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8313435653
건축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기계화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아르데코 건축이 등장했듯이, 건축은 트렌드와 유행을 따른다. 또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프레리 양식을 도입하고, 빅토리아 시대의 장식 많고 복잡한 양식을 벗어나 절제되고 자연 친화적인 형태로 유행을 바꿔놓았듯이, 건축은 유행을 바꿔놓기도 한다. 건축은 정치적 선언이 되기도 하고, 광고 수단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논란과 도발을 일으키려는 목적도 있다. 최고의 경우, 건축은 장난기와 대담함을 담아 설계를 통해 역사에 독특한 흔적을 남긴다. 20세기 초의 모방적 형태에서부터 고급 건축 양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브루탈리즘 건물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건축가들은 비판과 조롱을 감수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이 글에 소개된 건물들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저마다의 개성과 독창성으로 주목받고자 했다.
해골 예배당, 포르투갈 에보라 (1500년대)
벽과 기둥에 뼈 그림이 있는 내부의 파노라마 사진
포르투갈 에보라의 가장 오래된 지구, 한때 성벽이었던 고리형 도로 안쪽에는 매우 기이한 방식으로 장식된 예배당이 있다. 충격적인 이 예배당은 사람의 뼈로 뒤덮여 있다. 두개골, 대퇴골, 그 외의 뼈들이 벽면에 예술적으로 배열되어 정교한 무늬를 이루고 있다. 이는 모두 1500년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이 에보라 예배당과 공동묘지를 관리하며, 만든 것이다. 당시 에보라는 심각한 부동산 문제를 겪고 있었고, 시 외곽의 공간이 묘지로 인해 소진되고 있었다. 그러나 수도사들은 시신을 다시 묻는 대신, 뼈를 벽면에 드러내어 시멘트로 고정시켰다. 내부에는 미라화된 시신 두 구도 전시되어 있으며, 한 구는 성인이고 다른 하나는 아동이다. 예배당 내부를 장식한 시신은 약 5,000구로 추정된다. 수도사들은 방문객들이 이 뼈들을 보며, 자신들의 죽음을 성찰하기를 바랐다. 예배당 입구 위에는 이렇게 섬뜩한 문구가 적혀 있다. “여기 있는 우리 뼈는 그대들의 뼈를 기다리고 있노라.”
더 파인애플, 스코틀랜드 던모어 (1777)
독특한 파인애플 탑이 있는 던모어 파인애플
존 머리, 제4대 던모어 백작은 1770년대 초 미국 버지니아의 총독으로 재직했다. 그는 1775년 11월에 ‘던모어 선언’을 발표했는데, 이 선언은 계약 하의 노동자들, 아프리카 출신 노예 및 그 후손, 그리고 기타 억압받던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며, 그 대가로 이들이 영국군을 위해 미국 독립군과 싸울 것을 요구했다. 역사학자들은 약 800명에서 2,000명의 노예들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추정하며, 이는 이미 고조되던 식민지 내의 반영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이 조치만으로는 충분한 병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그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버지니아에서 배운 전통 중 하나를 고국에 가지고 왔다. 항해를 마친 선원들이 귀환했음을 알리기 위해 집 대문 기둥 위에 파인애플을 올려두던 풍습이다. 던모어 경은 이를 본떠 자기 저택 위에 거대한 파인애플 모양의 탑을 세워 귀국을 알리고자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작은 마을, 베르사유의 하모 드 라 렌 (1783)
하모 드 라 렌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화로운 휴양지이자 농장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르사유 궁전 생활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원했다. 그녀는 건축가 리샤르 미크에게 조용히 혼자 혹은 친구들과 함께 머물 수 있는 작은 가짜 마을을 설계하도록 의뢰했다. 결과물로 탄생한 이 마을은 작은 호수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대와 양식의 프랑스 시골 건축을 반영한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과 달리, 이 작은 마을은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었다. 이곳은 그녀가 휴식을 취하고 손님을 접대하며, 궁전의 분위기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운영되는 농장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유제품 생산 시설, 어부의 오두막, 식량 작물이 자라는 정원, 헛간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이 작은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나폴레옹의 복원 시도는 일부 낡은 건물을 철거하는 결과를 낳았으나, 1930년대와 2006년의 복원을 통해 마을 건물의 상당수가 되살아났다.
