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보내준 국비 유학으로 일본의사가 되고 일본에게 주권을 뺏긴 조선에 돌아와 막대한 돈을 벌어 안양 대지주가 된 안상호
여느 대지주들처럼 소작농과 *마름을 두고 농사를 짓는데 특이한 점이 보임.
*마름: 지주대신 소작료 징수하고 소작농들 관리하는 대리인
당시 마름은 대부분 조선인이였는데 일본인지주들도 마름은 조선인을 쓰는게 일반적이였음. 그 지역 지리를 잘 알고 소작농들과 소통이 원활해야하니까.
근데 안상호는 마름으로 일본인을 고집함.
안상호의 소작농과 마름에 대한 기록. 일본인 마름에게 고통받다 살인자가 되버린 한륵봉씨는 무기징역 구형 이후 일본의 강제노역에 끌려갔거나 처형됐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인인 안상호는 왜 굳이 일본인을 마름으로 채용했을까? 🧐 이유를 추측하기 위해 기록을 살펴보자
조선에 거주중인 안상호 가족의 단란한 모습
“난 일본인과 똑같다. 조선인과 상종안해”
매일신보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일본인이나 마찬가지고 조선 사람과 상종안한다고 직접 말함
조선인들과 말섞기도 마주치기도 싫어서 마름도 일본인을 썼을 것으로 추정이 됨. 살면서 최대한 일본인만 만날수있게 하려고 한 것 같음
그렇다면 의사로서의 그의 삶은 어땠을까? 종로에 최초의 양의학병원을 개업했다는데…
조선땅에서 조선사람과 거의 상종을 안하면 누구를 치료한다는걸까?🤔
각시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상상)
특정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는 각시탈의 한 장면
참고로 같은 시기 양의학 배우고 활동하신 다른 의사들은 (서재필, 박에스더, 김익남 등) 조선인 치료 및 의학발전에 힘쓴 기록이 한 트럭인데 안상호는 달리 양민 구제에 대한 활동기록이 안보임…
고종 독살의혹과 이완용 치료가 최대 업적으로 회자중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