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길 캐릭터에 대한 한 관객의 리뷰.txt
왕의 남자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공길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공길은 영화 속에서 백지이고, 여백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쉽게 공길에게 감정이입을 해버린다.
그렇기에 남자들에게 이 영화는 불편하고, 여자들에게 이 영화는 아련하다.
그러나 가장 백치같은 이 공길이 실은 가장 복잡한 인물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영악한 인물이다.
공길은 녹수 다음으로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을 보면서 느끼는 장생의 감정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장생 앞에서는 평소보다 더 약하고, 여리고, 순해진다.
놀이판에서는 그토록 눈을 빛내며 재기발랄하던 사내가,
위기에 처하면 그 누구보다 순발력 있게 대처하던 사내가
장생과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물가에 내 놓은 아이가 되어버린다.
깨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이불을 덮지 않을 정도로 그는 장생의 감정을 장생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연산을 만나면서 자신이 계산에 넣지 못한 감정이, 욕망이 생긴다.
연산의 약한 모습을 보며 보호해주고 싶다는 욕망.
흔히들 모성애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이것을 공길이 가진 남성성이라고 보았다.
늘 남성적인 장생에게 보호받는 수동적인 여성의 역할에 있던 공길이 연산의 약한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장생처럼 누군가를 돌봐주고 싶다는 남성적인 욕망이 공길의 내부에서 깨어나게 된다.
새로운 욕망을 버릴 수도, 장생을 버리지도 못하는 그로 인해서 결국 장생은 눈을 잃게 되고
장생이 마지막 줄타기를 할 때 비로소 공길은 숨기고 숨겼던 자신의 마음을 토해낸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숨겨야만 장생을 옆에 둘 수 있었던 공길이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내지르는 마지막 순간이 내겐 무척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