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 후에 종교적 해석이 가장 이해가 편해 나눠볼까 하는 마음에 글 올립니다.
(개신교 신자이기는하나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갖고 해석한 내용은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곽도원은 처음에 후배가 하는 말을 웃어 넘기며
사건의 원인이 독버섯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믿습니다. (이때까지 의심 X)
하지만 친구에게 왜놈과 자살한 아줌마 이야기를 듣고 의심을 시작합니다. (후배는 오히려 곽도원을 비웃음 / 후배 의심 X)
그리고 천우희 등장
(천우희는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았습니다. 곽도원과 후배, 왜놈, 황정민에게만 보임)
- 후배의 경우 의심이 없었을 때는 아무 일 없다가 왜놈집에 들른 이후(의심 X => 의심 O) 실성해서 살인을 저지르죠
천우희는 신으로 볼 수도, 예수나 천사 같이 선한 존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곽도원은 돌을 던지며 관심(그런 헛소문, 미신 믿지 말고 내 말을 들으라는)을 끄는 천우희를 귀찮아 하고 무시하지만 (극중에서 점차 공간적 거리가 가까워짐) 결국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죠
- 곽도원을 도와주기 위한 선한 존재의 첫 등장으로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목격자가 있다는 말이 서장님 귀에 들어갈 정도로 큰 사건이 돼서 시말서까지 쓰게 됐지만 경찰인 주인공이 그 여성을 찾아볼 생각을 안했을까요? (작은 산골 동네에 30대 여성은 신원조회만 해봐도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
이는 찾아 봤지만 신원조회가 안됐을 거라는 걸 짐작하게 합니다. (천우희는 인간이 아님)
- 이때 천우희는 할매가 굿하지 말랬다고 다 죽는다고 했는데 말 안 듣고 해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후에 황정민의 굿판이 가져올 결과를 암시)
- 그후에 곽도원이 봤던 악마 형상의 왜놈이 나중에 가서는 꿈이 아닌 진짜였다고 말해줍니다.
- 사건 현장에 말라 있던 열매와 마지막에 곽도원의 입장과 함께 말라버린 열매(금어초라고 하네요)는 천우희와 인간의 신뢰 관계를 나타내는듯 합니다.
(구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내용들인데 인간들이 여호화를 믿지 않거나 의심할 때 일어나는 재앙 ex. 선악과, 소돔과 고모라 등)
- 천우희는 곽도원 이전에도 계속 마을 주민을 도우려 했었지만 그때마다 마을 주민들은 믿지 않았고 결국은 모두 죽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마 21:21)
- 천우희는 닭이 세 번 울면 들어 가라며 곽도원을 붙잡는데 이는 성경에서 베드로의 예수 부인 사건과 비슷함을 볼 수 있습니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눅 22:34)
- 곽도원이 효진이가 무슨 죄냐며 천우희에게 묻자 "너(니)가 이래서 저래서"가 아닌 "딸 아비가 이래서 저래서" 하는 식으로 성경 구절과 비슷한 어투를 사용합니다.
- 말미에 부제와 왜놈의 대화 장면에서 성경 구절이 다시 인용되며 곽도원과 천우희 장면이랑 계속 번갈아 보여주는 것은 왜놈이 '의심'이라는 악마처럼 보여지게 합니다.
- 마지막에 천우희가 곽도원의 손을 붙잡는데 이는 귀신이 아니라 영화 오프닝과 위에 말한 장면에서 나왔던 뼈와 살이 있다는 성경 속의 예수의 말처럼 악한 존재가 아니니 믿으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황정민 또한 의심이 불러온 악마(할머니의 의심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네요
이 둘은 한패까진 아니더라도 같은 부류(악마)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왜놈과 황정민 모두 기저귀를 착용 + 카메라를 사용)
부제와 곽도원은 신부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절 당하죠. 이는 현대 교회의 무능력(추락)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으며, 영적인 것보다 과학, 미신(우상)을 더 믿는 종교인의 신앙(의사에게 갈 것을 권유)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나홍진 감독의 곡성 제작 밑바탕에 깔려 있는 논제는 다음과 같다고 봅니다.
'신은 악을 제거할 의지는 갖고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는 없는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한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의 악은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 에피쿠로스
이 물음을 우리에게도 던지는 것이죠
도대체 신은 왜 직접 나서서 악을 처단하지 않는가, 신이 우리에게 내미는 구원의 손길이란 방식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딸은 고통에 몸무림치고 경찰인 주인공은 딸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데 이는 마치 구약 창세기에서 나오는 내용을 연상케 합니다.
-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나이 100세에 아들을 얻은 아브라함은 이삭을 진정으로 이뻐하고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준 아들을 갑자기 번제의 제물로 받치라 하죠. 이유는 믿음의 증거였습니다. 나를 믿으면 아들을 받치라였죠
이는 아브라함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잔인한 처사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물로 받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 했기에 내 딸이, 내 가족이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나는 신의 존재를 믿고 기도하는 성도인데 어째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 이 시련에 대체 무슨 의미가 담겨 잇단 말인가?"
이와 같이 절대적 존재가 우리에게 행하는 것들은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선{신)과 악을 구분 짓기 힘들게 만듭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사회에서 갈팡질팡하며 의심속에 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신은 과학에 밀려 확신을 주지 못했죠
그래서 감독은 정말 신이 있다면 매번 시험에 들며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를 보고만 있지 말고 구원하러 오라는 것 같습니다.
(힌트만 주는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인 구원의 손길을 원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 천우희는 왜놈과 황정민을 한번에 쓰러뜨릴 정도로 막강한 존재이나 수 많은 살인 사건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방관합니다.)
마지막에 곽도원이 천우희의 손을 뿌리치고 집으로 가는 장면은
신이 너무 늦게 온 나머지 선과 악도 구분 못하게 돼 구원하기 위해 온 신의 존재 또한 믿지 못하는 우리를 보여준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