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cafe.daum.net/baemilytory/91cd/990801
1차 출처: 밀리토리네 익명 게시판
2차 출처: 밤먐갬 회원
(메모용임 밭갈이 절대 아님 오히려 본인들이 망한 걸 민주당 탓으로 몰아가는 애들 꽤 봐서 올리는 거)
4.10 총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야당의 역사적인 압승이냐, 여당의 개헌선 사수냐, 어떤 결과가 나오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운명이 뒤바뀔 예정이다. 그리고 이 구도에서 소외된 한 정당이 있다. 진보정당의 맏형 정의당이다. 모든 이목은 민주당과 국짐 그리고 조국에 쏠려있다. 마이너리그에선 쥬피터 대신 화성으로 간 이준석, 이낙연, 김종민 정도나 언급된다. 유튜브에서는 자유통일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음지에선 소나무당이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리고 정의당은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태동기 (~2012)
정의당의 몰락 원인을 알기 위해선 우선 정의당의 탄생 배경부터 살펴봐야 한다.
탄핵 이후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은 정의당을 진보 대표정당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들은 진보정당의 본류와 거리가 있다. 2000년대 진보정당의 적통이자 본류는 민주노동당이었고 정의당을 구성한 노회찬과 심상정은 그 민노당을 탈당해서 진보신당을 차렸던 인물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대로 한나라당은 부패한 이명박 정권으로 인해 무너져가고 있을 때 진보정당은 민노당과 진보신당 두 정당으로 쪼개진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진보신당이 간발의 차이로 봉쇄선을 뚫지 못하며 원외정당으로 전락했고 민노당도 의석수가 반토막 나 버렸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폭주하는 이명박에 맞서 야권연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민주당과 민노당 그리고 유시민이 주도한 국민참여당을 중심으로 야권연대를 형성했다. 여기에 진보신당은 참여하지 않았다. 사실 유선 100% 여론조사로 인해 심각한 원조 여조라이팅이 이때 있었고 모든 여조가 한나라당의 압승을 가리키고 있어서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진보신당의 선택이 잘못됐다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뚜껑을 까보니 20% 차이로 압승한다던 오세훈은 노회찬의 표 갈라먹기로 겨우 생환했고 투표직전 사퇴한 심상정도 엄청난 무효표를 발생시켰다. 진보신당은 야권의 트롤러, 공공의 적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11년, 야권연대는 대부분의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압도했다. 손학규가 경기도의 강남 분당에서 승리하고 최문순은 강원도지사로 당선됐다. 박원순은 나경원을 압도했다. 그렇기에 1년 뒤에 있을 총선과 대선 역시 연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민주 진보진영 모두 공유했다. 민주당은 원외 친노계 인사들이 주도하던 혁통과 통합하여 민주통합당을 출범했다. 산산조각 난 진보정당들도 자연스럽게 통합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 두 개로 쪼개어져 큰 손실을 본 08 총선을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 여기서 민노당은 당세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에게 상당히 많은 양보를 했다 통합 후 지분을 1:1까지 보장해 줄 정도였다.
그런데 참여당의 합류를 놓고 진보계에서 상당한 논란이 발생했다. 노무현정부의 핵심이었던 유시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세력과 그나마 진보세력에 우호적인 유시민조차 못 받으면 외연확장은 어떻게 할 거냐는 현실론자들은 정면 충돌했다. 여기서 진보신당의 자강론자들은 통합안을 부결 내며 상당히 반발했다. 진보당의 핵심인 노회찬 심상정 그리고 당시 의원을 달고 있던 조승수 모두 통합파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실 득표수 자체로 따지면 통합파가 다수이긴 했으나 2/3를 채우지 못해서 부결이 났었다. 여기서 노심조는 정의당을 탈당해 통합에 합류했고 잔류한 진보신당은 2012 총선에서 처절하게 몰락하며 현재 노동당으로 이어져오는 기나긴 고난의 행군을 걷게 된다. 솔직히 나는 합당을 거부한 진보신당 잔류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싶다. 10 지선을 민주-진보 유권자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 또다시 단독행동 하면서 단일화를 요구하면 트롤러로 찍힐 운명이었다.
이렇게 급하게 만들어진 통합은 당연히 잡음이 생겼다. 민노당계는 참여계가 가져온 부채 폭탄을 경멸했고 진신당 합류파도 본래 민노당에서 탈당했던 인사들이었기에 여러 갈등이 있었다. 그리고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으로 화려하게 무너지며 짧았던 통합은 끝났다. 비당권파인 진보신당계와 참여계는 셀프제명이라는 촌극을 벌이며 당을 두 개로 쪼갰다. 그렇게 탈당한 인사들이 뭉쳐서 탄생한 것이 정의당이다.
성장기 (2012~2016)
그렇게 정의당이 출범했지만 존재감은 극도로 미미했다. 보수언론은 통진당 잔류파를 때리며 이들과 연대했던 민주당을 종북으로 몰기 바빴고, 대선을 앞둔 민주당은 통진당을 아예 무시하다시피 했다. 정의당은 통진당과 같은 취급을 받진 않았지만 원내 3당이라는 위치에 비해 이들이 가진 영향력은 너무나 미약했다. 왜 그랬을까?
가장 뼈 아팠던 건 부실한 기초체력이었다. 노-심-유를 간판으로 하던 정의당은 분명 인지도나 대중 호감도에선 통진당 잔류세력을 압도했다. 하지만 분당과정에서 정의당으로 따라간 풀뿌리 조직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애초에 정의당의 핵심이던 노-심 중심의 진보신당 탈당파의 세력은 통진당 전신인 민노당에 비하면 크게 밀렸었다. 또 다른 코어인 참여계는 유시민의 정계은퇴와 민주당 내 친노의 부활, 특히 문재인의 대두로 입지가 붕 떠버렸다. 민노당 출신 인천연합이 정의당으로 합류하긴 했지만 인지도 대비 부실한 정당 조직을 메꾸기엔 부족했다.
