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10377468435
기본적으로 감정은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임. 그래서 사생팬의 집착을 알기 위해선 인간의 뇌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는게 필요함.
원래 인간의 뇌는 잘해야 수십~수백명 내외 부족 사회 기준으로 진화했음. 그런데 현대 미디어는 한 아이돌의 얼굴, 목소리, 사생활과 감정표현을 매일같이 몇 시간씩 보여줌.
뇌는 시선, 목소리, 얼굴 노출 빈도나 이름을 부르는 연출 같은 단서에 굉장히 민감하거든. 그래서 아이돌이 카메라를 보고 "오늘 힘들었죠? 잘 자요" 라고 하면 당연히 "팬 수십~수백만 명한테 하는 말"임을 의식적으론 알음.
그러나 인간의 원초적 정서 시스템은 이걸 "1대1 친밀감 단서"로 처리가 가능함. 그래서 아이돌에게는 팬 1 일지라도 팬 입장에서 심리적 충성과 친밀감은 아주 크게 증폭될수 있지.
물리적으로는 아이돌이 카메라 렌즈를 보는것이지만 시청자의 시각계에서는 "얼굴이 정면으로 향함 + 눈이 나를 향함 + 2인칭 발화" 라는 입력값이 들어오니까.
게다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정도의 입력값을 주는게, 실제 친구라 해도 매일 얼굴을 30cm 앞에서 2시간씩 보지는 않음.
그런데 스마트폰으로는 얼굴 클로즈업해서 아이돌이 어린 시절이나 힘들었던 경험 이야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들림.
그래서 아이돌 A가 나를 바라본다 -> 아이돌 A의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 -> A의 개인사를 안다 -> A의 감정상태를 안다 -> A에게 정서적으로 반응하다가 계속 반복 누적되면서 아이돌 A는 "특별한 사람" 이 되는 구조.
현실에서 누군가와 자주 만날때 뇌가 받는 입력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워짐. 어떤 사람과 자주 만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반복해서 보고, 동시에 상대방이 자기를 쳐다보고,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음.
이런 물리적 거리가 중요한게 현대 미디어 이전에는 사람 얼굴이 얼마나 크게 보이냐는 관계 친밀도랑 연결되어 있기 때문.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일수록 눈, 입술, 피부와 미세한 표정까지 매우 크게 보이지.
즉 옛 환경에서 얼굴이 이렇게 크게 보인다 라는 시각 입력은 = 저 사람이 물리적으로 내 근처에 있다 = 그리고 그만큼 가까운 관계다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런데 TV나 스마트폰등이 그 규칙을 깨버리지. 아이돌이 실제로는 수백~수천km 떨어져 있지만 화면에서는 눈,코,입, 표정까지 다 보임.
뇌가 문자 그대로 착각하진 않지만, 얼굴 처리 시스템에 들어가는 자극 일부 회로는 유사해질수 있다는 것.
여기에 웃고 우는 모습이나 "여러분 보고 싶었어요" 하고 또 다음날 등장. 그러니까 상호성은 거의 없는데 시선, 음성, 감정정보는 엄청나게 많은 상황이란거.
이게 누적되면 특별한 사람이 되는 이유는 진화적으로 인간의 뇌는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 그도 그럴게 뇌가 모든 사람을 동일한 가치로 두면 너무나 비효율적임.
사람마다 가치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어머니와 낯선 여자. 오랜 친구와 지나가는 행인. 내 아이와 다른 아이들. 모두 같은 우선 순위로 처리하면 생존 및 번식에 큰 리스크지.
그렇기 때문에 뇌는 "어떤 특정 개인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를 학습하는 시스템이 필요했음.
그리고 그 시스템 입력값은 이름 같은 추상적 표지에만 붙는게 아니라, 그 사람 얼굴, 냄새, 목소리나 행동패턴등 정체성 신호에 묶여서 저장되고.
그래서 아이돌 A는 처음에는 그냥 잘생긴 얼굴로 특별한 의미는 없었는데 반복해서 보게되니 친밀해짐. 왜 친밀도가 중요한가? 하면 새로운 사람은 안전한지랑 어떻게 행동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
그러면 개인사와 감정상태를 아는 것은 무슨 상관인가 하면 정보의 해상도를 확 올려서 사람 모델로 바꾸기 때문. 처음에 A가 그저 잘생긴 얼굴 하나였다가 사적 정보를 알고나면 25살, 가수, 특정 성격.
