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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공정하다는 착각 - 성공한 자들에게 교만함을, 실패한 자들에게 모멸당해 마땅한 존재라는 자괴감을.

작성자수테|작성시간25.03.22|조회수1,806 목록 댓글 3

 출처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93000830



샌델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현대 자유주의를 규정하는 능력주의적 정치기획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한다. 자유주의의 능력주의적 정치기획은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오늘과 같은 글로벌한 기술 시대에는 고등교육이 신분상승과 물질적 성공 및 사회적 존중을 얻는 길이다. 둘째,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신분상승을 위한 고른 기회를 통해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의 결실을 향유할 자격이 있다. 샌델 교수는 이런 가치관과 관점이 국가 정책의 중심이 된 것은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일 뿐이라고 한다. 이런 능력주의 관점은 아메리칸 드림과 잘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주 어두운 이면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도 이런 생각을 공정하고 타당한 관점이라고 여긴다.

능력주의적 이상은 미국의 경우 대학 학위 소지 여부와 관련된 학력주의 문제로 직결된다(물론 우리는 학력주의보다 더 중증인 학벌주의에 감염되어 있다). 그런데 만일 대학 학위가 좋은 직장과 사회적 평가의 전제조건이 된다면, 이는 민주주의를 부패시킨다. 이것이 능력주의의 어두운 이면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학위를 갖지 않은 이들의 사회적 기여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 교육을 적게 받은 이들이 선출직 공무원으로 진입하는 문을 좁혀놓아 결국 포퓰리즘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그동안 미국 민주당이 가졌던 입장은 현재의 글로벌 경제질서 유지였다. 물가를 저렴하게 유지하려고 많은 일들을 저임금 국가로 아웃소싱했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받는 타격을 줄이고 악화된 직업 전망을 개선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학위 상황을 개선하여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정책 기조를 잡아왔던 것이다. 고등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힐러리 클린턴까지 이어져온 이러한 정책 기조를 유지한 정치가들이 한 가지 놓친 점은 능력주의 중심 사회에 내재한 모욕insult의 감정이다.

능력주의에 따르면, 만일 당신이 대학에 가지 않아 이런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 실패는 바로 당신의 잘못이 된다. 사회의 상층부에 속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잘못에 따른 것이기에 자괴감을 갖게 된다. 그들이 성공한 자들로부터 받는 모욕은 정당한 것인 반면 자신은 모멸을 당해 마땅한 존재가 된다. 그런데 정말로 학위가 없고 성공하지 못한 자는 업신여김을 받아 마땅한가?

미국에는 대학 학위를 갖지 않은 사람의 수가 전체 인구의 삼분의 이에 달한다. 능력주의에 대한 강조는 미국에서는 곧바로 학력주의로 나아가고, 이로 인해 대학 학위를 갖지 못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점차 널리 퍼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모욕감은 종교나 수양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해도, 실패한 가장으로서 가지는 고통, 계층 전체가 갖는 모욕의 고통은 사회 내에서 (드러나진 않아도) 커다란 부정적 기능을 하게 된다. 샤이한 트럼프주의자들은 이런 감정을 숨기며 지냈다.

학력주의라는 편견은 성공한 자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준다. 통계에 따르면 이들은 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에 대해 반대한다. 그러나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편견을 갖고 있다. 자신들이 그들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음을 알아도 그에 대해서는 별로 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교육받지 못한 이들은 깔봄을 당해도 싸다는 편견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심리는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학 학위를 갖지 못한 자들이 의회에 진입하는 데 장벽이 된다. 미국의 경우 하원의원의 95%가 대학 학위 소지자였고, 상원의 경우는 대학 학위를 갖지 못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1960년도만 해도 하원의 사분의 일이 대학 학위를 갖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존경받는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고졸이었다. 미국 사회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종과 성적 다양성은 확보되었으나 학위와 사회 계층의 대표성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노동계층 혹은 서비스산업이나 사무직에 근무하던 이들이 의회에 진입한 경우는 현재 2% 불과하다.

하지만 의회에는 고학력자들이 들어가야 올바른 정책을 만들어내고 또 정책에 대한 효율적이며 합리적 토론도 가능하지 않을까? 샌델 교수는 앞서 언급한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의회에서 이루어지는 정책 토론의 위태로운 상황을 언뜻 보기만 해도 그런 생각은 멈추게 된다. 정치를 잘하기 위해 기술관료적 전문가들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시민적 덕성이 요구된다. 공동선에 대해 숙고하고, 모든 면에서 시민들과 일체감을 갖는 능력 말이다. 지난 역사를 보면 정치적 판단 능력과 엘리트 대학 진학 능력 사이에는 연관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력이 떨어지는 자들보다 ‘가장 뛰어나고 가장 똑똑한 자들’이 정치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능력주의적 교만에 기초한 허구다.