여기서 정의당이 선택한 건 공중전이었다. 노회찬 유시민 그리고 우리의 혐오대상이 됐지만 저때까진 진중권까지 정의당의 유력인사들이 원외에서 친민주 계층의 호감작을 계속하며 진보정당계 대중인지도는 계속 높였었다.
노유진의 정치카페, 지금은 친윤스피커지만 저 때당시 진중권은 진보논객이었다.
그 덕분에 정의당의 인지도는 꽤 높아졌다. 원내 3당이자 유일한 진보정당으로 민노당의 포지션을 계승했다. 하지만 부실한 기초체력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내지 못했다. 다시 진보세력을 규합하기엔 통진당 잔당 NL 세력과는 이석기 체포 동의사건 때문에 감정의 골이 매우 깊었었다.
16 총선은 정의당이 가진 딜레마를 잘 보여준 총선이었다. 정의당의 비례대표 선출방식과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는 야권지지자들의 극찬을 받았었다. 하지만 민주당-국민당 분당과 문재인 대표의 인재영입, 김종인의 셀프 비례 2번 공천, 친박비박 논란, 킹무성의 옥쇄런 등 16 총선은 유례없을 정도로 다이나믹했다. 역설적으로 정의당의 깔끔한 행보는 너무 깔끔하고 재미가 없어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비록 비례에서 7%라는 상당한 득표율을 얻었지만 지역구에서는 크게 고전했다.
16 총선에서 정의당이 받은 지역구 득표수는 08 총선 민노당보다도 적었다. 08년보다 16년의 투표율이 훨씬 높았고 08년엔 진보신당도 별도로 있던 것을 생각하면 정의당의 부실한 기초체력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회찬과 심상정 두 명을 거두는 생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노-심 투툴정당이란 오명을 벗어내지 못했었다. 특히 진보정당의 핵심 거점이던 울산에선 구 통진당 출신이 두석을 석권하는 동안 정의당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진보 정치 1번가 창원성산을 노회찬이라는 필승카드로 탈환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민주당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6 총선이 끝난 직후 정의당은 다시 잊힐 위기에 처했다. 민주 121 새누리 120 그리고 국민 38이라는 황금 비율 때문에 모든 관심은 거대 양당과 국민당에 쏠려버렸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뒤흔든 초대형사건이 터지면서 정의당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하며 새누리당이 무너진 것이다.
전성기와 정체성정치 (2017~2020)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의 원정도박에서 시작된 나비효과는 박근혜 탄핵 - 새누리 분당으로 이어졌다. 곧이어 치러진 대선에서 정의당은 진보정당 사상 최초로 2백만 표의 벽을 돌파하며 대선전했다. 비록 안철수의 자멸로 선거가 일방적으로 기울었기에 소신투표가 대량 발생했다고 쳐도 심상정이 얻은 표는 진보의 대부 권영길조차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의당의 원내 위상도 드라마틱하게 변화했다.
16 총선에서 나왔던 황금비율 120 : 120 : 40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분열로 무너졌다.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졌고 국민의당도 친안철수계와 호벤져스 잔당으로 나누어졌다. 18 지선에서 민주당이 대거 의석수를 확보했다지만 130석 정도였고 법안 처리를 위해선 호벤져스 잔당인 민평당 그리고 정의당과의 협력이 필수가 된 것이다. 그리고 민평당 덕분에 정의당은 진보정당 사상 최초로 교섭단체를 규성하는데 성공했다.
원내 구성도 정의당에 극도로 유리하게 흘러갔다. 이런저런 과정 끝에 민주당 120여석 민평당 14석 정의당 6석의 친 여권이 가까스로 150석을 넘게 됐고 여기서 정의당이 이탈하면 민주당에게도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한때 정의당의 데스노트라며 정의당이 인준을 반대하면 그 인사는 버티지 못하고 낙마한다 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청와대에 초청받은 원내 5당 대표
박근혜 행정부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20대 국회에서 정의당이 취한 전략은 명확했다. 민주당과 연대하여 준 여당 대접을 받는 것이다. 2018 지방선거 때 정의당의 슬로건은 5비2락이었다. 정의당이 흥하면 자유한국당이 망한다는 아주 명확한 슬로건이었다. 이런 구호에 힘입어 정의당은 창당이래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안철수와 유승민이 버티는 바른미래당을 제치고 광역비례 3등에 등극했었고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의석 역시 바미당을 제쳤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정의당의 지지율에 비하면 아쉬운 성과였다. 비록 여당의 지지율이 압도적인 상황이라 싹쓸이가 나왔다곤 하지만 심상정의 힘 덕분에 당선된 고양 쪽과 호남을 제외하면 대부분 낙선했다. 여전히 민노당에 못 미쳤다. 그리고 여기서 정의당 몰락의 전주곡이 울려 퍼졌다.
정체성정치
2020 정의당 비례명단을 본 정덕들은 충격에 빠졌다. 아니 어쩌다 저런 사람들이 비례 1,2번을 먹을 수가 있었지? 하는 의견이 좌우를 막론하고 나왔다. 저번 총선에서 극찬받았던 비례대표 선출방식은 청년여성 가산점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했다. 당원투표 상위권에 있었던 땅콩회항 박창진은 하위권에 쳐졌고, 투표에서 두 자릿수 등수를 기록한 류호정과 장혜영이 비례 1,2번 당선권에 포진하게 됐다. 이들, 특히 류호정은 진보정치를 하는 사람이 맞긴 한가? 싶을 정도로 성향마저 불분명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그 정답은 18 지선 서울시장에서 잠시 엿볼 수 있다.
18 지선은 민주당의 초압승 그리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멸망으로 모든 이목이 쏠렸다. 그런데 마이너리그에서 초대형 이변이 발생했다. 민주당 2중대를 자처하며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던 정의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무명의 신지예에게 패배한 것이다.
