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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단종 죽음 이후 야사에 기록된 썰.. 이모저모

작성자숮이|작성시간26.02.10|조회수32,777 목록 댓글 16

출처: 여성시대 숮이 

 

 

왕사남 때문에 시간 날때마다 실록하고
야사 읽어보던 중

(나처럼 과몰입인 여시들을 위해)
단종 이야기 몇 개 긁어옴 

 

 

 

1.  단종이 죽은 뒤로 영월 군수에
갑자기 죽는 사람들이 생겨남

 

노산이 돌아간 뒤로 영월 군수 중에 갑자기 죽는 사람이 많아서 세상에 흉한 땅이라고 전해졌다. 이때에 이르러 박충원(朴忠元)이 폐해진 뒤 기용되어 다른 데에서 쫓겨났다 하였다.영월 군수가 되었다. 곧 결정하게 제물을 갖추어 제사 지냈더니 마침내 무사하였다. 다른 데에는 그날 밤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하였다. 그 제문에서, “왕실의 맏이요, 어리신 임금으로 다른 데에는 인명(仁明)한 임금이요, 왕실의 맏이라 하였다. 마침 비색(否塞)한 운수를 당하시어 바깥 고을[邑] 혹은 군(郡) 로 손위(遜位) 하시었으니, 한 조각 청산(靑山)에 만고의 고혼(孤魂)이 누워있네, 바라건대 강림(降臨)하시어 향기로운 제수를 흠향하소서” 하였다. 지금까지 사시 제사 이 글을 쓴다고 한다. 

 

 

=> 단종 사망 이후 영월 군수에서 7명이나 죽어서
박충원이 제사 지냄. 제문에는 (추모하는 문서) '성품이 어질고 밝은 임금인데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외딴 고을로 쫓겨났으니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혼으로 누워계신다 바라는데 분노를 풀어주세요'
제사 이후엔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다는 이야기까지 있음 

 

 

 

2.  노산군의 묘 관리가 하나도 안 되니까
마을 사람들이 너무 슬퍼함

 

강원 감사 정철(鄭澈)이 장계하기를, “도내 영월군에 노산군의 묘가 있는데, 나무하고 소치는 아이들이 서로 모여들고 하여 길 가는 사람이 슬피 탄식합니다. 신은 엎드려 생각건대, 노산군이 예전에 한 나라에 임어(臨御)하여 임금의 도가 있으니, 낮추어 봉하여 군을 삼았다 하더라도,묘도(墓道)의 의물(儀物)은 신분에 따라 본래 합당한 제도가 있는데 천한 사람의 묘와 다름이 없으니, 슬픕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지를 내리시어 그 묘를 다시 쌓고 표석을 세움에 있어 한결같이 예장(禮葬)의 법식에 의거하면, 예법으로 헤아려 보더라도 잘못됨은 없을까 합니다. 옛부터 제왕은 패망한 나라의 임금에게 반드시 후하게 장사지냈으니,항우(項羽)같은 원수의 경우에도 고황(高皇)이 노왕(魯王)의 예로 장사하였고, 건문(建文)같이 혁명으로 쫓겨간 이도 성조(成祖)가 천자의 예로 장사하였으니, 두 제왕의 훌륭한 처사입니다. 

 

=> 단종 묘 근처에서 아이들이 서로 모여들고 관리가
안 되니 마을 사람들이 그걸 보고 너무 슬퍼함.
비록 단종은 노산군이 되어버렸지만,
선조 너가 단종 묘를 다시 쌓고 관리 좀 하자 

 
선조한테 상소한 인물 정철 =
속미인곡, 사미인곡 쓴 그 정철 맞음


3.  선조 때 시작된 묘 관리

신사년(1581) 여름에 정철의 장계를 말미암아 명령하기를, “묘를 봉하고 표석을 왕자묘의 예와 같이 세우고, 승지 이해수(李海壽)를 보내어 치제(致祭)하되, 가까운 고을의 공물(貢物)을 적당히 덜어내어 제수(祭需)로 충당하라.” 하였다.
그때, 정철의 장계로 말미암아 영역(瑩域)을 수축하고 표석을 세워 표시하고 3호(戶)를 시켜서 묘를 지키게 하였다.

 
=> 임시 ㄴㄴ 방치 ㄴㄴ 묘 세우고 지킬 사람 보내
유배갔다가 죽은 죄인이 아니라
왕자급 무덤으로 대우해줄게



4. 왕자묘? 솔직히 웃김

역사를 마치던 날에 역사를 감독한 수령 등과 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정철이 말하기를, “이번 이 역사에 대하여 사람들이 어떻다 하는가.” 하고 물으니, 모두 말하기를, “상공이 이 논의를 세우고 성상(聖上)께서 이를 따랐는지라,위 아래가 다 한결같이 천년 만에 한 번이나 오는 때라고 합니다.”고 하였다. 이천(伊川) 군수 유인지(柳訒之)가 홀로 말이 없으므로, 정철이 까닭을 물으니, 인지가 말하기를, “노산이 저승에서,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평천관(平天冠)을 쓰고 육신의 무리처럼 충의 있는 선비들이 좌우에 늘어서서 모시며 보좌(寶座)를 옹위하고 있을 터인데, 어째서 돌을 세우고 표시하여 억지로 노산묘라고 일컫는가?” 하니, 만좌(滿座)가 말이 없었다.

 
=> 왕한테 상소해서 왕실 사람으로 승격하고
무덤 관리하는 거?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일임
근데 어차피 노산은 저승에서도 왕일텐데
우리끼리 노산묘라고 격 떨어뜨려놓으면 뭐함?


5. 노산군 -> 노산대군

숙종 7년 신유년(1681) 7월에 경연관(經筵官) 이민서(李敏敍)의 제의로 명을 내려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추봉하고, 8월에 우부승지 송창(宋昌)을 보내어 치제하였다.

=> 사망한 지 224년 만에 노산군에서 노산대군으로
추봉된 단종





선조 이전에도
단종 묘 관련해서 토론 많이 했는데
다 흐지부지 됐다가 정철 상소로
관리 시작됐다고 나와있음

여시들에게 흥미돋이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끝내지...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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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딱지코딱지 | 작성시간 26.02.11 세조 새끼 진짜 ㅅㅂ 새조 이 쌍놈아!!! ㄹㅇ 파묘 해야 됨 ㅈㄴ 쓰렉기새끼
  • 작성자법보다빠른주먹 | 작성시간 26.02.11 수양 파묘해!!!!
  • 작성자예준이 효자 되세요 | 작성시간 26.02.11 부관참시 하자고
  • 작성자로또1등되게해주세요젭발 | 작성시간 26.02.11 세조새끼 손자까지도 줄줄히 죽었어야했는데
    자식에서 업보 멈춘게 아깝
  • 작성자념냠긋 | 작성시간 26.02.12 수양시팔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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