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siP7VKtJekY
여성시대 윙바디
여시들 용산참사(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사건)에 대해서 들어봤지?
나도 잊고있던 부분이 있어서 검색해봤는데 여시에는 용산에 윤돼지가 온 이후로 다른 이슈들(ex. 용산 대통령실이전, 이태원참사) 이 너무 많아서 사건 참고할만한 글들은 찾기 힘들더라고..
그래서 잊지 않고자, 그리고 나중에 혹시 나처럼 이 사건 궁금해하고 끝까지 지켜보고싶은 여시들이 참고하면 좋을것같아서 이 사건 다룬 시사프로그램 한편 올려보려고 해
관련 책이나 인터뷰 참고한 사족 조금 추가할게
많관부 많관부
김의성 주진우 스트레이트 34회 - 추적 그날, 용산4구역 (2019. 1. 7.)
용산참사(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사건)란?
2009년 1월19일 새벽, 재개발 중인 용산4구역에서 30여명의 철거민들이 터무니없는 보상과 무리한 철거 진행에 반대, 합리적인 보상금과 임시 상권 또는 거처 마련 요구하며 한 건물 옥상에 4층짜리 망루를 설치하고, 옥상 점거 농성을 함.
이 농성이 시작된 지 불과 25시간 만인 1월20일 새벽 6시, 경찰은 테러 진압 전문인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강제 진압함.
결과는 경찰관 1명, 그리고 철거민 5명 사망.
이 방송은 2019년 용산참사10주기를 기해 제작된 방송으로, 사건에 대한 검찰 재조사도 이루어졌으나 당시 수사했던 검사들의 의견서를 제출함
의견서 내용 : 허위로 당시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수사팀의 명예를 훼손하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
-> 사실상 협박
재조사를 막으려는 검찰 내부압력 및 외압 존재함
검찰이 사건당시 경찰의 초기 수사기록 3000쪽을 은폐함 -> 본 방송에서 이 수사기록과 경찰 무전 입수
용산참사는 무리한 과잉진압에 따른 사실상 국가폭력이었다는 정황이 뚜렷함
참사 당일 철거민들이 30여명 이 건물과 망루에 있었음
길에 경찰특공대가 깔리자 철거민들은 건물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입구를 용접해서 막음
그러자 크레인을 동원해 컨테이너에 특공대원을 태워서 망루가 설치되어있는 옥상에 투입시킴
빨간 크레인 검은부분 끝에 매달려있는 네모진 물체가 컨테이너
당시 화재에 대비해 소방차 6대, 옥상 진압작전 위해 대형크레인 2대 준비하기로 했지만
소방차 2대, 소형크레인 1대만 준비됨.
경찰특공대 중간간부가 작전을 미뤄야한다고 보고했으나
경찰 지휘부는 '겁먹은거냐, 밑에서 물대포 쏘면서 진압하면 될거 아니냐'며 현장 보고 묵살
참사 당일인 1/20 06:00 작전 시작,
경찰 살수차로 물대포 쏨(특: 최루액 섞임)
1/20 7:00
망루 3층까지 진입했을 때 1차 화재 발생
그 시각 철거민 대부분이 연행되고 망루 4층의 철거민 몇 명만 남아있었음
경찰특공대 진압으로 망루 2,3층이 무너졌음(망루가 임시건물이어서 경찰특공대가 가격하자 쉽게 무너짐)
2,3층 바닥에 쌓아뒀던 시너와 유사휘발유 등 수십통의 인화물질이 물 위로 쏟아져내려 망루 안이 유증기로 가득차게 됨
작은 불꽃 하나에도 망루가 폭발할 수 있는 위험상황임을 현장보고했으나
-> 지휘부, 진압을 강행하라는 지시 내림
7:22
망루 내부 전체에 화염이 솟아오름
저 파란 망루 안에 시뻘건 불꽃이 가득 타고있음
내가 처음 용산참사를 알게 된 기사사진
기사 사진인데 너무도 선명한 화염과 대비되는 인체 형태때문에 기사를 위해 가공된 이미지인줄 알았어
지옥보다 더한게 당시 현실이었음
그리고 전날부터 시작된 용산 철거민들의 농성 소식이 많이 알려져서 그 시각 여러 언론에서 현장을 생생히 취재하고있었음
영상 들어보면 안에 사람이 있다고 오열하는 유가족 목소리가 너무 잘 들림..