이 패배는 정의당에겐 정말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김종민은 나름 민노당시절부터 서울에서 계속 출마해 온 정치인이었다. 원내정당의 자격 덕분에 TV 토론까지 나갔었다. 그런데 오직 페미니즘 원툴 이미지 선거를 한 신지예에게 패배했다. 여기서 정의당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바로 페미니즘과 정체성정치다.
대놓고 페미니즘을 앞세운 신지예의 선거전략, 원색적인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정의당은 메갈당이라는 인식과는 다르게 사실 당 지도부 차원에서 선거판에서 정체성정치에 함몰된 적은 없었다. 통진당 분당 과정에서 발생한 기초체력 저하라는 문제를 메꾸기 위해 정체성정치를 중시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대거 당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18 지선까진 어느 정도 선을 지켰다고 생각한다. 클로저스 성우 사건으로 넷상에선 메갈당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정의당 대량 탈당사건을 야기했던 건 어설프게 양쪽의 눈치를 보느라 논란이 되자 메갈에 대한 소극적인 비판을 했다가 친메갈 세력이 대거 이탈했던 것이다. 겨우 채워놓은 체급을 한 순간에 날린 삽질이자 역설적으로 정체성 정치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사실 이런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7 대선에서 심상정은 선전했다. 20대 남자에서도 두 자릿수 득표를 얻은 것으로 관측됐다. 정의당의 멸망과 클로저스 성우 사건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계를 다시 2018년 지선 직후로 돌려보자. 정의당의 2중대 전략으로 높은 비례득표율을 보였었다. 그리고 17 대선당시 20대 여성에서 무려 18%라는 득표율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오직 정체성정치 원툴인 신지예에게 서울시장 선거를 패배했다. 이 사건으로 신지예는 젊은 여성을 대표하는 스타로 떠올랐다. 각종 방송에 섭외되어 인생 전성기를 달렸다. 한때 이준석과 커플로 미는 밈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정의당 입장에선 무슨 생각이 들까? 우리가 저 포지션을 장악하면 민주당에 기대는 지금 상황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젊은 여성 페미니스트를 공략해서 자신들의 허약한 기초체력을 보충하자는 정의당의 전략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선거전략 그리고 정치지형을 살펴봤을 때 정의당의 선택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다. 이들이 정의당으로 결집한다면 통진당 잔당에게서 탈환하지 못했고 민주당에게 서서히 빼앗기던 블루칼라 노동자 지지층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소선거구제 땅따먹기라는 한국 정치지형을 간과했다. 블루칼라 노동자는 특정 지역에서 다수를 타지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터전을 제공해 주지만 정체성정치 원툴 여성표는 전국 특히 수도권에 집중해 있고 이들이 제공해 주는 표로는 그 어떤 지역구에서도 민주-국짐 양당체제를 뚫어낼 힘이 없다. 그리고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진보정당 표밭인 PK 노동자벨트의 의제와 충돌하기도 한다. 가덕도공항 사태가 대표적이다. 김해공항은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흑자공항이다. 정의당이 ‘고추 말리는 지방공항’이라고 비하했지만 코로나 이전 김해공항 국제선은 연일 포화상태였다. 군공항과 공유하는 특성상 활주로 이용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고 지형상 중대형기가 들어올 수 없었다. 강서구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야간운행은 금지됐다. 부산항이라는 세계적인 항만을 가지고 있는 PK에겐 야간 화물운행이 가능한 공항은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창원성산을 지역구로 가진 정의당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의원 본인도 반대했다. 수도권 중심의 정체성정치 그룹은 환경문제와 예산문제를 들었다. 지역구 여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이다.
20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은 민노당을 뛰어넘어 역대 최고 전성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덕분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친민주계 비례대표 표를 상당히 가져갈 것으로 예상했다. 심지어 민주당이 비례대표를 내지 않고 정의당이 그 몫을 다 차지해 단독 교섭단체를 획득할 거란 장미 빛 예상까지 나왔다. 그렇기에 심상정은 정의당판 ‘신지예 효과’를 노리고 무리수를 둬서 ‘청년 여성 페미니스트’에게 우선권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좀 밀리는 후보들은 어차피 비례 10석 이상 먹을 것 같으니 당선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란 오만한 판단이었다.
조국의 강
2019년 여름, 대한민국은 소위 ‘조국사태’로 불리는 초대형 정치 이벤트가 터졌다. 문재인정권 출범 이후로 풀이 죽어있던 언론들과 자유한국당 그리고 온라인 커뮤에 암약한 일베 출신들은 총공세를 펼쳤다. 조국사태가 민주진영에 끼친 악영향은 지대했다. 정권 지지율이 10%가량 하락했고 지선 이후 흩어져있던 보수층이 다시 결집했다. 여기에 해묵은 젠더논란까지 겹쳐져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나아갔다. 언론들과 젊은 청년들은 ‘공정’ 담론을 떠들었고 이 담론은 22년 대선 윤석열이 내세웠다가 자신들의 더러운 행적이 부각되자 어느새 사라졌다. 물론 조국에 분노하던 사람들도 대부분 침묵했다. 서울대를 가득 채운 촛불은 어디 갔는가? 왜 그 뒤로는 가장 부끄러운 서울대인을 뽑지 않는가? 글쎄 주도하는 언론들이 없으니 모두 각자도생 하기 바빠 보인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2019년 조국사태 당시 정의당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다. 앞선 글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원내 역학구조상 정의당이 친 여권 연합에서 빠지면 과반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안철수를 따라간 바른 미래당은 자유한국당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였기에 정의당의 협력은 필수였다. 그렇기에 청와대는 정의당의 반응에 매우 민감해했다. ‘정의당 데스노트’라는 신조어가 나왔을 정도다. 정의당이 반대하는 후보는 대부분 청문회를 낙마했기에 이런 용어가 생겨났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정의당은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을 반대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결렬 이후 정의당은 저 선택이 정의당의 몰락을 불러왔다고 자조하고 아직까지도 반성하고 있다. 민주당의 내로남불을 과감히 끊어내지 못하고 그들에 동참했기에 정의당에 실망한 사람들이 떠나갔다는 주장이다. 민주당과 더러운 야합 때문에 진보 촛불 시민의 뜻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한번 자료를 살펴보자
우선 리얼미터다
조국 사태로 시끄럽던 2019년 9월 정의당의 지지율은 오차범위 내에서만 움직였다
갤럽 여론조사를 봐도 비슷했다. 9월에 잠시 6%를 찍긴 했지만 연말엔 다시 8% 이상으로 올라왔다.
