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강닝콩파스타
1933년 7월
나치당이 집권하던 독일에 새 법안이 발표됨.
바로 <유전병 후손 방지법>
직전해인 1932년 발표된 단종법은 (이것도 미친짓이지만)
장애인, 정신병 환자 등 부적격자들에게 자율적으로 거세 등 불임시술을 받게 하는거였는데...
이 유전병후손방지법은 더 나아가 저 '부적격자'들에게 "강제로" 불임시술을 받게함
뒤이어 1935년 9월에는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 보호법>으로 인종간 결혼이 금지되었고
10월에는 <독일민족의 유전적 건강 보호법>이 발표되면서
유전병, 정신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으면 결혼을 못하게 됨
이 유전질환자를 평생 먹여살리는데
60,000 라이히스마르크가 들어갑니다
국민여러분, 그건 여러분의 돈이기도 합니다
[나치당 인종정책실 월간지]
그런데 나치는 여기서 멈추지 않죠?;
총통이었던 히틀러부터 계속 아..장애인들 정병들 싹 죽여야하는데...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을 왜 먹여살려야하지...이지랄을 함
진짜 Lebensunwertes Leben...Life unworthy living이라 부름
자주 인용되어온 책은 크게 두개
하나는 카를 빈딩과 알프레드 호헤가 쓴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말살허용>이라는 소책자.
1차 세계대전 이후 허덕이던 1920년의 독일이 배경인...
이들은 장애인이나 불치병 환자를
'정신적으로 사망한 상태', '인간 존재의 공허한 껍데기'라고 말하면서
소위 '바보' 한 명을 부양하는데 드는 연간 비용을 계산하여 국민 경제에 가해지는 부담을 추정하기도 함
또 다른 하나는 안락사에 반대하는 책인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단축 문제>
엥 반대하는 책이라면서요...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책에 실린 설문조사를 나치가 적극적으로 안락사 홍보에 사용함.
Q.당신의 자녀가 불치의 정신박약아일 경우 안락사에 동의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무려 73퍼센트가 동의할거라고 응답했기때문...
그치만 실제로 안락사까지는 시행되지 않음
히틀러가 위의 저 법안들을 발표하면서도
다 죽이고싶긴한데..국민들 반발이 너무 셀거같아서; 하면서 아쉬워함
미친색기아닌가 이거
그리고 몇년 뒤 1939년
라이프치히 인근의 작은 마을 폼센,
여기에 공장노동자 부부인 리하르트와 리나 크레치마르가 살고있었음
7월 20일,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게르하르트가 태어남
문제는 그 아이가 장애인이었다는것.
양 눈이 멀었고, 팔다리가 하나씩밖에 없었음.
종종 경련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함
(리나가 10개월을 못채우고 조산했다는 얘기도 있어)
열성적인 나치당원이었던 크레치마르 부부에게는 이건 있을수없는 일이었음...
처음에 그들은 라이프치히 대학의 소아과 의사, 베르너 카텔에게 아들을 데려가 안락사를 요청했지만 불법이라며 거절당함
그러자 그들은 히틀러에게 직접 편지를 씀.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단 한 줄만이 인용되어오고 있지.
이 괴물을 안락사 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십시오.
게르하르트는 아들이 아니라 괴물이었음.
위대하고 완벽한 최고의 인종인 게르만인에게 존재해서는 안될 티끌.
크레치마르 부부는 이 건을 조사해서 이 "괴물"을 안락사 할 수 있게 허가를 요청함...
이 편지를 본 히틀러의 측근 보울러와 헤펠만은 이거다 싶었음
세상에 우리 국민이! 성실하고 열정적인 나치당원이 직접!! 그것도 자기 자식인데도 안락사를 요청하잖아??? 당장 보여드려야만해;;
그렇게 보울러와 헤펠만은 헐레벌떡 그 편지를 히틀러에게 전달하고...
히틀러는 편지를 읽고 자기 주치의인 칼 브란트를 라이프치히로 보냄.
가서 게르하르트의 상태를 보고 편지처럼 심각한 상태면 지역 의사들하고 상의해서 죽이라고.
만약 법적 문제가 생길경우 취하해주겠다고도 함...ㅎ
그렇게 라이프치히로 간 칼 브란트.
게르하르트의 상태를 확인하고, 크레치마르 부부와 만난 뒤 지역의사들과 면담도 함.
나중에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브란트는 아이의 부모가 안락사를 적극적으로 요청했고, 상태도 편지에 묘사에 된것과 같았으며 지적으로도 이상이 있었다고 함
(영어원문에서는 idiot이라고 함
그런데 이디엇...을 판단하기에는 게르하르트가 아직 1살도....안 된...반년은 살았을까 말까한 아기였단걸 기억하자.....
