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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뭐니 리스트 vs 쇼팽 디스배틀전
너가 피아노의 시인? / 아니 넌 그냥 병시인 /아니 병 걸린 시인이라구~
쇼팽은 선천적으로 병약하게 태어나 10대 때부터 결핵 초기 증상을 보이며 평생을 시달렸다.
쇼팽의 나이 17살에 막내 여동생이 결핵으로 사망했을 만큼, 10대 시절부터 결핵균에 깊이 노출되어 있었다.
그렇게 21살에 첫 객혈을 한 뒤로 끊임없이 결핵에 시달리다, 결국 39살의 이른 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천재가 된다.
또 녹턴? 자장가니? /불 꺼지는 건 같아 마치 League of Legends /
난 손 하나로 유럽 기절 Call it Lisztomania /근데 네 연주회는 뭐야?/ 장례식 매니아?
쇼팽은 야상곡이라 불리는 녹턴을 21곡이나 작곡했는데, 21곡 모두 엄청난 완성도를 선보이며
녹턴이라는 장르를 완벽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완성시킨 사람이다.
그래서 '쇼팽 = 녹턴'이라는 일종의 공식이 생겨났다.
*쇼팽은 실제로 자장가(Berceuse, Op.57)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스트는 이런 쇼팽의 음악을 듣고 잠이 온다며 롤 챔피언 녹턴의 궁극기에 비유하며 디스한다.
반면 리스트는 이런 쇼팽의 성향과 정반대로 아주 화려하고 미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광적인 팬덤 양산, 일명 '리스트마니아'를 끌고 다녔다.
이 아줌마들이 얼마나 광적이었냐면 연주를 듣다가 기절하는 건 기본이었고,
리스트가 마시다 남긴 찻잎을 유리병에 담아 목걸이로 걸고 다니거나,
땀 닦은 손수건이나 피아노줄을 차지하려고 서로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싸우기도 했고,
리스트가 피운 시가 꽁초를 주워 보석함에 보관할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리스트가 피아노 연주 기술에 있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인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피아노 연주 테크닉을 집대성한 12곡의 연습곡에 <초월적인 기교를 위한 연습곡(초절기교)>이라는,
엄청난 자기애와 오만함이 듬뿍 묻어나는 제목을 스스로 붙였을 정도다.
거기에 퍼포먼스까지 화려하다 보니, 당시 온 유럽이 리스트의 손끝에 열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쇼팽은 이런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었기에,
리스트는 실제로 쇼팽이 쓴 장송 행진곡을 펀치라인으로 삼아
쇼팽의 음울함을 디스한다.
숨소리도 금지 기침하면 퇴장 살롱 구석탱이 그게 딱 네 사이즈/
방구석 찐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Stage Phobia? /아니 넌 겁쟁이일 뿐이야
쇼팽은 병약한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질 정도로 극심한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
39년의 평생 동안 대형 콘서트를 30회 정도밖에 열지 않았고, 대신 귀족들의 작은 살롱에 소수의 지인들만 모아놓고
섬세하게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다.
쇼팽의 연주는 정말 깃털처럼 가볍고 섬세하여, 관객이 기침을 하거나
드레스가 바스락거리기만 해도 피아노 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그래서 쇼팽의 연주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관객들 스스로 숨을 참아야 할 정도였다.
소수만 모아놓고 연주했던 쇼팽과 달리, 리스트는 '피아노 독주회'라는 현대적 개념을 최초로 만들었을 정도로
수많은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즐겼으니,
이런 '슈퍼 E' 성향의 리스트 입장에서 쇼팽은 그저 방구석 찐따 그 자체라며 디스한 것이다.
Raindrop (빗방울 전주곡)?//No 그건 빗물이 아냐 Drip drop 네가 힘들어서 흘린 눈물이야 /
뚝! 그만 울어 사내가 가서 상드한테 배워와//남자다워 지는 법!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그의 연인인 상드와 마요르카로 요양 여행을 갔을 때 작곡한 곡이다.
당시 마요르카의 궂은 날씨와 열악한 환경 탓에 요양은 커녕 엄청난 각혈을 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는데,
그런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작곡한 음악이 바로 빗방울 전주곡이다.
