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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1700만 명을 죽인 어느 다정한 아버지

작성자흥미돋이야기해주는여시|작성시간24.12.10|조회수7,609 목록 댓글 38

출처: 여성시대 흥미돋이야기해주는여시










하인리히 힘러라는 사람이 있었음. 나치 친위대와 비밀 경찰의 총 책임자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가장 깊게 관여한 전범임. 유대인 학살 계획을 세운 게 이 사람임.



















독일-소련 전쟁 당시 포로 학살부터 시작해서 유대인 학살까지, 힘러가 관여한 학살의 피해자는 최소가 1000만이고 최대 1700만에 달함.

이 인간이 참 웃긴 게...한 번은 아우슈비츠에 가서 실제로 유대인 처형 장면을 목격했는데, 기절할 정도로 놀람. 그래놓고는 베를린으로 돌아가자마자 유대인 학살을 계속하라고 지시하는 서류를 작성함. 또 학살과 별개로 절대 사치를 부리지 않고 자기 부모님이 관용차를 이용하면 해당 비용을 자기 급료에서 꼬박꼬박 공제하는 등 청렴결백한(?) 면모도 있었음.








힘러가 얼마나 유대인 학살을 당연하게 여겼냐면...히틀러의 연인이었던 에바 브라운이 찍은 홈비디오에 힘러가 부하들과 대화하던 중 에바가 자기를 찍고 있단 걸 알고 에바 쪽을 돌아보며 씩 웃어주는 장면이 있음. 근데 후에 입모양으로 추론하길 이 때 나누던 대화의 내용이 유대인 학살 계획이었음


(다만 확실한 사실은 아님. 화질이 조악해서 모든 내용을 알기 힘들 뿐더러, 힘러는 유대인 학살을 계획을 짤 때 대부분 혼자 하거니 믿을 만한 소수의 부하들이랑만 공유했음. 무엇보다 에바는 히틀러의 연인이긴 했지만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음. 에바가 있는 자리에서 유대인 학살 계획을 진지하게 논의했단 건 사알짝 의문이 남는 부분)



















쨌든 힘러의 이런 이중적인 면모가 가장 극한으로 드러나는 게





사생활이었음. 힘러한테는 구드룬이란 딸이 있었는데, 힘러는 나치당 간부 중에서도 손 꼽히는 딸바보였음. 집무를 보는 중에도 항상 직접 구드룬을 돌보고 강아지라는 애칭을 쓸 정도.


















또한 힘러의 상관인 히틀러 역시 구드룬을 예뻐함. 히틀러는 종종 힘러의 집을 찾아와 힘러 가족과 함께 식사했고, 매년 구드룬에게 인형이나 초콜릿 같은 선물을 챙겨줌.



















유대인 수용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었던 힘러는 수용소 시찰에 종종 구드룬을 데리고 갔음. 직접 유대인 수감자들을 보여주고 기념 사진까지 찍음(....)




다만 그 수용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건 나치들도 철저히 숨기는 비밀이었음. 일반적인 노동수용소는 거리낌없이 놔뒀지만 유대인을 죽이기 위한 절멸수용소의 존재는 항상 비밀이라 연합군이 올 것 같으면 즉시 수용소를 허물 정도였음.

게다가 1930~40년대잖음. 지금이야 유튜브가 있지만 저 시대에 뭐가 있겠음. 당시의 언론은 철저히 나치를 미화하고 선동하는 쪽이었음.





따라서 구드룬은 아버지가 유대인을 학살했단 걸 전혀 모른 채 유년 생활을 함. 성장기 내내 힘러와 히틀러에게 듬뿍 사랑만 받은 구드룬은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됨.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1945년, 나치의 끝이 다가옴.



16살의 구드룬은 어머니와 함께 미군에게 붙잡혀 여러 수용소를 전전함. 당시 연합국 측 인사는 “만약 당신들이 힘러의 처자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에게 갈가리 찢겨져 죽을 겁니다”라고 말했고, 구드룬은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의 진실을 알게 됨.


그리고 같은 해 5월 23일, 힘러는 영국군에게 붙잡힌 직후 포로 수용소에서 청산가리 캡슐을 깨물어 자살함.




구드룬의 어머니는 딸이 충격받을 것을 염려해 힘러의 죽음을 숨겼지만 결국엔 구드룬도 힘러의 소식을 알게 됨.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구드룬은 바로 앓아누워 약 3주간 고열에 시달렸고, 정신착란 증세까지 보임. 참고로 힘러가 자살했단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해서 연합군이 타살했다고 주장했음ㅇㅇ




















구드룬은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상기한대로 힘러의 학살에 관여한 게 전혀 없단 점이 인정돼서 무죄로 풀려남.


