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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뉴스데스크]“3대 망한다더니” 우당 종손자 경남 함양 시골서 가난한 노년

작성자크래비티 안성민|작성시간25.06.13|조회수2,562 목록 댓글 12

출처: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8219438&code=61122023&cp=nv

 

 

이철영·회영 등 우당 6형제는 막대한 재산을 모두 처분해 신흥강습소(무관학교 전신) 등 독립운동에 모두 바쳤다. 강습소 운영도 어려운 판에 식구들이 거친 만주 땅에서 굶기를 밥 먹듯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 후 우당가 후손들이 돌아온 고국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엔 관심이 없었다. 생활전선에 내몰린 자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에 남은 이는 광복회장도, 국회의원도 됐지만 부산으로 내려온 이씨 가족들은 그대로 잊혀졌다.

이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마저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10대 중반에 금세공 기술을 배워 살았고, 이후 경비원 일을 오래 했다. 나이가 들어 경비원 일도 할 수 없게 되자 처자식이 없는 그는 피붙이 동생을 찾아 금호마을에 흘러들었다.

 

(중략)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받은 혜택은 막내 동생이 딱 한 번 학비를 면제받은 것과 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가 보내준 쌀이 전부다. 함양군과 경남도의 보훈부처는 딱히 이씨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이종원씨는 평소 “내 힘으로 살 수 있는데 국가의 도움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며 자신과 집안 내력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도움을 바라지 않는 그는 정작 남을 돕는데는 제일 먼저 나선다. 마을 수도를 고쳐주고 난로를 만들어 이웃에게 나눠주며 ‘맥가이버’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문 출처로

 

같이 보면 좋은 쩌리 글 : 자신들의 모든것을 내던진 일가

 

외에도 유관순 열사 친조카분은 건물 청소 일을 하면서 월급 100만원으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이것 마저도 고령으로 못하고 있음.

이봉창(일왕에게 폭탄 투척)의사 후손은 공방 운영으로 한 달 70만원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함..

또, 생계 때문에 고졸, 중졸, 초졸 심지어 무학인 분도 있다고 해

 

이재명 대통령 말대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영원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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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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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잼시아바디각하 | 작성시간 25.06.13 잼시 출동 해줘..
  • 작성자프로혼닭러 | 작성시간 25.06.13 아니 이런 사람들 지원하려고 보훈처 있는거 아니었음?
  • 작성자뉴냐나냐 | 작성시간 25.06.13 하....
  • 작성자이킁에킁 | 작성시간 25.06.13 ㅠㅠㅠㅠㅠㅠ
  • 작성자좌욕칭송자 | 작성시간 25.06.13 헐 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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