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10141927445
흔히 한국사를 배우다보면
삼국 시대 때 한강 유역의 점유에 따라
그 나라의 전성기 여부가 갈리는 느낌을 받는다
대충 한반도 정중앙에 있어서 지리적으로 좋다
중국과 교류하기 좋다 등등의 이유가 있지만
고대 한반도 해안선을 보면 여기가 왜 개사기 땅인지 알 수 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원래 황해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였다
불과 1만 2천년 전까지만 해도
황해 전체가 중국과 연결된 거대한 평야였고
동해는 바다가 아니라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둘러쌓인
거대한 호수였다
현 시점 가장 정확한 고대 한반도 해안선 지도
아무튼 간빙기 이후 황해 평야는 바다 밑으로 잠겼고
대한해협이 열리며 동해 호수는 바다가 된다
그리고 대충 서기 300 ~ 500년 정도가 되면
우리에게 익숙한 한반도 지형이 보이는데
문제는 자세히 보면 해안선이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한강이 개사기 땅이 되버린 건데...
※ 동아시아 역사지도을 중점으로 보겠지만
해안선 상승 프로그램으로 비교해서
실제 해안선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힘
일단 변한, 진한이 있던 경상남도부터 보면
왜 가야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일종의 그리스 폴리스 도시국가처럼
나뉘어져 있는지 이해가 가는 수준
이 때는 바닷물이 내륙 깊숙히 들어와서
우리 생각보다 더 해운의 중요성이 크던 시기
이 때 김해평야는 걍 바다
일단 이때는 김해 평야는 없던 상태
이때는 바닷물이 무려 밀양 앞까지 들어온 상태라서
흔히 철로 무역해서 먹고 살았다는 가야 제국들이
왜 그렇게 교역량이 많았는지 이해가 갈 수준
또한 해안선이 내륙까지 들어와서
지금은 죄다 내륙인 가야 도시 국가들도
이 때는 무슨 이탈리아 도시국가 마냥
바다를 끼고 교역을 할 수 있었다
마한 지역의 중심지인 전라북도
역시 이 당시엔 바닷물이 꽤 깊숙히 들어온 상태
당연히(?) 호남평야는 당시 바다 밑에 있었다
심지어 호남평야는 조선 초기까지도 뻘과 늪지만 있던 곳
또한 바닷물이 익산 앞까지 들어왔는데
익산이 마한의 중심지인 건마국이 있던 곳임을 생각하면
바다와 강을 통해 인근 마한 소국들을
제압할 입지로서 꽤나 괜찮은 곳
맨 윗짤의 빨간 사각형 친곳이 바로 백제의 수도 사비성
또한 백제의 찐 중심지인 충청남도 지역도
이 때는 상황이 지금과 달랐는데
논산 평야 역시 이 때는 바닷물이 들어와 있던 상황
또한 지금은 완전히 내륙에 있는 부여(사비성)는
이 때는 거의 코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기에
해양 확장성과 일본으로부터의 지원병력이 들어오기에
최적인 지역이라 왜 백제가 여길 수도로 삼았는지
이해가 가는 지형
마한 소국들이 최후까지 버텼던 전라남도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후삼국 시대 때 왕건이 짤의 오른쪽 위에 위치한 나주를
수군으로 공격했다는 걸 드라마나 수업때 배우는데
지금은 내륙에 있는 나주를 왕건이
어떻게 수군으로 공격했는지 의문이 들면 저 지도를 보면 된다
이번에는 좀 더 위로 가서
옥저가 있던 함경남도으로 가보자
현재 북한을 먹여 살리는 3대 평야 중
하나인 함흥 평야 역시 이 시점에는 바다였던 상황
그나마 지랄맞은 이북 날씨치곤 괜찮은 곳이고
명태 같은 어획량도 풍부해서 나름 사람 살만한 곳이긴 했다
고구려의 후기 중심지인 평안남도와 황해도도
진짜 당시엔 상황이 좀 염병스러웠다
호남평야 다음으로 넓은 재령평야는 이 때는 바다였고
바닷물이 무려 평양 앞까지 들어와서
이곳에 있던 낙랑군이 중국 본토와 연락을 취하며
고구려의 공세에 끝까지 버틴 점이나
2차 고수전쟁 시점에 내호아의 수나라 수군이
대동강을 거슬러와 평양을 직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살수대첩이 있던 청천강 유역의
안주평야, 박천평야 역시
현재는 많은 퇴적 토사로 인해 ㅈㄴ 비옥한 충적평야지만
삼국시대때는 이곳 역시 바다인 곳
마찬가지로 지금 북한을 먹여살리는
황해도의 연백평야도 이 당시는 당연히 바다
또한 만주 지역도 지금과는 살짝 달랐는데
평야가 많은 만주 서남쪽은 해안선이 내륙 쪽으로 들어와 있었고
무엇보다 요하 지역은 대부분 바다 or 늪지대라서
여기를 거쳐서 고구려령 요동으로 들어오던
수나라, 당나라 군이 왜 전염병으로 떼죽음 당했는지
이해가 가는 지형
질알난 하상계수에도 굳건한ㄷㄷ
자 그럼 이제 서울을 한번 봐보자
당시 서울(위례성)은 현재 송파구 쪽의
몽촌토성 - 풍납토성이라는게 정설인데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바닷물이 코앞까지 들어오던
사비성(부여), 평양성(평양)과 달리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지 않고, 현대와도 크게 바뀐게 없을 지경
여기에 백제의 초기 중심지인 아차산 ~ 탄천 부분은
바닷물이 밀려들어오지 않는 평야로서
여름철 하상계수만 잘 신경쓰면
바닷물이 밀려오던 지역과 달리 꽤 많은 소출을 거둘 수 있었다
즉 오늘날의 충적평야는 이 당시에는 대부분 바다였기에
오히려 내륙에 있는 분지 지역이 더 생산량이 잘 나왔다
왜구가 경주 일대에 나타났다는게 이해가 가는...