그래서 저 지적이상에 대해서 어떻게 판별했는지는 밝혀지지않음.....)
아무튼
브란트는 위에서 언급된 소아과의사 카텔,
그리고 외과의사인 헬무트 콜에게 히틀러의 지시에 대해 설명함
그리고 그들은 게르하르트의 안락사에 동의하게돼.
이후 게르하르트에게는 약물이 주입되었고,
태어난지 약 5개월차인 7월 25일 '안락사'로 사망함.
공식적인 사인은 심부전.
게르하르트의 안락사가 이뤄지고 며칠 뒤,
히틀러는 열다섯명의 의사를 집무실로 불러모음.
그리고 히틀러가 10년전부터 꿈꾸던 비밀 안락사 프로그램이 시작될거라고 알림
그게 바로 T4작전, Aktion T4
국가지휘자 필리프 보울러와 의사 브란트.
치료에 가망이 없을 만큼 병세가 무겁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 환자에게 병세에 관해 엄격한 감정을 실시한 뒤
특별히 지명한 의사에게
자비로운 죽음의 처치를 허가할 권한을 부여한다.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걍 그거임
지금부터 살 가치가 없는 장애인들, 정신병 환자들, 불치병 환자들 싹 잡아다 죽여라ㅇㅇ...
그렇게 하다마르를 비롯한 6개 T4절멸센터에서 "부적격자"를 죽이기 시작함
요양원에 들어간다, 치료소에서 보호한다는 핑계를 대고 신체장애,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데려와서 "샤워실"에서 가스로 죽임
메인 시설 중 하나였던 하다마르 시설에서 실제로 사용하던 버스인데, 보여? 창문이 다 불투명함... 어디로 가는지 못보게하려고...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로 시작된 안락사라는 이름의 살처분은
나중에는 치매노인이나 상이군인들도 포함됐고,
ptsd가 온 제대군인들도 여기서 죽어나감
뭐 전범재판때 증언으로는 군인들이 먼저 제발 죽여달라고 했다고는 함
근데 가스로 죽임당한 환자도 문서로는 조현병 발작으로 죽었다고 되어있는데 그걸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는...?
정말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을 말살할 생각이었는지
심지어 히틀러의 사촌인 알로이샤 히틀러도 1940년 조현병으로 안락사대상이 되어 살해당함.
가스로 죽이는게 공식적으로 금지된 후에는 의도적인 약물 과다투여와 그냥 쌩으로 굶겨죽이기까지하면서 추산 25만명이 사망했다고 보고있어
그럼 이 T4에서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운 인력들이 대거 이동한 곳은 어디였을까?
샤워실에서 눈치챈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연하게도 절멸수용소...오직 체계적인 대량학살을 위해 설치된 수용소로 빠졌음
나치독일이 점령한 폴란드 구역에서 모든 비적격자를 말살하기 위한 라인하르트 작전의 많은 핵심인물들이 T4출신이야.
작전감독? T4에서 감시관으로 근무하면서 가스실 시스템을 관리함
절멸수용소 초대소장? 안락사센터의 의료담당자였음
그 수용소의 다음 소장도 T4 관계자
그 수용소들 가스실은 누가 만들었냐? 안락사센터 가스실 건설자ㅎ
나치가 그냥 뚝딱 수백만 명을 가스실에 넣어 죽일 수 있었던게 아님...어떻게보면 T4작전을 통해 테스트하면서 발전시켜 나간거지
국가 주도로 사람이 살아있을 가치를 결정하고,
의학과 행정과 법을 이용해서 그 사람들을 제거하는 시스템을 시험하면서...
그렇게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를 죽이며 만들어진 사람과 기술과 시스템은 이후 폴란드의 절멸수용소로, 그리고 유럽 곳곳의 수용소로 넘어감.
그리고 그 후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알겠지...
그리고 1:
T4라는 이름의 뜻은 설명하지 않았지
T4는 살해 프로그램 본부가 있던 베를린의 도로명을 따온거야.
티어가르텐슈트라세 4(Tiergartenstraße 4)...
그리고 지금은 그 자리에 T4의 피해자들의 추모공간이 들어서있음
그리고 2:
메인 센터였던 하다마르 안락사센터도 추모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음
시설이 보존되어 있어서 묘지, 샤워실이나 부검실 등 모두 공개되어있어!
인근 학교에서도 꾸준히 방문하는지 찾아보면 현장학습 사진도 많고
구글맵에서 로드뷰로 보면
여기 현장학습 왔다 돌아가는 독일학생들이 찍혀있음
여기서 바로 뒤돌면 하다마르 센터가 보임
하다마르 추모비에 적힌 독일어는
MENSCH ACHTE DEN MENSCHEN
인간이여, 인간을 존중하라
문제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