세들레츠 납골당/해골 교회 (1870)
체코 공화국의 세들레츠 납골당. 붐비는 묘지에서 나온 유골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현재 체코 공화국에 위치한 세들레츠 수도원의 묘지는 오랜 세월 동안 가장 선호되는 매장지 중 하나였다. 이는 13세기 세들레츠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성스러운 흙을 이 땅에 뿌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870년대에는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시신들은 지하 납골당으로 옮겨졌다. 1870년, 지역 목수 프란티셰크 린트는 이곳에 있던 약 40,000구의 인골을 관리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는 뼈를 예술적 재료로 삼아 예배당을 만들었다. 그는 촛대, 성배, 천장에 장식처럼 드리운 뼈 장식, 성물함, 샹들리에, 심지어 귀족 가문의 문장까지 인골로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시신들은 여전히 성스러운 땅 위에 남아 있을 수 있었고, 공간을 차지하지 않도록 하였다. 인간 유해를 장식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섬뜩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곳은 평화로운 성찰의 장소이다.
팔레 이데알, 프랑스 (1879)
Idéal du Facteur라고도 알려진 이데알 궁전은 바위에 걸려 넘어지는 프랑스 슈발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데알 궁전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1879년 프랑스의 우편배달부 페르디낭 슈발은 일상적인 배달 중 한 돌멩이에 걸려 넘어졌다. 그는 돌을 주워 들었고, 그냥 던져버리는 대신 그 형상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돌의 기묘한 형태에 매료된 그는, 그와 같은 뒤틀림과 곡선이 가득한 궁전을 만들어야겠다는 영감을 받았다. 건축 교육을 전혀 받은 적이 없던 그는 독학으로 자신의 상상 속 궁전을 실제 건물로 만드는 법을 익혔다. 그는 건축 자재를 수집하는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면서, 이웃들로부터 조롱도 받았다. 그러고 건축이 완성되자, 비평가들은 침묵했고, 많은 관광객들이 그의 궁전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슈발은 이렇게 썼다. “당신은 어느 순간 상상이 미치지 못할 경계 너머로 빨려 들어간 환상적인 꿈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루시 더 엘리펀트, 미국 뉴저지 애틀랜틱시티 (1881)
미국 뉴저지주 마게이트, 애틀랜틱 시티의 해변을 지켜보는 코끼리 루시
코끼리 루시는 공학자이자 발명가인 제임스 V. 래퍼티 주니어의 발상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그는 애틀랜틱시티 남부 지역에 관광객과 부동산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 구조물을 만들었다. 루시는 높이 약 19.7m, 길이 약 18.3m의 거대한 코끼리 형상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방문객들은 루시의 등에 위치한 전망대로 가기 위해 130개의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1902년, 한 영국인 의사가 루시를 여름 별장으로 임대하면서 투어는 중단되었고, 그는 루시 내부를 네 개의 침실, 식당, 주방, 응접실, 그리고 옷장을 개조한 욕실로 구분하여 거주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후 루시는 관광 명소, 하숙집, 선술집, 밀주점, 아파트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루시는 화재, 허리케인, 폭풍 피해, 1969년 철거 위협 등을 모두 견뎌냈으며, 끝내 루시는 마게이트 시(이전 명칭: 사우스 애틀랜틱시티)에 기증되어 해변을 내려다보는 새로운 부지로 옮겨졌다.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1884)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 빅토리아풍 외관 속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
윈체스터 연발 소총 사업 유산의 상속녀였던 사라 록우드 파디 윈체스터는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로 이주하기 전 이미 비극을 겪었다.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8개의 방이 있는 소박한 농가를 구입했다. 그녀는 주변 사회와 단절한 채, 평생 멈추지 않을 집 확장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그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160개의 방과 24,000제곱피트에 이르는 이 거대한 건물 안에는, 벽으로 이어지는 문, 천장에서 끝나는 계단, 비밀 통로 등 기묘한 구조물들이 들어섰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족들이 제작한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믿었고, 어느 영매가 그녀에게 집 짓는 것을 멈추면, 그 유령들이 그녀를 찾아올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1923년 사라가 사망한 후, 이 기묘한 집은 투어로 공개되었고, 지난 101년간 1,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옥수수 궁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미첼 (1892)
옥수수 벽화를 뽐내는 사우스다코타주 미첼의 콘 팰리스(Corn Palace). 매년 새롭게 단장한다.
