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휴가 때 여행
일정 : 21년 8월 16일 즈음 2박 3일
이동 : 수원 - 광주 기차
스타일 : 혼밥, 게스트하우스, 술X
많이 걷고 많이 보고 그 지역의
문화 생활을 찾아다니는 편. 카페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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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21년 8월 9일,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하는
전두환이 갑자기 깡마른 얼굴로 나타났고
뭔가 전두환이 살아있을 때
광주를 가야 한다는 어떤 생각과
시민들과 함께 참여하는 일을 만들어 내야 하는
나의 직업 특성상 항상 광주가 궁금했어.
광주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가장 정치적인 도시인데
그 긴장감을 어떻게 감내하는지 궁금했고
답을 얻을 수 있든 없든 떠나야만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정리할 수 있겠더라고.
또 광주, 지리산, 전주 등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공동체는
내 삶의 지향점이야.
휴가 날짜가 다가오고
집에 있던 책을 하나 골라서
기차를 탔다🚂
미루어 두었던 책을 가져왔다😁
꽤 긴 시간이 흐른 후
광주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도와주실 수 있겠냐며
당신의 핸드폰과 통장 사본을 보여주더니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 받는 법이
너무 어려워서 좀 도와달라고 했다.
‘날 어떻게 믿을 수 있지?’
‘날 왜 믿지?’
얼떨떨했지만 도와드렸고
나보고 광주 사람인 줄 알고 그런 거였다며
머쓱타드; ㅎㅎ
이런 상황에 대한 이해는 충분하다.
누구나 복잡한 스마트폰 버튼을
쉽게 누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색다른 방식의 환대였다고 생각함😎
도착한 숙소
5년 전에 알게 됐는데 이제서야 와봤다.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
이미 유명하고
작가들이 모여서 워크샵도 하고 있다.
사장님이 백발 중년 남성인데
상당히 엘레강스 했다🧝🏻♂️
양림마을 일대 축제에도 함께 하시는 듯 하다.
집 주변에 상사화는 줄기만 남았지만
무척 마음에 드는 풍경이었다.
이게 호랑가시나무 열매인데 🎄
크리스마스 트리나 리스 장식에 그 빨간 열매다🧑🏻🎄
저 멀리 보이는 무등산
이 집은 선교사 저택이라 아주 오래되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사진 찍으러도 많이 오는 것 같다.
양림마을은 그 자체가 근대문화유산이다.
여기가 작가들이 모이는 공간 같았다.
있을 것만 있었던 미니멀한 숙소.
지어진 시대를 생각하면 집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다만 서로 조용히 지내야 하는 것인데...
앞 방에 있던 사람들.. 시끄러워 죽는 줄..
숙소에서 광주천 방향으로 내려오다가
먹은 쌀국수 집 게살 볶음밥.
내가 주문하고 나니까 딱! 브레이크 타임이었는데
국물이 남았는지 서비스로 주셨다 맛남😋
근처 책방 러브 앤 프리에 들렸다
대학 때 내가 일했던
문화공간 카페와 분위기가 흡사했다🙂
기록, 흔적
단행본과 독립출판물이 적절하게
믹스 되어 있던 서점
맞은 편엔 할머니들의 사랑방 미용실이 있었다💈
서점에서 걸어서 3분 거리 펭귄 마을
앤디 워홀의 먼로가 여기에도 있다.
"워홀은 대중문화 이미지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살았고, 그것을 긍정하며 예술 주제로 삼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공허함도 봤다. 먼로의 실제 삶은 불행과 고독으로 가득했다. 운 좋게 스타가 되긴 했지만, 행복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하지만 세상의 관심사는 먼로의 섹스 심벌 이미지뿐이었다. 먼로는 죽었지만, 그의 이미지는 죽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먼로는 섹시한 여배우 대명사로 소비된다. 워홀이 스타의 죽음을 주제로 삼은 건 이미지가 전부가 돼버린 시대의 비정함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조성준 기자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야😉
머리를 때리는 뙤약볕에
펭귄마을에서
전일빌딩까지 버스로 이동
전시장에 휠체어 접근 가능한 경사로가 있었음.
역시, 민주주의의 도시다.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아직 모른다.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은 죽었다.
원인은 다발성 골수종.
전일빌딩 맞은 편에는
아주 오래 된 음감실이 있다🎼
반지하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노교수와 사장님이
서로 존댓말을 하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신다.
정치 얘기를 하시는데
이렇게 침착하고 서로를 수용하는
어른들은 처음 보았다.
베토벤 음감실은 사라질 뻔 하였으나
이곳을 기억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돈을 모았고
지금도 함께 지켜나가고 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 계좌입금.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베토벤 음감실의 테라스로 나가보았다.
