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흥미돋]조선왕실(대한제국)의 마지막 상궁 10명

작성자블랙 달리아|작성시간26.08.15|조회수24,363 목록 댓글 20

출처: https://www.fmkorea.com/9106348307

 

 

 

1. 천일청 상궁

 

생몰 : 1849.02.02 ~ 1930.12.10 (향년 81세)

 

구한말 순종황제를 모신 마지막 대전상궁으로써 7살이던 1855년, 왕비(철종의 왕비 철인왕후) 김씨가 자녀없이 구중궁궐에서 생활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남동생 김병필의 지인의 딸이던 그녀를 아기나인으로 입궁시켜 돌봄.

 

이후 아기나인을 거친 후 정식 궁녀가 된 그녀는 중전 김씨 이외에 명헌대비(헌종의 왕비 효정왕후) 홍씨를 모시기도 했고 궁녀들중 가장 높은 자리인 대전상궁(제조상궁) 자리까지 올라감.

 

다만 구한말 시대에는 황실인사들을 다소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선을 넘는 행동을 하게 되어 70이 다된 나이에 순종황제에게 불꽃 싸대기를 맞은적이 있음.

 

순종황제는 경술국치 이후 어린 궁녀들을 처소의 자기방에 앉히고 옛날 고대시대 전기를 읽게 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한 궁녀가 정사를 돌보지 않아 나라를 망하게 한 임금의 이야기를 읽자 그녀는 '어떤 임금이든 그따위 짓을 하면 나라가 안망하겠냐' 라고 혼자 중얼거렸음.

 

그 이야기를 들은 순종 황제는 바로 그자리에서 싸대기를 때렸는데 이를 두고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궁인들은 나라가 망하니 황제가 나라를 말아먹고 양심에 찔려서 저러는거라고 뒤로 엄청 욕을 했다고 전해짐.

 

하지만 이후에도 대한제국 황실의 지킴이 역할을 했는데 192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영친왕 결혼식때 정통 한복을 입고 방문하여 영친왕을 감동시킨 일이 있었고 1926년 순종황제의 임종을 77세 노구의 나이에 직접 지켰음.

 

이후 고령의 나이로 인해 상궁직에서 은퇴하고 퇴궁했는데 불교계에 공양을 하며 살았다고 함. 그러나 온순하고 친절한 성품탓에 사기를 여러번 당했다고 함.

 

하도 사기를 당하니 남을 못믿게 되어 1927년에는 타인의 이름으로 집을 구매했다가 그 타인이 집을 먹튀해서 소송을 하는 등 말년이 순탄치 않던 그녀는 1930년 12월 81세 나이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음.

 

 

< 왼쪽 첫번째 >

 

2. 김충연 상궁

 

생몰 : 1849.02.14~1936.09.30 (향년 87세)

 

구한말 대한제국 황실에서 천일청 상궁과 더불어 가장 서열이 높았던 '지밀제조상궁'으로 알려짐. 평범한 서민가정의 딸이였는데 명헌대비(헌종의 왕비 효정왕후) 홍씨가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고 늘 외롭게 지내자 그녀의 지밀상궁이던 박씨가 자신의 5살 조카딸을 아기나인으로 입궁시키는데 그 아기나인이 김충연임.

 

이후 대비전의 나인으로 지내다가 고종황제의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될뻔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종의 사랑은 다른 궁녀 이씨(영보당 귀인 이씨, 완화군의 생모)에게 욺겨간 덕분에 질투심이 심하던 왕비 민씨(명성황후)로부터 화를 입지 않고 궁녀로 지낼수 있었음.

 

이후 궁궐생활 30년을 채우고 나인에서 상궁으로 승급되었으며 명헌태후(대한제국 개국 후 명헌대비가 태후로 정식책봉) 붕어(죽음) 이후에는 순종황제의 계후 순정효황후의 지밀상궁이 됨.

 

대한제국 멸망 이후에도 순종과 계후 윤씨(순정효황후)를 끝까지 모셨고 1932년 당시 일본 황실에서도 여든이 넘은 나이에 황실인사들을 봉양하는 그녀를 독특하게 봤는지 히로히토 황제가 진귀품을 하사했음.

 

1934년을 기점으로 퇴궁한 그녀는 이후 조카의 집에서 거주하다가 1936년 9월 87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짐.

 

 



3. 조하서 상궁

 

생몰 : 1880.02.14 ~ 1965.04.19 (향년 85세)

 

구한말 마지막 상궁들중 1명으로 헌종의 왕비 명헌대비 홍씨(효정왕후)의 지밀상궁들중 1명이던 고모의 주선으로 4세 나이에 아기나인으로 입궁해서 궁녀가 되었음.

