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흥미돋]조선시대 강에 다리를 놓기 힘들었다는 증거들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6.07.15|조회수5,116 목록 댓글 14

출처: https://www.fmkorea.com/10069923959

 

다른 나라를 보면, 아주 오래된 다리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심지어 나무로 만든 것들도 말이죠.

 



스위스 루체른의 로이스강을 가로지르는 카펠교입니다.

 

아주 긴 목교로, 1360년경 지어진 이후 1993년 화재 전까지 거의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 니시키가와강을 가로지르는 긴타이쿄입니다.

 

다리 일부에 석재가 쓰이긴 했지만, 사진에 보이는 부분도 그렇고 대부분이 목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무주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섶다리입니다.

 

"다리가 허접한 것을 보니 역시 조선의 기술력 수준"

"토목기술발전할시간에슈뢰딩거의세자실험이나하니까대동여지도런던베이글당하지"

 

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다리의 공식 목적이 "초겨울부터 여름까지 사용했다가 장마 때 떠내려가도록 만든 다리" 입니다.

 



아직도 장마 때 떠내려가면 다시 짓는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한국이 하상계수가 얼마나 높은지 새삼 놀라워집니다.

 



"아니 그럼 조선은 다리가 없음?"

 

그래서 다리 사진들을 다 모아 봤습니다.

 

아래 목록을 쭉 봅시다.

 

-----------------------------------------------------

 

 

 

서울 청계천 수표교

 

청계천에 있다가 현재는 장충동으로 옮겨졌습니다.

 



논산 채운면 원목다리

 



순천 선암사 승선교

 



보성 벌교읍 홍교

 

돌 색이 다른 것을 보면, 윗부분은 다시 복원된 듯 보입니다.

 



창녕 영산면 만년교

 



고성 건봉사 능파교

 



서울 중랑천 살곶이다리(제반교)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없었기에, 이 다리가 동쪽에서 오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게 기적일 따름

 



안양 만안구 만안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만든 다리입니다.

 

높은 사람이 움직여야 인프라가 깔리는 건 저 때나 지금이나...

 



고흥 옥하리 홍교(흥양읍성 수문)

 

이름은 홍교이지만, 지금은 사라진 흥양읍성의 수문이었습니다.

 

수문이면 적을 막는 기능도 있어야지, 왜 아치가 저렇게 크냐구요?

 

작으면 장마철을 못 버팁니다.

 



서울 청계천 광통교

 

청계천의 다리들 중 유일하게 현재 청계천 본류에 위치한 다리입니다.

 



강전 전라좌도병영성 홍교

 



서울 백운동천 자수궁교

 

백운동천은 청계천의 본류입니다. 지금의 경복궁 서촌 부근을 관통했죠.

 

물론 자수궁교는 지금 없습니다. 도로 밑 어딘가에 있을 듯.

 



서울 제생동천 종묘전교

(문자 그대로 '종묘 앞 다리')

 

창덕궁 쪽에서 흘러온 제생동천은 여길 지납니다. 지금은 다 복개 상태.

 

따라서 밑에 물이 차 있는건 하천이 아니라 비가 와서 잠긴 겁니다.....

 



서울 창덕궁 존덕정 석교

 



논산 강경천 미내다리

 

 

 

진천 세금천 농다리

 

무려 고려시대 초에 지어진, 1000년이 넘은 다리입니다.

 



옥천 안내면 청석교

 

설명이 맞다면, 무려 신라 문무왕 때인 660년에 지은 다리입니다. 1500년이 넘었죠.

 

원래 군북면에 있던 다리라고 합니다.

 

 

 

함평 고막천 석교

 



개성 선죽동 선죽교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물리치료(진) 당한 장소로 유명합니다.

 

고로 이 다리도 최소 고려 때 다리라는 것이죠.

 



청주 상당구 남석교

 

지금은 도로 밑에 잠들어있는 다리입니다.

 



창원 주남저수지 석교

 



여수 흥국사 홍교

 



인천 강화산성 수문

 



순천 송광사 능허교

 



영변 철옹성 북문(겸 수문)

 

북한 영변에 있었고 위성사진으로도 남아있었습니다만...

