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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했던 이들마저 벌벌 떨게 했던 전설적인 존재. 잔혹한 범죄가 일어나는 곳엔 어김없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그는 강력반 공형사였다.
공형사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건 1978년 9월 부산의 한 재력가 집에 전화 한통이 걸려오면서부터였다.
아무런 말없이 뚝 끊어진 전화. 똑같은 패턴의 전화가 9번이나 이어진 뒤에어야 수화기너머 들려온 낯선 목소리. 부부의 9살난 외동딸을 납치한 납치범이었다. 편지를 보냈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은 범인.
며칠 뒤 한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딸아이가 직접 쓴 편지와 더불어 범인이 왼손으로 쓴것으로 보이는 협박메시지도 있었다. 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5천만원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아이가 영영 살아돌아오지못할수도있다는 생각에 부모의 마음이 매일같이 타들어가던 가을, 한 경비원은 자전거를 타고 몇시간째 아파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 발생한 가벼운 접촉사고, 경비원은 갑자기 운전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얼떨결에 제압당한 그 운전자는 바로 유괴범이었다. 이미 탐문수사를 통해 용의차량의 차종과 번호 일부를 알아낸 공형사가 경비원으로 잠복해 연극을 벌인끝에 잡아낸 쾌거였다. 아이는 33일만에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끝까지 아이를 포기하지않고 범인을 잡아낸 집념의 형사. 아무리 어려운 사건도 끝내 실마리를 풀어내며 범인을 검거해온 그는 4번의 특진을 했다. 순경에서 시작해 총경이 된 경찰관, 부산 경찰의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스토리는 37년뒤 영화로 만들어져 실화기반 리얼리티 스릴러물로 약 280만객석의 흥행을 몰고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 전설의 공형사와 기이하게 엮인 인연이있다. 21년이라는 긴 시간을 무기수로 감옥에서 보내야했다는 최인철씨.
모범수로 감형되 8년전인 2013년 세상에 나온 그의 죄명은 살인이었다.
1990년 겨울, 부산 엄궁동의 갈대숲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여인. 한때 부산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2인조 낙동강변 살인사건이 발생한것이다.
2인조범인들은 엄궁동 강변에 차를 세워두고 데이트를 즐기던 연인을 가스총으로 위협한 뒤 여성을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했다고한다. 범인들과 격투끝에 간신히 달아났다는 피해남성의 목격진술과 현장에 남아있던 범행 흔적에도 불구하고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사건발생 1년 10개월뒤 한남자가 공형사가 형사과장으로 근무하던 곳에 범인으로 잡혀오면서 수사는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된다. 그남자가 바로 최인철씨였다.
곧이어 최인철씨가 지목한 친구 장동익씨도 검거됐다.
억울한 누명이라 주장했던 그들의 말은 아무도 귀기울여듣지않았다.
3심까지 이어진 재판 끝에 결국 두사람은 무기수가 됐다. 그렇게 두명의 살인범이 생겨났고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해결됐다.
그리고 지난 2월 4일, 사건 발생 30년이 지난 뒤에야 열린 재심 법정에서 재판부는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였던 그들은 어쩌다 30년이라는 세월을 살인범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했을까? 당시 두사람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낸 수사팀을 이끌던 형사과장, 그가 바로 공형사였다.
그들에게 부산 경찰의 전설이라 불리던 공형사는 남다른 기억으로 남았다고한다.
먼저 경찰에 붙잡힌 최인철의 진술때문에 영문도 모른채 경찰서로 끌려왔다는 장동익씨. 최인철씨가 경찰에 체포된건 살인사건과는 무관한일때문이었다.
공무원을 사칭해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조사중인 최인철씨에게 경찰이 갑자기 공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물고문을 견디다 못한 최인철씨가 공범으로 친구 장동익씨를 지목하자 경찰은 두사람에게 또 다른 사건을 추궁하기 시작했다고한다. 그게 바로 낙동강변 살인사건이었다.