정의당 당원들의 인식과는 다르게 조국의 강은 정의당의 몰락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수치로 나온다. 애초에 검찰개혁은 민주진영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에게도 중요한 아젠다였다. 조국이 미울 수는 있다. 조국을 감싼 정의당에 실망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선명성을 잃어서 이탈했다? 이 표가 어디로 갔을까? 민주당? 거긴 아예 당사자 여당이다. 여성의 당? 거긴 오로지 정체성정치 원툴인 온라인에서만 시끄러운 정당이다. 민중당? 통진당 잔당이란 딱지가 여전히 남아있다. 후술 할 20 총선 분석에서 서술하겠지만 정의당의 득표율은 오히려 올라갔다. 조국 때문에 정의당이 몰락의 길로 들어섰으면 과연 그런 일이 있었을까? 정의당을 대체할 다른 정당에게 표가 갔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정의당은 허약한 기초체력 때문에 전통적인 진보정당 지지층인 노동자들과는 접점이 적었다. 울산 노동자벨트는 민중당에게 주도권을 내주었다. 노동자 정치의 대부 노회찬은 세상을 떠났다. 이 자리를 채운 것은 앞선 글에서 정체성정치에 함몰된 인사들, 성소수자, 그리고 환경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어젠다는 전통적인 진보정당 지지자들과 다르다. 노동환경 개선, 검찰개혁, 재벌해체가 아닌 친환경주의, 여성주의, 차별금지법 제정 등이 이들의 중요의제였다. 이들은 현실과 타협을 거부하고 선명성을 중시했다. 이들은 민주진영 유권자들과 공유하는 정서가 적었다. 그렇기에 민주당을 협력의 대상이 아닌 적대의 대상으로 여기고 때때로 국민의 힘과 협력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정의당 당직자들도 밑바닥 조직과 접촉하여 민심을 파악하기보단, 여의도 주변에서 움직이며 저런 인사들과 교류하고 언론 기자들과 계속 접촉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정의당의 부실한 기초체력 특성상 중앙정치권 밑바닥 보단 주변부에서 왔다 갔다 했을 공산이 크다. 그나마 하는 당원들과의 접촉은 노동자들을 대신해 정의당에 입당한 여성계를 중심으로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각과 동화되고 민주당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게 된다는 가설을 세워본다. 민주당 수박도 비슷하다, 여의도에 고여서, 조중동을 보면서 대책을 세웠다. 죽의 장막에 둘러싸여서 자신들이 옳다고 믿고 민주당 지도부와 각을 세웠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일화를 소개하겠다.
2022년 땅콩회항 기장으로 유명한 박창진은 정의당을 떠났다. 그리고 신장식과 인터뷰를 하며 충격적인 이야기를 풀었다. 본인이 정의당 부대표로 재직하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상담 창구를 재건하려 했는데 당내에서 상당한 반발이 있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이젠 표가 안된다 그런 거에 시간낭비 하지 말라 이거였다. 박창진은 정의당이 본래 본질을 잃어버리고 2030 여성들을 겨냥한 캠페인만 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껴 탈당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박창진뿐만 아니라 많은 인사들이 비슷한 발언을 했다. 정의당 당원들 모임에서 노동 의제는 사라져 갔고 여성운동이 대부분의 의제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물론 정의당은 지금까지도 원외 진보정당이나 여성원툴 정당들 보단 놀랍게도… 온건한 편이다. 그리고 이것 만으로 모든 지지층을 잃었다고 보기엔 문제가 있다. 현재는 20대 여성조차 정의당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몰락의 길로 들어섰는가? 원인은 바로 과욕을 부리다가 실패한 다음 민주당 탓을 한 자기 자신들이다. 연동형 비례제를 어기고 자신들의 의석을 빼앗아 간 민주당이 너무나도 미웠다 그렇기 때문에 미워할 이유를 찾았고 조국은 만만한 구실이었다. 특히 정의당의 대표 스피커였다가 친윤스피커로 전락한 진중권의 행보에 동감했던 것이 매우 큰 실책이었다.
몰락의 길 - 20 총선
정의당과 2020 총선을 설명할 때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것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설립과정이다. 20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공수처 설립을 위해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들과 합의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시켰다. 여기서 준연동형을 가장 앞장서서 추진하고 주장했던 것이 정의당이었다. 심상정이 직접 정개특위의 위원장을 맡으며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자유한국당은 자신들과 합의하지 않은 야합이며 통과 시 위성정당을 만들어 무력화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민주당에선 위성정당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연동형 적용 캡을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정의당은 거부했다. 복잡한 계산방식에 대한 비판이 있자 심상정은 ‘국민들은 알 필요 없다’라고 주장해 논란이 됐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미래통합당으로 모두 모인 구 새누리당은 천명한 대로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하던 민주당도 곧이어 더불어 시민당을 설립했다. 정의당은 이를 야합이라 맹비난하며 민주당과 결렬, 독자행보를 걸었다.
그런데 얼마 전 충격적인 일화가 밝혀졌다. 더불어시민당 창설 협상과정에서 민주당 측이 정의당 측에 시민당 합류 시 비례 의석수의 2/3를 보장해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유시민이 직접 폭로했다. 시민당과 정의당의 득표율을 합치면 약 42%, 기묘한 계산방식 때문에 미통당에 추가로 줬던 의석까지 빼앗아 온다면 약 22~23석을 확보할 수 있고 여기서 14석가량을 정의당에게 주겠다고 한 거다. 이 소식을 들은 필자는 두 가지 의미로 놀랐다.