 

머리가 정말 똑똑해서 대왕대비 조씨(효명세자 부인, 신정왕후)가 무릎팍에 앉히고 직접 글을 가르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왕실의 배려로 숙명여학교에 입학하여 2기생으로 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기도 함.

 

이후 의친왕궁(사동궁)으로 근무지를 욺겨 의친왕의 자녀들의 보모 겸 가정교사로 일했고 의친왕의 둘째아들 이우공이 결혼 후 일본으로 건너가자 같이 건너가서 3년간 일본생활을 하기도 했음.

 

대한제국 멸망 이후에도 왕(황)실을 모셨고 6.25 전쟁 당시 순종의 황후 윤씨(순정효황후)를 칠순이 넘은 나이에 직접 모시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기돔했음. 휴전 후 노쇠해진 몸을 이끌고 서울 종로구 조카딸의 집에서 노년을 보내다가 1965년 85세 나이에 노환으로 별세했음.

 



4. 한희순 상궁

 

생몰 : 1889.11.10 ~ 1972.01.05 (향년 82세)

 

대한제국 최후의 수랏간 주방상궁, 13세였던 1901년 농부였던 아버지랑 같이 한양에 놀러갔다가 한 상궁의 권유로 입궁하여 수랏간 나인이 되었음. 

 

대한제국 멸망 후 대령숙수들이 다들 퇴궁하여 요릿집을 차리고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자 그녀를 포함 마지막까지 황실에 남은 궁녀들이 황실 식구들의 식사를 책임졌다고 전해짐.

 

6.25 이후 이승만 정부때도 대한제국 황실의 상궁으로 남았고 순종의 황후 순정효황후 윤씨가 1966년 붕어할때까지 황실 어른들을 모시며 창덕궁 낙선재에서 기거함. 1971년 대한미국 국가무형문화재 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함.

 

1972년 1월 5일, 조카집에서 지내던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궁중 비단저고리를 입고 고종황제, 순종황제, 순정효황후의 릉(무덤)을 향해 삼배(3번 절)한뒤 염불을 외우며 눈을 감았다고 함.

 

 

< 오른쪽에서 2번째 >

 

5. 유경운 상궁

 

생몰 : 1893.01.20~1971.09.28 (향년 78세)

 

창덕궁의 지밀상궁 출신, 철종의 친형 영평군이 지내던 누동궁의 나인으로 지내다가 세도가 윤덕영의 소개로 창덕궁으로 욺겨와 순종황제, 순정효황후를 모시는 지밀상궁이 됨.

 

6.25 전쟁 당시 황후를 모시고 부산까지 피난을 다니는 등 고생을 했고 순정효황후가 승하하자 박충식 국회의원의 호의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릉동 별장의 한 모퉁이방에서 기거하다가 1971년 78세 나이로 별세했음.

 

 

< 오른쪽 3번째 >

 

6. 박덕임 상궁

 

생몰 : 1893.02.14~1978.05.27 (향년 85세)

 

대한제국의 마지막 궁녀들중 한명, 어린 나이에 궁으로 들어와 나인을 거처 상궁직에 올랐고 고종황제를 모시는 대전상궁까지 역임했지만 황제가 붕어하면서 관례에 따라 황제를 모셨기에 스스로 출궁을 했음.

 

이후 고종황제의 시종이던 양반 서병업의 측실이 되었으나 자녀를 낳지 못했고 서병업의 본처가 낳은 아들을 키운덕에 양아들의 봉양을 받으며 말년을 편하게 지냈다고 전해짐.

 

고종의 후궁 삼축당 김씨(김옥기, 1890~1970)와 입궁 동기였기에 노년에 비교적 친하게 지냈고 자주 김씨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정답게 지냈음. 키는 보통이나 몸은 가늘고 성격이 얌전하고 상냥했다는 기록이 있음.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안동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978년 85세로 별세함.

 



7. 박창복 상궁

 

생몰 : 1902.02.02~1981.11.22. (향년 80세)

 

구한말 최후의 궁녀들중 1명, 1914년 12세 나이에 가난한 집안을 부양하기 위해 황실 나인으로 지원하여 입궁하게 됨. 처음에는 창덕궁 세답방(의류세탁을 다루는 곳) 나인으로 있다가 본방나인 정씨가 죽자 이후 태자비 윤씨(순종 황후, 순정효황후)의 지밀나인이 되어 52년 동안 순정효황후를 수발들었다고 함.

 

순정효황후가 1966년 붕어하자 궁중법도대로 3년상을 치룬 후 1969년 보문사라는 절에 성옥염 상궁과 함께 입회하여 노년을 보냄. 이후 12년뒤인 1981년 11월 80세 나이에 보문사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음.