 

당연히 관리가 되지 않아 현재는 위성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고성 유점사 산영루

 

금강산에 있던 사찰들이 다 그러했듯,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사라졌습니다.

 



경주 월성지구 월정교

 

신라 때 만들어졌고, 현대에 복원된 다리입니다.

 

-----------------------------------------------------

 

지금까지 쭉 봤을 때, 공통적으로 보인 특징은 이것입니다.

 

큰 강. 특히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을 지나는 다리는 없습니다.

 



하상계수 이야기는 다른 게시물들도 많이 언급했으니 넘어가고,

 

결국 이 괴랄한 '장마철'을 넘길 수 있느냐의 문제에서, 

 

지역의 군소 하천 정도를 지나는 다리 정도는 이를 버틸 수 있었기에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사실 이마저도 지속적인 관리가 없으면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철근 콘크리트가 들어가도 장마 한 번, 태풍 한 번에 무너지니까요.

 

그렇기에 위 목록에서 몇백년을 버티고 있는 다리들이 더 대단한 이유입니다.

 


(이 다리는 광통교입니다)

 

괜히 선조들이 정월 대보름에 '답교놀이(다리 밟기)'를 했던 게 아닙니다.

 

답교놀이의 목적이 한 해 자신의 다리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행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장마가 와도 무너지지 않는 다리가 더욱 효험이 좋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모르니 여러댓펌


(뒹쉰등장댓)여러 변명해봤자 인구 규모에 비해 인프라 관리가 너무 안된게 맞음

 

예를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전근대 한반도계 국가 전체가 피해갈 수 없는 결론이라고 생각해서요.

 

아니 지으면 날아간다니까 습박
전근대에 그걸 어떻게 극복해요

 

21세기 기술로 지은 인프라도 장마에 작살나는게 한반도인데 전근대에 인프라 관리를 어케함ㅋㅋㅋ

 

현대에도 심심하면 도로가 박살나고 다리가 수몰되는 나라인데 전근대 사람들이 뭘 어쩔수 있었겠음. 한반도 자연을 JOT으로 본다는거임


함흥의 만세교도 멋진 다리죠.

 

생각해보니 만세교도 목교였는데 제가 넣는 걸 잊었군요. 성천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였는데...

 

저런 하상계수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내내 강의 본류에 목조다리가 유지된 케이스가 있는데 정작 그게 본문에 빠졌네.. 바로 함흥성 서문 밖 성천강 본류에 놓인 성천교, 또는 만세교라고 불리는 다리였음. 무려 조선 태조 때부터 500년간 유지되었는데 물론 처음 다리가 그대로 500년 뒤까지 남아있지는 못했겠지만 1905년까지 옛 전통목교가 유지되고 있었고 지금도 원래 다리가 있던 똑같은 자리에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있는데 길이가 500미터임. 이 기사 및 이 기사를 근거로한 나무위키에는 길이가 83미터라고 되어있는데 83미터도 전근대 다리로는 길지만 성천강 본류를 가로지르는 다리라 83미터는 말도 안되고 오류로 보임 실제로 옛 사진으로 남아있는 파괴되기 전 전통목교 사진을 봐도 어림잡아 수백미터는 되어보임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5192023 하고 https://stonehinge.tistory.com/6661077 하고 https://blog.naver.com/ohyh45/221364073088 링크 속 사진에서 다리 교각 옆으로 비스듬히 대각선으로 덧댄 나무가 있는 옛 다리가 조선시대 전통목교임

 

목조다리 짓는 기술이 뭔가 대단한 기술이고 조선은 기술이 없어서 못지은 거라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는 기술적으로 누각이나 아니면 전통 민간주택에서 누마루를 짓는 기술과 완전히 동일하죠. 기둥 밑에 물이 차있는 점만 다를 뿐.. 그래서 궁궐에는 건물과 건물을 잇는 행각 밑으로 사람이 통행할 수 있도록 뚤려있는 교각 형태로 건설된 행각이 많이 남아있죠 그 아래가 땅인 점만 다를 뿐... 아치 형태의 목교는 누마루와 약간 다른 기술이긴 한데 이것도 경복궁 향원정에 복원품이긴 하나 전통 아치목교가 남아있죠


진천 농다리 꼭 한번 가봐라.

