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흠칫해 들어온 사람 많을거라 생각함, 근데 어그로 아님 진지함
글 제목을 보고선 뜬금없이 이걸 왜 교체하느냐 싶을 거임 간단하게 말하겠음
저 동상에서 찾을 수 있는 역사적 · 문화적 요소에서 한국적 특성이 없다는 거
뭔 근거로 그렇게 말하냐 싶을텐데 하나 하나 차근차근 천천히 설명해보겠음
그리고 사실 역사적 맥락상 이런 잊혀졌던 사회적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생각함
읽기 힘든 사람들은 스크롤 걍 쫙 내려서 맨 아래문단 세 줄 요약만 보셈 ㅇㅋ?
1. 장군의 동상이 입은 갑옷
일단 이순신 장군께서 활약하셨던 역사적인 시기가 조선시대였다는 건 모를 사람이 없을거란 전제하에( 설마 ;;; ) 설명하자면
압도적 비중으로 실질적인 유물들이 더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활용되었던 조선의 갑옷들은 제작 연대를 막론하고
소매와 몸체가 하나의 갑옷 형태로 통일된 '일체형' 의 모습을 보인다는 거임, 찰갑과 통상적 두정갑이 그 예시라고 할 수 있음
그 중 더 많이 발견되는 유형은 통상적 두정갑이라 봐야 할 거고(그 안에서 또 내부 갑찰 유무, 갑찰 재질에 따라 분류되지만)
황동 두정갑이나 두두미갑 같은 극소수 분리형의 경우에는 용도도 의례용으로 파악될 정도로 쓰임에 한계가 있다는 게 정설임
(근데 이것도 허벅지를 보호하는 용도의 '대퇴갑' 과 겨드랑이를 보호하는 용도의 '호액' 을 제외하면 통상적 두정갑의 형태;;;)
이게 조선시대에 공식적으로 착용하던 조선 무인(군인)들의 대표 무장방식이라 보면 됨
그림에서 보면 알 수 있듯 갑주를 착용한 무장들은 대부분 일체형 갑옷인 두정갑을 입음
(물론 두정갑만 착용하라는 법은 없음)
* 저기서 허리에 두른 건 갑옷이 아니라 '포백대' 라고 하는 천인데 갑옷을 고정시켜주고
전투시 무기 탈착 과정에서 무기에 스쳐 갑옷 겉감이 상하지 않도록 방지해주는 용도임
즉 갑옷 바로 위에 덧대는 천의 용도지, 겉에 두르는 갑옷이 아닌 거(필수 착용은 아님)
근데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이 착용한 갑옷을 위에 비교해서 보면 뭔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음?
오히려 더 익숙한 형태라면 이쪽에 더 가까울 거로 보임 근데 이건 설명 보면 알겠지만
당연히 한국식 갑옷이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갑옷들은 중국 명나라의 갑옷으로 '피박형 · 분리형' 갑옷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음
이래도 모르겠다면 아랫짤을 보면 실감할거임
이제 이해 가능? 허리에 두른 건 대충 포백대라 하여서 고증에 맞다고 치더라도
그냥 갑옷의 상하부 패턴부터 다르다는 걸 봐서는 대놓고 분리형인 게 확실한데
이걸 더 이상 어떻게 조선 갑옷으로 봐야겠음?
심지어 '산문갑' 형태는 조선을 통틀어 한국사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갑옷 양식임
물론 방호구에도 상호교류의 양상이 있어 변화된 모습을 추측하는 건 가능하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역 내에서 발견된 유물이나 기록을 통해 추측하여야 하는 거임
저런식으로 근본없는 조합은 절대 용납되어선 안되는 거임
2. 장군의 동상에 적용된 도검 무장
그리고 동상의 도검임, 그 형태는 일본도가 아니라 현충사가 소유한 '이순신 장검' 이라는 말도 있는데
말도 안되는 거 ㅋㅋㅋ 현충사가 소유한 이순신 장검은 전체 길이가 197.5cm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그 유물이라 치자, 비스듬히 들었다 쳐도 이순신 장군 키가 최소 2m 10cm 중후반이라는 거임??
* 원래 구분으로는 '장도(長刀)' 가 맞음, 편의상 장검이라 함
아무리 체격이 좋았다 감안하더라도 저걸 실전, 심지어 해전에서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는 건 아님
파고가 심하고 물살도 변화하고 그에 따라 선박의 흔들림도 심하고 가뜩이나 공간도 없는데 저걸?