여기에 한강 수준으로 ㅆㅆㅌㅊ 땅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사로국, 신라가 있던 경주 분지다
이 때 포항 대부분이 바다에 잠겨있기에
바닷물이 생각보다 더 경주분지 근처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경주를 흐르는 형산강까지 바닷물이 들어오지는 않아
오히려 경주 분지가 가지는 깡산출량이 상당한 수준이었고
고개 하나 넘으면 대구, 울산, 밀양까지 전부 연결된 사기적인 입지
여기에 동해안과 연결되어 옥저, 동예, 고구려와 직결될 수 있고
경산 쪽의 압독국, 울산, 양산 쪽의 우시산국을 먹으면서
대구 분지의 산출량과 낙동강 중류를 확보
울산과 양산을 통해 낙동강 하류와 남해안로를 뚫는데 성공한다
무엇보다도 해안선이 복잡하게 얽힌 경상남도와 다르게
경상북도는 지금과 다를게 없이 강과 분지로 연결된 지역이라
이 지역들을 먹는 난이도가 타 지역보다 대단히 쉬웠다
내륙까지 들어온 해안선 때문에 경남 해안 지역은 못먹은게 포인트
아무튼 경주 자체에서 나오는 깡산출량
형산강에서 포항으로 이어지는 바닷길
국력 조금 기르면 제압이 가능한 주변 소국
이로서 낙동강 + 동해안 네트워크의 물자 집결지 등
경주 분지와 거기서 파생되는 2차효과들이
너무나도 사기적이었기에 신라는 국토에 비해 꽤 단단한 국력을 가질 수 있었다
산맥만 봐도 얼추 삼국시대 영토가 눈에 그려지는
여기에 소백 산맥 이남에 있기에
국가테크를 먼저 밟았던 백제와 고구려로부터
우주방어를 할 수 있게 했고
실제로도 고구려 최전성기 때도
결국 소백산맥을 넘지 못해 신라를 먹지 못한 걸 보면...
또한 단양, 충주까지만 가면
이제부터는 서울까지 가는 고속도로인 남한강을 탈 수 있기에
점령 후 보급 문제 때문에 개고생한
백제와 달리, 신라는 그냥 남한강 딸깍 버튼만 누르면
신라 본토에서 무한 캐리어를 보낼 수 있었기에
그냥 고대 한반도에서 가장 축복받은 입지를 먹은 수준
그러나 간과하지는 말아야 할 것은
여러 평야들이 당시에는 바다라고 설명했지만
갯벌과 늪지대의 중간 수준이라
생각보다 생산량이 나오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토사에 의한 자연적인 퇴적 활동으로
6세기 무렵에는 얼추 우리가 아는 평야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
말 그대로 사람을 갈아넣었던 대-간척 시대
또한 고려 시대부터는 서해안의 뻘
대표적으로 강화도나 호남평야 같은 곳을
직접 사람들이 간척을 진행함으로써
우리가 아는 평야들이 대략적으로 완성되기 시작한다
삼국이 치열하게 다투던 3~4세기에
전주와 밀양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끝-
여러댓펌)
몇몇 오류만 수정하면 삼국이 맞다이 뜨던 시기는 3~4세기가 아니라 4세기 중반 이후(고국원왕 vs 근초고왕)
신라까지 맞다이에 참전하는건 5세기 나제동맹(433) 이후라고 봐야함
그리고 고구려가 소백산맥 못 넘었다고 하기엔 장수왕 때 포항까지 밀고 왔다는게 학계 통설임
글킨 한데 어쨋든 본문에서도 삼국도 삼국이지만 마한,변한,진한 소국들이
생각보다 잘 버틸수 있었던 이유로 해안선에 따른 지리적 방어 효과에 대해 설명한 거ㅋㅋㅋ
실제로 5~6세기 무렵에는 간척 + 충적작용으로 해안선이 저때보다 좀 더 축소되긴 했음
그리고 포항 공격도 엄밀히 말하면 소백산맥을 뚫은 거 보다는
강릉 쪽으로 내려온 동해안 축선을 이용한 거에 가깝긴 함
고구려는 역사 시대 내내 소백산맥을 정통으로 뚫은 적이 없긴 함
인천만해도 100년전과 현재의 해안선이 많이 달라졌음. 인천 앞바다 간척도 했지만, 지금은 상상이 안되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었음. (간석오거리역이나 간석동 같은 지명이 왜 '간석'인지 생각해보자) 하물며 삼국시대 때는 ...