첫 번째로 민주당에게 이런 호구가 다 있나 하는 심정이다. 독자노선으로 가도 충분히 압승하는 선거였다. 그런데 여기서 사실상 백기를 든 거나 마찬가지인 제안을 할 줄은 몰랐다. 두 번째는 이걸 정의당이 거절했단 것이다. 그 민노당조차 13%의 비례 득표율로 8석의 비례 당선자에 그쳤던 걸 생각하면 이건 엄청난 제안이었다. 16 총선에서 26% 6백3만 표를 받은 국민당이 얻은 비례의석이 13석이다. 상식적으로 거부한 것이 말도 안 되는 수치다. 이 정도면 민주당이 위성정당 때문에 발생한 모든 손실을 보너스까지 쳐서 보상해 줬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를 받았으면 가칭 ‘시민과 정의당’ 비례 1번 류호정을 보았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참패했다고 인식하는 2020 총선에서 정의당이 얻은 비례표는 결코 적은 표가 아니었다. 269만 표, 17 대선에서 심상정이 받은 220만 표를 뛰어넘는 수치이고 06 민노당과 거의 맞먹는 수치이다(06 민노당 277만 표). 단독 교섭단체를 호언장담했던 것에는 못 미치지만 직전 총선에 비해 무려 100만 표나 늘린 수치다. 류호정 장혜영 날림공천 논란이 있었음에도 이 수치가 나왔다.
정의당의 실패는 오히려 민주당과의 연대 실패에서 나왔다. 당시 심상정과 더불어 유이한 지역구의원인 여영국은 여권단일화 실패 때문에 의석을 내주었다. 정의당이 차세대 간판으로 밀어주던 이정미도 독자행보를 걷다가 10%대 득표율을 받으며 쓰러졌다. 김종대도 마찬가지다. 정의당은 민노당이 아니다, 공중전에선 전성기 민노당 부럽지 않게 많이 언급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민주당의 우호세력이라는 인식 때문에 언급된 것이지 정의당 독자적으로 이뤄 낸 것이 아니다. 정당의 기본이 되는 기초단체와 당원에서 정의당은 여전히 처참했고 자금은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그렇기에 선거비 보전도 못 받을 상황을 각오하고 총선에 수 십 명의 후보를 공천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결국 그 많은 후보들 중 생환한 것은 심상정 하나였다. 대부분은 선거비 반액보전조차 받지 못하고 정당은 파산직전에 내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친 민주시민들은 정의당에게 표를 던졌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역구 민주당투표자 중 약 13.6%의 사람이 정의당에 투표한 것이다. 민주당의 지역구 득표율이 약 49%, 1400만 표인 것을 감안하면 여기의 13.6% 약 190만 표가 지민비정을 한 것이다. 정의당의 지역구 득표수가 50만 표인 것을 생각하면 얼추 최종득표수인 270만 표와 비슷한 수치가 나온다. 자신들이 대리공천 논란을 야기하고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해 몰락했다고 자조하고 있을 동안 시민들은 그래도 정의당이 필요하다고 기꺼이 비례표를 행사했다.
연령별 그리고 성별 득표율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의당 내부엔 페미니즘 정체성정치에 함몰된 인사들이 꽤 많이 있다. 그리고 신지예의 돌풍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전 시리즈에서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정의당이 여성의 당과 같이 오로지 정체성정치에 몰빵하진 않았었다. 진보정당의 대표 격으로 얻어맞은 케이스도 꽤 많았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은 남성에서도 양호한 득표를 기록했다.
정의당도 20대 남성에서 10% 득표를 거뒀다. 여성에 비해 조금 적은 수치지만 충분히 유의미한 수치이다. 오히려 젊은 여성을 공략하기 위해 류호정 논란을 자초한 거 치고는 20/30 여성 득표율은 부진했다. 여성의 당이 무려 20만 표나 가져간 것을 고려해도 전통적인 진보층과 친민주교차층을 포기해야 할 수준인가? 나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이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민주당과 연대에 복귀했으면 정의당에게 희망은 있었다. 민주당 지지층들은 그렇게 냉혹하지 않다. 경선에서 문재인을 가장 심하게 물어뜯던 이재명을 지금 열렬히 지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혁을 위한 수단이자 인물이다. 과거의 흠 정도는 현재에 도움 된다면 넘어가준다. 이언주도 용서받았지 않는가? 사실 20 정의당정도의 트롤링은 민주당의 기나긴 역사를 보면 별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의당은 몰락의 길로 간다.
22대선
정의당은 이제 생존의 위기를 느끼는 상황에 처했다. 노동자와 연계는 자신의 손으로 불살랐다. 민주당은 스팩트럼을 확대해 기존의 진보정당이 차지했던 노동자 계층까지 잠식해 나갔다. 정체성정치 원툴은 21 재보선에서 백래쉬에 처해 오히려 보수로 대표되는 혐오종자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며 처참한 역풍을 맞았다. 원내 상황도 악화됐다. 공룡여당 민주당은 더 이상 정의당이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열린민주당과 협력하면 어지간한 법안은 다 통과 가능했다. 정의당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이다.
여기서 정의당이 선택한 것은 현실도피다. 친민주 교차투표층은 아직 정의당을 버리지 않았었다. 류장 공천논란에도 불구하고 270만 명이 정의당에게 표를 주었다. 하지만 정의당은 이 결과를 반대로 해석했다. 민주당과 협력했기 때문에 실망한 진보층들이 표를 주지 않았다고. 조국을 더 가열차게 비판하지 않았기에 표가 오지 않았다고. 한겨레와 경향이 그러지 않았는가? ‘민주당만 빼고’ 투표해야 하는데 왜 우리에게 표가 이거? 밖에 오지 않았는가? 이게 다 민주당 때문이다. 민주당만 망하면 우리가 더 흥할 것이다. 민주당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국짐과 손을 잡는다. 민주당과 국짐 그 사이 포지션 제 3지대를 차지하겠다. 2030 여성들을 더욱 공략해서 친여성 특화정당으로 나아가겠다. 대한민국의 모든 3지대 정당이 실패했던 과거는 쳐다보지 않았다. 언론 사이에서나 도는 환상종인 3지대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정의당이 야심차게 공천한 류호정 장혜영은 어떻게 됐는가? 류호정은 국회의원이라기 보다는 SNS인플루언서 같은 모습을 보였다.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입성하고 등 타투 문신을 보여주고 크롭티를 입고 퀴어축제에 나갔다. 뭐 그럴 수도 있다. 국회의원이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정작 정치인으로선 낙제점에 가까운 모습만 보여줬다. 3인칭 대명사 ‘당신’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본인의 나이 두 배 뻘인 의원에게 대드며 무식함을 자랑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장혜영도 류호정의 어그로력에 딸려서 그렇지 피장파장이었다.