무예 중 하나인 쌍수도(雙手刀) 수련용으로 썼다면 모를까, 저게 실전용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임
그 특유 매우 긴 칼 길이 때문에 쌍수도 설을 뒷받침하듯 칼자루도 날 대비 굉장히 긴 편에 속하는데
저 동상은 칼자루가 쌍수도에 비해 짧은 편임(오히려 일본도 종류 중 하나인 '오 카타나' 와 더 유사)
: 원래는 타치(太刀 : たち)가 더 맞는 표현, 오 카타나는 현대에 형성된 명칭으로 보임 ㅇㅇ
그럼 쌍수도는 뭔데 씹덕아?
[ 쌍수도(雙手刀) ]
중국 명의 장수 척계광이 왜구의 오오타치를 모방해서 생산한 모조 일본도와 그것을 사용하는 무술
조선에서는 장도(長刀)라고 불렀다가, 정조 시절에 편찬된 '무예도보통지' 에서 쌍수도로 명칭 정립
[ 오오타치(大太刀) ]
다른 이름으로는 노다치(野太刀)로 불리고 있으며, 길이만으로 2 - 3m 이상가는 제일 큰 크기의 일본도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이 명 장수인 척계광의 『기효신서(紀效新書)』 를 도입하고 전래된 무예(혹은 무기)
'쌍수도' 의 본래 형태
이와 같은 정보에 근거, 설령 저 동상이 쥔 검이 현충사가 소장하고 있는 장검이더라도
"뭐야??? 그러면 결국 일본도라는 소리 아냐?" 라 할 수 있을 텐데... 일본도는 아니지만
사용한 무구(무술)의 용례가 결국엔 일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기는 함;;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조선의 도검 무장 방식은 없었냐?" 하면 절대 아니라는 거임
일단 조선의 도검은 '환도(環刀)' 라 하는데 이건 보조 무장개념임, 왜냐? 조선은 무장상 활을 더 중시했음
그러니까 실제 전투에서 환도란 화살이 다 떨어졌을 시, 최후의 항전용으로 마지막에서야 사용하는 무기였음
이는 즉 도검의 중요도가 낮았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데 그래서 통상적으로 환도의 전체적인 칼의 길이는
일본도에 비해 짧았음
한국식 무장은 허리띠나 광다회(廣多羅)에 도검용 띠돈, 활 · 화살용 띠돈(이하 동개일습)을 함께 부착해야 함
* 허리띠나 광다회에 무기들을 부착했으면 전대(戰帶)로 그 모습을 가려 의관을 갖추는 게 무장의 마지막 순서
결론적으로 요지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착용하고 있는 칼도 저렇게 길어서는 안된다." 라는 거
결국 저 칼이 현충사가 소장하고 있는 장검이 맞다 하더라도, 일본도 종류의 무장 방식에서 기인한 것이지
장군이 실전에서 무장했을 법한 정통의 조선 무장 방식은 아니라는 거
결론 : 우리가 아는 이순신 장군의 무장은 뭐였다?
조선식 무장도, 중국식 무장도, 일본식 무장도 아닌
괴상망측 "짬뽕식" 이었다!!
3. 그럼 조선 무장 고증은 어떻게 하는데? 예시는 있냐?
당연함, 실제 고증 사례도 있었고 관련된 창작물들도 있음
대안 없이 위와 같이 주장하면 내가 이런 글을 왜 쓰겠음?
광화문만이 아니라 국회에서도 기존 충무공 동상(왼쪽)에서 해당 문제가 지적된 적이 있음
그래서 2015년에 전문가의 조언과 수많은 고증자료들을 거치며 오른쪽의 동상으로 교체함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174766
그리고 같은 시기였던 2015년, 해군사관학교가 자체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제작한 게 있음
조선시대의 두정갑주 무장과 함께 등채를 든 지휘관으로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담은 것은 물론
띠돈을 활용해 동개일습과 환도를 착용한 조선의 무장 방식 전부 잘 고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
https://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65200
이 두 장의 두정갑 작화들은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이진성' 님이 그리신 그림임
개인적으로 조선 무장과 관련한 창작물 중 가장 잘 뽑힌 창작물이 아닐까 생각함
물론, 아래 사진의 두정갑은 18 - 19세기부터 발견되는 두정갑의 양식이기도 하고
투구도 은입사 투구가 아닌 용봉문 투구라서 그 당시의 정확한 복식은 아니겠지만
두정갑 유물 중에선 가장 화려한 유형이라 이렇게 고증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함
4. 그래서 왜 해야 됨?
