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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생애 story
조선 제21대 국왕 영조
효장세자를 잃고(병or독살) 7년 뒤 어렵게 다시 아들을 얻었다
(영조 어진)
그가 바로
"사도 세자"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렵게 얻은 늦둥이 아들이어서 무척 기뻐했다
금방 양자로 입적하고 막 돌이 지난 후에는 왕세자로 책봉하였다
사도세자는 젖먹이 시절에 동서남북을 분간하였으며
2살에 천자문을 배웠으며 5살 때는 밥을 먹던 중에 영조가 말을 걸자 입에 있던 밥을 뱉고 답을 하여
왜 뱉었는지 물으니 "소학에서 부모가 부르실 때는 입에 있던 걸 뱉고 말하는게 효라고 배웠습니다"라고 답하였다
또한, 사도 영화에서도 나왔던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천자문을 배우던 중에 사치 치(侈)자와 가별 부(富)자에 '치'자를 잡으며
자신의 옷을 가리키며 "이것이 사치라" 라고 했다
신하들이 비단과 무명을 놓고 어느것이 사치인지 물으니
비단은 사치이며 무명은 사치가 아니라고 답했다
아무튼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기대가 커서 꼬박 밤을 새 가며
헌 책에 있는 내용을 새 책에 베껴 적었다고 한다
승승장구 할거 같던 사도세자에게도 위기가 닥쳐오니
대리청정 시작한 이후(사도세자 15살때)부터 잦은 꾸짖음과 갈등이 생겼다
영조와의 성격차이도 한몫한다
아예 성격이 180도 딴판
영조는 술 만드느라 곡물을 낭비 할 수 없다며 금주령을 내리며
침실에는 이불과 베개만이 있었고 식사는 소식을 했다고 한다
(고추장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명절이나 잔칫날에도 소식을 하고 나름 검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조가 검소하기보다 검소함을 위장한 것이라는 말도 있긴하다..
금주령 내렸는데 지가 술 마시고 구하기 힘든 주석 도금까지 함)
+ 공부 벌레 (사냥이나 무예는 부가일 뿐)
반면, 사도 세자는 어떠한가?
사냥과 무예를 좋아하며 씀씀이가 남달랐다고 한다
누굴 만나면 선물을 엄청 줘서 창고가 거덜이 날 정도...
한번은 영조가 8세의 세자에게 동몽선습(아동용 교과서)을 읽어보라 시켰는데
세자가 책을 다 읽고 영조에게 달려가더니 "간신히 다 읽었어요"라고 답한다
이에 영조는 세자에게 "글을 읽는걸 좋아하냐? 싫어하냐?" 묻니
"싫을때가 많습니다" 라고 답했다 한다
대리 청정 이후 영조는 여러번 양위 파동을 벌였다
이 시기에는 붕당 정치(당시 노론과 소론)를 심하게 하였기에 신하들 작작 싸우라고
왕 노릇 못해 먹겠다며 왕이 시위 한 셈이다
양위 파동때 세자는 석고대죄를 자주 했으니 얼마나 부담이 심했겠는가
심지어 대리청정 첫날 영조는 앉아서 지켜보겠다고만 했는데
사도세자가 대신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하여 자신의 생각을 내뱉으며 결정해도
영조는 사도세자의 뜻을 꺾고 묵살하여 기를 죽였다
한마디로 갈구기 끝판 왕
신하들 앞에서 잔소리 + 갈굼 얼마나 수치스럽겠는가
사도세자의 바로 위 동복누나인 화협옹주는 사도세자처럼 아버지에게 미움 받는 처지라,
둘은 "우리 남매는 아버지 귀 씻을 물"이라며 웃었다고 한다
심지어, 영조는 맘에 들지 않는 말을 들으면 귀를 씻은 뒤
사도세자와 화협옹주 처소 방향으로 귀 씻은 물을 버렸다
화협옹주가 죽고 난 직후 영조가 한번 더 양위 파동을 하여
눈 오는 날 사도세자는 아픈 몸을 이끌고 또 석고대죄를 해야 했다
(정성왕후 무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다가 대비 인원왕후와 적모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사도세자는 견디다 못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도교에서 매우 높은 신격인 뇌성보화천존이 보이기 시작하여 두려움에 떨었고
인원왕후와 정성왕후가 차례로 떠나자 환각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인원왕후 상중에 살인을 저질렀고 궁녀를 죽이고 피범벅이 될때까지 때리고
절대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고 한다
세자가 죽인 중관, 내인, 노속이 거의 백여 명에 이르렀다 -대천록
병이 발작할 때에는 궁비와 환시를 죽였고 죽인 후에는 후회했다 -승정원일기
내관 김한채를 먼저 죽이셨다. 그 머리를 들고 들어와 내인들에게 효시하였다. 나는 그때 사람 머리 벤 것을 처음 보았는데,
흉하고 놀랍기가 이를 데 없었다. 사람을 죽인 후에야 마음이 조금 풀리시는지 그날 내인을 여럿 죽였다 -한중록
(한중록 내용이 영화 사도에 나오는 장면 중 하나)
참고로 사도세자가 강박증으로 미쳐가니 다들 세자의 옷 시중을 들지 못하였다고...