살해된 박여인은 두개골이 분쇄되 많은 피를 흘렸다. 사건의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김씨는 차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 박씨가 물을 뜨러가는 사이 가스총을 든 두명의 괴한이 차량을 습격했고 접착테이프로 자신의 두손을 결박 한 뒤 물을 갖고 돌아온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장동익, 최인철씨는 그날 그 현장엔 가지도않았고 알지도못했던 사건이라 주장했지만 소용없었고 가혹행위가 계속 됐다고한다.
2020년 그알 제작진은 공형사를 만난적이있었다. 너무 오래된 사건이라 범인의 이름조차 기억나지않고 더더욱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결문 검토만으로도 당시 수사에서 가혹행위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박변호사는 판단한다.
장동익씨와 최인철씨가 살인혐의로 조사받던 시기, 경찰서 유치장에 함께 있던 수감자들은 당시 두사람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하고있었다. 동료 수감자들에게도 생생했던 가혹행위의 흔적.
장동익씨는 진술이 바뀐 그날 고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각목으로 박여인을 살해했다는 최인철씨의 진술이 시신의 상태와 맞지 않았기때문이었다.
재판부는 비슷한 가혹행위를 당했다 무죄로 풀려난 홍씨의 증언을 비롯해 장동익씨와 최인철씨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등을 근거로 사건을 다시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재심을 시작했고 마침내 두 사람은 30년만에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경찰은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
경찰의 사과문은 어딘가 익숙했다. 화성 8차사건 재심으로 윤성여씨가 무죄를 받은 뒤 발표했던 사과문과 상당히 비슷한 문장들.
무죄판결이후 진정한 사과를 해야할 당사자들의 입장은 달라졌을까? 당시 수사책임자인 공형사를 다시 만난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
자신이 아는 한 당시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는 없었다는 그는 자백을 받아내란 말도 한적이 없다고 말한다.
고문가해자로 지목된 다른 형사들의 입장 또한 다르지 않았다.
당시 장동익씨와 최인철씨는 검찰 조사에 이르러서야 경찰의 가혹행위를 말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고한다. 그때 담당 검사를 두사람은 직접 찾아간 일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사과는 커녕 진실을 말해주려하지않았다. 두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버린 낙동강 사건.
아직 찾지못한 진실은 낙동강 갈대숲 어딘가에 남아있을것이다. 한겨울 캄캄한밤, 이곳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여인. 피의자 박씨를 잔인하게 살해한 후 현장을 빠져나간 범인은 과연 누굴까?
그런데 사건 발생 다음날 발간된 지역신문에 뜻밖의 내용이 있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생존자인 피해자 김씨에 대한 의혹기사였다.
당시 취재 기자는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범인에게 자신을 결박할 도구가 트렁크안에 있다고 알려줬다는 피해자 김씨의 진술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기자. 게다가, 무엇보다 도망친이후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지않은점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최초 신고자는 피해자 김씨가 아니라 그를 치료한 병원의 의사였다.
김씨의 상처는 얼굴을 비롯해 신체 전면부에 집중되어있었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2인조 범인 중 키가 작은 범인과 물속 격투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 사람이 바로 장동익씨다. 그런데 그는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인해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다. 30년전에도 시력이 좋지않았던 동익씨. 김씨의 진술대로라면 앞도 제대로 보지못하는 그가 물속까지 따라가 캄캄한 밤에 격투까지했다는게 된다. 이게 가능할까?
분명한건 그날 김씨도 꽤 큰 부상을 입었다는사실이다. 그런데, 상처 부위를 살피던 법의학자는 조심스럽게 다른 가능성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날의 진실을 알고있을 피해자 김씨.
김씨는 이미 오래전 지병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그런데 장동익씨와 최인철씨의 혐의에는 낙동강변 살인사건이 전부가 아니었다. 현직 경찰을 상대로 한 특수강도 혐의도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 또한 이번 재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사건 피해자인 경찰관 한씨는 재심 결과에 대해 무척 억울하다고했다.
무죄판결에 그는 동의할수없으며 두사람이 범인인게 확실하다는것이다.
