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9916553996
1950년대 초, 냉전이 극에 달하면서 미국은 극심한 안보 공포증에 시달렸다.
특히 6·25 전쟁 당시 포로로 잡혔던 미국인 병사들이 갑자기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모습을 보이고, 소련과 중국이 피의자들을 고문 없이 자백하게 만드는 기이한 기술을 가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CIA 국장 알렌 덜레스는 1953년 4월 13일, 적들의 '정신 개조 기술'에 맞서고 미군 및 간첩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독자적인 마인드 컨트롤 연구를 승인했다.
이것이 바로 MK울트라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이 끔찍한 음모의 총책임자는 CIA의 화학자이자 독극물 전문가였던 시드니 고틀립이었다.
그는 인간의 기존 정신과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린' 다음, 그 자리에 새로운 기억과 인격을 불어넣어 완벽한 첩자나 암살자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고틀립의 지휘 아래 프로젝트는 비밀리에 거대한 자금을 움직이며 인간의 뇌를 해킹하기 위한 잔혹한 실험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프로젝트의 가장 잔인한 점은 실험 대상자 대다수가 자신이 실험에 참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무고한 시민들이었다는 사실이다.
CIA는 의심을 사지 않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취약계층을 주 타깃으로 삼았다. 정신병원 환자, 교도소 수감자, 매춘부, 마약 중독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반 대학생과 군인들까지 실험대에 올랐다.
이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약물이나 치료인 줄 알고 고틀립의 위험한 덫에 발을 들였다.
실험의 핵심 수단은 당시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강력한 환각제인 LSD였다.
CIA는 LSD가 인간의 방어 기제를 무너뜨리고 진실을 말하게 하거나, 정신을 붕괴시켜 조종하기 쉽게 만든다고 판단했다.
고틀립은 심지어 스위스의 제약회사로부터 전 세계의 LSD 물량을 사들이기까지 했다.
피실험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음료나 음식에 탄 LSD를 복용당했고,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70일 이상 연속으로 환각 상태에 방치되며 정신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CIA는 실험실 밖 실제 생활 환경에서의 반응을 보기 위해 매춘부들을 고용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이른바 '자정의 공작'으로 불린 이 작전은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 위장 안가를 차려놓고 매춘부들이 민간인 남성들을 유인하게 한 뒤, 도중 남성의 술에 LSD를 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요원들은 특수 제작된 매직 미러 뒤에 숨어 침실에서 남성들이 환각 증세를 보이며 괴로워하거나 이상 행동을 하는 모습을 태연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정신을 개조하려는 집착은 화학 약물에만 그치지 않았다.
고틀립과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에게 일반적인 상상을 초월하는 물리적·심리적 고문을 병행했다.
감각을 완전히 차단하는 격리실에 수일간 가두는 감각 박탈 실험, 뇌에 영구적인 손상을 줄 정도의 강한 전기 충격 요법, 그리고 환자를 인위적인 혼수상태에 빠뜨린 후에 헤드폰을 씌워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같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수십만 번 반복해서 들려주는 세뇌 공작 등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행되었다.
이 거대한 반인륜적 범죄는 CIA 독단으로만 치러진 것이 아니었다.
프로젝트는 미국과 캐나다 전역의 80여 개 일류 대학교,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와 연계되어 있었다.
수많은 저명한 정신과 의사와 과학자들이 CIA의 자금(종종 가짜 재단을 통해 세탁된 돈)을 받아 실험에 동참했다.
이들은 학자라는 탈을 쓰고 고문 기술을 정교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캐나다 맥길 대학교의 이웬 카메론 박사 같은 인물은 환자들을 도구로 삼아 극단적인 정신 파괴 실험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평생을 지울 수 없는 환각과 정신분열증에 시달린 이들이 부지기수였고,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망자는 생화학자이자 군 연구원이었던 프랭크 올슨이었다.
그는 1953년 CIA 동료들과의 모임에서 자신도 모르게 LSD가 든 술을 마신 뒤 극심한 피해망상에 시달리다 일주일 후 뉴욕의 한 호텔 13층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정부는 오랜 기간 이를 단순 자살로 위장했다.
1970년대 초,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정부의 비밀 공작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당시 CIA 국장이었던 리처드 헬름스는 1973년 프로젝트의 전면 중단을 명령했다.
(동물의 뇌에 전극을 영구적으로 심은 뒤 고전적 조건형성 실험을 통해 특정 자극이 어떤 행동 반응을 유도하는지 분석하여 뇌의 지형적 위치를 밝혀내고, 이와 관련해 구소련을 비롯한 해외 연구 문헌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겠다는 내용의 기밀해제 문서)
동시에 그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정부 공식 문서와 실험 기록을 소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로 인해 수만 장의 원본 서류가 잿더미로 변했고, 프로젝트의 핵심 디테일은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히는 듯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세상에 나와도 미친 사람의 유언비어나 음모론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1975년, 미 의회의 '처치 위원회'와 록펠러 위원회가 CIA의 불법 민간인 사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꼬리가 잡혔다.
재정 기록 등 소각을 피해 살아남은 일부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미국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벌인 추악한 생체 실험의 전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결국 1977년 상원 청문회를 통해 공식 사실로 인정되었고, 1993년이 되어서야 빌 클린턴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이 프로젝트는 국가 권력이 통제를 잃었을 때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짓밟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낙인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