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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미국에서 세탁업=아시아인이란 이미지의 역사(요약ㅇ)

작성자세차|작성시간24.11.25|조회수3,895 목록 댓글 8

출처: https://www.fmkorea.com/7737192008

 

 

 

2022년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는 하나의 인상깊은 선입견이 등장한다. 

바로 "세탁소를 운영하는 동아시아인" 이다. 

이 영화를 안봤다고해도 

 

 

미국1세대 교민들이 압도적으로 세탁소에 많이 종사한다는 이야기는 나이 좀 찬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번씩 들어봤을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세탁소인가? 

 

물론 세탁소가 물리적으로 굉장히 힘든일이고 흔히말하는 저숙련 고노동의 업계에 있어 이민자들이 차지했다..라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이런류의 일은 굉장히 많은데 왜하필 세탁소냐 라는 질문에 답이되기는 살짝 부족한거 같다. 

 

지금부터 한번 알아보도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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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동아시아인과 세탁소의 연연은 생각보다 길다. 

 

 

지금이야 한국인이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원래 미국 세탁소를 운영했던 전통적인 인종은 중국인이였다. 

그것도 무려 1800년대 중반부터 말이다. 

 

 

 

1800년대 중반, 미국서부에는 하나의 유령이 사람을 끌어모으고있었다. 일확천금 즉 골드러시라는 이름의 유령이. 

수많은 미국인들은 물론 금은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옳다라는 말과 같이, 자리를 잡지못한 수많은 유럽이민자들이 서부로 향했다. 

 

여기까지가 사람들이 잘 아는 골드러시의 개요겠지만 캘리포니아로 뛰어든 또하나의 인종이 있었으니 다른사람들이 고 웨스트를 외칠때 고 이스트를 외친 중국인들이있었다. 

 

미국인 광산 오우너들은 금을 캘 값싼노동력이 필요했는데 마침 곡괭이질할 힘은 있으면서 이것저것 따지는거없고, 가격도 싼데다가 법은 커녕 영어도 몰라 부려먹기 딱 좋은 노동력이 중국의 노동자들이였던 것.

 

(역사의 재밌는 점 중 하나는 서로 두 다른 역사처럼 보이던게 하나의 "세계사"로 엮이는 과정이 아닐까)

 

1800년대 중반은 골드러시가 시작된때이기도하지만 중국(청나라)이 공식적으로 아편전쟁에서 패하면서 쇄국이 망가진 이후기도 하다. 서양의 "정당한" 계약행위를 막을수없었던 때, 수백수천수만의 중국인이 계약서에 싸인한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

 

그렇게 수만의 중국인이 지속적으로 캘리포니아에 유입됐고, 캘리포니아는 21세기 미국의 오픈베타서비스마냥 진정한의미의 다인종 다문화의 주가 된 상태, 수백개의 광산촌과 임시개척촌이 세워지는 등 캘리포니아는 인구수로만 보면 매우 큰 성장을 겪는 와중 하나의 문제점이 있었으니

 

바로 대도시는 몰라도 광산촌으로 몰린 대부분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넘어온 사람들이 "남자" 였다는 점이다. 

그것도 대부분이 살면서 집안일이라고는 한번도 안해본 개씹 마초 남성들이였다는점이다. 

 

 

집 수리는 기본소양이요 탄광에서 12시간동안 박혀있어도 괜찮지만 도저히 "가사" 만큼은 자신이없었던 19세기 씹상남자들. 

 

요리까지는 흠..그래 ㅇㅋ 불을 다루는 셰프도 마초스럽지 라곤해도 도저히 빨래만큼은 자신의 남성성이 훼손될거라 믿었던 시대, 그리고 개척촌에서 여자란 창녀와 유부녀밖에없었던 초기 광산의 시대, 

누군가는 땀과 검댕으로 얼룩진 옷 빨래를 해야했다. 

 

중국인들은 이 틈을 잘 파고들었다. 

물론 대다수의 중국인은 여전히 광산노동하고 철도까는 노동을 했지만, 소수의 틈새시장을 노린 중국인들은 세탁소를 개척촌에 차리면서 "아시아인=세탁소"라는 150년도 넘은 선입견이 시동을 건 것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역사의 시작에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해당시기 백인남성들은 변발에 이질적으로 생긴 중국인들을 자신과 동등한 남자로 보지않았다. 그렇다고 고추달린 사람을 여자로 취급한 건 아니고, 

그들을 일종의 제3의 성으로 취급하는 면이 있어,  '남자가 아닌' 그들에게 세탁을 맡기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어떻게보면 "하필 세탁소" 인 이유에는 동양인을 같은 마초로 보지않던 백인들의 인종차별이 근원일 수 있다는 점이다. 

 

(위 항목은 Ngai, Chinese Question. Johnson, Roaring Camp. Lee, Orientals 중Third Sex 챕터 참고함

 

-

(1890년, 미개한 중국인 세탁소말고 백인인 제가 만든 세탁'기'를 이용하세요! 라는 광고) 

 

(1930년대 창설된 "전미중국인세탁연맹")

 

어쨌든 그때부터 시작된 아시아인의 세탁소 가업은 시작됐다. 

차이나 타운, 코리아 타운 등 전통적인 서로 밀어주고 이끌어주는 훈훈한 세상속에서 낯선 타국에 건너온 영어못하는 동지들에게 세탁소 기술을 알려주고 그 동지는 다른 동네에서 세탁소를 여는 그런 순환이 수십년뒤에 켈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굴러가며 아시아인=세탁소 라는 선입견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영원한건 아니였으니.