인터넷에서 보니
예전 신문 기자들은 5.18 추모식이 있을 때
이 테라스에서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분수대에서 무지개가 보인다.
"나는 또 여행을 떠납니다."
"언니도 알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전날과 아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는 거야. 갑자기 다르게 걷고, 다른 글을 쓰고, 다르게 말을 하는 거야.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자기 자신은 잘 알고 있지. 우리는 이렇게도 될 수 있고, 혹은 전혀 다르게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거야.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자기 자신과 게임을 할 수 있어.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있는 이런저런 인물과 자기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잖아? 다른 책을 읽으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이고, 끝없이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거야.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어느 것도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다 합친 것이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미정이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 루이제 린저
문예출판사의 전혜린 번역판을 좋아한다.
마침 이날은 지역 신문 기자가 사장님을
인터뷰 하기로 약속이 있었던 모양이다.
음감실 내부가 어수선해지자
사장님의 지인이 한 명뿐인 손님인 나에게
미안해서인지 붕어싸만코를 주셨다.
커피와 붕어싸만코는 합이 좋았다😋
밖으로 나와 대인시장으로 걸었다.
이게 순대국밥 1인 분이다.
순대와 부속물을 먹어도 먹어도 끝나지 않았다..😂
혼자와서 서비스를 못 주니까 양을 많이 준 거라고 하셨다. 홀을 가로지르는 사장님 아들로 추정되는 남자는 연신 퉁퉁거렸다.
터질 듯한 배를 부여잡고 걸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열심히 살고 있어
이렇게 살다보면 내가 사라지면 안되는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겠지."
여공들이 많이 살았다던 발산 마을의 벽화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높고 아슬한 길은 냥님의 자리
정겹지만 삶의 무게가 느껴져서 서늘하다.
아 달달한 냄새
발산마을에서 다시 돌아온
금남로 일대. 버스 창가에서 우연히 본 캔모아에
들어왔다. 캔모아에서 혼자라니 서글퍼짐🥺
혼자라서 빵 리필도 괜히 눈치 보였다.
직원분은 신경도 안 쓰시는 것 같았지만..
같이 발로 벽을 차며 그네를 탈 사람은 없었지만..
너무나 좋았던 추억의 되새김
걸어서 천천히 40분 가량 소화시키며
도착한 숙소.
알전구가 한 여름밤의 반딧불이 같았다🤭
깨끗이 씻고 책방에서 산 책을 읽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누가 뭐래든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나에게 정상은 모든 곳에 있다. 모르는 동네에서 약속이 있을 때 시간이 남으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일, 제주나 부산이나 전주로 여행을 가면 언젠가 이주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동네 부동산 시세를 흘끗거리는 일, 항공권 가격을 하릴없이 검색하는 일, 숙소를 하염없이 구경하는 일, 서울 시내 고궁에 꽃이 피는 날짜를 알아보는 일, 나아가 '어디'보다 중요한 '누구'(동행)를 만들어 가는 일. 여행에 관해서라면 나는 이제 외부 조건이나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다. 목표는 정상에 있는 게 아니라 길 위에 있다. 그리고 바라기는, 부디 가능한 오래 두 발로 여행할 수 있도록 건강하기를."
- 이다혜
_()_
뚜둔-
다음 날
소코아에서 냉우동을 먹고 걸었다.
다음 날에도 또 먹었다.
블루문
처음 마셔본 미제 맥주와 이름이 같아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명과 같아서 눈에 띄었다.
다시 한 번 와보고 싶다.
알고 보니 이 근방에는 재즈바가 꽤 여러곳이 있었다.
나비파이와 츄로스를 사서 목적지로 향한다
518번 버스
라디오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철수 소식이 들려왔다.
일부 여성들은 떠나지 못하고 남았다고 했다.
저 멀리 보인다.
박물관이 참 잘 되어 있다.
광주에 산다는 것과
광주를 안다고 말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알고 싶다.
국가 폭력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언제나 삶을 포착할 수 있는
수행을 해내는 인간이고 싶다.
"아무 것도 헛됨은 없어라."
신묘역을 나와
구묘역으로 간다.
조금더 깊은 곳으로
모기와 그늘이 많았다.