아무튼 이런 상황이 발생하여 갈등이 최극단에 달하여 분노한 영조가 세자를 부른다
(사실 이 장면은 머리를 풀어 헤친 상태여야 한다)
"아버님"
"글도 잘 읽고 다 시키는 대로 잘 할 테니 이러지 마시라"
사도세자는 아바마마, 전하도 아닌 아버님이라 말하며 용서를 구했다
혈육의 정을 호소 하였으나 뒤주의 뚜껑을 닫고 봉한다
(세손을 위해(훗날 정조) 정통성을 위해 자결은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뒤주에 갇힌지 8일째 사도세자는 숨졌다
참고로 영조는 이때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는걸 보고 커버치는 신하들을 유배or파직시키기도 했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지 3일째 세자를 폐서인한다고 공포하며 세자가 숨을 거둔 날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세자의 위호를 회복 시켰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슬퍼하여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전해지나
이는 틀린 말일 수도 있다
뒤주에 가두고 영조는 태연하게 정무를 보았고 밥도 잘 먹었기때문....
시호 자체는 영조와의 마음과는 상관 없이 시호를 정하는 시법을 따랐을 뿐이다
+번외
사도세자가 뒤주에 있을때 영조는 포도대장 구선복을 시켜서 뒤주를 지키게 하였고
(영화에서 정조가 사도세자를 보러가는 중 병사가 길을 막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사람은 내금위장이다.
구선복 모티브 같기도?)
생사 여부를 알기 위해 말을 걸게 했다
뒤주에 있던 세자는 누군지 밝히라 했으나 이름만 말했고 세자는 꾸짖어 구선복은 그제서야 자기 직함을 말했다
구선복은 뒤주 옆에서 오줌을 싸고 조롱을 했다는데 믿거나말거나 야사일 뿐이다
(구선복이 정조때도 관직에 있었음. 하지만, 역모를 꾀해 뒤짐)
참고로 영조가 좋아한 고추장은 사도세자가 올린것임. 16세기말에 고추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고, 17세기에 민간에서부터 고추장을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병으로 입맛과 기력을 잃은 영조에게 사도세자가 사가에서 올린 음식이라며 올려 영조가 기력을 되찾음. 이후 영조는 고추장 마니아가 됨.
-사도세자 이야기 끝-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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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일본 좋아해? 그럼 꺼져 작성시간 24.11.21 사도세자 무술에 뛰어낫다매.. 좋아하는거 잘하는거 시켰으면 어케됐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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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재인 작성시간 24.11.21 그냥 그성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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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아무개 작성시간 24.11.21 뭐 다른건 그렇다쳐도 귀 씻는건 진짜 어떻게 지 자식한테 그럴수있나싶음.. 난 경멸하는사람한테도 저렇게까지는 안할거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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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맡아봐가을이야 작성시간 24.11.21 아버지한테 대들든가 하다못해 노론이니 소론이니 개지랄하는 신하들을 조지던가 강약약강 발휘해서 힘없는 궁인들만 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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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글루팅 작성시간 24.11.21 사도세자 안좋아하지만 영조도 존나 싫음 대체 왜저래 ㅆㅂ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