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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Au revoir
1562년, 프랑스의 구교도파 귀족이었던 기즈공작이 예배중인
신교도들을 무참히 죽인 바시의 학살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구교도와 신교도의 갈등은 종교전쟁으로 비화가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위그노 전쟁이다.
이 위그노 측 즉, 신교도의 수장은
프랑스 서남부에 위치한 나바르 왕국의 앙리 드 나바르였는데,
그가 바로 훗날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최초의 왕이며
앙리 4세가 되는 인물이다.
어머니는 나바르 여왕 잔 달레브로 나바르를 물러 받을 수 있었고
아버지는 발루아家 방계였던 부르봉家의 앙투안 드 부르봉으로
덕분에 앙리 드 나바르는 발루아가의 앙리 2세가 후계자를 낳지 못할 경우에는
프랑스의 제1 왕위계승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앙리 2세는 프랑소와 2세, 샤를 9세, 앙리 3세인 세명의 후계자를 낳았음.
프랑소와 2세의 아내는 그 유명한 메리 스튜어트 여왕)
이때의 프랑스는 끊임없는 종교 분쟁으로 인해 많이 피폐해졌었다.
그 사이에서 앙리 2세의 왕비였던 카트린 드 메디치가 종교전쟁을
자신의 권력 유지에 이용하면서 구교도와 신교도들 간의 갈등은 더욱더 깊어져만 갔고
이런 곤란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샤를 9세가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은 어린 여동생을 이용한 신교측과의 협상, 화해였다.
1560년 경의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그러나 그때 당시 이 어린 여동생인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흔히들 마고라고 부름)는 기즈 가문의
앙리 드 기즈와 결혼하기를 원했었는데
대중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 많았던 기즈 가문이
정치적으로 더 강력해지는 걸 꺼려했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치의
반대로 결혼을 할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카트린 드 메디치의 정치적 성향과
구교도와 신교도의 갈등을 풀어 줄 적합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나바르 왕국의 앙리 드 나바르
즉, 앙리 4세였다.
발루아가에서 후계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프랑스 왕위를 이을 수 있는 첫번째 왕위 계승권자에,
구교도와 신교도의 화합을 추진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기즈가문의 세력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이므로...
그리하여 샤를 9세와 그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치에 의해
나바르의 왕 앙리 드 나바르와 마르그리트 발루아와의 결혼은 추진되었다.
뭐, 결혼 전부터 다들 꿍꿍이 속이 있었고
아내 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으며
남편 역시 정략 결혼인지라 아내에 대한 관심 조차도 없었으니
처음부터 제대로 잘 될 일이 있겠냐만은-_-;;;;;
겉으로는 구교도와 신교도의 우리 이제 화해하는 거임? ㅇㅇ
이런 모습으로 아주~ 행복해보였던 이 결혼은
처음부터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앙리 드 나바르의 어머니인 잔 달레브가
결혼식 절차만은 신교식으로 거행하자고 고집을 피우면서
카트린 드 메디치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의문사를 당했던 것.
(항간에서는 폐렴이 도져서 죽었다란 소리가 있는데
다른 쪽에선 카트린 드 메디치의 독살이었다란 소리가 있음.)
아무튼, 잔 달레브의 죽음으로 잠시 삐걱 거리나 싶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약혼은 파기 되지 않고 결혼식은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웃긴건
신교도의 앙리 드 나바르는 성당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였고
덕분에 결혼식은 성당앞 광장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으며
앙리를 남편으로 맞이하겠냐는 주교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던 마고를 오빠인 샤를 9세가 억지로
머리를 눌러 고개를 숙이게 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결혼식은 무사히 끝나나 싶었지만
후에 더 큰 문제가 벌어졌다.
앙리 드 나바르의 든든한 조력자였던 콜리니 제독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 두려웠던
카트린 드 메디치는 다시 기즈가문과 손을 잡았고
(이럴꺼면 딸의 결혼을 왜 그렇게 반대를 했니 이 아줌마야ㅋㅋㅋㅋ)
이를 딸 마고의 결혼식으로 위장하여
실제적으로는 콜리니 제독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결혼식 축제가 한창이던 날
8월 24일 밤, 기즈공작은 콜리니 제독을 살해하였고
콜리니 제독의 암살 음모가 탈로 날까 두려웠던 카트린 드 메디치는
아예 후환을 없애기 위해 파리로 온 신교도들을 무참히 도륙하게 하였다.