"요컨대 K는 구묘역이 진짜 망월묘역이라고 여전히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딱히 그만의 것은 아니라는 걸 구묘역에 걸려 있는 현수막이나 머리띠들, 최근 다녀간 듯한 사람의 흔적들, 여전히 몇 개 다발씩 놓여 있는 시들지 않은 꽃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생긴 봉분들을 통해 확인하곤 한다(2010년대에 생긴 봉분들도 있었다. 분신하거나 투신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이제는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광주를 찾아오는 외지인들에게 구묘역에만 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구묘역에도 가보라고, 점점 낮아지는 봉분들과 휘날리는 현수막과 생뚱맞게 우뚝 솟아 있는 국기봉(거기 걸린 태극기는 지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지 않는 곳에 서 있는 것 같았다)과 이한열과 김남주도 둘러보라고 권할 뿐이다. 거대한 기념물은 항상 실태를 과장하기 마련이어서, 국립묘지의 웅장함 때문에 광주에 대한 영웅적 환상을 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광주는 이제 충분히 보상 받았다는 환상 또한 품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신화도 늙게 마련이고, 그 이면에는 추한 이야기들로 섞여드는 법이다. 그러나 기억하는 자들의 태도와 의지 여하에 따라서, 그 속도는 충분히 지연될 수 있는 것 아닐까." 167-168p
-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빛고을 광주인이 땅으로 돌아가는 곳
버스를 기다리다 산모기의 맹렬함에
다음 정거장으로 어쩔 수 없이 걸었다.
할머니 세 분과 시내로 향했다.
땀을 잔뜩 흘리고 먹는
설탕 넣은 콩국수.
정말 맛있었다.
앞으로 소금파 보이콧합니다🚨
대성콩물에서 대인시장까지 걸어 왔을 때 쯤
갑자기 쏟아지는 우박과 소나기에
온 몸이 젖었다.
건물 사이사이에 들어가서
우박이 그치길 기다리다
어떤 할머니를 보게 된다.
할머니는 오른손 깁스,
왼팔로 토마토 5키로 박스를
줄로 연결해 바닥에 끌고
맨발로 길거리에서 우박과
비를 맞으며 걷고 있었다.
모른채 하려다..
우산을 씌워드렸다.
집 앞 까지 모셔다드렸고
가는 동안 정치 얘기를 했다.
금남로에서 벌어진 일과
그 당시 봉사자원을 했던 일도 말해 주셨다.
내가 만난 광주 사람들은
정치가 삶이고 삶이 정치였다.
할머니의 집 앞에서
고마워요. 네 이만 들어가세요.
안녕을 말하자 우박이 그쳤다.
나는 카페에 앉아
멀리에서 들려오는
여성들의 소식을 기다렸다.
비에 홀딱 젖은 몸은
잭콕 앞으로..
좋아하는 카페에
좋아하는 책들이 곳곳에 있었다.
손탁을 좋아한다.
카페에 가득찬 음악의 질이 좋고
잭콕 한 잔이 들어가니
몸의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예매한 영화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나왔다.
전국 상영이 금지될 뻔한
영화를 보았다.
영화 이름은 <학교 가는 길>
황혼의 시간!
아름다웠다🌅
스마일
광주 여기저기
고정희 시인의 시가 많았다.
고독과 고뇌와 신앙을 품고 열렬히 시를 쓴
여성주의 페미니스트 시인이다.
한 바탕 비가 내리고
20도 까지 온도 역시 내려갔다.
마침 이 날은 처서.
일제 강점기 전까지 버드나무가 많았던
양림 마을에서의 처서.
다시 저녁이 되었다.
아침 산책 중
냥님이 나타났다.
너무너무너무 예뻤다.
약간 .. 지브리 같은 곳에 나오는
요정이라서 말 거는 줄 알고 기다렸다 진심..
난장판이지만
정리가 되었다😅
광주에 와서
안산 선수가 나온 유퀴즈를 보았다 희희
볕이 좋았다..
한복 도포 자락처럼 휘날리던 직물들
체크아웃 하고 가려는데
사장님과 예술과 공동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류승룡배우가 와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 김여시는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 하던 식당이 엔터와 광고 관련 회사의
커페겸 식당이었는데 그곳에서 류승룡 배우를 보았었다.
당시 마감 파트였던 내가 일을 마치고 1호선을 타러
달려가는 걸 보고 그는 고생했어요 잘 가요 라고
했었다.
류승룡 배우에게 그 얘기를 하니까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아주 예전 일이네요 라고 했다.
같이 사진을 찍자며 이것도 인연이라고.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찍어주었다.
신기했다.
나는 광주에 잠시 머물렀을 뿐이고
곧 떠나야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글북이라는 카페에 들어와서
일기를 썼다.
처음 광주에
도착했을 때보다 시원해진 듯한 기분.
여름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정치란 이익 조정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치는 공동체 전체의 선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과정이어야 한다. 무엇이 진짜 옳은지를 놓고 같이 고민하는 일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정치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다."
어떤 고민과 무엇을 궁금해 했는지
다 잊은 채로 가벼워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아마 광주에 다시 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