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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아들 5명을 전쟁에 보냈는데 몇 명이 돌아왔을까(절망편)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6.08.14|조회수5,054 목록 댓글 6

출처: https://arca.live/b/spooky/162672605

 

 

 

 

 

아이오와주 워털루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가정인 설리번 가에는 부모님의 사랑 속에 태어난 6남매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차남과 사남 사이 유일한 고명딸인 제너비브의 약혼자 빌 볼이 사망했다.

미 해군에 복무하고 있었던 빌이 USS 애리조나 함에서 근무하다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나머지 5형제는

분기탱천하여 누이를 과부로 만든 비열한 잽스들을 때려잡기 위해 그 길로 모두 미 해군에 자원입대를 신청했다.

 

이전에 해군에 복무한 경험이 있던 예비군 맏형 조지는

우리 형제는 언제나 함께였고,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라고 하며

모든 형제들을 같은 함정에 배치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해군장관에게 보냈다.

 

원래 한 가족은 같은 함정에 배치될 수 없었으나, 해군 장관은 이를 이례적으로 받아들였고,

형제는 모두 애틀랜타급 경순양함 주노에 배치되어, 다같이 동반근무를 하게 되었다.

 

설리번 형제의 일화는 선전기록물에도 등장하여 많은 미국인들도 이를 알게 되었고

그들은 해군의 유명인이 되었다.

 

 

과달카날 해전이 한창이던 1942년 11월 13일 새벽, 

형제가 탑승한 주노 함은 일본 해군 구축함 유다지와 교전하던 중

방금 USS 바론을 격침하고 오던 다른 구축함 아마츠카제가 발사한 어뢰 중 1발에 선수가 피격되었다.

주노 함은 수리를 위해 뉴헤브리디스(현재의 바누아투)의 에스피리투산토 항으로 향했다.

 

 

불운하게도, 회항하던 주노의 함대는 일본 해군 잠수함인 I-26에게 발각되었다.

I-26은 주노와 함께 퇴각하던 USS 샌프란시스코가 손상된 것을 발견하고는 어뢰 2발을 발사했다.

2차 대전 기간동안 톤수 기준 전체 3위의 전과를 올린 I-26이었지만, 이번에는 두 어뢰 다 샌프란시스코를 피해갔다.

대신 재수없게도 그 중 하나가 주노에 직격으로 명중하고 말았다.

주노 함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고, 불길에 휩싸인 채 침몰하기 시작했다.

 

경순양함 USS 헬레나의 함장이자, 손상된 기동함대의 최고 참모였던 길버트 후버 대령은 주노 함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일본 잠수함이 득시글대는 해역에서의 수색은 무의미하고 위험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후버 대령은 인근에서 순찰 중이던 B-17 폭격기와 교신하여 연합군 사령부에 생존자 수색을 위한 병력 파견을 요청하고, 그대로 회항지로 항해하기를 선택했다.

 

후버 대령의 결정은 군사적으로는 옳은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100여명의 승무원이 생존하여 잔해 속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무선 침묵을 유지하라는 명을 받은 B-17 승무원들은 몇 시간 후 착륙할 때까지 생존자 수색에 대한 명령을 본부에 전달하지 않았다.

승무원들이 보고한 생존자 예상 위치는 다른 서류와 뒤섞여 며칠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배가 침몰한 지 며칠이 지나서야 본부는 구조 작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뒤늦게 구조대를 보냈다.

그 동안 주노 호 생존자는 악천후, 기갈, 그리고 상어 습격 때문에 많은 수가 사망했다.

주노의 함장이었던 리먼 스웬슨도 이 때 사망자들과 명을 같이 했다.

 

격침 8일 후가 되어서야 PBY 카탈리나 수색기가 10명의 생존자를 발견하고 구조했다. 

하지만 설리번 5형제는 이미 모두 사망하고 없는 상태였다.

차남 프랭크, 삼남 조, 사남 맷은 격침 당시 즉사하였다. 

막내 알은 격침 다음 날 버티지 못하고 결국 익사했다.

 

모든 형제들을 같은 함정에 복무하도록 청원한 맏아들 조지는 4~5일간 생존했는데,

나트륨 혈증으로 인한 섬망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일부 자료에서는 조지가 형제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 미쳐버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조지는 어느 날 타고 있던 간이 뗏목에서 떨어져 물에 빠졌고, 그 이후로 다시는 목격되지 않았다.

그것이 사고로 떨어진 것인지, 스스로 떨어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노 함의 생존자는 이 10명에 불과했다.

 

보안상 이유로 해군은 주노 함을 비롯한 손실을 함부로 공개할 수 없었다.

설리번 5형제의 소식이 어느 날 갑자기 끊기자 부모님은 고심에 빠졌다.