매년 약 50만 명의 관광객이 사우스다코타의 주간 고속도로 90번을 따라 여행하다가 미첼에 들른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세계에 단 하나뿐인 건물, 미첼 콘 궁전이다. 콘 궁전은 농업의 번영을 기념하기 위해 1892년, 가을 축제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처음 건설되었다. 커뮤니티는 두 번의 확장을 거친 끝에 1921년에 세 번째 콘 궁전을 완공하였고, 이는 현재 미첼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궁전의 양파형 지붕 위에 있는 진짜 볼거리는 바로 외벽을 뒤덮은 옥수수 벽화다. 이 벽화는 노랑, 주황, 파랑, 빨강, 갈색, 흰색, 검정 등 다양한 색의 옥수수를 이용해 제작되며, 해마다 다코타 웨슬리언 대학교의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교체한다.
카사 밀라 (라 페드레라), 스페인 바르셀로나 (1906)
스페인 바르셀로나 라 페드레라의 곡선과 매끄러운 선들
페레 밀라는 고급 거리인 파세이그 데 그라시아에 자신의 집 위 아파트를 지을 건축가를 찾던 중 안토니 가우디를 만났고, 그는 전통 건축의 틀을 깨줄 인물이라는 걸 알았다. 가우디는 당대에 인기 있던 신고전주의적 보자르 양식에서 탈피하여, 곡선과 물결을 활용한 카사 밀라, 즉 ‘라 페드레라(채석장)’를 설계했다. 기존의 건축 규칙을 무시한 이 건물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비행선 격납고에 비유되기도 했다. 가우디는 시 건축 규정을 무시하고 건물의 체적, 도로를 침범한 기둥, 최고 높이 제한 등으로 시의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것은 가우디의 마지막 주거 건축물이었고,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여전히 주거 및 사무용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마녀의 집, 미국 캘리포니아주 비벌리 힐스 (1921)
스파데나 마녀의 집, 비벌리 힐스, 스토리북 스타일의 기발한 해석
비벌리 힐스의 넓은 거리들 사이에 숨어 있는 스파데나 하우스는 ‘마녀의 집’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21년 컬버 시티의 윌랫 스튜디오에서 사무실과 분장실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다. 1934년 윌랫 스튜디오가 문을 닫은 뒤, 스파데나 가족이 이 건물로 이사하여 주택으로 개조했다. 1920~30년대 유행한 스토리북 스타일을 유지하며, 과장된 지붕선, 비대칭 창문, 급경사의 박공지붕, 중세풍의 장식을 간직하고 있다. 이 집은 1990년대에 매물로 나왔으며, 한 구매 희망자가 철거를 계획하자, 부동산 중개인 마이클 리보우가 직접 구매하여 이 독특한 건물을 보존했다.
