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KBO 개그콘서트
길 메시라는 선수가 있었음. 고등학교 때부터 주니어 국대를 뛴 유망주임. 드래프트 직전인 졸업반 시절에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경기를 거의 못 뛰었는데도 96년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1라운드 지명을 받을 정도의 유망주였음. 물론 전체로 따지면 28순위였지만 졸업 시즌에 경기를 많이 날려먹은 고졸 루키를 1라운드에 뽑았다는 거 자체가 개쩌는 재능이란 증거 ㅇㅇ
드래프트 1라운드는 팀에서 애지중지하는 귀한 유망주라는 상징임. 시애틀의 기대주로서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히 수업을 받은 길 메시는 1999년 7월 6일, 드디어 메이저리그 데뷔를 함.
(마이너에서 약 2년 반을 보내고 빅리그 데뷔를 한 건데, 이 정도면 엄청 빠른 편임. 당시 기준으로 매리너스 역사상 두번째로 어린 메이저리거였음. 첫번째는 매리너스 최초의 영구결번인 캔 그리피 주니어 ㅇ.ㅇ)
루키 시즌 성적은 8승 4패, ERA 4.73
S급 성적은 아니지만 고졸 루키란 걸 감안했을 때 내년 내후년이 더더욱 기대되는 성적이었음.
하지만 이듬해인 2000년, 부상이 찾아옴. 길 메시는 수술만 두 번하며 2년 반에 가까운 시간을 날려먹음.
복귀 시즌인 2003 시즌에는 186이닝을 소화하며 평자 4.59를 기록해 다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그 후로는 성적이 오히려 더 나빠짐. 04 시즌과 05 시즌에는 150이닝도 소화하지 못하면서 5점대 평자를 기록했고, 그나마 다시 올라온 2006 시즌에도 평자 4.48이 한계였음.
186.2이닝 ERA 4.48로 2006 시즌을 마친 후, 길 메시는 FA 자격을 획득함. 소위 ‘긁을 만큼 긁었다’고 판단한 시애틀은 길 메시를 잡지 않음.
이때 한 팀이 길 메시를 영입하는데
캔자스시티 로열스였음.
로열스는 5년 5500만 달러로 길 메시를 영입하는데,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고액 계약이었음. 요즘이야 n억 달러 계약이 판을 치지만 거의 20년 전인 2007년이니...게다가 캔자스시티는 빅마켓이 아니라서, 5년 5500만 달러는 로열스 역사상 최고액수였음 ㅇ.ㅇ
길 메시는 성적을 보면 알겠지만 S급은커녕 A급 매물도 아니었음. 야빠들은 “로열스 프론트 미쳤냐?”라는 반응을 내놓는데, 이에 로열스의 단장은 “에이스의 향기가 난다”라는 한 마디로 입장을 표명함.
뭐 어쨌든 로열스의 유니폼을 입고 시작한 2007 시즌
길 메시는 216이닝을 소화하며 평자 3.67을 기록하고 올스타 진출까지 함
다음 해인 2008년에도
210이닝 평자 3.98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로열스의 에이스 노릇을 함. 도박에 가까웠던 계약이 압도적인 성공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음 ㅇ.ㅇ
이 무렵 로열스에는 또 다른 호재가 있었는데, 오랫동안 애지중지해오던 팁 유망주가 평자 3.47을 기록하며 마침내 포텐을 터뜨림. 바로 잭 그래인키 ㅇㅇㅋㅋㅋ길 메시 - 잭 그래인키 원투펀치를 가지게 된 로열스 팬들은 행복에 취하기 시작함
그리고 2009 시즌. 캔자스의 에이스로 완전히 자리잡은 길 메시는 2007, 2008년에 이어 개막전 선발투수로 출전해 전반기 평자 3.31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음.
6월 15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벡스와의 경기에서, 길 메시는 무실점 피칭을 하고 있었음. 이에 로열스 감독은 완봉승 기회를 주겠다며 길 메시를 계속 마운드에 올림.
이 경기에서 132구를 던진 길 메시는 어깨와 허리 통증을 느꼈고, 급격하게 폼이 무너짐. 해당 경기 이전까지 평자 3.31이었는데 해당 경기 이후로는 평자 8.05...아예 선수 자체가 망가져벌임
이 부상은 아예 고질적인 부상이 됐고, 길 메시는 다음 해인 2010 시즌까지 사실상 날려먹음.
위에 말했다시피 길 메시의 계약은 5년 5500만 불로, 2011년까지였음. 당해 잔여연봉은 1200만 달러. 당연하지만 길 메시가 공을 아예 안 던지고 드러누워도 무조건 지불해야하는 돈임.
1200만 달러짜리 선수니 쓰긴 써야겠는데 132구 경기 후로 완전히 망가져버렸잖음? 길 메시가 선발 로테이션을 도는 게 어렵다고 판단한 로열스는 불펜 투수로 전향하는 걸 권함.
근데 길 메시가 잔여연봉 1200만 달러, 현재 환율 기준 약 170억을 쿨하게 포기하고 은퇴함. 놀란 단장이 보상금 600만 달러라도 가져가라고 했지만 그것도 받기 싫다고 거절함.
은퇴 당시 남긴 멘트는 “나는 팀이 1200만 달러를 날리게 하는 선수가 되고 싶지 않다. 내 삶과 내 아이들을 위해 이미 4천만 달러를 준 팀이 추가로 그런 돈을 지출하게 만드는 건 옳지 않은 행동이다.”우리팀 먹튀 새끼에게 읽어주고 싶은 글귀
잦은 부상에 시달린 데다 일찍 은퇴해서 명전은 근처도 못 갔지만...그래도 로열스 팬들의 기억 속에 진정으로 로열스를 사랑한 에이스로 남았다고 한다.
여담)
당시 로열스 감독은 욕을 엄청나게 먹음. 딱히 이닝 이터 타입이 아닌데다 부상 이력이 있는 선수한테 2년 연속 200+이닝을 먹이고 + 퍼펙트도 아니고 고작 완봉승 때문에 132구를 던지게 만들어서 아예 재기불능을 만들어버렸으니 욕을 안 먹을 수가 없음ㅋㅋㅋ
132구 사건으로 뒤지게 욕을 먹던 와중에 성적 부진까지 겹쳤고, 이 감독은 다음 시즌인 2010시즌 5월에 결국 경질을 당함. 잘못된 선택 한 번으로 팀의 에이스가 망가지는 걸 지켜보며 많은 걸 느낀 이 감독은 해당 사건을 기점으로 투수 혹사에 엄청 예민해짐. 이후로는 과장 좀 보태 ‘투수를 갈 바에는 차라리 경기를 던지겠다’ st의 철저한 관리형 감독이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18시즌 SK 와이번스 (현 SSG 랜더스)의 KBO 우승을 이끈 트레이 힐만 감독 되시겠다. 저 해 김광현이 착실히 관리받은 건 물론 구단 기조겠지만 길 메시의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봐야ㅋㅋ...
- 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