이에 학살은 꼬리를 꼬리를 물게 되었고
하룻밤 사이에 파리에는 수천구의 시체가 쌓아올라졌고
다음날 샤를 9세가 학살 금지령을 내렸지만
이미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려 이를 통제하지 못하였다.
이 사건이 바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다.
결혼식 차 파리에 있던 앙리 드 나바르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구교도와 프랑스의 왕실에 의해서 감금 되었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구교도로 종교를 개종하게 되었다.
4년간의 감금 끝에 앙리 드 나바르는 기즈가문의 세력을 다시 억압할려는
카트린 드 메디치와 아내인 마고에 의해서 풀려나게 되었다.
(이건 뭐 적군인지 아군인지-_-;;;;;)
덕분에 풀려난 앙리 드 나바르는
위그노들에게 돌아가서 다시 신교도의 수장이 되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되었고
(종교를 이리 바꿨다 저리 바꿨다)
잠깐 침체 되었던 프랑스 내의 종교전쟁은 다시 발발하면서
그 사이 카트린 드 메디치는 그렇게 원하던 기즈가문의 세력을 잠재울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신교도의 학살이 있던 밤 마고는 신교도인 라 몰르나를
숨겨주고 치료해주게 되었는데 둘이 사랑하게 되는 사이가 됨-_-;;
(그 후 마고의 전적은 엄청 화려해짐ㅋㅋㅋㅋㅋ
온갖 누릴꺼 다 누리다가 후에 회고록 하나 써놓고 죽음.
덕분에 이 언니의 화려한 사생활이 낱낱히 까발림. 하여간 이 언니도 대단함.)
후에 샤를 9세가 24살이란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고
그의 동생이었던 앙리 3세가 프랑스 왕위에 올랐으나
유일한 후계자였던 발루아가의 최후의 왕위 계승권자였던
알랑송 공 에르퀼 프랑수아가 죽고, 앙리 3세 역시 후계자가 없자
앙리 드 나바르는 자연히 프랑스의 제 1 왕위 계승권자가 되었다.
드디어 앙리 3세가 죽게 되자
앙리 드 나바라는 정당하게 프랑스 왕위를 물러 받을 수 있었고
부르봉 왕조 최조의 왕인 앙리 4세가 되었다.
그러나 신교도를 왕으로 모실 수 없었던 구교도들은 왕실과 맞서게 되고
그 와중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에스파냐의 필리프 2세의 딸린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를
여왕으로 내세우면서 에스파냐-프랑스의 전쟁이 시작이 되었다.
어떻게든 이 귀찮고 복잡한 일을 해결하고 싶었던 앙리 4세는
다시금 또 종교 개종을 하기를 바랬고
영원히 신교도를 버리고 구교도를 개종하고 자신에게 저항하는
구교도들을 설득하기에 성공한다.
(무슨 종교가 콩이냐 ㅋㅋㅋ 이리 볶아 먹고 저리 볶아 먹게?)
뭐, 물론 구교도들도 지 유리하면 종교를 훽 바꿔버리는 왕한테
썩 그렇게 못미더웠지만-_-
어쩌겠음? 몇십동안 질질 끌고 있는 종교전쟁을 종결 시킬려면
앙리 4세를 왕으로 인정해야 되는데...
그리하여 앙리 4세는 낭트 칙령을 반포하여 내전을 종결 시킨 뒤
진정한 프랑스의 왕이 될 수 있었다.
후에 프랑스 인들에게 앙리 대왕, 선량왕 앙리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프랑스에서 인정한 왕이 되지만
첫번째 아내 마고 못지 않는 기질로
화려한 밤의 황제가 되기도 하였음ㅋㅋㅋㅋ
여왕 마고 (1994)
Queen Margot
9.3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이자벨 아자니가 나온 여왕 마고를 보는 것도 좋음.
(난 무삭제로 봤는데 덜렁덜렁 거리는게 진짜 적나라함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