이후 구드룬 모녀는 탈나치화를 위해 수용소를 거쳐 수도원으로 보내짐. 당시 수도원에서 지내던 여자들이 (아직 어린 구드룬을 안쓰럽게 여겨서) 구드룬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는데, 구드룬은 이들과 일체의 대화를 거부함. 수도원에서 6년을 지내는 동안 단 한 번도 웃거나 울지 않았을 정도;;....


















구드룬의 사상은 성인이 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음. 힘러의 전쟁 범죄 사실 자체를 평생 부인했고, 누가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자랑스럽게 “내 아버지는 나치 국가지도자였던 하인리히 힘러”라고 대답함.


그렇다 보니 툭하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함. 당연한 수순이었음ㅇㅇ



















성인이 된 구드룬은 <슈틸레 힐페>라는 단체에 가입함. 징역을 살거나 도주 중인 나치 전범들을 구원하는 모임이었음.



슈틸레 힐페는 나치 전범들의 도주를 돕는 게 주요 목표였는데, 구드룬은 슈틸레 힐페의 상징으로 활동하며 죽을 때까지 나치 전범들을 도와줌. 일례로 아버지의 측근이자 수용소 관리자였던 전범이 최고급 양로원에서 지낼 수 있게 도와주고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매주 면회를 가줌. 장장 60년간 네오 나치의 상징으로 활동하며 생긴 별명이 <나치의 공주> ㅇㅇ...




















구드룬은 살면서 무수한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대부분 거절했고, 슈틸레 힐페 활동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저는 제 일에 관해 결코 말하지 않아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겁니다. 제가 할 수 있을 때 말이죠.”라고만 대답함.







결혼까지 자신과 사상을 공유하는 네오 나치랑 했고, 2018년에 88세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 슈틸레 힐페의 일원으로서 살아남은 전범들을 도우려고 애 쓰다가 사망함.

















(가장 유명한) 구드룬 외에도, 나치 전범들의 자녀들을 중 많은 이들이 평생 자신의 부모를 옹호했음.






나치 독일의 2인자였던 헤르만 괴링한테는 에다 괴링이라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이쪽도 힘러 못지 않은 딸바보였음. 늦둥이 외동딸인 에다가 태어나자 500대의 항공기를 베를린 상공에 띄워 축하하고 오로지 딸을 위해 동물원이 딸린 대저택을 지을 정도.



괴링이 사망할 당시 7살이었던 에다는 역시 구드룬처럼 평생 극우 조직에서 활동했고, 괴링을 그리워하는 회고록을 씀. 구드룬과 달리 괴링의 역할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저는 아버지를 매우 사랑했고, 아버지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명백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유일한 기억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들이고, 나는 아버지를 다른 방법으로 볼 수 없습니다. 저는 사실 미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버지를 좋게 생각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는 나에게 좋은 아버지였습니다.”라고 평생 그리워하다가 죽음.




















이제 반대로, 아버지의 죄를 평생 부끄러워한 쪽도 있음.






한스 프랑크란 사람이 있었음. 폴란드 총독으로 유대인 학살에 관여했는데, 별명이 <크라쿠프의 백정>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극악의 전범이기도 함.




한스 프랑크의 막내아들인 니콜라스는 평생 아버지의 죄를 부끄러워했고, 아예 자기가 아버지의 행적을 조사해서 아버지의 죄를 낱낱이 고발하는 회고록까지 출판함. “아버지는 극렬 나치주의자였으며 실제로는 자신의 죄를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끝까지 비판하는 내용임 ㅇ.ㅇ





















예시로 든 건 일부고, 정말 많은 나치의 아이들이 있었음. 루돌프 헤스의 아들은 구드룬 쪽과 마찬가지로 평생 아버지를 옹호했고, 또 반대로 마르틴 보어만의 아들이나 슈페어의 딸은 자기 아버지를 비판하고 대신 속죄함.


똑같은 나치의 아이들인데 왜 누군가는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못해 아버지를 합리화하는 데 자기 삶까지 바치고, 다른 누군가는 아버지를 비판하는 것일까?








루돌프 회스의 딸인 브리기테의 인터뷰를 보겠음. 회스는 아우슈비츠의 책임자로, 당연하게도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전범이었음.

















회스는 아우슈비츠의 소장이었지만 자기 가족에게는 더없이 가정적인 아버지였음. 틈날 때마다 집에 들러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아이들과 더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걸 아쉬워함.