 

내가 가진 재능과, 사회로부터 받은 대가는 과연 온전히 내 몫인가? 아니면 행운의 산물인가? 나의 노력은 나의 것이지만, 그런 노력은 패배자도 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재능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한 운이다. 나의 노력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를 만난 것도 내가 시대를 잘 만난 행운의 결과인 것이다.

성공주의의 수사학, 그리고 기술관료적 능력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예찬은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이끌고 갈 뿐이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도덕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능력 경쟁을 위해 무장한 사람들보다는, 학위가 없지만 우리 사회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사람들, 자신의 일을 통해 부양가족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샌델 교수는 주장한다.

내가 받은 사회적 명성과 대가가 행운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겸손해진다. 이런 겸손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민적 덕성이다. 우리를 분열하게 하는 성공의 거친 윤리에서 돌아와, 능력주의의 폭정을 뛰어 넘어야 한다. 이런 샌델의 웅변은 곧 우리 사회에 대한 웅변이기도 하다.

샌델 교수는 자신이 속한 미국의 삶에 충실하여, ‘능력주의의 문제’, ‘공정이 모든 것이라고 보는 생각의 허구’를 예리하게 지적한다. 한국의 상황을 깊이 꿰뚫어 보면서 우리가 당면한 능력주의의 문제를 통찰하는 일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샌델 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한국에도 적용될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것을 적용하고 또 우리 환경에 적절한 이해를 갖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할 일이다. 마치 자기의 글을 읽고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을 대신 써 달라고 부탁한 것처럼, 한국의 독자들에게 ‘우리 자신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해주길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저술이 나올 때면 샌델 교수는 한국으로 와서 독자들과 직접 만남을 가졌다. 코로나19 상황은 그것을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메시지에 주목하는 것이다. 진정한 가치가 있는 만남은 그의 생각과 우리의 문제가 만나는 것이다. 그 만남은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

김선욱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함규진 저 2020




◆ 책 속에서

[승자에겐 오만을, 패자에겐 굴욕을]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다. 승자는 자신의 승리를 ‘나의 능력에 따른 것이다. 나의 노력으로 얻어낸, 부정할 수 없는 성과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다’라고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보다 덜 성공적인 사람들을 업신여기게 된다. 그리고 실패자는 ‘누구 탓을 할까? 다 내가 못난 탓인데’라고 여기게 된다.

[정말 반드시 ‘정의’로 귀착될까?]
버락 오바마는 그런 믿음을 가졌고, 종종 표현했다. 그는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Jr.)의 다음과 같은 말을 즐겨 인용했다. “도덕 세계의 궤적은 길다. 그러나 반드시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 그가 얼마나 이 말을 좋아했는가 하면, 대통령이 된 뒤 연설과 선언에서 33차례 인용했으며 집무실의 양탄자에까지 새겨넣었다.

[나만큼은 능력으로 올라왔어]
능력주의적 직관은 정치적 성향을 불문하고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 직관이란 대학 입학에서의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과 관련된 토론에서 특히 강하게 불거졌다. 소수집단 우대정책에 찬성하는 학생이든 반대하는 학생이든, 자신은 죽어라 노력해서 하버드에 왔으며 따라서 자신의 지위는 능력으로 정당화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들이 운이나 기타의 통제 불가능 요인으로 입학한 게 아니냐는 말에는 거센 반발이 일었다.

[능력은 ‘부’로 입증되기에 생명조차… 자유지상주의의 그림자]
최근의 신문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느라 자기 신장을 판 중국 10대 학생’ 기사를 읽었던 나는 학생들에게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뒤이은 토론에서, 많은 학생들은 자유지상주의적 견해를 나타냈다. 그 10대 학생이 강압이나 협박에 의하지 않고 자유 의사에 따라 자기 신장을 팔기로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입장에 반대한 일부 학생들은 가난한 사람의 신장을 사서 부자가 생명을 연장하는 일은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강연이 끝난 뒤, 한 학생은 내게 비공식적으로 답을 주었다. 부를 이룩한 사람은 그만한 능력을 입증한 것이며, 따라서 생명을 연장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불우한 사람은 도움 받을 자격조차 없다]
그들은 레이건처럼 은연중에 도움 받을 자격이 있는 가난한 사람과 그런 자격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구분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힘에 맞서 싸우는 사람은 정부 보조를 받을 만했다. 다만 불우해서 가난해진 사람은 자격이 없었다.

[다만 편견의 대상이 다를 뿐: 환경 인종 성차별에는 반대하면서 저학력자에겐 편견을]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는 보다 못한 교육 수준의 대중에 비해 편견이 결코 적지 않다. “다만 그들의 편견의 대상이 다를 뿐이다.” 더욱이, 엘리트는 그런 편견에 대해 쑥스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 반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학력자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는 ‘그러면 어때?’라는 태도가 지배적이다.

