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9844202463
거중기. 정약용의 발명품.
수원화성을 만들 당시 쓰여,
교과서에도 많이 나오는 물건이다.
여러분은 거중기를 어떻게 썼는지 알고 있는가?
보통은 무거운 돌을 들기 위한 구조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렇게 성을 쌓는 데 돌을 올리는 역할로 생각하고는 한다.
? 뭔소리야 쉬핥
니들은 포크레인으로 15층 건물 올리냐?
하지만 정약용이 들으면 화를 낼 소리다.
거중기의 역할은 채석장에서 무거운 돌을
수레에 옮겨 실을 때 도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
엥... 그럼 채석장에 있는 사람들만 좀 편하고
정작 성 쌓는 건 계속 사람이 힘들게 한단 말이야?
그럴까봐 또 만들었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 쌓는 거 도와주는 발명품'은
거중기가 아니라 녹로라는 물건이다.
이 또한 정약용이 만들어
수원화성 건설 때 쓰인 물건인데,
딱 봐도 크레인처럼 생겼다.
녹로는 무려 10m 가량
돌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고 하니,
누각과 같은 높은 곳으로 석재를 옮길 때에는
녹로가 굉장한 도움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아하! 채석장과 공사 현장에서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다면,
백성들의 고생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사 기간도 크게 단축시킬 수 있겠다!
엇... 아니야. 인터넷에서 봤어.
조선은 도로 환경이 좋지 않고 산이 많아서
수레를 쓰기 좋은 곳이 아니었대...
돌을 옮기는 수레가 느릿느릿 오면
결국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는 거 아닌가?
그럴까봐 또 만들었음
정약용이 만든 손잡이가 긴 수레를 유형거라고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그 자세한 사용법이 전해지지 않지만...
정약용이 직접 '그냥 수레 100대로 365일 일하는 것보다
유형거 70대로 157일 일하는 게 더 빠름ㅇㅇ'
이라고 말했으니,
힘이 덜 들 뿐만 아니라
이송 중에 추가적인 이점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아마 바퀴와 받침판 간 연결장치로
수레 위 석재가 항상 평형을 유지하도록 만들고,
손잡이를 조작하여 돌을 앞뒤로 움직여 비탈길에서는
보조 동력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정조께서 주신 《기기도설(奇器圖說)》을 연구하여
서양식 축성법을 도입한 것이라네.
그것도 대단한 거야 평생 문과 공부하며 살다가
물리학 배우려면 얼마나 힘든지 아냐?
그리하여 정약용의 거중기, 녹로, 유형거 덕분에
10년 이상이 예상되었던 수원화성 축성은
불과 2년 9개월만에 마무리되었으니,
정약용은 조선 노가다판의 신이였던 것이다.
-끝-
잘모르니 댓펌)
문제는 정약용도 이론에만 빠삭했지 정작 실무에는 약했던 탓에 수원화성 축성 당시 몇몇 건축물에 잘못된 설계를 범하는 오류를 저질렀고 그에 따라 현 수원화성에는 정작 전쟁이 터지면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는 시설이 군데군데 존재함. 학계와 달리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다들 모를 뿐이지. 가장 대표적으로 옹성에 뚫려있는 오성지인데 엉뚱한 곳에다 뚫어버린 탓에 실제 상황 때는 전혀 제 역할을 못하는 시설..
오성지는 왜 무용지물이 됐을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30529580063?utm_source=chatgpt.com
정약용이 설계하고 조심태가 성역 총책임을 맡았는데, 이후 정약용이 완성된 모습을 보고 지적했다고 함. 위 글은 이에 대해서 고찰한 내용인데 그 중에
"지금까지 오성지가 무용지물이 된 것은 ‘정약용의 지적’ 때문이 아니다. ‘정약용에 대한 비판’을 두려워했던 우리 때문이다."
라는 말이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