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9759496204
진짜 이왜진이 20개 이상 튀어나오는 넘
일제 강점기 시절
조그만 희망, 희망 하나로 끝까지 투쟁한 영웅들이 있었으니
우린 그들을 독립 지사, 독립 투사, 독립 운동가라고 부른다
근데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 유독 특이한 인물 한 명이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민족주의 계열, 사회주의 계열
그리고 아나키스트 계열 독립운동가 정도만 아는데
그러나 파시스트
즉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 사상을 가진 네임드 독립운동가가 있었으니
바로 철기 이범석이다
뭐 못들어본 사람이 많기에,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 분은 네임드 독립운동가 중 하나로
독립운동가 중 커리어가 화려하기로 소문난 인물
쑨원의 추천으로 중국 육군강무학교 기병과 수석 졸업
신흥무관학교 교관, 청산리 전투 참전, 고려 혁명군 기병대장, 신민부
중국군 동부 항일군단 소장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광복군 부사령관
독립 후 초대 국무총리, 초대 국방부 장관까지
한 진짜 네임드 중의 네임드이다
참고로 이범석이 쓰고 있는 헬멧은 독일식 헬멧인 슈탈헬름
청산리 전투까지는 민족주의 독립 운동가 1 포지션이었지만
1923년 소련이 독립군을 무장해제 시키는 과정에서
이범석과 아내는 몇개월 간 소련에서 옥생활을 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는 진짜 뼛속까지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이후 중국에서 쑨원의 신임을 받게 되며
이 덕분에 중국 국민당의 군부와도 연이 닿게 된다
대충 이범석이 독일에서 본 장면
아무튼 1933년, 중국 군사 시찰단 자격으로 독일에 파견되었는데
이 시기가 히틀러의 인기가 절정에 올라 그가 정권을 잡은 때
이범석은 당연히 경제와 군대를 재건하는데 성공한 나치뽕에 빠졌고
독일에 주재하던 한국인 유학생들과의 교류로 파시즘 사상에 경도된다
이렇게 이범석은 민족주의계열에서
파시즘 계열로 노선을 바꾸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광복군 시절에 미국 OSS(CIA의 전신)과 합동작전을 한...
뭐 아무튼 파시즘 사상을 갖고는 있었지만,
그 사상을 펼치기에는 한국 광복군의 세력은 너무나도 미약했고
독립 후, 자신의 파시즘적 사상을 이루기 위해, 조선민족청년단을 창설하는데
참고로 이 단체의 모티브는 히틀러 유겐트다
실제로도 나치 독일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술을 마시며 매우 안타까워 했을 정도.....
당연히 나치와 미친듯이 싸웠던 미군들은
이범석의 파시즘 사상을 보면서 경악했지만
그나마 반공주의자였기에 봐주기는 했으나
그를 조선의 군국주의자, 히틀러 추종자, 반도의 힘러라는 비판을 가했을 정도
히틀러의 열렬한 추종자여서, 당연히 애완견도 저먼 셰퍼드를 키웠다고....
