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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이순신 집안이 역적가문 이었다고요?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6.06.02|조회수5,070 목록 댓글 3

출처: https://arca.live/b/iloveanimal/171058643

 

이순신의 할아버지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사약을 받는다.

 

 

 

이순신의 아버지인 이정.

조광조의 제사를 지내다가 역도로 몰려 고신을 당하고 이후에 썩은 정치를 증오하여 자식들의 출사를 결사 반대한다

 

 

영화 <천군>에서도 비슷하게 고증 오류를 범한다.

박정우 소령이 원훈 하사에게 이순신의 할아버지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집안 자체가 역적 취급을 받았고 아버지는 그 영향으로 평생 백수로 살고 이순신 본인도 18세가 되어서 자신은 문과 시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순신 집안은 억울하게 역적이 되고 흙수저로 살았다고 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순신 집안은 역적이 아니며 평범한 가문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가문이다

 

고조할아버지 이변과 증조할아버지 이거가 문과에 급제하여 집안을 일으켰으며 특히나 이거는 성종 25년(1494) 세자시강원보덕으로 세자인 연산군 스승이 되었는데

즉, 이순신의 증조할아버지는 왕의 스승인 사람이였다

 

 

또한 <기묘사화>로 이백록이 사약을 받은 적이 없으며 오히려 계속 관직이 유지 되었다.

기묘사화가 발생한 1519년에 사약을 받고 죽었어야 했다면 1540년에 ≪중종실록≫을 보면, '...(중략) 평시서봉사 이백록은 성품이 본디 광패하여 날마다 무뢰배들과 어울려 거리낌 없이 멋대로 술을 마시는가 하면 외람된 짓으로 폐단을 일으킨 일이 많으니 파직시키소서! 하니 답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데

물론, 이백록이 조광조를 존경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광조 일파들과 친하게 지내보니 기묘사화에 휘말려 처벌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역적은 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조광조를 제거한 훈구세력들과 원수를 졌다는 기록조차 없다.

 

다만, 이순신 집안 자체는 기묘사화를 기준으로 한풀 꺾인 것은 맞다고 본다. 현대에서도 정치 싸움에서 패배하면 자숙을 하는 것처럼

이순신의 아버지는 관직 생활을 하지 않았고 이순신의 작은 아버지들인 이현과 이귀, 이순신의 형제들인 이희신, 이요신, 이우신이 좋은 관직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는걸 봐서 다소 불이익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요약*

1. 이순신 집안은 한 번도 역적 취급을 받은 적이 없다. (역적이 되면 3족을 죽이거나 살아남아도 천민이 된다)

2. 이순신 집안은 오히려 대대로 금수저급이다.

3. 선조 1년에 조광조는 신원되었으며, 문묘에 배향되고 영의정으로 추증되는 등 명예가 회복되어서 오히려 이득을 본다.

 

 

댓펌)


와이프가 방씨부인이잖아, 상주방씨 아버지 남양홍씨 어머니 명문가문 여식
그 아버지가 엄청난 부자에 명성 있었던 무신 방진인데 역적집안에 딸을 줬을리가...
오히려 딸 있으면 가세는 기울었어도 포텐 있는 사위 두고 키우는게 조선 초~중기 사대부 도전과제였는데, 딱 그 케이스인거고


실제로 신사임당의 부친 신명화 역시 사위를 고를 때 딸이 기를 펴고 재능을 꽃 피울 수 있기를 바랐기에
가문은 명문이지만 가세가 기울어 급이 떨어지는 이원수를 데릴사위로 들였음
이원수는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외동 아들로 자랐는데
이 정도 격차면 딸이 기를 펴고 살 것이라 생각했나 봄

포텐이 평타 이상은 됐었으나 히든이 구렸던 이원수는 탱자탱자 놀면서 과거도 수차례 낙방을 했고
급제 자체도 꽤 늦은 나이에 했었음 그래도 부부 사이는 꽤 무난했던 것으로 보이며
신씨도 신혼 생활도 친정에서 시작했고 부친이 타계하자, 3년상을 이유로 시댁에 가지 않았음

이후 시댁으로 가서 홀로 시어머니와 7남매를 건사했고 그녀의 집안이 워낙 빵빵한데다가 본인의 행실도
매우 모범적이라 시모와 남편은 신씨에게 찍소리도 못 했다고 함ㅋㅋ
대신 3년상+7남매 출산으로 수명이 그리 길진 못 했음

 

참고로 이원수는 충무공 이순신과 18촌지간임(이원수가 형)
지금이야 18촌지간이라고 하면 아예 남이지만 그 당시는 문중 사람이기에 먼 친척으로 대우해줬었음

그래서 이순신이 무관으로 재직 중일 때 이원수의 아들 이이가 당시 이조 판서 직에 있었는데
(1년 뒤 병조 판서 예정) 문중 사람이자 19촌 아저씨 뻘인 이순신에게 사적으로 한 번 보자고 얘기했으나
대쪽 같은 이순신은 서로의 관직 때문에 사적으로 만나는건 옳지 않다며
나중에 벼슬길에 물러나면 그때 보자고 거절했다고 함ㅋㅋ

지금으로 치면 집안 사람에 인사혁신처장에 국방부장관 예정자가 보자고 한 걸 거절한 것이니 엄청난 것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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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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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마피 | 작성시간 26.06.02 신사임당이야기도 흥미롭네 덕분에 다 잘봤어
  • 작성자수건하트 | 작성시간 26.06.02 와 재밌다
    왼쪽 볼에 소름이 안 가라앉아
  • 작성자세인트 엑소시스트 | 작성시간 26.06.02 아들은 있는 집으로 보내고 사위는 없는 집에서 들이라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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