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흥미돋]삼촌이 뺏어간 왕위 되찾고 영토도 되찾으려 했던 소년왕이 천재지변을 만나버린 한국사 이야기

작성자동그란물밖에못먹어요|작성시간26.06.19|조회수2,237 목록 댓글 11

출처: 여성시대 동그란물밖에못먹어요





370년대 백제 침류왕의 장자 부여아신이 태어남





침류왕 어디서 들어봤는데? 하는 여시들은 한국사에 관심이 있으시군요?
침류왕은 백제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근초고왕의 손자인데 백제 최초로 불교를 수용한 왕임. 그래서 한국사 시험에 단골 출제됨.
아무튼 이 침류왕은 아들이 고작 10대 초반밖에 안됐을때 승하해버림. 그래서인지 침류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것은 아들 부여아신이 아니고 침류왕의 동생 부여진사였음.
진사왕이 즉위를 한건 조카 부여아신이 너무 어리단게 그 이유였는데 사실상의 찬탈로 보임.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스토리지요?





수양: 희희재밌다
단종: 미친숙부아냐ㅠ
부여아신은 백제판 단종 비스무리한 것이 된 것임. 그런데 진사왕이 왕위에 오른지 8년만에 죽어버림. 아들이 없었던건지 심지어 왕위는 원래 주인이었던 조카 부여아신에게로 돌아감.
단종루트를 피해버린 아신왕 ㅊㅋㅊㅋ 끝.






일리가 없겠죠?

삼국사기에는 부여아신의 즉위 과정에 대해 진사왕이 백제 행궁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아 부여아신이 뒤를 이었다 정도로 간단하게 서술했음. 다만 동시대 일본쪽 자료에서는 조금 다른 흥미로운 얘기를 하고 있음.
삼국사기는 고려시대에 편찬되었고 백제의 역사서는 모두 소실되어서 진짜 전말을 알 수 없는 상태라 일본쪽 자료의 흥미로운 설이 꽤 알려진 편임. 그래서 이 설을 소개해보겠음.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겼지만 부여아신은 호락호락한 소년이 아니었음.

부여아신은 빼앗긴 왕위를 되찾겠단 마음을 늘 품고 있었을거임. 때마침 바다건너 백제의 동맹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와 진사왕의 사이가 점점 틀어지자 그와 손을 잡은 것으로 추정됨.
그래서 그 나라가 어디냐.







바로 왜구 등장.
그렇게 왜와 손을 잡고 때를 기다리던 부여아신에게 기회가 찾아옴. 사실 숙부 진사왕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족족 패전을 거듭하다 지금의 경기 북부와 황해도 일대의 영토를 잃었음. 안그래도 조카의 자리를 차지해서 정통성이 약했던 진사왕은 민심까지 잃고 입지가 작아진거임.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부여아신은 마침내 삼촌 진사왕을 몰아내고(아마도 죽이고) 8년만에 왕위를 되찾음.






이런 아신왕이 즉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뭐였겠음? 바로 숙부가 빼앗겼던 백제 영토 되찾기였음.
진사왕도 그렇고 아신왕도 그렇고 근초고왕대의 백제 전성기를 이어가려는 꿈이 있었을거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음.

그래서 아신왕은 즉위 다음해, 숙부가 마지막으로 빼앗겼던 관미성(지금의 강화도 일대) 탈환을 위해 군대를 보냄.
백제군은 관미성을 포위하는데 성공했지만 끝내 탈환하지 못하고 물러섬.

또 그 다음해, 지금의 황해도에 위치한 수곡성을 공격했지만 직접 5천의 기병을 이끌고 나온 고구려 왕에게 패배함.
또또 그 다음해, 다시 백제군을 보냈지만 이번에도 직접 7천의 기병을 이끌고 나온 고구려 왕에게 패배함. 심지어 이때는 백제군의 수가 더 많았다고 함.
결국 아신왕이 직접 백제군을 이끌었지만 이번엔 한강을 건너자마자 눈이 미친듯 내려 되돌아와야 했음.