에니스 하우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1924)
에니스 하우스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설계한 독특한 마야 부흥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프레리 양식 건축의 선구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고대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형식을 1920년대에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 전통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유명하지만, 마야 문명 양식 또한 작품에 반영했다. 에니스 하우스는 마야 리바이벌 양식이 적용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로, 당시 주택 건축에서는 이례적인 콘크리트를 사용해 마야 문양을 현대적으로 구현했다. 이 집은 1924년 찰스와 메이블 에니스 부부를 위해 로스 펠리즈 지역에 지어졌으며, 2019년 $18m에 거래될 정도로 지역 내에서 가장 비싼 개인 부동산 중 하나다. 그러한 높은 가격은 그리피스 공원이 보이는 위치, 라이트의 작품이라는 점, 영화 및 TV 촬영지로의 인기로 인해 형성되었다.
카바이드 & 카본 빌딩,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1929)
금주법 저항?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카바이드 앤 카본 빌딩
건전지 제조사인 카바이드 앤 카본 컴퍼니는 본사 건물 부지를 시카고에서 찾았고, 유명 건축가 대니얼 번햄의 아들들인 휴버트 번햄과 다니엘 번햄 주니어에게 설계를 맡겼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빌딩은 금주법에 대한 반발로 디자인되었다고도 한다. 40층 높이의 초록색 테라코타 외벽에 황금색 장식과 청동 아르데코 요소들이 지붕에 얹혀 있으며, 꼭대기의 좁은 황금 타워는 전체적으로 샴페인 병과 같은 형태를 띤다. 이 때문에, 번햄 형제가 금주법에 대한 항의를 건축물로 표현했다는 이야기가 생겼으며, 이들은 이를 부인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빅 덕,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서퍽 카운티 (1931)
롱아일랜드의 큰 오리
오리 농장주 마틴과 줄 마우러 부부는 롱아일랜드 리버헤드의 웨스트 메인 스트리트를 지나는 운전자들로부터 눈길을 끌기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본 커피포트 모양의 건물을 본 뒤, 오리 모양의 건물이 주목을 끌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빅 덕은 그 시대의 미메틱 건축 운동을 대표하는 예로, 이는 비건축적 사물(커피포트, 동물, 비행기 등)을 건축물로 형상화하는 방식이다. 이 건축양식은 고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흔히 사용되었다. 이후 플랜더스로 이전되고 몇 차례 소유주가 바뀐 끝에, 1987년 서퍽 카운티에 기증되었고, 지금은 오리 관련 기념품 가게이자 관광 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하우스 온 더 락, 미국 위스콘신주 스프링 그린 (1945)
하우스 온 더 락의 인피니티 룸은 아래 계곡 위로 뻗은 218피트(66.4m) 높이의 캔틸레버 건물입니다.
예술가 알렉스 조던은 위스콘신 스프링 그린의 디어 셸터 락 위에 주말 별장을 지었다. 그가 만든 13개의 방은 천장이 낮고, 외부 풍경보다 내부 공간에 초점을 맞춘 기묘한 구조였으며, 그의 개인 수집품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탈리에신 근처에 있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었고, 조던은 방문객들에게 ¢50의 입장료를 받았다.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그 수입만으로도 조던은 별도의 생계 수단이 필요 없게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컬렉션을 확장하고 건물을 넓혀 나갔고, 오늘날 하우스 온 더 락은 수많은 기이한 방들과 거대한 회전목마(말이 아닌 다른 좌석으로 구성됨), 기묘한 길가, 자동 연주 악기 등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헤인즈 슈 하우스 (1948)
헤인즈 슈 하우스는 단기 임대용 부동산으로 이용 가능합니다.
신발 판매원 말론 헤인즈는 자신의 신발 가게의 매출을 높이기 위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던 미메틱 건축 형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작업용 부츠 모양의 2베드룸 주택을 지었다. 이 집은 5층 높이로, 거실은 발끝 부분에, 부엌은 뒤꿈치에 위치한다. 두 개의 침실은 발목 부분에 있으며, 발등 부분에는 오락실이 있다. 집 밖에는 신발 모양의 개집도 있다. 그는 1962년 사망할 때까지 이 신발 모양의 집을 임대 주택으로 운영했다. 이후 20년 동안 관광 명소이자 아이스크림 가게로 사용되었으나, 건물이 점차 퇴락하기 시작했다. 1987년, 헤인즈의 손녀가 이 부동산을 구입하여 가능한 한 오랫동안 유지하며, 소유했다. 2024년 현재, 이 집은 다시 임대 주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독특한 생활 공간을 소개하는 여러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다.
