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10196935259
모두 알다시피, 대한제국이 존속한 기간은 매우 짧습니다.
광무 원년인 1897년부터 경술국치인 1910년까지가 고작이죠.
게다가 정미조약과 대한제국군 해산을 기준으로 하면 1907년이 제국의 끝이고,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을 기준으로 하면 1904년이 제국의 끝입니다.
(행군 중인 대한제국 육군)
뭐, 그렇다고 놀고만 있던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근대화를 위한 노력에 더불어 여러 개혁이 추진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국가의 지도자가 우리 군밤황제였다는게 문제였죠.
흔히 뉴라이트 쪽 등에선 "고종이 나라를 팔아먹었다!" 라고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 군밤황제께선 국가(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아꼈기 때문에,
국가(자기 자신)에 위해가 될 만한 일은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타이밍과 줄타기 실력은 정말 너무나 안 좋은 양반이라,
(신명호는 놔두라고의 20세기 버전)
오죽하면 일본 쪽 대체역사 소설계에서는
"고종은 그냥 냅두면 조선이 스스로 일본한테 넘어온다" 는 클리셰도 있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한국인들은 반박도 못하고 끄덕거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이 두각을 드러낸 두 가지 분야가 있으니..
https://blog.naver.com/allalaallala/222411092312
첫째는 대한제국군 군복 디자인이고,
(솔직히 미감이나 간지 하나는 진짜 ㅇㅈ입니다)
(평양에 있던 풍경궁의 정문 '황건문')
둘째는 대한제국 시기 건축물입니다.
제 생각에 군밤황제는 구한말 같은 위중한 시기가 아니라,
안정된 치세에 태어나서 디자인만 실컷 하다가 갔어야 합니다.
어떻게 황제의 최고 능력치가 "디자인".......
하여간, 오늘은 대한제국 시기 건축물에서 보이는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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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둥... 더 크고 많은 기둥이 필요하다.....!
1번의 내용은 위 논문을 바탕으로 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논문을 발견하기 전부터 대한제국 시기 건축에서 뭔가 공통점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이 보실까요?
1903년, 대한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서울 탑골공원에 건립된 '팔각정'.
오징어게임에서 공유 the '빵을밟는자'가 활동하던 그곳 맞음
1899년, 서울 환구단 내에 건립된 '황궁우'.
(환구단 자체는 일제강점기 경성철도호텔 건립으로 파괴됨. 현 웨스틴 조선 서울 자리.)
1903년, 서울 환구단 내에 건립된 '석고전'.
(일제강점기 박문사로 이건, 해방 이후 창경원으로 이건된 뒤에 해체됨)
1903년, 서울 육조거리에 건립된 '고종 어극(즉위) 40년 칭경 기념비전'.
(현재는 옛 위치에서 조금 밀려난 광화문광장 교보생명 앞에 위치)
자.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논문에서는 경복궁 동십자각도 포함시켰으나, 논문 내에서도 중요도는 낮으므로 생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기둥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걸 해당 논문에서는 이것을 '주외퇴간식' 건축이라 명명했습니다.
(왜 새로 명명했는지 논문의 설명을 첨부하자면,
전통 목조 건축에서 중심부를 둘레로 감싸는 부속 공간을 가리킬 마땅한 용어가 없어서,
기존에 쓰이던 내외진(內外陣), 회자형(回字形) 평면, 사면퇴(四面退) 같은 용어로는 설명이 부족하기에,
주위퇴간(周圍退間) = 방형 또는 다각형 평면을 일정한 너비로 둘러싸는 퇴간
주위퇴간 건축 = 이러한 주위퇴간을 갖춘 건축 으로 명명했다고 합니다.)
논문의 설명에 따르면, 사실 이런 건축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만 해도 이런 식이고,
정읍 '피향정'도 이렇게 주외퇴간식 건축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대한제국 시기엔 무엇이 다르냐?
다각형 건물만 비교했을 때, 바로 평면의 '크기'입니다.
이전 건축들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죠.
라고, 논문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각형 건물을 보았을 때는 또 다른 특징이 보입니다.
평면 자체는 석고전보다 피향정이 더 넓으나,
모서리 부분의 기둥을 더욱 좁게 배치하고,
기둥의 높이 자체를 매우 높게 건설함으로써,
기둥 내외를 입체적으로 강조하는 '기둥무리 현상'이 더 잘 일어나게끔 만듭니다.
이러한 기둥무리는 오로지 개방된 주외퇴간식 건축에서 드러나는데,
탑골공원 팔각정을 본따 1959년에 만든 남산 팔각정의 경우,
안쪽 기둥이 없어 이러한 특징이 보이지 않고 허전한 느낌을 줍니다.