나주는 1981년 영산강 하굿둑 완공 이후로 길이 막힌겁니다
그렇긴 한데, 나주 공방전 당시 후고구려 대함대가 여길 습격한 걸 보면
과거에는 지금보다 나주로 이어지는 물길의 수량이나 폭이 훨씬 크긴 했을 듯
존나 좋은 개사기땅인데...농사가 더럽게 안됨....기후랑 토양질이 개쓰래기라....근데 개사기 땅맞나...
벼농사는 잘되는 편임ㅋㅋㅋㅋ
여기에 산지가 많아서 산에서 나는 임산물, 반도 지형이라 해산물도 풍부해서
세계적으론 그래도 사람 살만한 땅임
고려시대만해도 한반도 농업생산량은 생각외로 많이 좋은편이었음
괜히 역사를 설명할 때 환경을 말하는게 아니구나 저 소백산맥 없는 백제는 산 기어 올라가거나 위에 애들 상대해야겠네
대야성 소리가 교과서에 맨날 나오는 이유가 있음ㅋㅋㅋ
대야성이 딱 백제에서 소백산맥 동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여기 뚫으면 경주까지 그대로 드라이빙 가능함
근데 저 한강 지형도 현대 하천 정비사업으로 저렇게 된거지
하천정비는 커녕 댐도 안박은 전근대엔 저거랑 달랐을거 같은데...
하상계수가 폭발적이라 문제지, 수계 자체는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고 들음
여기에 바닷물 안들어오고 범람으로 인한 배후지가 갖춰져서 3~4세기 기준으로 꿀땅이 맞긴 함ㅋㅋㅋ
신라의 금은 도대체 어디서 나옴? 근처에 금광이 있단 얘기도 없고 사금도 사실 금광이있어야 나오는거 아닌가
금광보다는 형산강에 흐르는 사금 채취가 주요했을 거임
지금도 형산강 잘 거르면 사금 나올 정도라ㅋㅋㅋㅋ
아직 어디서 채취했다같은 오피셜? 기록이나 증거는 못찾았나요
현재 정설은 사금 채취이긴 함
일단 경주 월성 인근 하천 바닥에서 순도 70~80% 수준의 자연금이 대량으로 발견되었고.
신라 누금 장식에 사용된 형태와 여기서 발견된 둥근 구슬 모양의 구상사금이 일치함
경주 서라벌 꿀땅인게
전성기 때 방(坊)리제(120m~180m X 120~180m) 구역을 1360개나 정비해서 관리했다하고
신라 집 자리 유적으로 평균 내면 대략 8천평짜리 방(坊) 한 구역에 150채정도 집이 들어갈수 있었으니
어마어마 하게 밀도 높은 도시 구역이었을거임.
방을 전부 도시 구역이 아니라 일부 농경지로 굴려도 대한한 농경지였을듯.
서라벌은 비와도 기와집 처마밑으로 다니면 비를 안맞았다고 하니 그시절 기준 어마어마한 대도시였을듯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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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가오니너무귀여워 작성시간 26.07.31 간척 진짜 많이했구나 우리나라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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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여자가좋다구요 작성시간 26.07.31 잼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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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파랑돌 작성시간 26.07.31 와 고대사 공부하면서 가끔 이해 안 되는 게 있었는데 당시 지형이랑 매치를 안 하고 현재 기준 지도가지고 공부하니까 그런 거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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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두배짬봉 작성시간 26.08.02 천년왕국 신라의 화려함을 제대로 담은 드라마 있음 좋겠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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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룰루메론 작성시간 07:00 new
헐 그래서 우리나라 핵심 지역들이 다 산에 둘러싸인 분지에 있구나... 그리고 충적평야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네 ㅋㅋㅋㅋ 인간의 역사시대 사이에도 계속 쌓여온 거라니.. 그리고 호남평야가 인공적으로 만든 거였다니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