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10151392957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려고 발달한 게 아니라, 미래 행동을 값싸게 계산하려고 발달한 장치. 뇌는 근본적으로 예측 기계라서 " 진실한 역사 기록" 이 목적이 아님.
목적은 훨씬 노골적으로 무엇을 피해야하고, 어디에 먹을것이 있으며, 어떤 자가 나의 편이고 적인가? 그리고 어떤 냄새, 소리, 표정이 위험 신호이고 특정 행동 반복시 이득을 가져다주는가?
다시 말해 기억은 생존 비용을 줄이는 예측 장치. 본능만으로 부족했던 이유는 "환경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 환경이 항상 같았다면 본능대로 움직이면 됨.
반대로 환경이 완전히 무작위에 가깝다면 과거 기반 미래 예측 하는 장기 기억의 효용성은 크게 감소함. 그래서 뇌는 지나친 변동성을 싫어함. 왜냐면 어제 배운 게 오늘 전혀 안 맞으니까.
현실 자연 환경은 그 중간임. 항상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매일 완전히 바뀌지도 않음. 계절은 바뀌지만 계절이 바뀌는 패턴은 반복됨. 봄, 여름, 가을, 겨울 처럼.
계절 따라 특정 동물이 나타나고, 어떤 장소를 가면 물을 구할수 있으며, 특정 음식은 반복해서 탈을 낸다는걸 잊지 않음. 그 결과 기억은 단순 저장 장치가 아닌 다음 행동을 고르는 예측 장치.
일단 첫번째 위험회피가 중요한 기능으로 한 번 독버섯 먹고 죽을 뻔했으면 다음에 피할거고, 어떤 계곡에서 맹수 발자국을 보았으면, 다음에 그 길을 안가려 할 거임.
만약에 기억이 없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거고 죽을 확률이 높아질거임. 그 다음은 보상 위치 저장. 어디에 물이 있고, 어느 계절에 열매가 나고, 특정 동물이 어디로 이동을 하는지 기억할수록 자기 배를 채워 생존 확률이 높아짐.
물론 기억 자체는 인간만의 능력이 아니고 다른 동물도 위험, 먹이 위치, 사회적 개체를 기억함. 그러나 인간은 그 기억을 언어와 이야기로 공유하고, 신화, 족보등으로 외장화했다는 점.
그래서 세번째는 사회 평판 기억. 인간은 집단 동물이기에 이게 엄청 컸음. A는 이익을 공유하고, B는 빚을 갚지 않으며, C는 부족간 전투 때 도망쳤다면 누구와 협력하고 누구를 신뢰하지 않을지 계산과 정보 공유가 가능한 생존 자산.
네번째는 기술 학습. 사냥, 길 찾기, 도구 제작, 불 피우기 이런건 타고날때부터 다 머리 속에 들어가 있는게 아님. 학습을 해야함. 학습때 시행착오는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고.
그런데 기억이 없으면 시행착오를 반복함. 기억이 있어야 "과거의 실패한 방식" 을 버리고, "성공한 방식" 을 학습해 반복하고 생존 확률을 높일수 있음.
다섯번째는 정체성과 서열 유지. 만약에 기억이 없으면 집단이 계속 초기화됨. 누가 지도자이고, 누가 누구 자식이고, 누가 어떤 땅을 쓰며,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
이런걸 기억해야 집단 질서가 유지됨. 그래서 인간 기억은 완벽한 녹화기식 정확성을 목표로 한 장치라기보다, 행동 결정에 쓸 수 있을 정도의 유용성을 우선하는 장치에 가까움.
이게 바로 기억이 자주 왜곡되는 이유. 위험과 배신은 강하게 기억하고, 모욕은 오래 기억하며, 성공한 일을 다음에도 성공할거라는 패턴으로 기억하며 자기 집단에 유리하게 기억하고, 자기 실패는 변명을 섞어 기억함.
이런 편향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진화적 환경에서는 일부 편향이 생존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했을을 수 있음.
예를 들어 맹수 위험을 과대하게 여겨서 도망치는 건 비용이 작음. 설령 맹수가 안잡아먹어도. 반대로 실제 맹수를 "아닐 수도 있지" 했는데 맹수가 잡아먹으면 생을 마감하고.
그래서 편향된 기억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집단 기억도 같은 원리로 모닥불에서 하는 신화, 복수담, 영웅담 같은 이야기는 그냥 장식이 아님.
기능이 존재함. 우리 편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배신자를 잊지 않으며, 복수의 대상을 간직함. 동시에 신뢰 대상에 협력 규칙을 전달하며 후대에 위험 정보를 넘겨 "우리가 누구인지" 집단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
즉 집단 기억은 개인의 뇌 외부에 만든 사회적 기억장치. 국가는 그걸 더 확장한거고.
구전 -> 기록, 이야기 -> 역사, 조상 기억 -> 족보/호적, 관습 -> 법, 영웅담 -> 교과서/기념일, 부족 경계 -> 국경선으로 제도화하며 기억에 행정력과 강제력이 결합됨.
즉, 국가는 인간 기억 본능을 문서와 제도로 외장화한 장치. 기억이 진화한 이유는 과거 기억 자체보다, 과거를 이용해 미래를 예측하고 반복되는 패턴에서 손해를 줄이고 이익을 얻어야 생존율이 더 높았기 때문.
댓펌)
뇌를 항상 예측기계라고 써두시네요. 뇌가 예측기계인가?싶어서 ai한테 물어봤는데 현대 신경과학에서 매우 영향력있는 이론이라고 하길래 저도 관련된 책 읽어보고 싶어서 추천해달라고 하니까 '천개의 뇌' 이 책을 추천해주더라고요. 이 책 읽고 있는데 혹시 님도 추천해줄만한 책 없으신가요? 신경과학이라던가 뇌에 관련된 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뇌는 예측기계라는 말을 엄밀한 정답이라기보다는, 뇌가 감각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는 게 아니라 계속 예측하고 오차를 줄이며 세계를 해석한다는 의미로 씁니다.
천 개의 도 좋지만 predictive processing 자체는 앤디 클라크 쪽이 더 정석에 가깝고, 대중적으로는 아닐 세스의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도 좋습니다. 입문용이면 데이비드 이글먼 더 브레인 도 무난하고요. 다만 아직 경쟁 이론이 많은 분야라 한 권만 정답처럼 읽기보다는 여러 관점을 같이 보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일단 '뭘 하려고 발달' ← 이건 진화론 핵심 원리에 위배되는 목적론적 오류인데
표현상으론 맞는 지적임. 진화가 의도를 갖고 뭘 하려고 진행되는 건 아니니까. 근데 생물학에서 "눈은 보기 위해 진화했다" 같은 말도 보통 기능 설명의 축약어로 씀. 눈이 목적의식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보는 기능을 한 구조가 선택상 이점을 가졌다는 뜻이듯.
기억도 마찬가지임. 미래를 예측하려고 발달했다를 엄밀하게 바꾸면, 과거 정보를 이용해 미래 행동을 더 잘 조정한 기억 능력이 선택되었다는 뜻임.
맞는 말임. 다만 언어의 경제성 측면에서 실제 서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는 하나, 커뮤에서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엔 오해하고 넘어가게 될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라 글 달아봤음
재밌네요
이와 관련된 쉬운 책 추천해주실수 있을까요
기억 쪽 입문이면 리사 제노바의 기억의 뇌과학이 제일 무난합니다.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잊어버리는지 쉽게 설명해줍니다. 그다음으로는 대니얼 샥터의 도둑맞은 뇌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