정의당이 저렇게 자가당착에 빠져있을 동안 민주당도 크게 흔들렸다. 모두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의심치 않던 이낙연은 당대표를 하면서 한심한 능력을 만천하에 까발렸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두 성비위 사건으로 그동안 든든하게 민주당을 지켜왔던 2030 여성표가 대거 이탈조짐이 보였다. 커뮤상에선 조롱거리가 됐고 21 재보선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당했다.
그럼 정의당에게 지지층들이 일부 돌아왔을까? 천만에 오히려 전통적인 교차투표층이 대거 증발했다. 여기서 한 지표를 보자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은 국민의 힘에 가까운 스탠스를 취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극우 기독교 전광훈과 같이 다니던 정당과 놀아난 것이다. 이 꼴을 본 진보층은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 민주당의 왼쪽에서 매운맛 민주당, 민노당처럼 투쟁하길 원했던 사람들은 배신당했다. 그들의 소중한 비례표는 국민의 힘에게 동조하는 정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다고 정의당이 주장하는 법안들이 반영됐을까? 절대 아니다.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은 지금까지도 차별금지법 입법은 기약 없는 상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행보였을까?
이재명의 등장
이낙연이 무너지자 민주당이 선택한 차세대 주자는 이재명이었다. 본인은 이 결정이 정의당에게 치명타였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이재명의 인생사를 보면 진보세력에서 그토록 원해왔던 인사이다. 가난한 소년공 출신으로 어렸을 때 중노동에 시달리다 평생 장애가 됐다. 자수성가해서 변호사가 됐고 수차례 낙선 끝에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시장자리에서 유능한 행정력을 발휘해서 유력 대권주자까지 올라섰다. 기본소득 같은 진보적인 담론을 자신의 주 무기로 삼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경기동부 출신 NL이라는 유언비어까지 돌았다. 그런데 진보정당이 그토록 찾아왔던 인물이 민주당 당적을 달고 대선에 나왔다. 정의당보다 더 진보로 보이는 인물이 대선에 나왔다. 입으로만 떠들어 정치 동아리 소리나 들으며 경멸당하는 본인들에 비해 이재명이 보여준 실적은 압도적이었다. 얼마나 미웠을까? 저 자리가 본인들의 것이어야 했는데 어째서 저 파란국짐에게 넘어갔을까? 부동산 공약을 내는 거 보니 이재명도 타락했다. 17 이재명에 비해 너무 순하다. 우리가 옳다 오직 우리만이 진보정치다. 정의당은 이런 매트릭스에 빠져 더더욱 악화됐다.
대선정국 내내 민주당은 정의당에 러브콜을 보냈다. 이재명 후보는 토론회에서 다당제 결의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에게 퇴로를 내준 것이다. 사실 정의당 보다는 안철수 후보에게 생존의 길을 열어주고 윤석열과 단일화하지 못하도록 짠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정의당이 수혜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정의당에겐 이건 생명의 동아줄이었다. 결정적일 때 민주당을 도와 다시 친민주 교차투표층을 끌어올 방법이었다.
그러나 정의당은 민주당 그리고 이재명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스피커’ 진중권을 복당 시킨 것에 모자라 토론회 내내 윤석열 보다는 이재명을 공격하는데 힘을 썼다. 이재명이 윤석열에게 신천지 의혹을 제기할 때 심상정이 앞장서서 말을 끊고 화제를 전환시켰던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차라리 안철수의 토론 태도가 더 양호했다. 안철수가 사전투표 전날 갑작스럽게 사퇴하자 민주당에서도 정의당에게 단일화를 요구했다. 물론 정의당은 거부했다. 그들의 선명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0.7% 차이로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정의당 본인들은 민주당 탓을 할 것이다. 맞다 민주당은 대선 내내 내부 트롤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낙연은 경선 불복을 선언하며 컨벤션효과를 모조리 날려버렸고 선대위원장으로 복귀해서 트롤링을 일삼았다. TK에 집중하는 전략도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어떤 핑계를 가져와도 정의당의 독선적이고 명분 없는 태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당제를 보장해 주겠다는 민주당을 못 믿겠다고 툭하면 비례대표를 없애자는 국짐을 이롭게 만들었다. 그 죄가 어디 가겠는가?
몰락 (22~)
대선 이후로도 정의당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무엇을 위한 완주였냐는 당내외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그렇다고 정신을 차렸는가? 절대 아니다. 여전히 민주당에 대한 적대감에 불타있었고 오히려 윤석열 정권에 우호적인 시전을 보냈다.
아래는 정의당의 정신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짤이다.
정의당이 원하는 진보는 결국 조중동이 칭찬하는 진보였다.
