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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1점당 야구공 120개? ㅅㅂ이악물고해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6.03.30|조회수3,522 목록 댓글 6

출처: https://www.fmkorea.com/9642954020

 


응애응애

 

 

1945년 광복 직후, 당시는 미군정 시기였으므로

전국 각지에 미군들이 존재했다.

 

 

 

 

 

 

 

 

 

 

 


흠... 뭔가 좀 심심하기도 하고,

이놈들 기강이 해이한 거 못 봐주겠군...

 

우리 뭐 같이 땀 흘리며 하하호호 웃을 만한

스포-츠 같은 거 없냐?

 

 

미 제24군단 정훈부 소령인 잉거프리센 소령

 

레크레이션 겸, 조선인들과의 친선 교류를 위해

스포츠 활동을 고민한다.

 

 

 

 

 


그럼 축구하자 축구! 전세계인의 스포츠!

대충 골대 두 개 세워 두고 하면 되잖아!

 

 

 

 

 



어... 미안타. 세상에서 제일 축구 모르는 나라가 나다...

 

Soccer는 몰라도 Football은 아는데,

우리 미식축구 한 번...

 

 

 

 

 

 

 

 

(...이라고 하면 그뭔씹이라고 하겠지?

조선인들이 미식축구를 본 적도 없을 거고...)

 

어... 그럼 야구 하자! 우리 애들도 야구 제일 좋아해.

너희도 이미 동대문 등에 야구장 있더라?

 

 

 

 

 

 

 

 

 

그래, 그러자!

 

 

그리하여 1946년 8월 16일, 자유신문의 주최로

광복 1주년을 기념할 겸

 

'조미친선야구대회'가 열린다.

 

 

 

 

 

 

1점은 내겠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군 선수단은 매우 자신만만했다.

그야, 야구의 종주국인 미국이니.

 

마치 어른이 아이의 손목을 비틀듯

압승할 것이라고 자신한 것이다.

 







 

 

잉거프리센 소령은 경기가 시작하기 전,

조선 팀이 이긴다면 배트 50자루와 공 50다스,

 

지더라도 득점 1점당

공 10다스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일본 야구 올스타팀으로 선정되었던

이영민 등이 이끈 조선팀은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4:3으로 아깝게 석패,

야구공 30다스, 즉 360개를 받는다.

 

 

 

 

 

 

 

 

 

 

 



'뭐 비벼본 건 놀랍긴 한데

고작 야구공 360개가 그렇게 큰 성과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정말 아무것도 없던 한국 야구계에는

야구공 30다스가 엄청난 보물이었다.

 

 

 

 

 

 

 

 

 

 



- 아빠 우리집은 왜 부자야?

- 아빠가 이악물고 3점을 내서 그렇단다

 

 

당시 한국에서는 야구공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30다스를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75000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기 때문.

 

(*당시 야구공 하나의 가치=쌀 한 가마니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고교야구 대회인

청룡기를 개최, 유지할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고교야구의 인기는 지금의 프로야구까지 이어졌으니.

 

대한민국 야구의 인기는

미군과의 경기에서 이를 악물고 냈던

3점으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인터넷에서는 이때 받은 공을
청룡기 경기에 썼다는 말이 있는데,

글...쎄요. 1회 대회부터 24개팀이 참가했다는데
아무리 아껴서 써도 좀 적지 않나 싶습니다.

논문 등에서 찾을 수 있는 은행 담보설이 좀 더 믿을 만한듯?

 

그럼 경기는 뭘로 함?

 

나도 그게 궁금하긴 한데 경기 잡아놓고
미군한테 야 몇다스만 더줘봐 하지 않았을까?

쟤들은 우리보다 야구공이 쌌으니까 막 뿌렸을 거 아님

 

 

 

-끝-

 

 

잘모르니 댓펌)


육상 400m 조선 신기록, 동대문운동장 첫 홈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근데 웃긴 건 1960년대쯤 되면 접대야구를 우리가 했단거임ㅋㅋ

당시에도 야구장이나 시설이 부족했는데
주한미군은 다른 지역 미군이랑 붙을 때 이기려고
고교팀이나 실업팀을 초청해서 야구를 했다고 함.

근데 이겨도 안 되고 그렇다고 막 참패해도 안 되고
아슬아슬하게 가다가 아깝게 져야 기분 좋아져서 장비 뿌렸다고함ㅋㅋ
그래서 이기고 있어도 하 시할 미군 너무강해애앵 하면서 졌다고


일단 전국체전의 원래 시작이 전조선야구대회였고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의 원탑 스포츠는 야구였음

 

다만 축구는 조선인 비율이 높은 사립학교 기술학교(공고) 중심으로 발전을 하고
야구는 일본인 비율이 높은 각 지역의 공립 명문고 및 상업학교(상고)중심으로 발전을 하다보니

사회적 영향력에서는 엘리트 학교에서 공을 들인 야구가 우위를 선점하고 이후 명문고 출신의 엘리트가 많은 언론계 후원(청룡기 황금사자기 등등)을 중심으로 각 지방의 지역유지 동문들이 후원을 한 고교야구가 활성화되고 상고 출신의 엘리트가 많은 금융계 후원으로 실업야구단이 활성화 되고 최종적으로 기업을 바탕으로 프로야구가 탄생함.

한편 처음부터 현재까지 민간부문에서 이끌어 온 야구와 달리 국가대항전이 잦은 축구는 국가 주도적으로 성장하다가 각 군팀들과 포항제철 국민은행 같은 국영기업 중심으로 활성화 되고 야구보다 뒤늦게 프로화가 됨.

그래서 야구가 축구보다 일제 때부터 선점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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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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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우린우연히만나 | 작성시간 26.03.30 진짜 흥미롭다
  • 작성자보문산 다람쥐 | 작성시간 26.03.30 얼마전 wbc 생각난다 진짜 이기는걸 바란것도 아니고 이런 독기를 원했던건데
  • 작성자난 꼭 짱이 될테야 | 작성시간 26.03.30 오 신기하다
  • 작성자요키는사랑 | 작성시간 26.03.30 흥미이
  • 작성자월트디즈니 | 작성시간 26.03.30 오 흥미롭다 ㅋㅋㅋ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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