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하와이안파파야
1894년, 동학농민운동
조선 말기의 사회적 불만과
외세 개입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대규모 민중 운동.
조선 내부의 부패한 정치
농민들의 경제적 고통
그리고 외세에 대한 반발
조선 후기, 정부 관료와 지방 관료들의
극심한 부패
농민들은 고통을 호소 할 창구가 없었다
개항 이후 조선에 가해진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와 함께
개항 이후 외국 상인들이 쌀을 대량으로 수출
대부분이 소작농이던 농민들은 고통에 허덕이며
민중의 반발심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1860년 창시 된 최제우의 동학.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 사상을 바탕으로
평등과 민중 중심의 사회를 주장,
동학은 단순한 종교 운동을 넘어
민중의 저항 정신으로 자리 잡았고,
농민들은 이를 통해 단결.
1892~1893년,
동학도들은 각지에서 탐관오리 처벌과
개혁을 요구하는 교조 신원 운동을 전개하며
기반을 다졌다.
동학농민군의 요구,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탐관오리를 척결하라
토지 제도를 개혁하고 농민 권리를 보장하라
일본과 청나라의 간섭에 무너지지 말고
조선의 자주권을 지키자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라
동학농민운동은 이후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며
조선의 민족운동사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그리고 1894년 11월 11일,
동학농민군은 약 1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공주성으로 진격한다.
이에 맞서 조선 관군과 일본군(약 2만 명 규모)이
공주성을 방어하며 농민군과 대치.
신식 무기와 전술은
동학농민군의 병력과 전략을 압도했으나
죽음을 알고도 농민들은 저항했다.
전투가 아니라 학살에 가까웠던 그 날,
동학군의 주검이 계곡을 가득 메웠고
금강은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2024년,
농민의 곁에 시민이 있다.
여의도를 빛으로 물들인,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비로소 광화문의 주인이 된,
일반 시민.
그러나 역사를 잊지 않은 시민은
우금치에서 스러진 영웅들을 잊지 않은 시민은
농민과 함께 남태령을 넘는다.
엥 이 글 쓰는 사이에
진짜 시민들이 같이 남태령을 넘고있어
후손들이 해냈습니다.
1800년대의 한반도를 위해 싸운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남깁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전봉준투쟁단 폐정개혁안 12조
발표문 읽어주라!
농민들은 항상 우리와
연대하고 있음 !
참기름 카르텔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