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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동양물 BL의 실사판(?)인 중국의 남자 황후

작성자흥미돋이야기해주는여시|작성시간25.02.11|조회수9,398 목록 댓글 46

출처: 여성시대 흥미돋이야기해주는여시








오늘은 중국 역덕들이 ‘중국 최초이자 최후의 남자 황후’라고 부르는 한자고와 문제의 사랑 이야기를 해보겠음.










때는 538년 중국.

이때 중국은 남북조시대였음.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후한이 멸망하고, 수나라가 다시 대륙을 통일하기까지 약 350년임. 수없이 많은 나라가 세워지고 전쟁하고 멸망하길 반복하던 흥미돋 시기였음. 나여시의 본진이기도 함.
















절강성 회계 지역에서 ‘한만자’라는 소년이 태어남. 이 소년의 집안은 매우 찢어지게 가난한 평민 집안이었음.


벗 이 소년은 엄청난 미소년이었음. 중국 역사 최고의 미남을 논할 때 꼭 순위에 드는 인물임. 원래 중국 역사에서 항주와 소주는 미인의 도시로 유명한데, 이 소년이 태어난 곳이 항주 근처이기도 함.







이 미모에 대한 썰이 정말 많음.


- 생김새가 곱고 아름답고 가냘프며 이마가 예쁘고 머리카락이 윤기가 나고 어쩌고 하며 구구절절 외모를 찬양하는 시가 지어지고

- 피난길에 병사들과 마주쳤지만 소년의 미모에 차마 칼을 들 수 없던 병사들이 소년을 그냥 보내주고

- 이 소년이 밖에 나가면 남자는 말을 잃고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등등....존나 개쩌는 미소년이었음.

이거 완전 미인수의 정석

















여기서 역사 교실을 잠깐 열자면, 남북조시대는 문자 그대로 남조와 북조가 따로 놈. 진나라나 한나라 같은 통일 제국과 달리 중국 대륙을 여러 나라가 나눠가진 거임. 화북 지역을 북조, 강남 지역을 남조라고 칭함.



북조는 위에 말한 대로 화북 지역의 왕조임. 386년 선비족의 북위 건국부터 북주의 시작임. 이후 북위가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고, 또 동위는 북제 & 서위는 북주로 바뀜.

이후 북위 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손 꼽히는 황제가 등장하니 바로 북주의 무제임. 이 양반은 북주의 국력을 빠르게 키워 북제를 멸망시키고 중원 통일까지 노리는데, 원정길에서 얻은 지병으로 요절함.

무제의 아들인 선제가 뒤를 이어 즉위하지만 이 새끼는 남북조시대의 황제들이 대부분 그렇듯 병신 폭군이었음ㅋ 자식농사 좃망한 거임. 결국 선제의 장인이자 북주의 대장군인 양견이 권력을 잡은 후 남조를 멸망시키고 통일 제국을 완성하니 이 사람이 바로 수나라의 초대 황제이자 중국 역사에서 손 꼽히는 성군인 수문제 되겠음.

(아 물론 문제도 자식농사 좃망해서 수나라 바로 망함)



반대로 남조는 강남 지역을 기반으로 둔 한족 왕조였음. 원래 강남 지역은 낙후된 변경 정도였는데, 선비족 같은 북방이민족에 밀린 한족 왕조가 강남으로 쫓겨내려와 터를 잡으면서 한족식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음.

남조의 범위에 대해선 사학자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른데, 보통 동진-유송-남제-소량-남진까지 남조로 침. 위에 말한대로 양견의 수나라가 남진을 멸망시키면서 남조 시대도 끝남.

(수나라와 당나라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지만, 한족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한화된 이민족의 나라임. 또한 북방의 이민족에게 쫓겨난 한족 왕조가 강남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구도는 중국 역사 내내 이어짐. 가장 최근인 명-청 교체기만 봐도 청나라vs남명 구도로 싸웠잖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이야기의 배경은 남조임. 당시 소년이 살던 시기에는 남조시대 중에서도 소량 때임.