심상정은 대선 내내 다당제를 보장해 주겠다는 이재명을 배신하고 윤석열의 편을 들었다. 그 결과는 냉혹했다. 대선직후 지선에서 민주당은 경기도지사는 사수하며 최소한의 거점은 지켰지만 정의당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분노한 당원들은 온갖 논란만 낳은 비례후보들의 전원 사퇴를 요구하는 전당원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부결됐다. 찬성 40 반대 60.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탈당했기에 잔류 개혁파 만으론 정의당의 노선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았던 참여계는 탈당했다. 참여계의 넘버 2 천호선이 탈당하고 박창진도 탈당했다. 그동안 재야에서 고난의 행군을 걷던 구 통진당 잔당 진보당이 부활했다. 진보당이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을 앞질렀다. 과거 심상정과 노회찬이 차지했던 친민주 진보 스피커의 자리는 용혜인이 차지했다. 물론 필자 본인은 용혜인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2연비례는 수치스러운 낙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이 과거 정의당이 차지했던 공중전에서 친민주진보 파이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정의당에게 남아있는 건 빚더미, 3지대로 넘어가자고 주장하는 세력,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조국 운운하는 처참한 정무감각, 그리고 이재명대표 체포 동의안 가결로 눈 돌아간 민주당 지지층의 분노였다.
23 재보선에서 정의당은 또다시 참패를 당했다. 1%의 득표율에 그치며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류호정과 조성주를 위시한 정체성정치 원툴론자들은 이준석신당에 합류하자고 연일 당에서 주장했다. 심지어 류호정은 현직 비례대표 직위를 가지고 다른 당에 입당하기까지 한다. 류호정의 이런 행보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비례대표 1번으로 선출됐을 때부터 경고했다. 그 경고를 무시한 것은 정의당이다. 이런 참사를 불러일으킨 심상정은 뒤로 숨었다. 원외인사인 김준우가 급하게 투입돼서 이제야 류호정 공천을 사과했지만 민심은 냉정했다.
녹색당과 합당은 정의당에게 남아있던 실낱 같은 희망마저 빼앗아갔다. 적어도 ‘정의당’ 브랜드는 2012년부터 국민들에게 인식된 브랜드이다. 선거철마다 노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정의당원들에 국민들은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녹색정의당’으로 개칭하고 환경이슈를 제일 우선으로 앞세우겠다? 정의당의 정무감각이 떨어지다 못해 12년 통진당에 합류를 거부한 구진보신당 잔류파 수준으로 떨어졌다. 녹색당과 합당해서 얻을 이익이 무엇인가? 전무하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총선의 핵심 아젠다는 윤석열 정권 심판이다. 기후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와닿겠는가? 그리고 정의당이 4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 다 기억하고 있는데 친민주 계층들이 표를 주겠는가? 정치 무관심층에게 ‘정의당’은 익숙하다, 그러나 ‘녹색정의당’은 어디 3류 진보 원외 정치동아리 같은 느낌을 준다. 행운의 득표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러니 기본소득당과 진보당이 정의당이 주장하는 진보대연합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저렇게 무능한 종자들과 선거연대를 해봤자 무엇을 하겠는가?
민주당이 연동형 유지를 결정하고 비례연합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새진보연합, 진보당 그리고 녹색정의당에게 합류를 제안했다. 개인적으로 민주당 내부에서 녹색정의당에게 진지하게 제안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과 녹색정의당 지지층 간의 관계는 거의 민주당과 국짐에 버금갈 정도로 벌어졌다. 명분작으로 제안했다고 본다. 정의당은 보나 마나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것이고 이를 거절하는 방식으로 명분작을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정말 작은 파이 만을 주는 딜을 받아준다면 민주당에겐 나쁠 것도 없었다. 민주당이 진지하게 연대의 파트너로 삼은건 진보당 쪽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의 녹색정의당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김준우, 김종대, 배진교 등 구 정의당 내부인사들은 연합 합류를 찬성했지만 녹색당 인사들은 결사반대했다. 배진교는 이 결정에 반발해 총선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했고 향후 민주당에 합류한다는 설이 파다하다. 여기서 자신들이 그토록 건너야 한다고 주장했던 조국이 등장했다. 그리고 정의당이 믿어왔던 세계관을 완전히 박살냈다.
정의당은 지난 4년 동안 조국의 강을 운운하며 민주당의 내로남불의 상징이자 국민역적으로 조국을 비판했다. 자신들이 조국을 옹호했기 때문에 200만 표가 날아갔고 자신들이 조국을 옹호했기 때문에 진보시민들이 떠나갔단 논리다. 그렇기에 조국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자신의 불행은 다 조국과 민주당의 탓으로 돌렸다.
그런데 조국이 정계 전면에 등장하자 정계엔 엄청난 태풍이 불었다.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민주연합을 넘어 심지어 국짐 비례정당까지 넘는다는 여론조사가 속출했다. 투표 직전에 지지율이 확 떨어지던 열린민주당과는 다르게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은 지금까지도 상승세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보다 더 매운맛으로 윤석열과 한동훈을 비판했다. 한동훈의 비밀번호 스무자리를 풀겠다고 했다. 한동훈 특검을 하겠다고 했다. 부산에 가서 능숙한 사투리로 윤석열을 비판했다. 조국일가는 파해치면서 윤석열과 한동훈은 모르쇄 하는 검찰과 언론을 비판했다. 명백히 증거자료가 있는데도 국회선진화법 판결을 내리지 않는 법원을 비판했다. 국민들이 바라는 선명야당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정의당처럼 국민의 힘과 손잡는 멍청한 집단이 아니고 말이다.
위는 이번에 연제에서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한 진보당 노정현 후보의 커리어다. 28살의 나이로 험지 중의 험지, 부산 연제 기초의원 후보로 출마해 20년간 묵묵히 밭을 갈았다. 민노당, 통진당, 민중당 그리고 진보당으로 당명이 바뀌는 중에도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고 연제구에서 계속 도전했다. 정의당이 중앙에서 정체성정치에 함몰되어 류호정-장혜영 따위를 공천하고 젊은 여성 정치인이라고 포장할 동안 노정현은 밑바닥에서 도전했다. 정의당 청년 정치인들이 언론과 놀아나며 3지대를 주장할 동안 당적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24년 민주당후보를 경선에서 꺾고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그토록 무시하던 진보당은 이제 정의당이 가지고 있던 진보정당의 맏형 자리를 탈환하기 직전이다. 비록 정의당이 조직 없이 시작했지만 2012년 이후 12년의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민주당이 검찰독재정권에 정면으로 맞서 싸울 동안, 진보당이 선명야당을 내세우며 재야에서 노력할 동안, 기소당 용해인이 공중전에서 맹활약할 동안, 이탄희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연동형 비례제도 사수를 외칠 동안, 이태원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비극을 맞을 동안, 엑스포 대국민 사기극이 벌어질 동안, 정의당이 한 것이라곤 언론에게 칭찬받는 진보정치였다. 왜 윤석열이 당선되면 안 되냐고 비야냥거렸다. 민주당을 배신하고 검찰독재정권에 부역했다. 극우논객 진중권을 복당 시켰다. 언제나 양비론을 외치며 국힘 편을 들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면서 180석 제1야당 당대표 체포안을 가결시켰다. 그리고 이제 와서 기후문제를 꺼내면서 살려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이게 인두겁을 썼다고 호소하는 종자들이 할 짓인가?
