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24662
영국은 호송된 남죄수들을 위해 여죄수들을 호송하기로 결정하고 그들을 줄리아나 호에 태워 1789년 7월 첫 주에 영국 해안을 떠났다. 첫 남성 죄수들이 호주에 도착한 지 18개월 후에 떠난 이들은 10개월 간의 여정으로 시드니 코브에 도착했다. 첫 죄수 호송선이 7개월이 걸렸던 것에 비해 3개월이 더 길린 긴 항해였다. 여성들은 배의 밑창 바로 위인 올롭(orlop) 갑판에서 지냈다. 그곳은 음식 잔해, 배설물 등을 포함한 각종 쓰레기들이 모이는 곳이었다.이 와중에서 항해 중에 승무원들의 ‘아내’가 된 여성들은 특혜를 누렸다. 심지어는 그 안에서 매춘업을 하는 죄수도 있었다. 남성죄수들을 태운 배보다 3개월이 더 걸린 것은 중간 기항지에서 승무원들과 죄수들이 함께 매춘업을 했기 때문이다.
200명이 넘는 여성과 배 안에서 얻은 7명이 신생아들이 시드니 코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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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 드레이, 벤슨은 그들의 조상들이 ‘범죄자’로 낙인찍혀 추방되었지만 레이디 줄리아나호에 탑승했던 225명의 여성 중 많은 수가 호주의 건국 어머니들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출산을 돕는 조산사가 되어 나머지 형기를 마친 엘리자베스 바른슬리도 큰 돈을 벌었고, 드레이의 조상 레이첼 호디는 유일한 여성 주점 운영자가 되어 ‘말과 신랑The Horse and Groom’을 운영했다. 앤 마쉬는 파라마타 강 보트 서비스를 창립하여 호주 최초의 위대한 여성 기업가가 되었으며, 이 서비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11살 사형수로 호주에 건너 온 메리 웨이드는87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300명이 넘는 가족 구성원을 가진 다섯 세대의 가모장(家母長)이 되었다.
호주 정부는 죄수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 관리들이 먼저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죄수 건국론을 애써 부정하지만 민간에서는 죄수노동자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그들이 호주 사회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을 찾는다. 남녀 모두 범죄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참정권을 요구한 차티스트chartist 운동의 가담자들, 노숙자, 죄수들의 엄마들이 자녀와 함께 온 경우도 있었다. 위에 소개된 여성들의 죄만 보아도 먼 황무지(당시 기준으로)로 보내져야 할 정도의 범죄는 아니었다. 매춘, 밀가루 도둑, 옷을 훔친 죄 등 가난에 떠밀린 범죄다. 심지어 11살짜리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영국정부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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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수혜 작성시간 24.11.17 역시 예상한 일이 벌어졌군 모든 남자는 범죄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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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흐르는대로살어 작성시간 24.11.17 토나온다 매춘하느하 3개월을 뺑이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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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버섯구이존맛탱 작성시간 24.11.17 그럼에도 저 여자들은 저 곳에서 사업도 하고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을 했네 11세한테 사형선고 한 거나, 저런 작은 죄로 추방을 한 거나..진짜 영국 우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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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십스틱 작성시간 24.11.17 와 찾아보니 저 소녀는 옷훔쳐서 사형선고한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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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갓캐슬떡뽀키 작성시간 24.11.17 역겹다. 거기다가 7개월동안 배를타고 영국에서 호주가는 여정이라니...
찾아보니 현재 비행기로도 19-21시간 걸리는 노선이네 멀긴 멀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