(아이들과 보내지 못한 시간 동안 유대인을 학살하고 있었단 게 참 아이러니하지만ㅋ...)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회스가 사형 당한지 60년도 더 지난 2013년, 회스의 셋째인 브리기테를 인터뷰하고 싶어한 사람이 있었음.







도주하던 루돌프 회스를 붙잡은 유대인 한스 알렉산더의 증손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토마스 하딩이었음.


<한스와 루돌프>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고 있던 하딩은 꾸준히 브리기테에게 인터뷰 요청을 함. 줄곧 인터뷰를 거부하던 브리기테를 설득하는데 장장 3년이 걸림.
















사실 구드룬과 에다를 포함해 아버지를 옹호한 측의 의견은 대부분 비슷함. <모든 책임은 히틀러에게 있고, 내 아버지는 다만 나치 독일의 공직자로서 책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는 나에게 너무나도 좋은 아버지였다>

이거 완전 아이히만





80세였던 2013년의 브리기테도 비슷했음. 브리기테는 “아버지는 힘러나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 사람일 뿐”이라며 회스를 옹호했고, 더 나아가 홀로코스트로 수백만명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함. “만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생존자들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함.


브리기테에게 있어 자신의 유년 시절은 아름다웠던 시절이었고, 회스는 다정했던 아버지였음. 식사가 끝나면 정원에서 놀아주고, 동화를 읽어주고, 매일 밤마다 굿나잇 키스를 해주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고 엄격하게 꾸짖은(...) 아빠. 브리기테의 기억 속에서 회스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였고, 회스의 자백도 고문으로 인한 거짓 자백이었다고 굳게 믿음.


전범의 딸이었던 브리기테는 평생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 했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를 그리워했고, 부모님의 결혼 사진을 항상 침대 위에 걸어두고 삼. 하딩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일 밤 아버지의 품 아래서 잠들었음’.

















그리고 2021년, 하딩은 다시 한 번 브리기테를 만남. 당시 브리기테의 나이는 88세로 죽음을 앞둔 노인이었음. 이때의 인터뷰를 일부 인용하겠음.




Q. 당신의 첫번째 기억은 무엇인가?

A. 아우슈비츠. 그 이전의 것은 (어려서) 기억나지 않는다.





Q.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였나?

A. 훌륭한, 절대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다. 더 나은 아버지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Q. 그는 다정했나?

A. 그렇다. 매일 밤마다 우리에게(브리기테와 남매들에게) 굿나잇 키스를 하고는 “좋은 꿈 꾸렴.” 인사를 해줬다. 나중에(=2차 대전이 끝나고) 우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됐다. 나는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 일이 내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안다.







시작은 2013년의 인터뷰와 비슷함. 회스는 좋은 아버지였으며, 그의 잘못은 없다고 옹호하는 내용.

















그 다음을 보겠음.






나는 그녀에게 강하게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가 백만 명을 살해한 책임이 있는데 어떻게 ‘절대적으로 훌륭한 사람’일 수 있는가?”

“음...”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그건(=홀로코스트)는 사실이야. 그렇지 않아?” 내가 말했다.

“그래.” 그녀가 인정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 말은...난 그걸 이렇게 보지 않는다는 거야.”

“하지만 그건 사실이야. 당신은 홀로코스트가 사실이라는 것에 동의하나?” 나는 밀어붙였다.

“글쎄...일어났지.” 그녀는 약하게 말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인가?” 나는 분명하게 말하라고 요구했다.

“맞아.”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가 (아우슈비츠의) 사령관이었나?” 나는 계속했다.

“그렇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래서 그가 책임이 있었나?”

“내가 말했듯이, 가끔씩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잠시 기다렸다가, 덧붙였다. “어쩌면 나는, 몇몇 사실들을 알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는 사실이다.” 나는 그녀를 압박했다. “당신의 아버지가 책임이 있었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

“나는 여전히 믿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저항했다. “왜냐하면 그의 위에 (히틀러 같이 더 높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내 아버지에게 (유대인 학살을) 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가 한 것이다.”

“글쎄, 아마...그렇지.” 그녀는 마침내 인정했다. “나는 그렇다고말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터뷰는 끝났다. 나는 녹음 장비를 챙겼고, 노트를 치우고 작별 인사를 했다. 2년이 채 지나기 전인 2023년 10월, 브리기테는 사망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관해 명백한 증거가 존재하지만 구드룬과 브리기테를 포함한 나치의 아이들에겐 소용이 없었음. 전해진 ‘정보’는 거부했고, 오로지 자신의 ‘경험’만 믿음. 자기가 유년 시절 겪었던 다정한 아버지ㅇㅇ

우리가 보기엔 저 태도가 이해가 안 가잖음? 거의 유일하게 구드룬을 인터뷰한 기자의 아들이 후일 그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구드룬의 심리를 분석한 걸 참고해서 왜 나치의 아이들이 저런 선택을 했는지 결론 지어 보겠음.