 



8. 김명길 상궁

 

생몰 : 1892.03.05~1984.01.13 (향년 93세)

 

대한제국의 마지막 상궁들중 1명, 평리원 고등관이던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15세때 점쟁이가 '평생 처녀로 살지 않으면 일찍 요절할 팔자' 라고 예언을 하자 어머니가 그길로 김명길씨를 황실 나인으로 입궁시킴.

 

외사촌언니가 순정효황후의 조모 정경부인 홍씨와 친분이 있었음.

 

이후 태자비 윤씨(순정효황후)의 나인이 되어 그녀가 붕어할때까지 60년간 곁에서 황후를 모시면서 지냈음. 순정효황후가 붕어한 뒤 덕혜옹주를 모시면서 낙선재에 기거했으나 노령으로 건강이 안좋아지자 출궁하여 여동생의 집에서 노년을 보냄.

 

1984년 93세 나이에 동생 김순이 할머니(당시 89세)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함.

 

 

왼쪽 첫번째 >

 

9. 변복동 상궁

 

생몰 : 1889.01.11 ~ 1972.05.07 (향년 83세)

 

구한말 마지막 상궁들중 1명으로 김명길 상궁의 친척언니이기도 함. 11세 나이에 입궁하여 고종황제의 후궁 귀인 양씨(덕혜옹주의 어머니)의 지밀나인이 되었고 양씨가 덕혜옹주를 낳자 유모역할을 하기도 했음.

 

귀인 양씨가 별세하고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유학을 간 후 순정효황후를 모시며 지내다가 덕혜옹주가 귀국한 후 1972년 노환으로 별세할때까지 창덕궁 낙선재에서 옹주를 돌보며 여생을 보냈음.

 

 





10. 성옥염 상궁

 

생몰 : 1920.04.28~2001.05.04 (향년 82세)

 

대한제국 최후의 상궁.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보통학교(초등학교)를 졸업 후 15세 나이에 창덕궁 침방나인으로 들어와 순정효황후가 붕어한 1966년까지 30년간 대한제국 황실과 인연을 맺고 살아온것으로 알려짐.

 

순정효황후의 3년상이 끝난 후 출궁하여 박창복 상궁과 함께 보문사라는 절에서 노년을 보냈고 2000년부터 신부전증으로 투병하다가 2001년 82세 나이에 별세함. 유언으로 '저세상에 가서도 황후폐하를 모실수 있도록 황후폐하의 위폐가 있는 백운사에서 49제를 지내달라' 라는 유언을 남김. 

 

 

 

베댓펌)

천 상궁이 요기 있네
우리 외가가 천씨인데 천상궁 이야기 우리집에 전해져 내려오는데 썰 풀어드림?
참고로 우리집에 왜인지 모르지만 박영효 사진이 실물이 있음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로만 전함
천상궁은 본문글에 써져 있는대로 실존 인물이 맞는 듯 함.
다만 우리 외가쪽으로 내려오는 전설같은 이야기는 좀 다른데 대한제국의 충신? 이라기 보다는 거의 간신배 포지션임
흥선대원군 밑으로 일하는 머슴놈과 천상궁이 짝짜꿍하여 조선 일대의 땅들을 다 지들 밑으로 챙겨두었고
특히 흥선대원군 쪽에서 일하며 고종 부인 민씨와 아예 척을 지며 싸우는 포지션이었음
얼마나 민씨를 괴롭혀댔으면 민씨가 천상궁이면 이를 갈고 저주란 저주를 퍼부었다고 함.
그래서 죽은 민씨의 원한이 우리 천씨 일가에게도 미쳐서 우리가 망한 거라고 함.
그러나 천 상궁도 할 말이 많은데 나라를 팔아먹는 민씨보다야 흥선대원군 밑에서 일한게 백번 낫다고 했다고? 함
하여튼 천 상궁은 외가쪽으로 내가 듣기로는 황실에 대한 충성?보다는 물욕 명예욕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었고
일제 강점기 들어와서도 친일파들 사이에서 줄타기 하면서 재산을 쭉쭉 뿔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박영효 사진이 우리 집, (정확히 말하며 외가쪽으로 내려오는 것이고)

 