(논문에서는 외부 의장의 변화, 지붕 모양의 변화도 언급하고 있으나,
본 글에서는 핵심 특징인 기둥 부분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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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실 이거 다 같은 사람이 만듦
<경성부사>의 내용을 보면, 위에서 살핀 모든 건축이
"심의석"이란 사람에 의해 설계·감독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등록된 곳들만 해도......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인 서울 배재학당
명실상부 구한말의 TOP 5 상징 중 하나인 서울 독립문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인 서울 정동제일교회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서울 이화학당의 본관
(본관은 6.25전쟁 중 파괴되어, 남아있는 건물인 심슨기념관 사진으로 대체함)
남대문 근처의 감리교회인 서울 상동교회
(해당 건물은 6.25전쟁 중 파괴되어, 현재의 상동교회는 1970년대에 신축된 건물)
앞서 언급된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
(본래 용도는 '음악당'으로, 위 사진 속 사람들은 대한제국 군악대임)
앞서 언급된 서울 환구단과 황궁우 그리고 석고전
(왼쪽 3층 건물이 현재 남아있는 환궁우)
앞서 언급된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 기념비전
(현재 주위의 담장은 사라짐)
한국 최초의 극장 및 최초의 원형극장인 서울 협률사
(1906년 운영 및 재정 문제로 인해 고종의 명으로 혁파됨)
서구식 호텔이었던 서울 손탁호텔
(이화학당에서 사들여 기숙사로 사용하다 1922년에 철거됨)
대한제국의 마지막 서양식 건물, 서울 덕수궁 석조전
이정도면 진짜 "나여" 해도 인정인...
건물 하나하나 네임드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결국 같은 사람의 손을 탔다는 것은 즉,
비슷한 특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석조나 벽돌로 이루어져 다양한 평면과 입면이 가능한 서양식 건물이 아닌,
초석과 기둥 그리고 지붕이 유기적으로 공생하는 동양식 건물은 더욱 그렇죠.
대한제국 시기 중요한 건축이 거의 모두 심의석의 손을 거친 이상,
높은 열주를 가진 특유의 주외퇴간식 건축은 이 영향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모르니 댓펌)
이 시기에 왜 주위퇴간식이 유행했을까요?
논문에서 설명한 '의장의 변화' 등을 종합해 보면, 건물의 매스(mass) 증폭 등을 통해 권위를 돋보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탑골공원처럼 '궁궐이 아닌 곳'에도 저렇게 사용된 것을 보면, '하하 우린 제국이니까!'라는 의식이 반영된 것은 아닐련지...
재밌는 것은 저런 양식이 현재에도 영향을 주고 있긴 합니다! 임진각의 평화의 종각이나 수원화성의 종각인 여민각 등이 딱 고종 어극 40년 칭경 기념비전의 모습을 계승하고 있어서, '한국 건축의 발전도상' 정도로 생각해도 괜찮을 듯 합니다.
커피도 좋아하고, 사진찍는 것도 좋아하고, 조선시대에 태어난 양반치고
새로운 거 체험하는 거 ㅈㄴ 좋아했단 열린? 사람이긴 했음
진짜 조선의 루트비히 2세임 그냥ㅋㅋㅋ
진짜 시대를 너무 잘못 태어났어요.
노이슈반슈타인 성처럼 덕수궁이 관광지 된거 보면 루트비히 2세랑 진짜 뭔가 연결되어 있었을지도...
석고전의 시원하게 솟아있는 기둥들이 참 매력적이고, 주외퇴간식의 대표작인 듯 한데, 한국 고건축 특 아니랄까봐 역시나 소실되어버렸구만 사진자료라도 남아있는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하나ㅋㅋ
창경원(현 창경궁)으로 옮겨진 석고전이 해체되었긴 한데, 다행히도 부재는 아직 보관 중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에 실측한 도면도 남아있어서... 2023년에 복원계획 입찰도 진행되었던 것을 보면 언젠간 복원할 것 같긴 합니다!
오오 희소식이네 부재는 파주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에 있을지도?
오 찾아보니 진짜 그렇네요! <석고전 해체부재 정밀실측 및 복원 계획 보고서> 라는 이름으로 보고서도 발간되어 있는데, 전자열람은 안 되고 국회도서관에 직접 가서 봐야 하네요...
차라리 좀 더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으면 나름 괜찮았을 인물이네
확실히 센스가 있는 듯
그나저나 대한제국 군복 진짜 까리하네. 대한제국 군복은 일종의 정복으로 살려서 영국 근위병들처럼 관광지 위병들 요소로 충분히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함
이화문도 그렇고, 군복뿐 아니라 깃발 같은 의장요소나 궁내부 등 관원의 복식도 상당히 까리했습니다.
단지… 당시의 대한제국에게는 병정놀이 좋아하는 얼리어답터가 아니라 시대를 읽는 성군이 필요했다는 것 정도가 문제랄까요…
대부분이 간사이가 L¹=L² 같은 모임집 이란거죠?
부재 수급 문제가 있었을까요? 부재 자채가 규격화 되는게?
모임집 이니까 정치법을 안쓰면 횡력대응이 약해서 그럴까요? 시대적 특징일까요?
무…문과라 건축공학적인 부분엔 미진한 면이 많아… 설명드리기엔 조금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선 전통건축의 발전도상에 따라 기둥무리 현상을 극대화하고 권위적인 부문을 제고하고자 하였다는 것이 첫째 이유로 합당할 듯 합니다.
둘째로는 모임지붕(모임집) 형태도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겠습니다. 당시에 부재 수급이나 물력을 줄이기 위해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되던 팔작지붕들을 모임지붕으로 줄이려 했다는 기록도 있으니까요(그렇기에 각 궁궐의 대문이나 한양도성의 대문들이 고종 연간 전까지만 해도 팔작지붕이었으리라는 추측이 많습니다). 횡력대응에 대해선 자세히 답변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ㅠㅠ
제가 본문에서 언급한 논문을 참조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