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9246225485
대한민국의 국보이자,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조선시대의 선비이자 화가인 윤두서가 그린 자화상이며,
그 세밀함과 표현력, 과감함에서
조선시대 자화상 중 최고로 손꼽힌다.
윤두서는 당시의 명문가해남 윤씨의 종손으로 태어났지만,
가문이 당쟁에서 밀려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예술에 힘을 쏟게 된다.
역시 좀 살기 힘들어야 걸작이 나온다니까
어쨌든,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초상화나 자화상을 보면
이렇게 약간 비스듬한 각도에서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한쪽 귀가 안 보이는 애매모호한 각도로)
물론 이채의 초상화처럼 정면을 보는 그림도 있긴 했지만,
(윤두서의 자화상보다 후기 작품이다)
그래도 의복을 갖춰 입은 것을 그리고
양 귀까지 있는 대로 그려준다.
내 눈을 바라봐
하지만 지금 남은 윤두서의 자화상은 귀고 옷이고 뭐고
얼굴만 보여주고 있으며, 그마저도 탕건은 잘렸다.
그리고 아래로 길게 난 두 수염은
마치 공중에 둥둥 뜬 얼굴을 받들고 있는 듯하니.
내 눈 을 바 라 보 라 고
호랑이 같은 얼굴과 묘하게 잘 어울리기에,
윤두서가 파격적인 실험정신으로 이러한 시도를 했거나,
혹은 미처 다 그리지 않은 미완성작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를 뒤집는 일이 생기는데,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적외선 촬영 등을 통해
사실 상반신과 귀가 있었다는 걸 밝혀 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사실 귀와 옷을 그린 윤곽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해남 윤씨 가문이 가보를 보존하기 위해
표구를 하다가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주된 견해인데,
(*표구란 서화(書畵)를 보존하기 위하여
얇고 질긴 종이를 밀착시켜 안감을 대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숯으로 그린 윤곽선을 표구 도중
문질러서 없어졌다는 주장과,
종이의 뒷면에 옷을 그려 넣는 배선법을 썼는데
뒤에 비단을 대면서 사라졌다는 주장이 있다.
저 형 원래 귀 준내 잘그리는데 ㄹㅇ
반면, 아예 처음부터 윤두서는 얼굴만 그렸고
귀와 옷은 이후에 누군가가 덧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친척이자 벗이었던 심득경을 그린 초상화에서도 보이듯,
귀를 못 그리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
눈, 코, 입까지 모두 정밀하게 묘사해 놓고
정작 귀만 단순화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귀와 몸이 사라진 덕분에
윤두서의 자화상은 한층 더 인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상도 물감이 다 벗거져
흰색만 남았기에 오히려 더 아름다움을 뽐내듯,
실수나 세월이 윤두서의 자화상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국보로 남게 된 것이라 하겠다.
-끝-
조선 시대의 초상화는 대상 인물의 외모를 매우 사실적이고 정직하게 묘사하는 특징이 두드러짐. 반면 서양의 전통 초상화는 시대와 목적에 따라 다소 이상화하거나 미화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음. 특히 조선 시대 초상화는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一毫一髮 不似便是他人)'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삼았음.
그래서 얼굴의 작은 흉터, 사마귀, 주름, 심지어 천연두 자국이나 검버섯까지도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묘사했음. (예: 태조 이성계 어진의 얼굴 혹, 권상하의 검버섯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