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흥미돋]나 수학여행 중 배에서 태풍만나서 표류한 적 있어

작성자올호라|작성시간25.11.20|조회수39,434 목록 댓글 58

출처: 여성시대 (올호라)



신안 퀸 제누비아 여객선 좌초 하니까 고등학교때 표류했던거 생각나서 풀어봄


2011년 9월, 고등학교때 제주도로 수학여행가는데 퀸메리호라는 배를탔거든

이미 출발 전부터 태풍온다고 해서 수목금 일정이었던게 목금토로 일정 바뀌었음
목포에서 제주로 가는 배에선 문제 없었어

수학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토요일 오후에 제주에서 목포로 다시 돌아가는 배를 탔어

그때 그 배엔 남고 1개, 여고 2개 학교 + 수십수백의 민간인들이 탔었음
배에서 남고여고 서로 번호따고 아주 기냥 사랑을 실은 배였음ㅎ

선생님들은 약간 긴장한 얼굴이었던 것 같아
새로운 태풍이 동남아쪽에서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던데 우린 아슬아슬 피해갈 수준이어서 그냥 출항하지만 서둘러야 한다고 했던가 그랬음

배는 출항했고 2시간 정도까진 순조로웠어
근데 점점 파도가 거칠어지긴 하더라 서있을 수 없을 만큼
갑판은 밤이고 파도도 세니 너무 위험해서 나가지 말라고 선생님들이 입구에 서서 통제했었음

할것도 없으니 각 반마다 배정된 실내 방에서 애들이랑 "파도 너무 세지 않냐, 이러다 침몰하면 어캄? 전화됨?ㅋㅋㅋ" 이러고 수다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내방송이 나왔어

"안녕하세요 선장(?)입니다, 출항 당시만 해도 멀리 떨어져 있던 태풍이 갑자기 속도가 빨라져 저희 경로를 정통으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더 이상 운행이 어려워 시동을 끄고 표류하겠습니다. 위험하니 갑판...어쩌고 저쩌고"

계속 말하는데 "표류"에서 애들이 웅성거림이 심해져서 더이상 들리지 않았음
안내방송이 끝나자 갑자기 전기가 다 꺼지고 전 객실에 빨간불이 들어왔어

애들은 소리지르고 패닉에 빠져서 울고 난리도 아니었음
배는 점점 기우는게 심해져서 앉아있었는데도 이리저리 굴러다닐 정도였어
밖에 복도에선 선생님들이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어

열린 문 사이로 애들이 돌아다니는거 보고 나도 나가봤어
선생님들은 각 반 애들 체크하고 구명조끼 확인하고 있더라고
돌아다니면 안됐지만 나는 뭔가 이대로 있으면 안될 것 같길래 선생님께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 하고 갑판쪽으로 올라갔어

올라가서 갑판 문을 보니까 쇠사슬로 칭칭 감아서 자물쇠까지 채워놨더라고
아 이거 뭔일 나도 못나가겠구나 싶어서 열린 문을 찾으러 돌아다녔어
그러다가 다른 학교 선생님을 만나고 잡혀서 방으로 돌아왔어

방에 돌아와보니 애들은 휴대폰 붙들고 전화하려고 난리치고 있었고 나도 그땐 카톡이란게 없을때라 문자로 엄마한테 연락보내려고 했었는데 문자도 안가더라

그렇게 다들 소리지르고 울고 굴러다니고 한시간쯤 지나자 잠잠해졌고 태풍이 지나갔으니 다시 출발하겠다, 현재 위치는 진도 쪽이라 목포항 예상 도착시간은 밤 11시쯤이다 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어

조명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배에 시동거는 소리가 들리더라
우리 안도했고 선생님들도 다시 인원파악하고 분주해지시더라고
목포항 도착까지 바닷길은 너무나 조용했고 우린 다들 지쳐서 잠을 잤어

밤 10시 40분쯤에 목포항 도착해서 휴대폰을 켜보니 엄마랑 아빠한테 전화랑 문자가 엄청 와있는거야
바로 전화해서 태풍만나서 좀 늦어졌다고 하니까 엄마가 안그래도 지금 다들 모여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무슨소리지 하고 보니까 원래 9시에 목포항 도착해서 밤 10시 반쯤에 학교 도착 예정이었거든

그런데 태풍온단 소리에/도착할 시간에 맞춰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모두 그때 바다 위 표류하고 있을때라 연락이 안됐고 모든 학부모들이 부랴부랴 학교로 온거지

학교장도 밤에 학교 와서 "배 위성전화로 통화했고 태풍 무사히 지나서 다들 목포로 오고있다, 신안까지 왔다가 1시간 표류하며 진도까지 떠밀려가 2시간 정도 늦어질 예정이다"라는 소식을 전했던거지

그래도 부모님들은 내자식 목소리 들을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나봐 목포항에서 내리는 학생들은 부모님 전화 받느라 여념이 없었고 선생님들은 학생들한테 얼른 부모님들께 연락드리라고 소리치고 있었어

그렇게 정신없이 배에서 내려 버스타고 학교로 돌아와보니 밤 12시 반.... 학교 주변과 운동장은 300대 가량의 차들로 아주 장관이었어 버스가 들어가니까 부모님들이 막 차버리고 따라서 뛰어 오시더라

350명의 학생들과 약 500명의 가족들, 선생님들, 대략 1000명 정도가 울며불며 상경하고 나도 그 난리통에서 겨우 엄마 찾아서 차타고 돌아왔음...
시내버스도 끊겼을때라 부모님이 못오신 애들은 선생님들이 각자 차량에 방향 나눠서 애들 내려주고 못탄 애들은 선생님들이 택시비 쥐여서 택시태워 보내줬다더라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고 수학여행 갔다온 애들은 맘고생 했을거라며 학교에서 월요일 휴교시켜줌ㅎㅎ

이후 2014년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때 정말 무서웠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심장이 몇번을 벌벌 떨리는지...

그래도 모두가 무사히 돌아왔던 이야기이니 다들 흥미롭게 읽어줬으면 좋겠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주그냥김장년 | 작성시간 25.11.20 와 ㅜㅜㅜㅜ
  • 작성자내똥내싼 | 작성시간 25.11.20 글만 읽어도 너무 숨막히고 무섭다 진짜 무서웠겠다 ㅜㅜㅜ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올호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1.21 그니까ㅎㅎ 회사에선 운행 강행시키지, 태풍은 오지, 늦어지면 사람들 손해는 어쩌지, 파도는 미친듯이 높게 치는데 운행 계속하면 내 배에 앞길 창창한 고등학생 1000명이 타있는데 이걸 어쩌냐 하면서 나라면 손 발발발 떨렸을듯ㅠㅠㅠ
  • 작성자꽁보리보리 | 작성시간 25.11.23 v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