경찰관 한씨가 당했다는 강도사건은 89년 12월 새벽 한적한 강변도로에서 일어났다고한다. 차안에서 데이트를 즐기고있던 한씨는 2인조 강도에게 난데없이 습격을 당했다고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과 몹시 흡사한 상황. 봉투에 넣어뒀던 7만원을 그대로 줬다는 한씨. 그러자 그를 결박시킨 뒤 트렁크에 가뒀다고 한다. 결박을 풀고 한씨가 트렁크에서 빠져나오자 이를 보고 놀란 범인들을 달아나버렸고 그도 인근 파출소로 달려가 피해사실을 알렸다는게 한씨의 진술이다.
그로부터 2년뒤, 그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경찰들이 데려온 두사람을 보자마자 그는 그들이 범인임을 단번에 알았다고한다. 어떻게 알았을까?
당시 덩치큰 범인이 문을 여는바람에 차량 실내등이 켜졌는데 그때 본 범인이 최인철씨였다는것이다.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차로 다시 돌아왔을때 여성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고한다. 하필 그날 처음 만난 사이라 그녀의 이름조차 알지못한다는 한씨. 그는 이사건의 유일한 피해자이자 목격자인셈이다.
그런데 재심 재판부는 두사람이 범인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한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않았다.
당시 이루어진 경찰 조사에서 한씨는 이런말을 했다. 사건 당시 인근 파출소로 달려가 신고했다고 진술했던 그는 무슨이유에서인지 신고접수는 하지않았다는것이다.
그 뒤 1년을 수사하며 범인을 추적해왔다는 한씨. 정작 그는 파출소에서 자신의 피해사실을 들은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밝히지못하고있다. 그런데 이상한점이 있다. 한씨의 사건은 신고도 안된 2년전 사건인데 어떻게 낙동강변 살인사건 담당 형사들은 그가 피해자임을 알고 장동익씨와 최인철씨를 용의자로 데려간걸까?
재심재판부도 이부분에 강한 의문을 드러냈다.
그리고 지난 2월 4일 재심 재판부는 한씨가 진술한 사건이 실제 발생하지않았을가능성도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자백밖에 없는 이사건에서 한번도 강력범죄를 저지른적 없는 두사람을 강도살인범으로 만들기 위해서 경찰은 또 다른 사건이 필요했던것으로 보인다.
힘들고 외로웠을 그간의 여정,
그들에게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과를 전하는 일, 당사자들만이 할수있는일일 것이다.
영화 "극비수사" 그리고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이 두가지를 모두 알고있는 사람들은 있을것이지만, 등장하는 두 형사가 동일인물이라는것을 아는이는 그리 많지않다.
아동 유괴사건을 사상자없이 무사히 종결지은 전설의 형사 공길용. 그리고 고문과 가혹행위, 기록조작과 허위증거로 자백을 받아 두 가족의 삶을 나락으로 보내고 총경퇴임후 제주도에서 편안한 여생을 즐기고 있는 공OO형사.
현실은 때로는 영화보다 훨신 추악하다.
며칠전 난 기사.
'낙동강변 살인사건' 위증 혐의 전직 경찰 4명 재판행…1명 불기소
'낙동강변 살인사건' 고문 경찰들 법정으로... 사법부 판단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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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qpzm 작성시간 26.08.12 마자 저 변호사님은 재심전문변호사셔...자세한건 모르지만 돈도 안되고 어려운 재심 대상자들 도와주시는 걸로 알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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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루비로망 작성시간 26.06.29 와 진짜 황당하고 분하다. 저런 인간이 영웅소리 들으며 잘 살았을 거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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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세인트 엑소시스트 작성시간 26.06.29 아무리 생각해도 김씨가 경찰한테 뒷돈 찔러줘서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간것 같다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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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가오니너무귀여워 작성시간 26.06.29 저 당시 경찰들은 진짜 걍 고문해서 자백으로만 범인 집어넣은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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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래를 타고 떠나는 여행 작성시간 26.06.29 저거 인간 맞냐? 허위자백 받아서 가짜 범죄자 만들고 영웅소리 듣고 잘 살고 있으니까 좋냐고
대대손손 그 업보 그대로 맞으면서 살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