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한방울]현재 정부를 믿지 못하는건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애국가 집단발포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성자마산와서 매르치 사이소작성시간24.12.04조회수11,034 목록 댓글 28출처: 여성시대 마산 와서 매르치 사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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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50분 경에 장형태 전남지사가 헬기를 타고 금남로 상공에 나타나 상공을 돌면서 "공수부대를 철수시킬테니 광주시민들은 질서를 지켜달라"고 하며 시민들을 무마하려 했다.
도청 앞에는 10만이 넘은 시민들이 도지사의 발언을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12시가 되어가도 시민들을 포위한 공수부대가 철수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은 동요했다. 자신들의 힘으로 공수부대를 몰아내자는데 뜻을 모았다.
오후 1시가 조금 못되어 시위대가 장악한 장갑차 한 대가 갑자기 공수부대의 저지선을 향해 돌진했다. 공수부대의 저지선이 무너지자 부대원들은 도청 안으로 들어가는 등 피신하기에 바빴다. 그때 공수부대의 장갑차가 후진하는 과정에서 군인 1명의 사망자와 1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저지선이 붕괴되자 시위대의 트럭과 버스들이 장갑차의 뒤를 따라 도청앞 분수대를 돌아나오거나 도청쪽으로 전진했다.
12시 58분 광성여객 버스가 접근했을 때 분수대 근처에 있던 일부병력이 사격을 가했다. 이 사격으로 운전사는 즉사하고 버스는 수협 전남도지부 건물에 처박혔다. 그리고 이 직후인 오후 1시 정각에 느닷없이 애국가가 방송되면서 일제사격이 시작되었다.
공수대원들이 엎드려쏴 자세로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를 시작한 것이다. 전일빌딩, 상무관, 도청, 수협 전남도지부 건물의 옥상에서는 저격병들이 시위대 열 선두의 주동자들을 겨냥하여 사격을 실시했다.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격은 메가폰으로 사격중지 명령이 내릴 때까지 약 10분간 계속되었다.
하필이면 애국가를 신호로 시민에 대한 일제사격, 공수대원들이 엎드려쏴 자세로 시민들에게 집단사격, 광기이고 광란이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이라도 자기 국민을 향해 일제사격, 집단사격이라니, 천인공노할 만행이 대낮에 광주에서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