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oh no, oh yes
아래사진이 요근래 고종강제퇴위 사진이라며 커뮤마다 종종 올라오던데..
강제퇴위는 7월 한여름이었음
위 사진은 딱봐도 두툼한 겨울옷에
끌어내리는게 아니라
양옆사람들이 고종을 "부축하며 모시는" 모습임
저 사진 원본
고종, 승하 1년 전 부축받아 거동
승하 1년 전인 1918년 1월 15일 고종황제(왼쪽에서 부축받는 이)가 영친왕(오른쪽)과 함께 창덕궁 선원전에 예를 올리기 위해 침소인 덕수궁 함녕전을 나서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대박물관
응..
예 올리려고 바깥에 행차하는데 노환으로 거동이 힘드니까 측근 대신들이 양옆에서 "모시는"거야..
근데 뭔 이완용어쩌구 이럼서 날조글이 돌더라
Q. 그렇다면 진짜 강제퇴위식은 어땠을까?
A. 애초에 강제퇴위식같은건 없었다
그리고 고종은 아예 그 자리에 나타나지도 않았음ㅋ
고종은 퇴위를 거부했거든
고종은 강제퇴위에 불응했고 결국 고종퇴위-순종 즉위식은 두사람이 불참한 상황에서 권정례(權停禮)로 행해졌음
심지어 고종은 퇴위나 양위가아니라 세자가 대리청정하는거라고 했음
* 권정례 : 조선시대 국가 의례에서 왕이나 왕비, 세자나 세자빈 등 의례의 주인공이 참석하지 않은 채 거행하는 예식
사진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상황이 묘사된 사진과 기록이 있음
1907년 8월 4일자 이탈리아 잡지 '라 트리부나 일루스트라타(La Tribuna Ilustrata)' 1면에 '조선의 새 황제 즉위식'이라는 설명과 함께 실린 삽화 그림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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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7월 21일자 '대한매일신보'도 "상오 칠시에 중화전에서 권정례로 하였다더라."라고 보도했고, 통감 이토 히로부미도 같은 내용의 외교전보를 일본 외무차관에게 보냈다.(통감부 전보 번호 제76호 : 今朝七時宮中中和殿ニ於テ權停禮ヲ施行)
대한매일신보도 1907년 7월 19일(광무 11년 금요일)에 호외를 발행해서 "상오 8시에 황제폐하께서 황태자전하께 대리를 명하시옵고 조칙을 반포하였다."라는 소식을 전했다.
'대리청정'과 '권정례'는 일본과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 대신들의 퇴위 요구에 대한 고종의 반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종이 고분고분 하지 않았던 임금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일본 역시 고종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임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강제 합병에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고종을 눈엣 가시처럼 생각하고 있던 중에 헤이그 밀사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 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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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응 양위아니고 대리청정임ㅋ 그리고 우리 참석 안할거임ㅇㅇ" 해버리니까
일본 관리들이 이거어떡하지? 하고 양위식으로 날조하려다가 결국 나아아아중에 순종 즉위식을 새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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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 관료들 사이에서 대리로 한 이 '대리청정' 의식을 양위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많았는지, 외무장관은 '한국황제 양위확인(韓國皇帝 讓位確認) 및 양위식(讓位式)에 관한 件'(내전 來電 제846호)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정부의 이사관과 부이사관들에게 내부문건을 회람시킨다. '대리청정 조칙은 양위의 의미가 명백하다'라는 내용이었다.
위 삽화 속 대리즉위식에 참석한 이토히로부미
결론은 고종 퇴위당하는 사진따위 존재하지않는다
왜냐?
고종이 불응해서요
위 사진 관련 기사
아! 잊혀진 대한제국이여... 서울대박물관 희귀사진 전시
https://m.khan.co.kr/article/200605261808531

아! 잊혀진 대한제국이여... 서울대박물관 희귀사진 전시
한반도가 열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던 1897년 10월, 고종은 황제즉위식을 갖고 조선이 자주...
m.khan.co.kr
그림으로 보는 우리의 근대 원고 중 일부
http://www.sunjooschool.com/index.php?mid=class_published_ModernPainting&page=2&document_srl=7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