마리나 시티,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1967)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마리나 시티. 독특한 스타일 때문에 '옥수수 수염 빌딩'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도심을 떠나 교외로 이주하는 ‘화이트 플라이트’ 현상이 몇 년간 지속된 후, 시카고 도심은 사람들이 다시 도심 주택 시장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건축가 버트런드 골드버그와 협력했다. 골드버그는 ‘도시 속의 도시’라는 개념으로 두 개의 주거 타워를 설계했다. 이는 당시 널리 퍼진 교외형 개발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혼합 용도 주택으로의 회귀를 의미했다. 그는 두 개의 타워를 설계했으며, 각 타워의 하부 19층은 주차 공간으로 구성되어 입주민들이 차량의 편리함도 누릴 수 있게 했다. 건물은 사무실과 상업 공간, 체육관, 수영장, 각 타워 꼭대기의 야외 데크, 극장, 심지어 보트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까지 포함했다. 도심 자체가 뒷마당이 되는 셈이었다. 입주민들은 걸어서 직장에 갈 수 있었다. 마리나 시티의 독특한 원형 디자인과 곡선형 발코니, 개방된 구조는 이 건물에 ‘옥수수 수염 빌딩’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보스턴 시청사 (1968)
브루탈리즘 양식을 사용하면서, 논쟁을 불러 일으킨 보스턴 시청
1960년대 초, 보스턴 시는 정부 센터 단지를 재설계하기 위해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했다. 256개의 응모작 중, 칼만, 매킨넬 & 놀스가 제출한 디자인이 수상했다. 이들은 당시 흔하던 박스형 유리 커튼월 스타일에서 탈피해 거대한 브루탈리즘 양식을 제안했다. 브루탈리즘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양식으로, 보통 사람들의 반응도 ‘좋아하거나’, ‘극혐하거나’ 둘 중 하나다. ‘싫어한다’ 쪽에는 당시 보스턴 시장 존 콜린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디자인이 공개되었을 때, 그는 충격에 숨을 들이켰고, 그의 측근 중 한 명은 “도대체 저건 뭐야?”라고 외쳤다. 옹호자들도 있지만, 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건물을 어둡고 비우호적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보스턴 시민들도 대체로 비판적이며, 이 건물을 불쾌하고 디스토피아적이라고 여긴다.
카사 두 페네두('돌의 집'), 포르투갈 (1972)
네 개의 바위 사이에 지어진 석조 주택
포르투갈 북부의 구릉지대, 파페 산에는 네 개의 바위가 자연과 하나 되어 강풍과 비바람을 견디고 있다. 그러나, 이 바위들 사이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1973년, 로드리게스 가족이 파페 산을 여행하던 중, 이곳이 이상적인 산 속 휴양지라 판단하고 집을 짓기로 했다. 가족의 가장은 기마랑이스 출신의 엔지니어였으며, 각기 다른 소유주가 있던 바위들을 모두 구매했다. 이 돌집은 휴가용 별장으로 사용되었고, 2014년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건물들’이라는 웹사이트에 소개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후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고, 관광객들이 이 집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로드리게스 가족은 이 집을 투어 장소로 개방했지만, 여전히 휴가철에는 자신들의 별장으로 되돌아와 이곳을 즐긴다.
