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붕어빵무제한제공참말사건
과자
당연히 이 과자는 아님
단종이 복권되기 전까지 영월에서 제사를 몰래몰래 지내줬는데, 단순한 왕의 제사를 넘어 영월을 지켜주는 태백신령이자 서낭신으로 모시는 무속적 성격이 강해
어린 왕에 대한 연민 + 진혼제의 성격+ 신령 모시기
= 지켜주진 못했지만 뭐라도 해주고픈 영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꽉 끼는 상
숙종때 복위된 후, 예조에서 제례형식을 결정할때도
엄격한 제례규범인 국조오례의를 벗어나는 유도리를 보여줌
17세에 승하한 어린 왕이라는 점, 달콤하고 화려한 음식을 올리고 싶어했던 민간의 방식을 일부 수용하여
통상적인 왕릉보다 더 많은 정과, 강정, 다식 등을 품목에 넣었어
또한 민간에 제례비용 내려줄때도 이를 고려해서 달다구리 많이 사다 쌓을 수 있게 예산을 배분했다고 해
일반 왕릉은 권위있고 정갈한 차림을 중시한다면, 장릉제례는 때에 따라 9단(약 50cm)까지도 쌓아올린대
생전 못다한 부귀영화를 제례를 통해 채워드리는것
이라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르겠아 영월여시 알려줘
암튼 실제 문헌에도 뒷받침되는 기록들이 남아 있는데
춘관통고
장릉의 제례규정은 다른 능보다 민간의 풍속과 결합된 공양의 성격이 강하다
장릉지
장릉의 수호와 관리, 제례절차가 적힌 책
여기에도 일반 왕릉보다 조과(강정, 약과 등)와 채소류의 괴임(높이 쌓기)을 더 화려하게 하라는 묵시적 지침이 있음
단종헴 제삿상에 과자 하나씩 놔주고 가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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