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지부인과 자녀 거느린 안상호씨
"내선가정의 성공자 의사 안상호씨 별세"
"내지부인과 자미스럽게 사는 의사 안상호씨가 세상을 떠나. 안양에는 송덕비"
고(故) 이태왕 전하의 전의(典醫)를 지냈고, 재작년 10월까지 창덕궁에서 전의로 근무했던 종로 3정목 16번지에 사는 의사 안상호(安商浩) 씨가 세상을 떠났다.
안 씨는 약 3주 전부터 신장염을 앓으며 고생해 오다가 지난 31일 밤 11시경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안 씨는 1898년(메이지 31년) 옛 대한제국 관립일어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였고, 1902년에는 일본의 도쿄 자혜의원 의학교(東京慈惠醫院醫學校)를 졸업하였다. 이후 1904년 옛 대한제국 관립의학교 교관에 임명되었으며, 그 뒤 의친왕궁 의원으로 임명되었다가 1910년 3월 한국 궁내부 시종원 전의 주임으로 임명되었고, 1926년 10월 1일까지 이왕직 어용괘(御用掛)로 재직하였다.
한편 그는 1909년경부터 앞서 말한 주소지에서 병원을 개업하여 약 20년 동안 많은 환자를 진료하였다. 그 밖에도 경성부협의원과 경성종로 금융조합장 등을 맡으며 공공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안 씨는 처음에는 가정 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으나, 병원을 개업한 뒤 자신의 힘으로 재산을 이루어 상당한 전답을 소유할 정도가 되었다.
또한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 시장에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기부한 일이 있어, 현지에는 그의 공덕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까지 세워져 있다고 한다.
안 씨는 약 22년 전 도쿄에서 일본인 여성, "미소"와 결혼하였으며,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넷과 딸 셋, 모두 일곱 자녀를 두었으니, 조선인으로서 내지부인을 얻은 선도자였다.
장녀 키누코 양(20)은 현재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며, 장남 정호(17)는 용산중학교에 재학중이며 그외 자녀가 모두 학교와 유치원을 다니고 있으며, 장녀는 휴학계를 내고 귀국하여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으니 그처럼 행복했던 가정에 갑자기 근심의 구름이 끼었으니 일곱 남매가 서로 부둥켜 안고 애통하는 모습을 보고 조문객들도 눈물을 흘렸다.
▲ 해당 내용이 실린 매일신보 1928년 1월 5일 기사의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