손으로 하나하나 쌓아서 만들었다는데 실제 보면 존나 신기함.
다리 골 하나하나가 댐처럼 되어서 방류되는 형식이더라.


우리나라 하상계수가 유독높은 이유아는 분 나와주세요

 

애초에 연강수량이 국제평균의 약 1.5배 되는 비가 많이 오는 나라인데 그게 또 연강수량의 거의 60~70%가 여름철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퍼붓는 개미친 기후라서 그렇습니다. 당연히 하천의 물높낮이가 미쳐날뛰게 되죠


진짜 문명을 일구고 살기엔 자연 환경이 빡센 동네야

----------------------------------

그렇다기에는 다른 장점도 많음. 산지가 많은건 역설적이게도 전근대 기술로도 통제하기 쉬운 적절한 규모의 수원지가 많다는 이야기고 이를 통해서 농업이 발달함. 이미지와 달리 너른 평야가 아니라 동네 뒷산 정도 산이 골고루 있어서 계곡물이 흐르는게 농사짓기 더 좋음.
또 겨울이 추우니 전염병이나 해충의 창궐도 덜한편임.
마지막으로 장마철에 비가 한번 싹 쓸어주니까 영양분도 빠지지만 반대로 땅에 축척된 토양 독성이나 염분도 같이 빠져서 한반도 땅은 연작 장애가 적은편임.

괜히 인구 밀도가 전근대부터 높았던 땅이 아님. 장점이 없었으면 그랬을리가 없지

----------------------------------

그 수원지에서 내려오는 물이 깨끗하게 자연 정수된 물이었지..거기에 추가로 그냥 마을 뒷산만 오르면 요리나 난방에 필요한 땔감을 손쉽게 장만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에 사냥감이나 버섯, 나물등 여러 임산물들도 쉽게 얻을 수 있었음.. 전근대는 한국땅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기초자원들을 하루 생활 반경 안에서 모두 수급할 수 있는 땅이었음. 관계농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수시로 범람하는데다가 평평해서 물을 끌어오기도 힘든 대평원과는 달리 산에서 늘 항상 계곡물이 내려오는 환경에서 빗물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계곡물을 물길 살짝 돌려다가 산 기슭에서 농사지으면 되는 한반도가 농사짓기 훨씬 편했음. 그래서 청동기는 물론 고려시대에도 농지는 주로 산기슭 산 언저리에 주로 분포했음. 깨끗한 물도 마을 우물이나 계곡에서 마음껏 쓸 수 있고 요리나 난방에 필요한 목재도 마을에 붙어있는 뒷산 올라가 반나절만에 가득 구하고 육류도 뒷산에서 사냥하면 꿩, 사슴 등등 쉽게 구하고 심지어 어패류나 소금까지 인접한 큰 강, 바다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음. 그 바다 또한 각각 갯벌과 대륙붕의 서해, 따뜻한 다도해의 남해, 한류와 난류가 뒤섞이는 동해가 서로다른 특색을 갖춘 황금어장이었음

----------------------------------

사실 나쁜건아닌데 제일나쁜점은 다른주변국가에비해 추운곳이라 한반도 중북부부터는 2년 3모작을해서 농사해야할정도로 식량생산자체는 타국인 일본 중국보다 밀린다는거 특히 남부는 이모작이 가능한데다가 모내기도 할수있어서 타국에비하면 괜찮은데 평안도같은 북부는 이모작도 모내기도안되서 같은면적 단위생산량도밀리고 추가적인 식량도 못수급하는지역이니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shineonme | 작성시간 26.07.15 선암사 다리가 찐이야. 양옆에 고목들이 우거져서 여름에 정말 시원하고 초록초록해
  • 작성자잼마에 | 작성시간 26.07.15 장마철... ㄷㄷ
    그리고 우리나라 강 느그나라 유명한개천(강이라고함) 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크거든!?
  • 작성자용맹한 폭주 젤리코 | 작성시간 26.07.15 와 멋있다..
  • 작성자요키는사랑 | 작성시간 26.07.15 진천 농다리 추천~
  • 작성자귀여운가나지야 | 작성시간 26.07.15 흥미돋.. 천년이 넘은 다리들 가보고싶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