일단 나치의 자녀들은 유대인 학살에 관여하지 않았음. 본문에서 언급된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구드룬이 종전 당시 16살이었고, 브리기테는 12살에 에다는 7살이었으니 당연함.


하지만 나치 전범의 자녀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박해를 받았음. 일단 종전 직후에는 수용소에 수감됨. 구드룬은 어머니와 함께 여러 수용소를 전전했고, 브리기테의 인터뷰에 따르면 중엔 연합군이 (도주 중인) 회스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브리기테의 어머니와 큰오빠를 폭행하며 심문한 기억이 있음.

또 무죄를 받고 수용소에서 나온 후에도 대부분 자기 신분을 숨기고 가족과 흩어져 살았음. 구드룬처럼 자기가 힘러의 딸이란 걸 당당하게 밝히고 다닌 쪽은 수십 번의 해고를 당했고.





나치 고위층의 자녀로서 부유하게 살다가 한순간에 가정이 붕괴되고 재산을 몰수당한 채 수용소를 전전한 건 (그것이 합당한가 여부와 별개로) 개인에게 있어 충격적인 경험이잖음? 유년기에 겪은 충격적인 경험이 (일부) 나치의 자녀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억울한 피해자라고 여기게 만듬.

스스로를 억울한 피해자로 정의한 이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아낸 무거운 짐을 받아들이지 못함. 다시 말해 책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임. 구체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식으로 아버지가 과거에 지녔던 영광을 경배하는 행위로부터 스스로를 확신시키는 어떤 부분을 이끌어냄’

이러한 책임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이 자신에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던 시절, 즉 나치가 집권하고 아버지가 곁에 있었던 과거에 갇힌 채로 평생을 산 것임.

정말 쉽게 요약하면 ‘극단의 방어기제’





(나치의 반인도적 행위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자녀들이 박해당한 부분에 대해선 각자의 사상에 따라 가치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함. 어떤 여시는 나치의 자녀로서 풍요를 누린 대가라고 생각할 거고, 또 어떤 여시는 나치의 자녀로 태어나길 선택하지 않은 아이들이 짊어져선 안 될 불합리한 연좌제라고 여길 테니ㅇㅇ 그 부분에 관해선 각자 판단하면 됨.

이 글에서 내가 말하는 ‘책임’은 나에게 그렇게나 다정했던 아버지가 유대인, 즉 내가 아닌 사람에겐 죄를 저지른 악인이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에 관한 책임임. 저런 박해가 합당한가에 관해선 노코멘트하겠음)









개인적으로, 인간이란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함.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ㅇㅇ. 과오를 인정하고 마주하고 회개한 후에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함.


21세기에 태어난 우리의 시선에선 구드룬이나 브리기테의 행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데, 사실 인간의 본질과 맞닿는 부분이지 않나 싶음. 책임을 마주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진실을 받아들인 자와 거부한 자, 결론적으로는 아버지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라 내가 뭔 말을 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오늘 심심하기도 하고...본인의 책임을 마주하지 않으시는 분이 요새 쩌리에 핫하시다 보니 문득 생각이 나서 써보았습니다.


- 끗 -


















여담 1)

지타 세레니라는 작가가 다른 절멸 수용소의 소장이었던 슈탕글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브리기테의 인터뷰랑 맥락이 비슷함. 슈탕글 역시 <나는 명령을 받아 시행했을 뿐이다>라며 줄곧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다가 인터뷰 말미에 짧게 인정함.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부끄럼이 없소. 난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해치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는 뭔가 다르게, 이전보다 덜 예민하게 강조했고, 다시 오랫동안 기다렸다. 나는 처음으로, 그동안 많은 날을 인터뷰했지만 처음으로, 그의 대답을 거들지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그는 마치 탁자에 붙어있는 것처럼 탁자를 두 손으로 움켜잡더니

“그렇지만...저는 거기 있었지요.”

기묘할 정도로 메마르고 피곤한, 후회의 어조로 이야기했다. 이 몇 마디 문장이 나오는 데 거의 30분이 걸렸다.

“네 맞습니다.”

마침내 그가 천천히 말했다.

“실제로 저도 책임(Guilt)을 짊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죄, 나의 죄를 오직 이 대화에서만 이제서야 처음으로 이야기하게 되었군요...”