외할아버지는 작은집, 그리고 다른 큰 집이 있었는데 그 큰집 아저씨(외할아버지의 삼촌?) 되는 사람이
술먹고 노름다니면서 다 말아먹었다고 들었고 6.25 기점으로 큰집 작은집 할 것 없이 다 망함
외할아버지는 서울 시청 다니다가 6.25를 맞이했고 6.25 후에는 왠지 모르지만 의욕을 잃고 백수신세가 되었다 함
반전이 있는데 그렇게 우리 외가쪽은 집안이 망했다고 굳게 믿으며 어언 반세기를 가난하게 지냈음
그러다 큰외삼촌이 큰집 아저씨가 다 땅을 말아먹은 줄 알고 있었는데 집안 정리를 하다보니 여러 이상한 문서를 발견함 그리하야 부랴 부랴 여러군데를 알아보니 오늘날 서울 전농동 일대의 땅, 전농초등학교 부지등 서울 여러곳과 지방 여러곳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있었음을 알게 됨

 

해인사? 부지인지 어느 절인지 그 곳 부지도 천상궁이 갖고 있다 집안에 넘기게 된거임
그동안 큰집 아저씨가 다 말아먹은 줄 알았던 땅들은 소유권이 살아 있었고
그동안 서울시는 외가가 모르게 그 땅들을 무단 점유한채로 시간이 흘러서 그대로 소유권이 서울시로 이전된 것임
큰외삼촌은 그 땅들을 다시 찾겠다고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작고하심
그걸 알게 된 엄마는 전농동에서 우리는 거지같이 다니며 조아리고 다녔는데 전농동 땅이 다 원래 우리거였네 하며 억울해 하심

 

그거 발견하고 우리 큰외삼촌이 백방으로 돌아다니셨는데 베트남전 참전 유공자인데 고엽제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하셔서 찾다 포기하시고 작고하셨음.. 하물며 이제 시간이 더 지났는데 인정 못 받지

 

박영효 사진은... 그냥 서랍 뒤적거리다가 옛날 사진들이 나와서 이거 뭐야 할머니 엄마 하다보니 할머니가 이야기를 풀어서 박영효 아저씨라고 말을 하던데... 자세한 말은 안해주셔서 왜 박영효 사진이 우리 외가에 돌아다니는지는... 몰루?
그리고 외가쪽도 그렇지만 어머니의 외가쪽, 그러니까 할머니 일가도 원래 춘천에서 잘 살았다고 하던데
몰론 다 같이 6.25로 망했음. 할머니의 동생분? 그러니까 우리 외할머니의 동생분은 경찰이었는데 인민군에 끌려가고 나서는 소식이 없다고 함. 뭐.. 돌아가셨겠지 그때.

 

참고로 나도 중학교 때 큰외삼촌 맨날 할머니 찾아서 썰 푸는게 아주 졸라게 신기했음
당시가 민씨가 주연으로 나오는 드라마 명성황후가 낮에 재방송 하던 때였는데?
큰외삼촌이 민씨가 나라 말아먹는 죽일년인데 구국의 영웅으로 나온다고 말하던 것도 신기했고
외할머니가 친일 친일 그러는데 다 시간 지나고 그 때 그 사정을 생각해야지 미친놈들이라고 말하는게
(노무현 정부 시절 반민족인물 사전 편찬하던 사건들이 뉴스에 떴었음)
아마도 동생분?이 경찰하다 인민군에 끌려간게 한이 되서 그런 말씀을 하신 듯함
그리고는 내가 우동 끓여다 드리니까 우동 드시면서 김치 먹으면서
일본사람들이 우동 먹으면서 단무지 먹고 그 곁에 김치 있는 거 먹으면서 냄새난다고 코를 막으면서
계속 김치를 퍼 먹었다고 했던 썰도 웃겼음

 

http://haein.or.kr/contents/?pgv=v&cno=7601&wno=418
허.. 허허.. 좀 소름돋네. 나도 그동안 무슨 절인지 해인사 땅이 원래 외가 땅이라고 해서 무슨 황당한..
거 좀 잘못 아신것 아닌가 알고 있었는데
나도 썰푸다가 궁금해서 천상궁 검색하니 해인사에 기부했다는 이야기가 있네 허허...
소름돋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한다면하는상여자 | 작성시간 26.08.15 신기해… 그리고 다들 장수하셨네
  • 작성자톳톳 | 작성시간 26.08.16 천상궁 얘기 재밌다
  • 작성자타임슬립립 | 작성시간 26.08.16 흥미돋 다들 오래 사셨다 2000년대까지 사신 분은 세상 바뀐거 보시면서 얼마나 신기하셨을까
  • 작성자구구크러스터사랑 | 작성시간 26.08.16 재밌게 봤어
  • 작성자뉴호록 견환 | 작성시간 26.08.16 마지막에 천상궁의 친일행적이 정말이라면..그 땅을 찾지 못한 건 우리나라한텐 다행이었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