국제무대의 당당한 일원으로 등장한 때는 국민의 정부부터입니다.

지도자의 정통성이 국가 위신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많이 실감하고 다닙니다.

 

 

제가 국민 정부의 정책을 다시 한번 평가해 보면서

과연 지도자의 자리는 머리를 빌려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

해박한 지식, 지식과 정보에 대한 탐욕, 깊이 있는 사고력,

잘 정리된 가치와 철학이 꼭 필요한 자리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김대중 대통령님 그분은 천재시지요 저는 그분을 매우 존경합니다."

 

바보 노무현이 존경했던 3명의 인물

링컨, 김구 선생..그리고..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민주당)

본관 : 경상남도 김해

고향 : 전라남도 신안

학력 : 목포상업고등학교

거주지 : 자유민국 민주동 하늘나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초대 대통령

 

노무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민주당)

본관 : 광주광역시

고향 : 경상남도 김해

학력 : 부산상업고등학교

거주지 : 자유민국 민주동 하늘나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제2대 대통령

 

 

울지마라 민주주의야,

지지마라 민주주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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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picturesque | 작성시간 24.11.16 두 분 안계셨으면 사실 현재의 한국은 없었다고 봐야지…씁쓸한 현실이지만 바꾸려고 노력해야해ㅜㅜ 민주주의 지키자!!!!!
  • 작성자아기곰형제 | 작성시간 24.11.17 소년이 온다 읽고 너무 답답해서 왔는데 좋은 글 정독하고 간다
  • 작성자성균관대학교 | 작성시간 24.11.19 김대중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또 나올 수 있을까..
  • 작성자둥근해미칞거또떧내칷 | 작성시간 24.11.24 씁쓸하다... 정말
  • 작성자쫀득쫀득짧은 | 작성시간 24.11.29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만난 최대의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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