[계층 상승, 미국보다 중국이 쉽다고?]
내기를 건다고 가정해보자. 열여덟 살짜리 소년이 두 명 있다. 한 사람은 중국에, 다른 한 사람은 미국에 살고 있다. 둘 다 가난하며 장래 상황이 나아질 전망도 어둡다. 자, 둘 중 한 소년을 골라보자. 어느 쪽이 더 사회적으로 출세할 가능성이 있겠는가?
독자는 누구를 골랐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답은 뻔했다. 어쨌든 “아메리칸 드림”. 미국에서라면 누구든 열심히 일한다면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정답은 당황스럽다. 미국보다 중국이 개인의 생활 향상을 훨씬 빨리 성취해 주고 있는 것이다.

[돈 따라 가는 수능 점수]
SAT는 수학능력이나 사회경제적 배경과 무관하게 타고난 지능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반대로 SAT 점수는 응시자 집안의 부와 매우 연관도가 높다. 소득 사다리의 단이 하나씩 높아질수록, SAT 평균점수는 올라간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대학을 노리는 학생들의 점수를 보면 이 격차가 특히 크다. 부잣집(연소득 20만 달러 이상) 출신으로 1,600점 만점에 1,400점 이상 기록할 가능성은 다섯에 하나다. 가난한 집(연소득 2만 달러 이하) 출신은 그 가능성이 오십에 하나다. 고득점자들은 또한 압도적으로 그 부모가 대학 학위 소지자이다.


서론: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입시의 윤리 | 능력 지표 따내기

CHAPTER 1. 승자와 패자
포퓰리즘적 불만에 대한 진단 | ‘테크노크라시’와 시장 친화적 세계화 | 빈부격차를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법 | 능력주의 윤리 | 굴욕의 정치 | 기술관료적 능력과 조직적 판단 | 포퓰리즘의 준동

CHAPTER 2.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왜 능력이 중요한가 | 우주적 능력주의 | 구원과 자기 구제 | 과거와 지금의 섭리론 | 부와 건강 | 자유주의적 섭리론 | 역사의 옳은 편 | 도덕 세계의 궤적

CHAPTER 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고된 노력과 정당한 자격 | 시장과 능력 | 자기 책임의 담론 | 재능과 노력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 | 포퓰리즘의 반격 | 과연 “하면 된다”가 맞나? | 보는 것과 믿는 것

CHAPTER 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무기가 된 대학 간판 | 불평등의 해답은 교육? | 최고의 인재들 | 스마트해지기 위한 일 | 대중을 내려다보는 엘리트 | 학위가 있어야 통치도 한다 | 학력 간 균열 | 기술관료적 담론 | 테크노크라시냐 데모크라시냐 | 기후변화 논란

CHAPTER 5. 성공의 윤리
기술관료의 지배냐 귀족의 지배냐 |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 | 능력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 완벽한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 재능은 자신만의 것인가? | 노력이 가치를 창출하는가? | 능력주의의 두 가지 대안 | 능력주의에 대한 거부 | 시장과 능력 | 시장 가치냐 도덕적 가치냐 | 쟁취한 자격인가, 권리가 인정된 자격인가? | 성공에 대한 태도 | 운수와 선택 | 재능 계산하기 | 능력주의의 등장

CHAPTER 6.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능력주의 쿠데타 | 능력주의의 폭정,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다 | 코넌트의 능력주의 유산 | 돈 따라 가는 SAT 점수 | 불평등의 토대를 더욱 다지는 능력주의 | 명문대가 사회적 이동성의 엔진이 되지 못하는 이유 | 능력주의를 더 공평하게 만들기 | 인재 선별 작업과 사회적 명망 배분 | 상처 입은 승리자들 | 또 하나의 불타는 고리를 넘어라 | 오만과 굴욕 | 유능력자 제비뽑기 | 인재 선별기 부숴버리기 | 명망의 위계질서 | 능력에 따른 오만 혼내주기

CHAPTER 7. 일의 존엄성
일의 존엄성 하락 | 절망 끝의 죽음 | 분노의 원인 | 일의 존엄성 되살리기 | 사회적 인정으로서의 일 | 기여적 정의 | 일의 존엄에 대해 논쟁하자 | ‘열린 어젠다’의 오만 | 금융, 투기 그리고 공동선 | 만드는 자와 가져가는 자

결론: 능력, 그리고 공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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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냠냠얌얌얌야냥 | 작성시간 25.03.22 정의란무엇인가 읽고있는데 다 읽으면 다음엔 이책읽고싶어
  • 작성자새해에는떡국 | 작성시간 25.03.22 이거 읽고 독후감 안내면 대학졸업 못하게 법으로 정햐야햄
  • 답댓글 작성자이해준 | 작성시간 25.03.30 이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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