소량의 초대 황제인 양무제 소연은 남조시대 황제 중 드물게 개념인에 성군이었으나 심각한 종교쟁이였음. 특히 나이 들고는 툭하면 머리 깎고 출가한다고 ㅈㄹ해서 신하들이 뜯어말리는 게 일상이었음.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로 나라 경제도 좃창나기 시작하먄서 소량은 빠르게 망테크를 탐.

이후 548년에 후경의 난이 벌어지면서 소량, 더 나아가 남조 시대는 최후를 향해 감.


(남북조는 왜 이렇게 막장인가요? -> 그래서 제 본진이죠)
















후경의 난 때 피난길에 올랐던 소년은 5년 후인 553년, 난이 진압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감. 이 귀향길에 소년은 한 남자를 만나는데





바로 이 이야기의 공(?)이자 후일 남진의 황제가 되는 진천임.










당시 소년은 16살, 진천은 32살이었음.


위에 말했듯 소년의 미모는 이 세상 사람 수준이 아니었음. 진천은 범상치 않은 소년의 미모를 보고 이 소년은 분명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모시지 않겠느냐?”고 제안함.

소년은 애초에 가난한 집 출신인 데다 피난길에 갖은 개고생까지 했잖음? 무려 태수님의 제안을 받은 소년은 기뻐하며 그 제안을 수락함.












이리 하여 소년을 거둔 진천이 가장 먼저 선물한 건 이름이었음. 소년의 원래 이름인 한만자는 천한 이름이어서, 진천은 아들 자에 높을 고를 써서 한자고라는 이름을 손수 지어줌.

진천의 수하가 된 한자고는 학문을 배우고 무예를 수련하며 진천을 곁에서 보좌해나감. 원래 진천은 불 같은 성격이었는데, 신중하고 총명한 한자고는 진천이 급발진 할 때마다 곁에서 달래주고 성심성의껏 진천을 모심.

















한자고는 미모 외에도 능력치가 출중해서 진천의 원정길마다 함께하며 공을 세웠음. 병권을 맡기면 겸손하고 청렴하게 일해서 병사들도 기꺼이 한자고를 따르고 한자고의 주군인 진천에게까지 충성을 바침.

안 그래도 존나 예쁜 애가 능력도 좋은데, 성격도 신중하고, 나한테 충성스럽다? 진천은 점점 한자고를 총애하기 시작함. 나중에는 한자고가 잠깐만 자기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바로 한자고를 찾을 정도의 집착까지 발전해서, 아예 자기 시야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24시간 붙어 다님.














결국 두 사람의 감정은 사랑으로 발전함. 오로지 한자고만이 진천의 곁에서 칼을 찰 수 있도록 허락받아서 늘 칼을 차고 다니며 진천을 호위했고, 진천이 식사할 때면 옆에서 술을 따르고 음식을 챙겨줌.



이 시기 진천이 한자고를 위해 쓴 시도 있음.

贈韓子高
昔聞周小史 今歌月下人
玉塵手不別 羊車市若空
誰愁兩雄幷 金貂應讓儂


대충 해석하면 “내가 높은 관직을 준대도 사양하고 내 곁을 지키며 나를 위해 노래해주는 네가 있는데 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냐” 정도임.

염병한다


















이후 557년, 진천의 삼촌이자 소량의 마지막 재상이었던 진패선이 소량의 경제에게 양위를 받아 남진의 초대 황제가 되자 진천은 순식간에 황제의 조카로 신분 상승을 함.

당시 진패선에겐 아들이 여섯 있었지만 전부 죽거나 북조의 포로로 끌려가있는 상태였고, 황제의 조카인 진천이 유력한 황제 후보였음.




황제 등극을 눈 앞에 둔 진천은 어느 날 한자고를 불러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에게는 제왕의 상이 있다고 하는데, 만일 정말 그렇게 되면, 너를 황후로 앉히겠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말이 많을까봐 걱정된다.”

라고 사랑을 고백함.


이에 한자고가 답하길

“고대에 여황제가 있었으니, 남황후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정말 나를 황후에 앉힌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 신경쓰지 않을 것입니다.”