특공대가 진입하던 오전 6시에 철거민 중 한 명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전화연결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음
결국 인터뷰는 이루어지지 못함
망루가 다 붕괴되자 서울청 차장은 그제야 사람이 다 나왔냐 물음
가까스로 망루를 빠져나온 시위대가 불길을 피해 건물 밖에 매달렸지만 구출할 사다리차가 없고, 추락에 대비한 안전매트도 모자람
석유제품화재시 일반 소방차로는 끌 수 없고, 특수소방차인 화학소방차가 필요하나 이 역시 준비되지 않았음
이때 망루에서 낙하하며 다리가 부러지고, 건물에서 낙하하면서 허리가 부러진 철거민이 있었는데 이 참사로 아버지를 잃고 참사로 입원한지 1주일만에 구속되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4년 넘게 수감생활함
철거민들이 경찰의 특정을 피하고자 복면을 썼는데도 생존한 망루 시위대 전부를 공동정범으로 간주했다고 함
당시 철거민들은 왜 망루에 오르게 된걸까?
왜 테러진압이 주 임무인 경찰특공대가 투입된걸까?
제시된 보상금은 1인당 평균 2500만원
당시 철거대상 상가중 100평 넘는 식당도 있었고 인테리어 및 집기 마련에만 2억 이상 들어간 상가도 있었음
그리고 한 건물 위아래층이 상가와 가정집인 경우 생계와 주거 모두 한날한시에 잃게 된 꼴
많이 받아야 5~6천만원돈을 가지고 어디를 가려 해도 주변 땅값도 많이 오른 상태라 길에 내쫓기는거나 다름없었음
철거민측은 수차례 대화시도를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음
<내가 살던 용산>이란 책에 나온 이 당시 용역들의 행패
용역들이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고 철거민들 폭행
당시 70대였던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5~6명이서 집단폭행하기도 함
경찰에 신고하면 조서 쓰지도 않고, 강하게 항의하면 그나마 쓴 조서에는 쌍방폭행
영업중인 식당에서 다른 손님 위협하고, 속옷만 입고 대낮에 거리 활보하고, 가게앞에 오물과 동물사체 갖다놓음
밤에 영업장에 침입해 건물 부수고 집기 가져감
사람 사는집을 철거하는일도 있어 중학생 아들은 친구집에서 자라고 하고 부모는 지붕이 뜯겨나간 집에서 자기도 했음
퇴거한 집에는 옆집에 사람이 살건말건 방화 저지름
이에 망루에라도 올라가 농성하면 들어주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과
용역들의 폭력을 피하려면 차라리 망루가 낫겠다는 판단도 있었다고 함
삼성물산
잘 기억해둬 뒤에 삼성얘기 나옴
농성위해 망루 짓기 시작하자마자 상주하던 용역의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계속 증원됨
경찰의 허가를 받고 용역들이 소화기 들고 건물진입 시도, 철거민들은 이들의 접근 막기 위해 벽돌 떨어뜨리며 저항함
1/19 09:00
강추위속에 경찰들이 철거민 향해 물대포 발사 시작
철거민들은 이에 대항해 새총으로 골프공 쏘고 화염병 던짐
경찰은 후에도 이 대목을 부풀려 폭도, 테러범취급하고 언플했지만 이날 부상자는 없었음
민간인이나 통행하는 차량에 던졌다는 경찰 주장도 모두 거짓임
차량통행도 일시적으로 통제했을 뿐 몇시간 후부터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졌고 당시 현장용역도 농성장 건물 주변에 일반시민은 거의 없었다고 증언함
1/19 11:10
망루짓는동안 물대포 계속 살수하다가 망루 다 짓고나서 살수 중단하니 철거민도 새총투석 중단함
12:10
이후 별다른 충돌 없어 교통통제 해제함
15:00
철거용역들이 농성 방해 위해 건물내부에 폐타이어 등 쓰레기 태워 유독가스 발생시켰으나
-> 더이상 철거민들 저항 없음
-> 현장 경찰병력 철수
현장 경찰병력 철수하기 시작하니 철거민들이 손 흔드는거임
그러나 경찰은 바로 다음날, 철거민들이 하루종일 화염병과 골프공 던지며 시민 위협하고 도심 테러했기에 강제진압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함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