태어나서부터 한번도 본적없는 중국의 문화가 아닌 미국의 문화에 물들고 부모님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돈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중국인 2세 3세들은 부모님의 세탁소에서 벗어나 각자의 삶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 둘 쇠퇴한 아시안 세탁소들을 매꾼 사람들이 마침 1953년 휴전 이후, 그리고 미국의 "아시아인배제법"이 폐지된 1965년 후 대거 미국으로 떠나기 시작한 한국인들이였다. 

 



(전에 언급했던 중국인처럼, 70-90년대 설립된 수많은 한인세탁협회들)

 


(친척중에 한명이 이미 세탁소 운영중이라 이민후 자기도 먼저와있던 친적한테 세탁일을 배우고 독립했다는 이민1세대)

 

1970년대에도 여전히 세탁은 마초와는 거리가 오백년은 먼 작업이였고, 그러면서도 매우 큰 노동강도를 자랑했던 직업이기에 한국인들은 한손에는 '고향에계신 부모님한테 송금해야한다'를, 다른 한손에는 '내 자식만큼은 성공시킨다' 라는 멘탈로 낯서디 낯선 미국 각지에 세탁소를 열었다.

 

거기에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합쳐진 결과 한때 남부 캘리포니아 세탁소 중 80%가 한국인의 손에있었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70-90년대 미국 세탁업의 대표주자는 한국인이였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미국으로 이민오는 한국인들은 중 이미 부유하고 배운게 많았던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났고

중국인세탁소와 같이 2010년대 이후 이민 1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면서 수가 줄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코로나에 직격당해 큰피해를 입어, 가면갈수록 한인세탁소의 수는 가면갈수록 줄고있는 상황이다. 

 

 


(이젠 세탁업같은 3d업종보다 윗세대의 희생으로 변호사 치과의사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국계2,3세들.

여담이지만 90년대서 멈춘것같은 특유의 화장법과 디자인때문에 재미교포들은 약간 평행세계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때 한 시대와 인종을 대표했던 아시아인의 세탁-제국은 사라질것인가?

어떻게보면 선입견이요, 아시아인은 공부 잘한다와는 달리 시작조차도 그리 좋지않았던 선입견이지만 

뭔가 괜시리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끗- 

 

 

네줄요약

1. 골드러시 시대 수많은 씹상남자들이 원피스처럼 금 찾을려고 캘리포니아에 우후죽순 거점세움

2. 근데 생각해보니 씹상남자는 빨래따윈 안함, 아니 못함. 이때 이 틈새 찾은게 같은 "남자"로 인정받지 못한 초기 아시아 이민자들

3. 그렇게 3D잡인걸 넘어서, 남자는 "해서는 안되는 일" 취급을 받은 세탁업을 자연스럽게 아무튼 돈벌어야해서 도맡은게 중국인이였고, 시간이 지나 가업을 잇기 싫어하는 2세 3세들이 세탁업을 하길 거부하자 본격적인 이민러시를 시작한 한국인들이 그 틈새를 체움.  

4. 그렇게 백오십년이 넘는 역사로 "아시아인=세탁소"란 이미지가 생김. 

 

 

참조

Ngai, Chinese Question (글쓴이 픽, 강추)

Johnson, Roaring Camp: The Social World of the California Gold Rush 

Lee, Orientals: Asian Americans in Popular Culture  

ShahContagious Divides

 

+

혹시몰라서 추가) 

그렇다고 초반인 19세기 중반을 제외하면 세탁업이 속된말로 '빈집'은 아니였습니다. 당장 위에 1900년대에 백인사업가들과 경쟁한적도 많았고 정부차원에서 중국인세탁소 죽이고 백인세탁소 밀어줄려다가 소송걸린 Yick Wo v. Hopkins 같은 유명판례도 있을정도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인들도 맨 처음 들어올때 유대인들과 경쟁해서 이겼다는 신화는 알음알음 유명하죠

 

 

댓펌


저게 태평천국운동이랑도 연관이 있다던데

 

찾아보니 아편등으로 국고박살-태평천국으로 사회혼란-기근으로 식량난 등으로 생활고 콤보 뒤지게 쳐맞은 실업자들이 계약서에 싸인하고 미주 땅으로 넘어왔다는 분석이 많네요. 확실히 중국내가 살기좋았으면 안갔을테니... 특히 태평천국이 일어난 위치가 개항한 항구도시들과 가까워서 그곳에 거주했던 중국인들은 혼란에 직격당했을때 많이 넘어갔을거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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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Break of Dawn | 작성시간 24.11.25 우오ㅓ 흥미돋이다 ㅋㅋ
  • 작성자우파루 오딧세이 | 작성시간 24.11.25 지금 파친코 작가인 이민진 작가님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읽고 있는데 여기도 부모님 세탁소 운영함 이런 배경이 있었구만...
  • 작성자Costa Mesa | 작성시간 24.11.25 와 태평천국운동 진짜 오랜만에 듣는다
  • 작성자TikTok | 작성시간 24.11.25 요즘같은 시대에 외국에서 살려고해도 힘든데 1970년도에 미국 넘어간 한국분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인종차별이며 언어며.. 진짜 고생많으셨을듯
  • 작성자아츠앤사이언스 | 작성시간 24.11.25 오 영화 바빌론 생각나
    거기서 페이 주도 중국인 세탁소집 딸이고 교육 잘받아서 유럽으로 넘어가잖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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