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tifa-lockhart.tistory.com/m/1287,
여성시대 야마도는여시
일본 에도시대(1603~1867)에는
태어난 아이를 엄마가 목졸라 죽이는 일이 성행했다.
이를 마비키(間引き), 일본어로 솎아내기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도말기에는 평균 자녀수가
3명을 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상 태어나는 아이는 부모가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를 죽이는 풍습은 국가 세금을 줄이는 일이기에,
에도 정부에서는 자주 마비키를 금지하는 방을 붙이며
어떻게해서든 이 풍습을 없애려고 했다.
에도 말기의 농학자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는,
'出羽奥州와 奥州(현재의 동북지방)에서
매년 1만 6, 7천명, 上総(현재의 지바현)에서는
3~4만명의 갓난아기가 솎아냄(마비키) 되고 있다'
라고 기록을 남기고 있다.
메이지시기 일본을 방문했던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는
"일본의 여성은 기를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면 모두 아기 목을 다리로 눌러 죽여버린다" 라고 기록했다.
이 마비키의 전통이 얼마나 강했는지, 300년이 지난
20세기 들어서까지도 일본 정부는 이를 근절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에도시대 초기에 마비키가 성행한 이유는
가난한 일본 백성들에게 있어 양식을 축내는 '새 식구'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지만, 후기에 들어가서는
경제적으로 풍요해짐에도 불구하고 부담을 더 지기 싫기 때문에 아이를 목졸라 죽였다.
필요없는 아이를 목졸라 죽여서 살처분하는것뿐만 아니라 낙태를 하는 풍습도 있었는데
이를 코오로시(子おろし)라고 한다.
(おろし란 일본어로 떨어뜨리다, 떨구다 라는 뜻)
코오로시란 낙태를 해주는 전문업체로,
돈을 받고 독약을 제조해줘서 파는 사람들을 뜻한다.
대놓고 간판을 걸고 장사를 했다고 기록되어있으니
당시 에도시대에 낙태, 유아 살해가 얼마나 많았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정도다. 이 코오로시는 1842년에야
막부 정부에서 금지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 풍습이 너무 강력해서 사람들의 낙태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구글 검색결과 마비키(間引き)에 대한 논문이 몇개 뜬다.
코오로시(子おろし)에 대한 논문도 몇개 보인다.
mabiki로 검색해보면 해외 학술 논문도 나온다.
이 중 가장 많이 인용된것은 캘리포니아 대학
파비앙 교수가 연구한 저서이다.
파비앙 교수에 따르면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중세 에도시대의 악습이었던 마비키를 감추려고
급급했다고 나온다. 연구 논문에 따르면 에도시대 내내
출산률은 5.0~6.0명으로 일정했는데 1726년부터
메이지유신으로 막부 정부가 붕괴되기까지
약 200년동안 인구수는 2700만명선으로
항상 일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어린아이들은 목졸라
죽임을 당했다는 소리인데 2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2700만명을 항상 고르게 유지한것을 보면
오싹한 느낌이 든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한남남미새아웃 작성시간 25.05.10 낙태방법이 없엇다 라고 하기엔 그건 어느 나라든 똑같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지에 보고될정도로 태어난 아이를 목졸라 죽여야하는 상황이 성행햇던, 아니 아에 문화로 자리잡고 있었다는거는 생각해볼문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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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칵테일 사랑 작성시간 25.05.10 33 이건 해외 학술지 논문에 보고될 정도로 심각했던 200년동안 성행한 영아 살해 악습 문화인데 원글 댓도 그렇고 우리나라가 더 나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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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칵테일 사랑 작성시간 25.05.10 즈그들은 200년동안 영아 살해해놓고 고려장도 사실 즈그 문화면서 우리나라에 있지도 않은 고려장을 우리나라에 뒤집어씌움 ㅋㅋㅋ 국민성이 전통적으로 미개하고 음침한 음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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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냥냥냥 작성시간 25.05.10 으아악... 알 수록 알고싶지 않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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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에밀리야 작성시간 25.05.10 그래서 악귀가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