그의 전체주의적 모습은 한국전쟁에서도 드러나는데,
한강 철교 폭파를 건의한 사람이 이 사람이다
뭐 당연히 그것만 주장한 건 아니고, 후방 3개 사단과
한강 이북의 1개 사단을 모아 강남에서 방어전을 펼치자는 거였다
근데 타이밍을 못맞춰서 물자와 장비, 병력이
건너오지 못하고 고스란히 한강 이북에 남게 되자
"퇴로가 막힌 한강 이북의 국군은
오히려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히 싸울것이다. 후퇴는 없다"
이거 무슨 나치당 간부나 히틀러가 한 말이 아니고
국방위원회 의원인 이범석이 직접 말한 것이다
심지어 히틀러 추종자였던 만큼 강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강했기에 이승만에게 절대 충성하며
의회 민주주의를 혼란한 사상 취급하며 이승만 집권 연장을 위한
발췌개헌과 부산 정치 파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정도
심지어 충성경쟁에서 패하자, 자기가 조직한 조선민족청년단을 이끌고
쿠테타를 벌이려고 시도했을 정도
사실 김영삼, 김대중의 40대 기수론 이전에는 보수야당에 가깝긴 했다
근데 존나 웃긴건 그렇게 이승만에게 팽당한 직후에
4.19혁명이 일어나 이승만계 세력이 일소될 때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이기붕은 뒤지지만,
이범석은 이승만에게 팽당했다는 이미지로 살아남는다
말년에는 민주당계 정당인 신민당을 창당하는 등
굉장히 모순적인 삶을 보낸다
정리하면 독립군으로써 신흥무관학교 교관, 청산리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소련의 독립군 강제 해산으로 반공주의자가 된 동시에
즉 쑨원의 총애를 받아 중국군에 입대하고
히틀러뽕을 치사량 넘게 맞은 전체주의자 파시스트였으며,
동시에 반미적인 인물이면서 히틀러 유겐트 카피 단체를 만들고,
전략적 식견은 뛰어났지만 전체주의적 근성론을 설파했으며
이승만의 열렬한 추종자였지만 오히려 그에게 팽당함으로써
이승만의 측근들 중 그만이 유일하게 살아남고
민주당계 정당인 신민당을 창설한 인물
진짜 이 사람은 행적 자체도 모순이 판치는 한국 근현대사를 함축한 인물인데
1. 중국군 시절 장갑열차 등 무기 개발과 운용을 한 유일한 한국군 장성
2. 한국어를 포함해 6개 국어 가능, 영어-중국어-러시아어는 유창하게, 일본어-독일어는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
3. 나치에 맞선 샤를 드골을 존경해서 자유 프랑스군 선전 방송까지 꼬박꼬박 챙겨들음
4. 출퇴근 할 때 차 안타고 독일군 헬멧 쓰고 말타고 출근
5. 기밀 문서 해제로 공개된 미군 문서에 따르면 극단주의 중국 군벌로 평가하며 미군이 매우 싫어한 인물
6. 근데 또 재산 부정축재도 안하고 군 원로 시절에도 4일 동안 굶은 적이 있을 정도로 청렴한 인물
7. 만주군 이력으로 군에서 추방 직전이었던 박정희를 구제해 준 것이 이범석
-끝-
잘 모르니 베댓펌...)
이 사람이 발간한 회고록으로 "우둥불"이 있는데 그야말로 청산리 전투 연구에 있어서 역대급 똥을 뿌린 자서전이라 학계에서 평이 ㅈㄴ 안 좋은 분 ㅋㅋㅋ
청산리 전투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어랑촌 전투 당시 김좌진 부대가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걸 방어하고 협공까지 해준 홍범도 부대의 존재를 아예 누락시키고 나중에 논란되니까 홍범도 부대는 전투를 제대로 치루지도 못하고 도망갔다고 구라를 까질 않나, 김좌진 장군의 전공도 은근슬쩍 자신의 전공으로 둔갑시키거나 아예 일본군을 3,000여명 이상 격살시켰다는 터무니없는 과장까지 치는 등 사실왜곡을 밥먹듯이 했음.
하필 이 사람이 당대 청산리 전투의 간부급으로서는 사실상 유일한 생존자였기에 학계 인사들도 아무런 검증 없이 해당 주장들을 연구에 그대로 인용했고 결과적으로 1980~1990년대 간행된 청산리 전투 관련 논문들을 보면 객관적인 서술은 찾아볼 수 없고 죄다 민족주의적 문장들로 점철되어 있는 등 역효과가 발생함.
1952년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 때 이범석이 부통령으로 나갔는데, 이승만이 이범석을 팽함.
그도 그럴게 자유당 자체가 이범석 계열이 중심이 되어서 만든 곳이라 당권 자체가 이범석에게 있었음.
그래서 1953년 이범석이 자유당 전당대회를 통해서 이승만을 흔들려고 했다가 실패함.
이때 이범석과 함께 이범석 계열인 족청계가 모두 숙청되면서, 자유당은 이승만의 당이 되었고, 이범석은 4.19혁명 전까지 정치 은퇴당함.
그래서 이범석은 4.19의 여파를 피해갔고, 정계복귀를 시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