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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인 1952년 경남 거제도에서 피란민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연탄배달을 해야 했을 정도로 피란민의 삶은 가난했다.
문재인은 유년 시절을 얘기할 때마다 어머니의 연탄 배달을 돕다가
리어카와 함께 길가에 처박혔던 일을 떠올린다.
그는 부산의 명문이었던 경남중-경남고를 나왔다.
경남고엔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고, 입학 후 문과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4년 장학금을 받으면서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경희대 법대(72학번)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 입학과 더불어 유신체제가 시작되면서 운동권 학생의 길을 갔다.
대학 3학년 때는 총학생회 총무부장을 맡았다.
학내에서 반독재,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한 그는 제적을 당했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석방되자마자 입영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신병훈련을 마친 그가 배치된 곳은 특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당시 특전사령관은 12·12 때 신군부 세력에 의해 총격을 당했던 정병주 소장,
소속 여단장은 전두환 준장, 소속 대대장은 장세동 중령이었다
특전사 제대 후
아버지가 급작스레 사망하자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80년 서울의 봄 때 복학도 했다.
그러나 1차 합격 후 2차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
전두환독재정권에 저항하다 다시 구속됐다.
그는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사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합격 직후 안기부 직원이 문재인을 찾아와
과거 데모할 때와 생각이 같은가라고 물었지만 문재인은
그때 나의 행동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합격 취소를 각오한 말이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변호사가 된 후 노무현을 만난다.
1987년
6월 항쟁을 부산지역에서 주도하고
계속 부산 경남 인권변호사로 활동한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자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노무현을 돕는다.
노무현 서거 후 정치인이 되었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다면 문재인은
다시 인권변호사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2017년 대통령이 된다.
문재인같은 사람은 한국 현대사에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