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마사오 (千昌夫)
(본명 - 아베 겐타로)
1947년 생 / 이와테현 출신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센 마사오는
중학교를 중퇴한 후 도쿄로 상경해
유명 작곡가인 엔도 미노루를 찾아가서
자신을 문하생으로 받아줄 것을 요청했고
초면이었지만 그 열정에 감탄한
엔도 미노루는 그를 받아주었다
음악적 재능이 있던 센 마사오는
가수로 데뷔해 1965년 데뷔곡 '네가 좋아'를 발표했고
1966년 별빛의 왈츠를 불러 대히트 시키며
국민 가수의 반열에 올랐고
이후 1977년 북국의 봄을 성공시키며
일본 엔카 분야의 아이콘 중 하나가 된다.
- 오른쪽 센 마사오 -
센 마사오는 데뷔 이후 꽤 이른 나이에
가수로 정점을 찍고 성공했는데
그는 음악과 별개로 부동산 투자에도 관심이 많았다
가수로 성공하고 자본이 생긴 그는
70년대 부동산에 뛰어들었는데
센다이 지역의 5만 평 규모 산림을 매입한 후
도호쿠 신칸센 건설이 확정되면서 지가가 10배 이상 폭등했으며
이 토지를 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건물을 사고
같은 방식으로 건물과 토지를 불려갔다.
198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 시대가 되어
부동산 시세가 폭등하면서 센 마사오의
사업은 엄청난 버프를 받았다
일본 내 토지, 건물 뿐 아니라
해외 쪽 부동산에도 진출했는데
하와이의 호텔도 소유했으며
미국, 호주 등에도 부동산 사업을 벌렸다.
센 마사오는 자신의 전용 헬기와,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니며
구석구석 부동산 매물을 찾아다니며 부를 과시했다.
부동산 사업이 본격적으로 굴러가면서
센 마사오는 가수 일도 그만두고 집중했다
언론과 국민들은 그의 예명인
센 마사오의 센(千) 을 따서
억 마사오라는 별명을 붙여 불렀으며
거품경제의 흐름을 타고 성장한 그의 자산은
3조 원이 넘는 수준으로 평가됐고
국민들은 그를 노래하는 부동산왕 이라고 풍자했으며
가수로서 성공한 그는
부동산 사업가로서도 절정에 달했다.
센 마사오의 3조원 대 부동산 자산은
사실 막대한 자산이면서 채무나 다름 없다
그러나 1991년을 넘어
영원할 것 같던 일본의 거품경제는 붕괴됐고
엄청난 후폭풍을 맞게 된다
부동산 가치가 급락하고 센 마사오의
부동산 자산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사업 과정에서 생긴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센 마사오의 회사는 2000년 파산하게 된다
이후 센 마사오는 개인 부채
1034억 엔을 안게 되어
3조 원 대 자산가에서 1조 원대 빚쟁이가 된다.
센 마사오는 일본 개인 채무 액수 1등 기록을 세운 적이 있다
몰락한 그는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가수 일을 다시 시작했으며
천문학적인 액수의 빚은
민사재생법으로 기간 6년 / 1억 6000만 엔을 갚는 조건으로
채무가 조정 합의되었고
지방 공연이나, 작은 호텔의 디너쇼 등
현장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활동해
현재는 채무를 모두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센 마사오는 거품 경제 시절의 절정과 붕괴를
한 개인이 단적으로 보여준 인물 중 하나로 유명하며
과거의 영광만큼은 아니지만
현재도 가수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