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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안중근 의사가 1910년 사형 전날에 다섯 명에게 남긴 유서.txt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6.08.17|조회수12,593 목록 댓글 11

출처: https://www.fmkorea.com/10210978327

유서 원문 출처 - https://db.history.go.kr/common/compareViewer.do?levelId=jh_097r_0010_3650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4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 형장 교수대에 올랐다.

 

 

 

그는 사형 전날인 3월 25일, 마지막으로 두 아우이자 같은 독립운동가인 안정근과 안공근을 만나 이렇게 당부했다

 

 

 

“나는 나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미리 각오하고 한 일이므로, 내가 죽은 뒤의 일에 관해서는 달리 남길 말이 없다.

또 이미 지금까지의 접견에서 이야기해 둔 바와 같으므로 이제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다.


다만 나를 대신하여 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온 집안이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여라."

 

 

 

그리고 자신이 그날 오후까지 이틀간 쓴 다섯 명 앞으로 쓴 유서를 건네며 꼭 당사자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님(조마리아)께 올리는 글]

 

 

 

아들 다묵(多默, 세례명인 '토마스'의 음역) 아룁니다.


예수를 찬미합니다.


불초한 자식이 감히 한 말씀을 어머님께 올리고자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이 불초한 자식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시고, 훗날 영원한 천당에서 서로 만나게 되기를 바라며 또한 기도합니다.


이 현세의 일은 모두 주님의 명에 달려 있는 것이니, 마음을 편안히 가지시기를 천만번 엎드려 바랄 뿐입니다.


분도(장남의 세례명인 '베네딕토'의 음역)는 장래에 신부가 되게 하기를 바라오니, 훗날에도 잊지 마시고 특별히 천주께 바칠 수 있도록 가르쳐 길러 주십시오.


이상이 대강의 뜻입니다. 아직 아뢰고 싶은 말씀이 많이 있으나, 어느 때고 훗날 천당에서 기쁘게 어머님을 뵙고 하나하나 자세히 아뢰겠습니다.


집안의 위아래 모든 분께 일일이 문안드리지 못하오니, 반드시 모두 천주교 신앙에 전심하여, 훗날 천당에서 기쁘게 서로 만나자고 전하여 주십시오.


이 세상의 일은 정근과 공근에게 물어 들으시고, 부디 너무 마음 쓰지 마시고 마음 편안히 지내십시오.



(분도는 당시 여섯 살인 장남으로, 안 의사의 뜻과 달리 사제가 되기는커녕 누군가가 준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아주 이른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분도 엄마, 즉 아내인 김아려(세례명인 아녜스의 음역)에게 보내는 글]

 

 

남편 안 다묵 삼가 올립니다.


예수를 찬미합니다.


우리는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 부부가 되었고, 다시 주님의 명에 따라 이제 서로 헤어지게 되었소.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주님의 은혜로 천당, 영복의 땅에서 영원히 함께 모이게 될 것이오.


부디 감정으로 괴로워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안배를 믿으며, 신앙에 열심하고 어머니께 효도를 다하며 두 아우와 화목하고 자식들의 교육에 힘쓰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후세의 영원한 즐거움을 바라기만 하오.


장남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하기로 나는 마음을 정하여 믿고 있으니, 이 뜻을 잘 알고 반드시 잊지 말며, 특별히 천주께 바쳐 훗날 신부가 되게 하시오.


하고 싶은 많은 말은 훗날 천당에서 기쁘고 즐겁게 서로 만나 자세히 이야기할 때가 있을 것을 믿고 또 바랄 뿐이오.


1910년 경술년 2월 14일(양력 3월 24일, 사형 이틀 전)

 

 

 

 

 

 

[홍 신부님(홍석구, 프랑스 선교사 빌렘 신부)께 올리는 글]

 

 

 

 

죄인 안 다묵 아룁니다.

예수를 찬미합니다.


자애로우신 우리 신부님.


저에게 처음 세례를 베풀어 주셨고, 또 마지막에는 이와 같은 곳까지 많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특별히 찾아와 주셔서 친히 모든 성사를 베풀어 주셨으니, 그 크나큰 은혜를 어찌 다 사례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다시 바라옵건대, 이 죄인을 잊지 마시고 주님 대전에 기도를 바쳐 주시며, 또한 제가 욕되게도 알고 지냈던 여러 신부님과 여러 교우들에게도 문안을 전해 주십시오.


아무쪼록 우리가 속히 천당의 영복한 곳에서 기쁘게 서로 만날 때를 기다린다는 뜻도 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교님께도 글을 올렸으니 그 점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을 앞두고 자애로우신 우리 신부님께 다시 바랍니다.


저를 잊지 마십시오. 저도 또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1910년 경술년 2월 15일(양력 3월 25일, 사형 전날)

 

 

 

 

 

<빌렘 신부와 안중근의 형제들. 앞줄 빌렘 신부 옆이 삼형제 중 차남인 안정근 치릴로, 뒷줄 오른쪽이 삼남 안공근 요한이다.

그 옆 인물은 사촌 안명근 야고보>

 

 

안 의사가 빌렘 신부에게 말하는 '마지막 은혜'는 두 동생과 함께 뤼순감옥을 찾아와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베풀어 준 일을 말한다.

앞서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은 안 의사는 친분이 있는 두 프랑스 선교 사제에게 마지막 성사를 베풀어 줄 것을 요청한다.