리스트는 이것을 빗대어 빗방울 전주곡의 빗방울은 비가 아니라 네가 아파서 흘린 눈물이라며 찰지게 디스한다.
쇼팽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상드는 당시 시대상과는 정말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여성이었다.
남장이 취미였으며 시가를 피우는, 매우 주도적이고 강인한 여성이었다.
반면 쇼팽은 그의 병약미에 어울리게 예민하고 의존적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도 보기 힘든 '테토녀'와 '에겐남'이 만났으니, 19세기 파리 사교계에서는 이 둘의 연애사가 가장 핫한 가십거리였다.
실제로 이 둘의 연애사는 요즘 웹소설에서도 먹힐 만한 막장극 요소가 차고 넘쳤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쇼팽에게 상드를 소개해 준 사람이 바로 리스트였다는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쇼팽을 리스펙트하여 상드를 소개해 준 것이겠지만,
랩 배틀 영상 속에서는 쇼팽에게 남자다움을 배우라며 상드를 소개해 준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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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Paganini of Piano 신이 내린 기교 넌 Piano 대신 Patient 약한 피노키오 내가 줄 수 있는 건 알약 두 봉지가 전부지 ay //넌 오늘 내일 하며 써 난 역사를 쓰러 갈테니 ay 내가 건반을 부술 때 Pow!//넌 분위기를 망쳐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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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연주를 보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며 "나는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로 엄청난 파가니니 팬이었다.
실제로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를 피아노 곡으로 완벽히 옮겨와
후대의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 모두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준 원흉(?)이 되기도 했다.
쇼팽의 병약함은 그의 신체 스펙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는데, 키 170cm에 몸무게가 40kg대였다.
정말 나무로 깎아 만든 인형처럼 앙상했던 수준이다.
그의 연인 상드는 이런 쇼팽을 보고 '나의 세 번째 아이', '늙은 아들', '환자'라고 칭하며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리스트가 보기에 상드의 보살핌에 의지해 목각인형처럼 휘둘리는 꼴이
피노키오 그 자체라며 마라맛 디스를 펼친 것이다.
반면 이렇게 병약하여 일찍 세상을 떠난 쇼팽과 다르게,
리스트는 요즘에도 살 만큼 살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인 74세까지 장수하다 세상을 떠난다.
이런 피아노 천재가 오래 살면서 피아노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고 해도 무방한데,
앞서 말한 독주회는 물론이고 교향시 장르를 창시했으며, 마스터 클래스 수업 방식도 리스트가 처음으로 고안하였다.
이런 태생적 건강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리스트의 연주는 쇼팽과 다르게 굉장히 파워풀했다.
퍼포먼스는 물론이고 피아노 현을 끊어 먹을 정도였다.
반면 쇼팽은 그의 병약함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우울한 곡들이 많았으며 사람들을 눈물짓게 하는 곡들이 많았다.
그러니 리스트 입장에서는 기껏 분위기 띄워 놨더니 분위기 ㅈ같이 만든다며 디스한 것이다.
쇼팽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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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라 캄파넬라>? 그건 파가니니꺼잖아
사실상 쇼팽이 리스트의 약점을 제대로 파고드는 첫 문장이자 핵심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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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때리는 게 아냐 울리는 거지 사람들은 헷갈려 해 //스턴트와 아트의 차이를//넌 건반 위에서 땀흘리며 서커스를 할 때//난 건반과 숨을 쉬며 대화를 해
앞서 말했듯 쇼팽과 리스트는 성격, 연주 기법 등 모든 것이 정반대였다.
쇼팽은 노래하듯 치는 연주를 강조했고, 건반을 어루만져 공명을 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반면 리스트는 건반과 현을 부수며 온갖 쇼맨십을 보여주었으니,
쇼팽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철학과 동떨어진 리스트의 연주 방식이 영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루는 살롱에서 리스트가 쇼팽 앞에서 원곡에 자신의 화려한 기교와 장식음을 덧붙이며 요란하게 연주한 적이 있다.