어느 날, 어머니 알레타는 설리번 5형제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말았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지 2달째인 1943년 1월, 미 해군 인사국에 편지를 써서 이 소문에 대해 물었다.

여러 번의 편지에도 부모님은 교전 중 실종 통보만을 받아야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월 13일 친필 답장으로 설리번 5형제의 전사 통지서를 발송했다.

허나 어머니는 하루 전인 12일 이미 아들들의 죽음을 접한 상태였다.

12일 아침, 해군 중령, 의무관, 상사가 설리번 가를 찾아왔다.

중령은 아버지에게 '아드님에 대한 유감스러운 소식'이 있다고 전하였다.

아버지가 어떤 아들에 대한 소식이냐고 묻자, 중령은 아버지에게 '5명 전부'라고 담해야 했다.

윌리엄 홀시 제독은 주노 참사에 대해 길버트 후버에게 책임을 물어 즉시 직위해제시켰다.

 

설리번 5형제는 사망 이후로도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던 설리번 가를 위해 교황 비오 12세는 유감의 메시지와 함께 은제 메달리온과 로자리오를 보냈다.

아이오와주 상원과 하원은 설리번 형제를 기리는 공식 결의안을 채택했다.

형제의 고향인 워털루 시내에는 2008년 설리번 형제 박물관이 개관했으며, 지역 컨벤션 센터의 이름은 설리번 5형제 컨벤션 센터로 개칭되기도 했다.

설리번 5형제가 어린 시절 살던 집은 설리번 공원이 되었고, 설리번 형제의 이름을 딴 거리도 생겼다.

 

설리번 형제의 부모님은 군수품 공장과 조선소를 돌아다니며 아들들의 행적을 알리는 활동을 했으며, 아들들의 목숨을 앗아간 잽스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전쟁 채권을 홍보했다.

누이 제너비브 역시 약혼자와 형제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미 해군 군무원이 되어 모병활동에 참여했다.

제너비브는 전사하지 않고 전후까지 살아남았다.

종전 후, 일본 해군의 요람이었던 요코스카에는 설리번 형제의 이름이 붙은 미 국방부 산하 초등학교가 건립되었다.

 

 

설리번 형제가 탑승했던 주노 함은 2018년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폴 앨런의 RV 페트렐 호에 의해 솔로몬 제도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주노를 격침시킨 I-26은 1944년 11월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실종되었는데, 전투 중 격침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적어도 죽음이 가족들에게 알려진 설리번 형제들과 달리 I-26의 승조원들은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미 해군에는 설리번 형제의 이름을 단 구축함이 두 척이나 생겼다.

두 함정의 모토는 맏아들 조지가 그랬듯, "우리는 함께한다"였다.

 

첫 번째 설리번 함인 DD-537은 플레쳐급 구축함으로, 태평양 전쟁에 그대로 참전하여 설리번 형제의 복수를 하는 데 일조했다.

태평양 전쟁 이후에는 잽스처럼 통수나 치고 다니는 북괴 빨갱이들을 때려잡기 위해 6.25 전쟁에 참전했으며, 1965년 퇴역했다.

막내 앨의 아들인 제임스 설리번은 아버지처럼 해군에 입대하여 이 설리번 함에서 근무했다.

 

두 번째 설리번 함 DDG-68은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으로, 1997년 취역하여 현재까지 복무 중이다.

어머니 알레타는 DD-537의 진수식에 참여하여 아들들을 기렸다.

 

이 사건 이후로 미군은 한 가정의 형제자매가 같은 부대나 같은 군함에 복무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또한 형제자매들이 군복무를 하다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사망했을 경우, 그 나머지 한 명이 귀국 및 전역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생존자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해당 사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모티브가 된 사건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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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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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tru me break free | 작성시간 26.08.14 저래놓고 족바리들 지들이 원폭맞았다고 피해자행세하는거 진짜 꼴보기싫네..5명 자식 먼저 보낸 부모님 심정이 얼마나 무너졌을지...ㅠ
  • 작성자수베데이 | 작성시간 26.08.14 100명 살릴수도있었는데 사람이 아니라 숫자로 봐서 또 저런일이
  • 작성자TRCL | 작성시간 26.08.14 진짜 한곳에 두면 안되겠다 의지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네
  • 답댓글 작성자강화유리멘탈 | 작성시간 26.08.14 아 헐 그래서 형제 떼어놓는거구나... 부대 내 기강 해이 이런 것 때문인 줄 알았네
  • 작성자얄라얄ㄹㅏ | 작성시간 26.08.14 일본이 매번 평화란 단어 입에 올리면서 피코할때마다 진짜 역겨움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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