본두란트 약국 (1974)
본두란트 약국, 켄터키주 렉싱턴
1974년, 약사 조 본두란트는 켄터키주 렉싱턴 시민들에게 약을 제공하는 기능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인상적인 건물을 만들고자 건축가 다니엘 M. 브루어와 협업했다. 이들은 미메틱 형식, 즉 건물이 비건축물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양식을 채택했다. 앞서 언급한 오리 건물이나 슈 하우스처럼, 미메틱 건축은 건물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를 직관적으로 알릴 수 있게 해주며, 동시에 지역 명소로도 기능한다. 본두란트 약국은 절구와 막자사발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으며, 이는 약사가 약을 직접 조제하던 시절을 상징한다. 현재 이 건물에는 주류 판매점이 입주해 있는데, 새 주인은 이 미메틱 전통을 이어가며, 건물을 거대한 칵테일처럼 보이도록 새롭게 도색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마라스키노 체리 장식까지 덧붙였다.
보트루바 교회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 교회), 오스트리아 빈 마우어 지구 (1974)
보트루바 교회(Wotrubakirche), 또는 삼위일체 교회
브루탈리즘 건축 운동은 1960~70년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이 스타일은 오스트리아 빈의 마우어 지구에 있는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 교회’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조각가 프리츠 보트루바와 건축가 프리츠 게르하르트 마이어가 공동 설계한 이 건물은 마치 아이들이 쌓은 장난감 블록 무더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도 호기심을 자아내는 형태 뒤에는 디자인과 공학의 걸작이 숨겨져 있다. 외벽은 152개의 콘크리트 모듈형 큐브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의 창문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에 있어 불규칙한 형태와 함께 무겁고 추상적으로 깊이 있는 인상을 준다. 내부 또한 사각형과 직사각형이 서로 공간을 차지하려 다투는 듯한 모습으로 외부의 블록 테마를 이어간다. 보스턴 시청사처럼, 이 브루탈리즘 건물도 처음에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명 추상 조각가의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플린스톤 하우스, 캘리포니아 말리부 (1976)
플린스톤 하우스
건축가 윌리엄 니콜슨의 3층 주택은 만화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에 나올 법한 집을 연상시킨다. 겉보기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듯한 형태지만, 실제 구조는 훨씬 더 복잡하다. 100년 넘게 미국 주택은 ‘벌룬 프레임’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1층부터 지붕까지 연결된 목재로 벽체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플린스톤 하우스는 이 ‘벌룬 프레임’ 개념을 문자 그대로 적용해, 거대한 풍선을 이용한 일체형 돔 구조로 지어졌다. 강철 철근으로 보강한 철망을 팽창된 풍선 위에 설치하고, 그 위에 ‘건나이트’라 불리는 콘크리트를 분사하여 구조를 만들었다. 콘크리트가 굳은 후 풍선을 제거하면, 둥글고 견고한 벽을 가진 독특한 구조가 완성된다. 주변 이웃들은 이 디자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빗물로 인한 균열 문제도 있지만, 여전히 단독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로봇 빌딩, 태국 방콕 (1986)
로봇 빌딩, 방콕
방콕의 20층짜리 로봇 빌딩은 원래 아시아은행 본사로 지어졌다. 이 미메틱 형태는 노골적인 광고보다는 세계인의 시선을 끌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건축물은 은행이 기술 혁신에 헌신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며, 1980년대 아시아의 경제 번영과 포스트모던 디자인 혁신을 상징했다. 그러나 현재 이 상징적인 건물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로봇 빌딩은 리모델링 중이지만,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거의 밝혀진 바 없다. 건물의 소유주인 UOB 태국은 기존 디자인을 존중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현대화할 것이라 밝혔지만, 건축가 수멧 줌사이는 이에 대해 실망을 표했다. 그는 현재 소유주에게 “너무 늦기 전에 다시 생각해달라,”라며, 호소를 보내고 있다.