그는 이야기를 멈췄다. 그는 ‘나의 죄’라는 단어를 이야기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이 대화의 마지막에 그의 몸과 얼굴은 축 쳐져 있었다. 약 1분 뒤 약간 성의 없이 탁한 목소리로 그가 다시 이야기했다.

“저의 죄는, 제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겁니다. 그게 저의 죄입니다.”
“아직 여기 있다구요?”
“전 죽었어야 했습니다. 그게 제 죄입니다.”
“당신이 죽었어야 했다는 의미인가요? 아니면 죽을 용기가 있었어야 했다는 말인가요?”
“뭐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군요”

그가 애매하게, 이젠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지금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그때는요?”
“맞습니다.”

그는 천천히 대답했는데, 아마 내 질문을 의도적으로 잘못 해석한 것 같다.

“난 20년을 더 살았어요. 그 좋았던 20년이요. 하지만, 이젠 정말 살아 있는것보단 죽는 게 나은 것 같군요.”

그는 좁은 감방을 둘러봤다.

“전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솔직한 어조로 그가 얘기했다.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젠 그만하지요. 지금껏 해왔던 이 대화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이젠 끝냅시다. 이젠 이야기를 끝내자구요.”


그리고 끝났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슈탕글은 19시간 뒤, 다음날 월요일 오후에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상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며 죄를 부인한 건 사실 나치 전범들이 먼저였음. 대표적으로는 아이히만.

학문적인 차원에서의 종교 덕후인 불가지론자로서 브리기테나 구드룬의 행보가 소위 원죄의 대물림처럼 보이기도 함ㅇㅇ



(이때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내놓은 평론이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임. 악이란 대단히 악마적인 것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지 않음에서 시작된단 것.)







아이히만과 슈탕글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이 글 참조
https://m.cafe.daum.net/subdued20club/ReHf/3422836?svc=cafeapp)




















여담 2)


나치 전범 중 가장 유명한 괴벨스한테는 6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이 애들은 괴벨스 부부가 자살하기 전 전부 살해함.

다만 괴벨스의 아내인 마그다가 괴벨스랑 결혼하기 전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하랄트는 종전 이후까지 생존함. 마그다가 권터 크반트란 남자랑 결혼해서 낳은 아들인데, 마그다가 권터랑 이혼하고 괴벨스랑 재혼하자 괴벨스는 하랄트를 자신의 양자로 받아들임. 괴벨스랑 사이도 좋았음ㅇㅇ




권터 역시 나치 독일에 부역하면서 강제수용소 수감자를 강제 노역 시키고 이를 통해서 대재벌이 됨. 당시 크반트 가문 산하의 공장엔 처형장까지 있었음. 명백한 전범 기업이라 종전 직후 연합군에 의해 3년 영업 정지 받음.

이후 권터가 사망하자 권터가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큰아들 헤르베르트, 마그다랑 낳은 둘째 하랄트가 지분을 물려받음. 헤르베트트와 하랄트는 영업 정지 당한 회사 중 하나의 지분을 인수하여 대주주가 된 후 이 회사를 서독 최고의 기업으로 키우는데....










그게 BMW랍니다.




(현재도 권터 가문이 대주주임. 헤르베르트는 사망했고 헤르베르트의 자녀들이 지분을 가지고 있음. 현 대주주인 크반트 남매들은 역사학자를 고용해서 BMW의 유대인 강제 노역에 관한 진상 보고서를 출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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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Creed. | 작성시간 24.12.10 그 논리구조가 일본같다는 생각이 든다.
  • 작성자think를해 | 작성시간 24.12.10 일본이랑 국짐 생각나네..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 책임을 자기가 무슨 피해입은거마냥ㅋ
  • 작성자으쌰라으쌰릥 | 작성시간 24.12.10 와 완전 흥미돋이다 너무 재밌어 글써줘서 고마워 위에 댓글도 짱 흥미돋 손자새끼 잡범이었구나
  • 작성자무의식정화 | 작성시간 24.12.10 글 재밌다...울분이 차오르지만..
    (내생각) 자식들도 죄인임 다 죽여야함ㅋ 저렇게 인정 못하는것도 학살하는거 직접 못봐서 안와닿와서 저럼ㅋㅋ그냥 빵! 하고 죽이는줄 알듯.
    ㅈㄴ곱게자랐단 뜻 학살자 ㅅㄲ들도 지새끼는 귀하니까 곱게 키웠겠지...그리고 현생에 업보빔안맞으면 후손들까지 벌받는게 카르마임. 저렇게 지개비 죄를 모른척 회피한다? 후손들 개큰업보맞을것..
  • 작성자먼이 | 작성시간 24.12.10 와 양자기술에 양자 검색했다가 글에 들어왔는데 정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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