대한민국의 전 계층 모두가 이의없이 한 국가의 '최고 영웅으로 존경하는 위인' 을 다루는
수도이면서 가장 발달한 도시, 전통과 현대의 역사적 조화를 이룬 도시의 중심부에 세워진
'대한민국' 이라는 한 국가를 연상하는 이미지의 기능도 작용하는 '대표 랜드마크' 인 만큼
대한민국 인지도가 나날이 올라가는 현 시점에서도 광화문 동상은 국제적 명소가 되었음
그런만큼 문제는 저 모습이 한국의 역사 · 문화 요소에 대한 대표적 인식으로 박힐 수 있다는 거
더군다나 국가적인 대표위인의 랜드마크인 만큼 전통적 요소에 대한 기준점으로도 삼을 수 있음
그래서 해외의 시각에서는 제시한 이미지의 사례처럼 잘못된 고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거 ㅋ
이렇게 설명하면 간단함,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위인 랜드마크로
'중국식 갑옷' 과 '일본도' 를 홍보하고 있었다는 거 ㅋㅋㅋㅋㅋㅋㅋ
* 저 유투브 채널은 영미권 관점에서 해외의 역사를 다루는 전문 유투브임(구독자 457만명)
이렇게 쌓여진 데이터베이스들은 AI기술이 상용화된 지금에서도
그 이미지를 형성하게 하는 레퍼런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거임 ;;;
물론 직접 레퍼런스를 프로그램에 제시하고, 프롬프트를 짜면 결과가 달라지지만
일반적인 생성형 AI로는 한국의 역사, 문화 복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부족해서
인물이 착용한 주요 복식들이 중국 or 일본식 복식으로 묘사되는 사례가 대다수임
* 심지어 조선은 고증 자료가 한국사의 다른 시대에 비해 많은데도 저럼
이 상황들이 더 심각해지면 우리는 문화적 독자성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꼴임
다 떠나 드라마의 고증 요소는 민감하게 받아들이면서
'국가적 랜드마크' 에는 너그럽게 넘어가도 되는 거임?
분노도 일관적이어야 설득력이 더 생기는 거임
??? : 근데 이미 세워지고 시간 많이 지나서 저것도 하나의 역사 아님?
저 동상 세워진지도 60년에 가까워지고 있는뎅???? 내 말 틀림????
그럼, 이거 왜 없앴음???? 이것도 시간 많이 지나서 하나의 역사인데????
(1916년 착공하여 1926년 완공, 1996년 해체까지 80년의 시간동안 경복궁을 훼손한 조선총독부 청사)
언젠가라도 역사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라면 그걸 실행 못할 이유가 있음?
결국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건 시간의 문제가 아님, 의지와 인식의 문제임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48754.html
https://www.headlinejeju.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0614
https://www.donga.com/news/amp/all/20041009/8115107/9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10122355491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2194855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569520
그리고 나만 이렇게 유난인 게 아니라 수십년간 시민사회, 언론에서도 거론된 문제였음
LAST. 너무 길다. 세 줄 요약좀
설득력을 갖춰야 되는 글에서 자료도 없이 세 줄 요약만 하면 그건 또 사람들이 읽을까도 생각해보셈 ㅋㅋㅋㅋㅋㅋ
그만큼 어이가 없긴 하지만 저렇게 위와 같이 생각없이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이해심 가지고 특별히 해주겠음
- 세 줄 요약 -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교체는 결국엔 역사 · 문화적인 관점에서 언젠가 다뤄야 할 문제임
그 역사 · 문화적 관점에서 다뤄져야 할 한국적 요소들이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에선 없음
무엇보다 국가적 랜드마크이기에 심각, 이게 잘하면 한국의 역사 · 문화적 요소로 오해받을 수 있음
뭐... 긴 글 읽어주셔서 고생했고 글 읽어주신 분들 항상 행복하시길 바람 이상임
반박도 적극적으로 해도 좋음, 다만 할 거라면 사학적 근거를 두고 해주시길 바람
* 음슴체로 쓴 건 죄송합니다. 이래야 잘 읽힐 것 같아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