'크레이지 하우스', 베트남 달랏 (1990)
베트남 달랏
예술가 당 비엣 나는 독창적이고 자기표현적인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다. 1990년, 건축학 박사이자 예술가인 그녀는 베트남 달랏에서 전례 없는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이 건물은 절대 완성되지 않을 것이며, 그녀의 상상력에 따라 영원히 진화할 것이라는 개념으로 출발했다. 전통적인 설계도 대신, 그녀는 일련의 그림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했다. 이 건물은 동굴, 바다, 숲 등 자연의 신비로움을 표현하고 있으며, 기능적인 예술 작품이자 호텔로 사용된다. 모든 구조물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곡선과 비정형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직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 비엣 나는 CNN 트래블과의 인터뷰에서 “이 형태는 마음을 자유롭게 해야 이해할 수 있다. 기본적인 구조 원칙만 따를 뿐, 나머지는 전부 자기표현”이라고 말했다.
댄싱 하우스, 체코 프라하 (1996)
댄싱 하우스, 프라하, 체코
프라하의 고전적인 건축 양식 속에 파도치는 듯한 비대칭 구조의 이 건물이 눈길을 끈다. 크로아티아-체코 건축가 블라도 밀루니치가 유명 건축가 프랭크 게리와 함께 설계했다. 이 부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주택 터였고, 체코의 지식인으로 후에 대통령이 된 바츨라프 하벨의 이웃 부지였다. 하벨은 이 부지의 개발을 밀루니치에게 의뢰했고, 이후 네덜란드 보험사 네셔널 네덜란덴이 자금을 지원하며, 프랭크 게리와의 협업이 이루어졌다. 두 건축가는 고정된 느낌의 건물과 유동적으로 꼬이는 형태의 건물을 결합해 체코의 공산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상징했다. 주변 건물들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해체주의 건축으로 주목과 찬사를 받고 있다.
롱거버거 바구니 빌딩, 오하이오 뉴어크 (1997)
롱거버거 바스켓 회사 본사
1978년, 메리 케이, 에이본과 같은 다단계 판매회사 회사들의 성공에 자극받아, 롱거버거 바구니 회사는 다단계 마케팅 판매 모델을 통해 제국을 건설했다. 1990년대 중반, 이 회사는 8,200명의 직원과 70,000명의 판매원이 있었으며, 창립자 데이비드 론가베르거는 회사 본사를 자사의 주력 상품인 손잡이 달린 바구니 모양으로 지었다. 이 미메틱 형태의 건물은 1997년에 문을 열었고, 오하이오 뉴어크 지역에서 독보적인 랜드마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아이코닉한 건물은 오래가지 못했다. 매출 하락과 직원 수 감소로 인해, 회사는 2016년에 이 건물을 떠났고, 2018년에는 회사가 파산했다. 하지만 이 바구니 모양 건물은 여전히 뉴어크의 과거 수십억 달러 규모 산업을 상징하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쿤스트하우스, 오스트리아 그라츠 (2003)
그라츠 쿤스트하우스 폼 슐로스베르크(Graz Kunsthaus Vom Schlossberg)
그라츠 중심부, 전통적인 슈타이어 지방 건축 양식이 지배하는 거리 한복판에 현대미술관이 이질적으로 등장한다. ‘친절한 외계인’이라 불리는 그라츠의 쿤스트하우스는 파란색 아크릴 패널로 덮여 있으며, 괴물의 내장을 꺼내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블롭 건축’의 대표작이다. 블롭 건축은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이라는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불규칙한 곡선과 둥근 형태로 구성된 포스트모던 디자인 양식이다. 이러한 디자인은 컴퓨터 지원 설계(CAD) 기술의 발전 덕분에 가능해졌으며, 쿤스트하우스처럼 독특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형태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쿤스트하우스는 특정한 ‘몸체’를 가지지 않은 생명체와 같은 존재이다. 이 충격적인 디자인은 주목을 받기 위한 것이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확실히 달성했다.