조선 가톨릭교회의 으뜸인 조선대목구장 민덕효(뮈텔) 주교와 어릴 적 고향 황해도에서 세례를 준 '영적 아버지' 홍석구(빌렘) 신부였다

천주교 박해 시대에 조선에 입국한 경험이 있는 뮈텔 주교는 '살인은 죄'라는 명목적인 이유와 일제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현실적인 이유로 단호하게 거부했다.

 

 

 

 

 

 

빌렘 신부 역시 안 의사의 거사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소 친아들처럼 아끼던 '다묵(토마스)'의 최후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뤼순감옥을 찾아 성사를 베풀고 눈물로 작별인사를 했다.

빌렘 신부는 이 일로 인해 뮈텔 주교와 심하게 갈등을 빚다가 1914년 유럽으로 돌아간다

 

 

 

 

<1925년 당시 4인의 조선 주교. 앞줄 가운데가 서울대목구장 뮈텔 주교다.

뒷줄 오른쪽은 유일하게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 출신인 원산대목구장 사우어 주교 아빠스>

 

 

[민 주교님(민덕효, 조선 가톨릭교회 수장인 뮈텔 주교)께 올리는 글]



죄인 안 다묵 아룁니다.


예수를 찬미합니다.


인자하신 주교님께서는 이 죄인을 가엾게 여기시어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번 죄인의 일로 주교님께 많은 염려와 수고를 끼쳐 드려 황공함을 이루 다 말씀드릴 수 없던 차에, 주교님의 크신 보살핌으로 우리 주 예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 고해와 영성체의 비적 등 모든 성사를 받고, 그 결과 몸과 마음이 모두 평안을 얻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의 크신 은혜와 주교님의 은혜에는 감사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감히 다시 바라옵건대,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어 주님 대전에 기도를 바쳐 주시고, 속히 승천의 은혜를 얻도록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와 동시에 주교님과 여러 신부님께서는 함께 한몸이 되어 성교를 위하여 힘을 다하시고, 그 덕화가 날로 융성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래지 않아 우리 한국에 있는 수많은 외교인과 이교인들이 모두 정교에 귀의하여 우리 주 예수께서 자애롭게 여기시는 자녀가 되게 되기를 믿고 또한 기원할 뿐입니다.


1910년 경술년 2월 15일(양력 3월 25일, 사형 전날)

 

 

 

 

 

 

 

[여러 숙부님께 드리는 답서(편의상 한 명으로 셈)]



조카 다묵 아룁니다.


아멘.


보내 주신 글을 받고 엎드려 매우 기뻤습니다.


불초한 조카의 신상에 대해서는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이 이슬과도 같은 세상에서 화와 복을 막론하고 무슨 일이든 모두 주님의 명에 달려 있으며,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오직 주님과 성모님의 바다와 같은 은혜를 믿고 감사하며 기도할 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번에 특별한 은혜로 모든 성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주 예수와 성모 마리아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저편의 품으로 구하여 올려 주신 것이라고 믿게 되었으며,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여러 숙부님을 비롯하여 온 집안 친척들께서는 모두 저 때문에 마음을 쓰셨으니, 주님과 성모님의 은혜에 대하여 저를 대신하여 감사드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동시에 바라옵건대, 집안사람들이 서로 화목하여 평안하게 일생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 송 백부께서 아직도 입교하지 않으셨다고 들으니 참으로 유감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참되심을 알지 못하실 것이니, 마음과 힘을 다하여 속히 귀의하시도록 계속 권하여 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드리는 평생의 마지막 권고라고 전해 주십시오.


여러 교우들에게는 따로 한 사람 한 사람 편지를 보내 드릴 수 없으니, 모두에게 이러한 뜻으로 문안하여 주십시오.


반드시 여러 교우들이 모두 신앙에 열심하고 전교에 종사하여 우리 한국 전체가 성교의 나라가 되도록 힘써 노력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우리들의 고향인 영복의 천당, 우리 주 예수 앞에서 기쁘게 서로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 교우께서도 저를 대신하여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쳐 주시기를 천만번 엎드려 바라마지 않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므로 여기에서 붓을 놓습니다.


1910년 경술년 2월 15일(양력 3월 25일, 사형 전날) 오후 4시 반

 

 

 

 

 

 

- 끝 -

 

 

댓펌)


저 편지를 받은 사람중 뮈텔 주교는 악질친일파로 알려짐. 안중근의 고해성사를 거부하고. 안명근을 밀고해서 신민회를 붕괴시킨 105인 사건을 일으킴. 3.1운동도 방해하고 천주교학생을 퇴학시키는 등 여러모로 민족운동의 방해를 많이함.

 

한일 합방 이전에는 프랑스 공사 드 플랑시와 함께 고종과 독대하면서 신뢰를 사서 고종이 맡긴 황실 물건들도 보관합니다. 오죽하면 고종과 원수가 된 대원군도 뮈텔에게 중재를 요청해 보려고 매년 맏아들 이재면 시켜 문안선물 보낼 정도죠. 그런 그가 바로 일제에게 금방 친화적으로 바뀌는 걸 보면 권력 변화에 민감한 노회한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강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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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차우민 | 작성시간 26.08.17 new 뮈텔 ㅅㅂ새기 죽어서 지옥갓길
  • 작성자베르스타펜 | 작성시간 26.08.17 new 뮈텔.시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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