2024년 4월 10일 총선. 정의당은 모두의 예상과 같이 몰락했다. 여영국 장혜영 등 정의당 후보들은 한 자릿수 득표율에 그쳤고 심상정조차 18%의 득표율에 그치며 무너졌다. 그리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진보정당 소속으로 전무후무했던 4선 정치인의 끝이라기엔 너무나도 초라하고 추했다. 그렇게 많은 갈등이 있었던 민주당이 선거연합을 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명성을 주장하며 독자행보를 걸은 대가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민노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심상정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민노당과 분당해 진보신당 소속으로 경기도 고양에서 30% 득표율을 보이며 경쟁력을 자랑했다. 12년 통진당 소속으로 재외국민 투표 끝에 마지막에 역전해 당선됐을 때, 총선 참패 때문에 침울했던 범민주진보 유권자들은 잠시나마 환호했다. 16 총선 20 총선 모두 민주당 후보를 끼고도 선거에서 승리했다. 대선에서 진보정당 역사상 최다득표를 얻었다. 한국 진보정치사를 이야기할 때 심상정이란 거인은 훗날에도 반드시 언급될 정도로 큰 족적을 남겼다.
민노당 당권파에게 있던 진보정치 헤게모니를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종북딱지가 붙어 지리멸렬했던 구 당권파와는 달리 심상정의 정의당은 공동교섭단체까지 결성했다. 당당히 청와대에 수차례 초청되어 만찬을 가졌다. 거대여당 민주당이 정의당 눈치를 보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의 탐욕 때문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완전히 무너진 줄 알았던 진보정당의 다른 한 줄기는 진보당이란 이름을 달고 부활했다. 그리고 이번 총선, 진보당은 심상정과 헤게모니 싸움에서 승리하며 최종승자가 됐다. 민노당에서부터 시작된 진보정당 헤게모니 다툼은 이렇게 끝났다.
그녀는 타락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독자노선을 고집하던 당의 노선에 반대해 유시민 후보를 위해 사퇴했던 그가, 어느새 민주당과 어떠한 연대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계 정당과 연합 없이 진보정당이 생존하기 힘들다는 교훈을 잊어버렸다. 노회찬 사후 정의당에서 노동이라는 담론이 사라져 갔다는 비판이 많다. 내부 증언 또한 많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교섭단체를 노리겠다는 야망은 컸으나 소선거구제 땅따먹기라는 대한민국 선거제도를 무시했다. 복수심에 빠져 "왜 윤석열 후보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라는 희대의 망언을 했다. 외부인사 김준우 비대위원장이 류호정 공천을 사과할 때 심상정은 숨었다. 도대체 우리 모두가 응원했던 진보정치인 심상정은 어디로 갔는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추해졌을까?
심상정이 부러뜨린 진보정치의 기치는 이제 용혜인, 윤종오, 한창민, 정혜경, 전종덕, 노정현이 이어가야 한다. 혹자는 말한다. 민주당 2중대 아니냐고, 민주당에 종속된 것이 아니냐고? 어느 정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번 총선에서 진보당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어필했다. 비록 낙선했지만 노정현의 도전은 아름다웠다. 수도권 접전지에서 민주당과 단일화한 결과 상당수 지역구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신승하며 생환했다. 진보당도 의석 3석을 확보했고 상황에 따라 민주연합 비례 15번 손솔이 다음 의석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양당은 모두 기억해야 한다. 민주당은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지만 국짐을 상대하기 위해선 진보진영 특히 진보당의 지원이 절실하다. 진보당도 민주당의 지원 없이 독자생존은 불가능에 가깝다. 부디 진보당과 새진보연합이 심상정이 즈려밟은 진보정치의 무거운 책임을 잘 이어받기 바란다.
심상정에게도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고 싶다.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원망스럽습니다. 당신이 키운 진보정치는 당신의 손으로 분쇄했습니다. 부디 집에서 자신이 무슨 짓을 저릴렀는지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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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리듬을춰줘요 작성시간 24.12.12 재밌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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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ccome 작성시간 24.12.13 워딩쎄서 조마조마했는데 나랑 같은 의견이 많아서 다행.. 민주당이 양보한것도 많은데 협조를 안해줘서..? ㅋㅋㅋ 팀플망했다가 더 정확한 표현같은데 ㅋㅋㅋㅋ 이 글 잘 읽었고 내용이 잘못된게 있으면 댓글로 물 흐리지말고 본인이 본문처럼 자료조사해서 글좀올려주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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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cccome 작성시간 24.12.13 정치인이면 정치를 좀 잘하지 그랬어
내가 다시 글 요약해줌
정의당은 정치를 못해서 망했다 -
답댓글 작성자cccome 작성시간 24.12.13 cccome 민주당에게 협조를 어쩌구 웅앵웅 ㄴㄴ
그냥 너네가 정치를 못해서 망함
윤석열이 되면 왜 안된다고 생각하세요??
왜 안됐어야만 했는지 지금 알기만 해도 다행일듯 -
작성자욜톨 작성시간 24.12.13 쩝 ㅠㅠㅠ 국짐2중대 소리듣고 끝장난게
허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