킨더가르텐 볼파트츠바이어, 독일 카를스루에 (2011)
카를스루에 볼파트츠바이어의 고양이 유치원
토미 웅거러와 아일라 수잔 욘델이 설계한 킨더가르텐 볼파트츠바이어는 2011년 개교 이후로 아이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내부는 전형적인 유치원처럼 보이며, 100명의 아이들을 위한 코트걸이가 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다. 그 위에는 형형색색의 아이들 그림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넓고 둥근 창문 아래에는 중앙 계단이 뻗어 있다. 하지만 이 건물의 진짜 매력은 외관에 있다. 커다란 회색 고양이가 장난칠 듯 몸을 낮춘 모습이다. 아이들은 고양이의 ‘입’으로 들어가는데, 이 입은 수염이 달린 돌출된 코 아래에 숨겨진 정문이다. 내부에서 보이는 커다란 둥근 창문은 고양이의 눈이고, 건물의 뒷부분에는 고양이 꼬리 모양의 미끄럼틀이 있어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가 된다.
루카스필름 건물, 싱가포르 (2014)
싱가포르의 루카스필름 샌드크롤러 빌딩
2000년대 초, 싱가포르의 스타워즈 팬들은 어딘가 익숙한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특정 각도에서 보면, 그 건물은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에 등장하는 ‘샌드크롤러’ 차량과 흡사하다. 그러나, 영화 속 거친 느낌과는 달리, 이 9층짜리 건물은 중앙에 햇살 가득한 넓은 안뜰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푸른 식물과 물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앤드류 브롬버그가 설계한 이 건물은 원래 루카스필름의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 부서가 사용했으나, 2021년 블랙스톤 부동산에 매각되었고, 디즈니는 비용 절감을 위해 2023년 싱가포르 스튜디오를 폐쇄했다. 현재는 루카스필름과의 공식적 연관은 끊겼지만, 이 건물은 여전히 스타워즈 세계관이 현실에 구현된 상징물로 남아 있다.
번드 파이낸스 센터, 중국 상하이 (2017)
번드 금융센터, 상하이
2017년, 상하이는 ‘번드’라 불리는 유명 거리의 종착점을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삼고자, 영국의 건축설계회사 포스터 + 파트너스와 협력하여 복합용도 건물을 개발했다. 이는 단순한 재개발 프로젝트를 넘어, ‘끊임없이 움직이는 건축물’이라는 혁신적 목표를 실현하는 단계였다. 움직이는 듯한 건축은 곡선을 통해 시각적 흥미를 유도한다. 번드 파이낸스 센터는 시간에 따라 외관이 실제로 변화하는 건물이다. 중국 전통 직조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675개의 마그네슘 합금 튜브가 건물 외곽의 트랙 위에 매달려 있다. 이 튜브들은 하루 중 시각에 따라 서로 엮였다가 풀어지며, 건물의 외형을 끊임없이 바꾼다. 각 ‘장식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작동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축의 기이함은 하나의 선언이다.
인도 하이데라바드 국립수산개발위원회
세들레츠 납골당처럼 성찰적 의미를 담았든, 마리 앙투아네트의 작은 마을처럼 의도치 않게 괴이했든, 모방형 건축처럼 광고를 위해 만들어졌든, 브루탈리즘이나 이상궁전처럼 충격을 위해 지어졌든, 건축은 사람이 네 벽에 지붕을 얹은 이래로 언제나 메시지를 담아왔다. 이러한 기이한 건축물들은 단순히 소유주의 취향을 넘어서, 그것이 속한 사회의 문화를 반영한다. 오늘날 인간의 유골을 장식처럼 사용하는 납골당은 야만적이고 괴기스럽다고 여겨져 건설이 불가능할 것이다. 모방형 건축물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도로변 호기심을 넘어서 기업이 시선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로봇 빌딩처럼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거대한 기념비를 세우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건축의 기이함은 단지 흥미로운 볼거리가 아니라, 개인과 그 문화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살아 있는 역사이다.
https://historycollection.com/historic-architectural-oddities-from-around-the-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