관객들은 환호했지만, 쇼팽은 자신의 곡을 이런 식으로 연주한 것에 대해
"악보에 적힌 대로 치든가, 아니면 아예 치지 마"라며 차갑게 쏘아붙였고
리스트는 머쓱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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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네 음악엔 공명이 없어//그저 화려하게 포장된 공해일 뿐 피아노의 왕? 글쎄 내 눈엔 그저 화려한 편집자//베토벤 슈베르트 죽은 천재들 무덤을 파 그 위에 덧칠한 네 기교는 낙서일까 헌정일까 Originality Zero//네 악보엔 주어가 없어 남의 명작들을 오려 붙인 슬픈 모자이크
쇼팽의 디스랩 중에 가장 핵심이자 하이라이트인 부분이다.
리스트는 본인의 순수 창작곡보다는 모차르트나 벨리니 등의 유명한 멜로디를 가져다 편곡하는 것으로 엄청난 명성과 부를 얻었다.
'피아노의 왕'이라는 명성답게 베토벤의 교향곡 1번부터 9번까지 전부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했고,
슈베르트의 가곡도 가사 없이 피아노만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완벽히 편곡해 냈다.
리스트는 이것이 선배들에 대한 헌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쇼팽처럼 100% 오리지널 곡으로 승부했던 사람들의 눈에는 창작자라기보다는
그저 과도한 기교로 원곡에 낙서나 하는 화려한 편집자로 보였을 것이다.
쇼팽은 이런 것들을 빗대어 리스트의 음악은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모자이크에 불과하다며 통렬히 디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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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제복 좀 벗어 어색하지 않니?//네가 만진 묵주보다 네가 만진 여자가 더 많아 //젊은 날 네가 뿌린건 성수가 아닌 샴페인// 이제 와서 신을 찾아? 위선도 선이라던가?
리스트의 외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의 화려한 연주와 정비례하여 당대 최고 무용수인 롤라 몬테즈와의 염문설 등
숱한 염문설을 뿌리고 다닐 정도로 엄청난 여성 편력을 자랑했다.
여성 편력의 끝은 남의 여자라고 했던가?
리스트는 남의 아내를 꽤나 좋아했다.
백작 부인들과의 여러 불륜설이 뒤따랐고,
그로 인해 쇼팽에게도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주었는데
리스트는 당시 절친이었던 쇼팽에게 '며칠 집 비운다며? 아파트 좀 빌려 쓰자'고 부탁했고
쇼팽은 흔쾌히 자신의 집을 빌려준다.
그러나 리스트는 거기서 마리 플레옐과 불륜을 저지른다.
마리 플레옐은 당대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이자 쇼팽의 전용 피아노를 만들어주던 카밀 플레옐의 아내였다.
심지어 카밀 플레옐은 쇼팽의 절친한 친구였다.
즉, 친구의 아내를 자신(쇼팽)의 집으로 끌어들여 야스를 즐긴, 거의 짐승에 가까운 리스트의 행동에
쇼팽은 극대노한다.
그런 리스트도 여러 안 좋은 일들을 겪으면서 인생 말년에 신부가 된다.
사제복을 입고 남은 평생을 종교 음악에 매진한다.
그러나 쇼팽의 입장에서는 젊을 때 그렇게 X을 놀리고 다니다가 말년에 갑자기 종교에 귀의한 모습이 선이 아니라
가증스러운 위선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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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1000명의 환호를 원해 광대 짓을 하지 근데 그거 알아? ///박수는 1초면 사라져 넌 이 순간을 태우고 재가 되겠지//난 영원히 타오르는 불씨가 될게
리스트 역시 유명한 음악을 많이 남기고 찬양받았지만,
쇼팽은 39살의 그 짧은 인생에서도
즉흥 환상곡, 에튀드, 녹턴 등등
클래식과 거리가 먼 대중들도 듣기만 하면 "아! 이 노래!" 할 만한 불후의 명곡들을 만들어냈다.
즉, 리스트의 삶은 그 누구보다 화려했지만 금방 꺼졌고
쇼팽, 자신의 음악은 후대에도 울려펴지는 영원한 불씨가 되었다며
자신의 음악적 위상의 차이를 재확인시켜 주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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