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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아니;; 사람들이 나보고 인간 병원균이래;;; 아픈 곳도 없는데;;;;

작성자마크 미첨|작성시간25.12.15|조회수9,491 목록 댓글 2

 출처 : 여성시대 히메노 코토리

 

때는 1906년의 뉴욕.

 

부유한 은행가 찰스 워런은 이번 여름을 가족들과 함께 오이스터 베이에 있는 친구의 별장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음.

 

오이스터니까 그냥 의미 없이 굴

 

워런 가족의 여름은 한동안 순조로웠으나,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음.

 

딸인 마가렛이 장티푸스를 앓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족 구성원들이 감염되어 쓰러져나갔기 때문이었음.

 

이후 역학조사가 실시되었지만 놀랍게도 감염 경로는 오리무중이었음.

 

집 안 어디서도 장티푸스 균이 발견되지 않는데다가, 오이스터베이에서 장티푸스에 감염된 가족은 워런 가족 뿐이었기 때문임.

 

사건이 미궁에 빠지려는 찰나, 당시 역학조사를 맡았던 위생공학자 조지 소퍼의 눈에 한 인물이 찍힘.

 

바로 메리 맬런이라는 요리사였음.

 

메리 맬런이 장티푸스가 퍼지기 몇 주 전에 들어와, 장티푸스가 퍼진 이후 오이스터 베이를 떠났다는 정보를 입수한 소퍼는 그의 뒤를 캐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메리가 일했던 집마다 장티푸스에 걸리는 사람이 있었음.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족족 장티푸스에 걸리는 와중에 메리는 잔병치레 한 번 앓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음.

 

소퍼 박사는 메리가 무증상 보균자임을 직감하고 서둘러 그를 찾아 자초지총을 설명하는데...

 

메리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 없었음.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무증상 보균자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시대였음. 

 

소퍼의 입장이야 절박했겠지만, 메리가 보기에 소퍼는 난데없이 쌉소리나 해대는 인간일 뿐이었음.

 

나는 평생 아픈 곳도 없이 건강했는데 내가 사실 장티푸스에 걸려 있다니;;;;

 

메리는 소퍼를 쫓아냈고, 이후로도 소퍼가 설득을 시도했지만 완강하게 장티푸스 검사를 거부함.

 

결국 소퍼는 보건국에 도움을 청했고..

메리는 경찰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어 병원에 감금됨.

 

그리고 검사를 실시한 결과 아니나다를까 장티푸스 보균자인 것으로 드러나게 됨.

 

소퍼는 메리에게 담낭절제술을 받을 것을 권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은 장티푸스에 걸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소퍼의 권유를 거절함.

 

그도 그럴것이 담낭을 제거한다고 장티푸스 균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보장도 없었던 데다, 1900년대 초반에는 마취제도 항생제도 그리 믿을 만큼 발전된 상태가 아니었음.

 

운이 나쁘다면 생살을 찢기며 수술 당한 후 수술 부위가 덧나 죽을 가능성도 있었으니 죽을 때까지 자신은 보균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메리가 수술을 받을 리가 없었음.

 

제의를 거절한 메리는 결국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그렇게 몇 년을 보내게 됨.

 

그러던 어느 날, 메리는 우연히 신문에 실린 자신의 기사를 보게 되었음.

 

바로 자신을 '장티푸스 메리'라고 조롱하는 기사를.

 

메리는 이에 격노했고 신문사에 항의 편지를 보내 결국 신문사의 도움으로 자신을 강제로 구금한 것과 인권 침해 등에 대하여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음.

 

이 재판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많은 사람들이 메리를 동정했음.

 

메리가 납치나 다름 없이 구금된 것도 사실인 데다, 메리는 이전에 범죄를 저지른 경력도, 부도덕한 행위로 기소된 적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메리 이후 다섯 명의 남성들이 무증상 장티푸스 보균자로 발견 되었는데, 그 중 누구도 병원에 강제 감금되거나 인간 장티푸스라고 언론에서 조롱당한 사람은 없었음.

 

결론적으로 재판은 메리의 패소로 끝났지만, 이듬해인 1910년, 보건국은 요리사로 일하지 않을 것, 정기적으로 거취를 보고할 것이라는 조건을 달아 메리의 구금을 해제시켜 줌.

 

병원에서 탈출한 메리는 세탁부 일을 하면서 살게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문제가 드러남.

 

세탁부 일은 메리에게 맞는 일이 아니었음.

 

월급은 이전 요리사로 일할 때보다 반은 적은데, 노동 강도는 몇 배는 심했던 것임.

 

생계가 어려워진 메리는 마침내 자취를 감추었고 몇 년 후 이름을 바꾼 채 요리사로 일하다가 발각이 됨.

 

물론 장티푸스 환자들도 함께.

 

메리는 더 이상 대중들의 동정을 받을 수 없었고 결국 다시 병원에 구금당해 23년 후, 죽어 나올 때까지 다시는 병원 밖을 나서지 못했음.

 

현재까지도 메리는 그토록 싫어하던 별명인 '장티푸스 메리'라는 이름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위험한 여자", "전염병녀"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성인 다른 장티푸스 보균자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았다는 점, 그가 차별받는 계급인 아일랜드계 이주민인 빈민이었다는 점 때문에 과한 혐오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음.

 

어느 쪽이 더 타당한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갈리겠지만, 병원에서 직업교육을 좀 더 잘 시켜줬더라면 메리가 감염시킨 장티푸스로 인한 사망자는 좀 줄어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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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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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대호 | 작성시간 25.12.15 중복!
  • 답댓글 작성자이대호 | 작성시간 25.12.15 https://m.cafe.daum.net/subdued20club/ReHf/5524350?svc=cafeapp
    여시가 쓴 글 또 올렸나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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