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흥미돋](강스포) '서술자가 범인' 트릭의 추리소설에 대한 트리비아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6.06.03|조회수2,560 목록 댓글 5

출처: https://www.fmkorea.com/9902911240

 

 

 

 

 

* 제목을 미리 예고할 수 없는 여러 추리소설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음

 

 

 

 

 

 

 

 

 

 

 

 

추리소설에는 서술 트릭이라고 하여 읽는 독자를 서술을 통해 속이는 기법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나 '서술자가 범인' 혹은 '화자가 범인', '믿을 수 없는 화자' 등으로 불리는 유명한 트릭이 있다.

 

이름 그대로, 1인칭으로 서술되는 내용을 쭉 읽었는데 알고보니 그 1인칭이 범인이었다 라는 종류의 트릭이다.

 

이런 추리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것이 바로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의 1926년 작품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다. 

 

이 소설은 크리스티의 대표적 명탐정인 에르퀼 푸아로 시리즈 중 하나로, 크리스티가 쓴 6번째 장편 추리소설이다. 줄거리는 대략, 푸아로가 은퇴 후 살던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에 대해 푸아로의 옆집에 살던 의사 섀퍼드가 1인칭 시점에서 서술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의사 섀퍼드가 범인임이 밝혀진다.

 

굉장히 충격적인 트릭이기 때문에 당시에도 반 다인이나 앨러리 퀸, 도로시 세이어즈와 같은 퍼즐러 미스터리 작가들 사이에서 반칙인가 아닌가를 두고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아가사 크리스티 역시 이 작품의 트릭에 굉장히 만족했는지 "화자를 범인으로 만든 최초의 소설" "왓슨이 범인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는 굉장히 독창적" "이런 아이디어는 단 한번 밖에 쓸 수 없는 독창적인 트릭" 등등 자신이 이런 트릭을 작품으로 실현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으며, 자신의 모든 작품 중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두번째로 뛰어난 작품으로 꼽았을 정도다.

 

다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이 같은 인식은 정확하지 않다. 

 

단순히 '화자가 범인'이라는 종류의 추리소설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보다 20년 전에 이미 발표되었다. 바로 프랑스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이 탄생시킨 괴도신사 캐릭터의 원형,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첫 작품인 1906년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이다.

 

이 시리즈 역시 굉장히 유명하기 때문에 더 설명할 것도 없지만, 어쨌든 이 단편은 항해중인 선상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범죄 + 1인칭 서술자의 정체가 사실은 범인(뤼팽)이라는, 클로즈드 서클+믿을 수 없는 화자 트릭이 메인으로 활용된 최초의 추리소설로 평가된다. 다만 이 단편, 나아가 시리즈는 추리소설보다도 모험 활극으로서의 인상이 후대에 강렬한데다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퍼즐 미스터리로서의 트릭에 대한 평가에는 찬반이 나뉠 것이다.

 

한편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추리소설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애크로이드에 선행하는 엄청나게 유명한 소설이 있다. 그게 바로 스웨덴의 작가인 사무엘 두세가 집필한 1917년 작품, '스미르노 박사의 일기'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레오 캐링이라는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다. 헤어진 전 연인이 사살된 사건에 대해 기록한 스미르노 박사라는 인물의 일기를 캐링이 읽고, 사실은 일기 속 사건의 범인이 스미르노 박사 자신이라는 것을 캐링이 밝혀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구성 면에서도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나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비교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라는 소설과도 굉장히 흡사하지만, 이 소설이 당대에 영어로 번역되어 영국 등에 출간되었다는 기록도 찾기 힘들기에(이 작품은 물론 작가 프로필이 그 흔한 영문 위키조차 없다) 크리스티를 포함해 당대의 퍼즐 미스터리 작가들은 아마도 이런 소설의 존재 자체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소설이 어째서 뜬금없이 일본에선 유명한가 하면, 일본에 서구권 탐정 소설을 초창기에 소개시켰던 코사카이 후보쿠가 독일에 유학중이던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그것을 번역하여 일본의 탐정소설 잡지에 연재하였기 때문이다. 이게 무려 1923년, 애크로이드보다도 3년이나 먼저 일본에 소개되었다.

 

해외 추리소설이란 것이 일본에 유입되던 초창기였기 때문에 수많은 일본의 추리소설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었고, 열광했고,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된다.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 역시 애크로이드와 함께 이 소설을 나란히 언급한 기록이 발견될 정도다. 이 때문에 여러 잊혀진 고전 추리소설들이 일본에선 계속해서 복간 재복간되듯이, 이 소설 역시도 역사적인 명저로서 몇차례나 복간되고 있다. 가장 최근이 2024년이다.

 

다만 그렇다고는해도, 이는 고전에 고전까지 파먹는 극단적인 매니아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이야기.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나 '스미르노 박사의 일기'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는 보기 어렵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비록 크리스티 자신이 자부하듯 '최초'라고 할 수는 없지만(게다가 다시는 할 수 없을거란 장담과 반대로 후대에도 여러 바리에이션이 나오고 있지만), 후대에 견본이 된 '원조'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나소흑전기 | 작성시간 26.06.03 애크로이드 재밌어.. 알고 봐도 재밌음. 윌라나 밀리에서 성우가 연기하는 오디오북도 재밌음
  • 작성자적절 | 작성시간 26.06.03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다 존잼임 글도 잘쓰고 섬세하고 감정도 깊게 파고드는데 트릭도 상황도 기발함 개천재임
  • 답댓글 작성자적절 | 작성시간 26.06.03 김전일 st의 갇힌곳에서 한명씩 죽어간다는 미스테리 구조의 원형을 만든 대작가
  • 작성자아늑이 | 작성시간 26.06.03 릴리가 아이브 가을 유튜브에서 이 책에 대해 같이 얘기하던데 흥미로워서 범인 스포 당했어도 읽어보고 싶음
  • 작성자알러지같은내사랑 | 작성시간 26.06.03 애크로이드 너무 좋아함... 애거서 작품 중에 최고임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