그리고 이쯤되니 고구려 왕도 결국 폭발해버린 것임.
그냥 좀 패버려서는 안되겠고 아예 박살을 내야겠단 결심을 함. 결심한 즉시 고구려는 백제의 수십개 성을 함락시키며 남하해 백제의 수도 한성까지 손에 넣는데 성공함.





즉위 4년 만에 수도를 함락당한 아신왕은 결국 고구려 왕 앞에 무릎을 꿇었음.
그리고는 이제부터 영원토록 당신의 노객(=신하)가 되겠습니다, 라고 굴욕적인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음.

아신왕이 무모하다고 볼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당시의 아신왕이 얼마나 자신만만했겠음? 어린 나이에 왕위를 빼앗겼지만 기어이 돌아와 숙부에게서 다시 왕위를 되찾았음. 그것도 고작 8년만에. 기록상 많아봐야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이니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지 않았겠음? 또 당시 여론도 근초고왕 때의 영토를 되찾겠단 아신왕에게 공감해서 즉위 초기인데도 원정이 가능했을거임.
거기다 상대 역시 자기와 비슷한 시기에 왕이 된 젊은 청년에 불과했단 말임.
그런데 하필 그 왕이 누구였냐면





고작 10대에 고구려 왕이 되어 재위 21년간 고구려의 영토를 한반도에서 만주까지 팽창시켜 고구려를 동아시아 패권국으로 만든 한국사 최고의 정복군주, 광개토대왕이었음.

아신왕이 자꾸자꾸 진 이유는 아신왕이 무모해서도, 포기를 못해서도 있겠지만 아신왕의 대진운이 한국사를 통틀어 최악이었던거임.
어떻게 보면 사실 대진운이란 말보다 천재지변에 가까운 수준임.
그래서 백제 기록도 잘 없는데 아신왕이 광개토대왕 앞에 무릎 꿇고 노객이 되겠다고 한걸 어떻게 알았느냐면 광개토대왕릉비에 저게 박제 되어있음. 상대가 한국사 최고 네임드여서 다른 기록은 많이 없는데 저런 기록은 잘 박제가 되어버린…(






근데 놀랍게도 버티고 버티는게 특기인 아신왕은 이번에도 포기를 안했음. 광개토대왕의 노객이 되겠다며 항복하고도 곧 다시 가야-왜 연합군을 구성했고 고구려와 신라를 여러해에 걸쳐 공격함.
하지만 상대는 누구다? 광개토대왕이었다ㅠ 당연히 또 계속계속 깨졌음.
그리고 재위 12년 내도록 고구려와 신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아신왕은 마침내 수도 한성 일대의 영토 일부를 수복하고 승하함.

사실 아신왕의 당대 평가는 최악에 가까웠을 것임. 고구려와의 무모한 전쟁으로 많은 백성들이 죽고 삶은 피폐해졌을 것이고, 가야-왜와의 연합 역시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왔을 것임.
실제로 한성 함락 이후 또 전쟁을 하려하자 백성들이 집단으로 징집을 거부해 전쟁을 하지 못했다거나 백성들이 아예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갔단 얘기도 있었음.







아신왕의 가장 큰 잘못은 왕은 때로 포기하는 법도 배워야한단걸 몰랐단 점이었을 것임. 도저히 이기지 못할 상대를 만나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음.
다만 왕위를 빼앗겼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광개토대왕이라는 천재지변을 만났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항복한 뒤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아신왕의 근성 자체는 흥미로웠음.
진짜 끝.





여시들도 재밌게 읽었다면 또 흥미로운 얘기 있을 때 돌아올게. ㅃ2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달빛구름 | 작성시간 26.06.19 아니 하필 ㅋㅋ 광개토대왕 ㅠㅠㅋㅋㅋㅋㅋㅋ
  • 작성자힘찬하루 | 작성시간 26.06.19 시대에 천재가 내가 아니라니 비극
  • 작성자송몽인 | 작성시간 26.06.19 아신 저 미친쇢 천재지변을 마주쳤으면 좀 사려야지 부하들은 개죽음 당하고 백성들은 존나 개고생했네
  • 작성자안챠 | 작성시간 26.06.19 대진운 최악
  • 작성자허세가심한사람 | 작성시간 26.06.19 흥미돋 재밌어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