염병한다

















그리고 559년, 진패선이 사망하자 진천은 마침내 황제가 됨. 한자고는 진천이 즉위하자마자 우위장군으로 임명되고 식읍까지 하사받음.


사실 둘이 처음 만났을 당시 진천의 나이가 30대였던만큼 진천에겐 이미 어려서 혼인한 정실 아내가 있었고, 후궁도 여럿 있었음. 근데 한자고한테 정말 찐사긴 했는지 한자고와 사랑에 빠진 후로는 다른 비빈을 전혀 찾지 않고 오로지 한자고만 총애함.

심지어 타국의 공주가 한자고의 미모해 반해 상사병을 앓다가 죽었다는 식의 추문이 한자고에게 따라붙자 극대노해서 사마씨 일족을 멸문시키기까지 함. 이거 완전 집착광공...

















그러나 7년 후인 566년, 둘의 사랑에도 서서히 끝이 다가옴







ㅎㅇ 나 저승사자



진천이 병으로 위독해짐. 진서 한자고전을 보면 “문제가 그를 아주 총애하여, 곁에서 떨어지게 하지 않았다. 진문제가 병이 들면 그가 들어가서 탕약을 올렸다”라는 기록이 있음. 그 어떤 비빈도 병든 진천을 만날 수 없었고, 오로지 한자고만이 진천을 만나고 그를 간호할 수 있었음.

지독한 쉐끼
















당해 5월, 진천이 사망하고 진천의 아들인 진백종이 황제로 즉위함. 그러나 진백종은 너무 어리고 병약한 황제였고, 진천의 동생인 진욱이 실권을 잡음.

2년 후인 568년, 한자고는 모반을 꿰하다가 사약을 받음. 다만 죽은 건 오로지 한자고 한 명이었고 한자고의 가족들은 무사히 살아남았기 때문에...진짜 역모를 꾸몄다기보단 연인의 아들인 진백종을 지키려다가 진욱의 손에 제거 당한 거로 보는 게 맞음.

(진백종은 같은 해에 폐위당하고 진욱이 즉위함. 이후 진백종은 570년에 의문사를 당하는데 정황상 진욱한테 살해당한 거에 가까움. 진백종의 동생이자 진천의 다른 아들인 진백무도 진욱이 보낸 자객 손에 죽었음)



















한자고는 실제로 황후가 되진 못했고, 둘의 관계도 비극으로 끝났지만...워낙 임팩트가 쎈 이야기라 후대에 남황후라는 연극이 나오며 중국의 유일한 남자 황후 취급을 받음. 21세기에도 웹드라마 나온 거 보면 오타쿠들의 수요 종목은 맞는 듯.

















여담)


2010년 대 중국에서 남북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능묘가 발견됨.




두 개의 묘를 벽돌 다리로 이어서 마치 손을 잡고 있는 듯한 형태였는데, 두 묘에서 발굴된 유해는 전부 남성이었음.
















또한 중국 황제의 능묘에는 무덤을 지키는 신수 상을 두는 경우가 흔한데, 이 경우 암수 한 쌍이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로 두는 게 보편적임. 대표적인 신수인 기린만 해도 수컷인 기 + 암컷인 린 합쳐서 기린임.

근데 해당 능묘 부근에서 발견된 천록 상은 둘 다 수컷이었음. 수컷 두 마리가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 (천록은 남조에서 황제의 능묘를 수호하던 신수임)





그래서 해당 무덤이 진천의 능묘인 영녕릉이고, 진천의 뜻에 따라 신수를 모두 수컷으로 배치하고 한자고를 후일 합장한 게 아닌가 추측 중
















- 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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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MRB aria uy arbosa | 작성시간 25.02.11 얼굴궁금해 ㅋㅋ
  • 작성자SuperENTP | 작성시간 25.02.11 넘 재밌게 보고가
  • 작성자아아라로 | 작성시간 25.02.11 이야 재믹네
  • 작성자재미없어 | 작성시간 25.04.01 미쳣다 너무 쟈밌다… 너무 재밌다…
  • 작성자Wisishs | 작성시간 25.09.21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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