더 많이 알면 A는 이런걸 무서워하고, 화나면 이렇게 행동하며, 어릴때 이런 일이 있었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며, 힘들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종류의 농담을 좋아하는지 까지 알게 됨.
현실에서 누군가가 자기 고민, 실패,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면 그건 "나에게 상당히 개인적이고 그만큼 중요한 정보를 공개했다" 는 신호.
즉 관계 친밀도랑 밀접한 연관을 띈다고. 그런데 현대 미디어 산업은 이런 노출을 수백만~수천만명에게 동시에 경험하게 할 수 있지.
하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나는 A의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알고 있고 그만큼 가깝다"고 느낀다는 것.
알고 있다는건 틀린 정보가 아니지만 잘못된 부분은 "그러므로 나는 아이돌 A와 그만큼 가까운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 정보도, 감정도 실제지만 아이돌 A의 뇌에서는 팬 B란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는 구조.
그런데 부족사회에선 이런 조합이 거의 불가능. 수십~수백명 공동체에서 어떤 사람을 몇년동안 매일 보고, 어린시절 및 가족관계도 알며, 울고 웃는것도 목격하고, 잠들기 전 모습까지 보는건 가까운 관계가 아니면 일어날수 없음.
현대 미디어 산업이 그 옛 진화 환경을 모방하다보니 뇌에선 계속 반응을 하는거고. 그런데 여기에 권위 편향(prestige bias)이 더해짐.
권위 편향은 쉽게 말해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을 주목 및 모방하는 것. 인류 30만년 대부분 기간은 수십~수백명짜리 공동체라 유명함과 물리적 거리가 분리되지 않았음. 50명~100명 집단 수준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능력좋은 사냥꾼을 따라 배우거나, 사냥 방법 조언을 구하면 제 3자도 "저 사람에게 배울 만한게 있다" 라고 추론했고 그게 생존에 유리했지.
그런데 오늘날 사회는 최소 수백~수천만명 심지어 수억 단위. 최근에는 세계화와 정보통신 발전으로 아예 수십억이 동일한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었음.
방구석에서 수십만 명이 댓글을 달고, 수백만 명이 아이돌을 보며, 대형 광고판이나 음악 방송에서 얼굴이 비춰지며 사람들이 비명과 환호를 지르는걸 볼 수 있게 됨.
즉 "사회적 중요성의 단서" 를 계속 볼 수 있다는 것. 뇌는 반드시 "이 사람이 물리적으로 3km 이내에 있는가" 를 권위 판단 기준값으로 사용할 필요는 없거든.
오히려 "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주는가 " 가 훨씬 중요. 그런데 부족 환경에서 한 사람이 동시에 수백만 명의 관심을 받는 장면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는데, 현대에는 그걸 매일 보여줌.
그런걸 반복해서 보면 인간의 뇌에 들어오는 입력값은 대략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아이돌을 중요하게 여긴다." 문제는 애초에 수십~수백명 단위로 대부분을 살았던 인류에게 수백~수천만명 단위는 과잉 자극.
비슷한 예가 단맛. 부족 시절에는 "달다 -> 열량 있는 좋은 음식" 이라는 휴리스틱이 꽤 잘 작동했음. 하지만 오늘날 사탕수수는 말 그대로 수십억 톤 단위의 대량 생산이 됨.
그렇게 넘치는 설탕을 정제해서 자연계에 없던 수준으로 농축하면 그 선호를 과도하게 자극하고. 마찬가지로 예전에 50명이 존경하던 수준이 기본값인데, 수천만 명이 아이돌 팔로우하고 매일 TV에 나오면 그 자극은 상한 돌파.
근데 아이돌의 매력은 권위 편향에만 있지 않음. 방금 말한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을 중요하게 본다" 는 권위 편향이랑, 짝선택 즉 성적 매력. 얼굴, 신체, 젊음등.
한 예로, 필즈상을 탄 수학자는 엄청 유명하고 인정받지만 " 수학자가 어느 호텔에서 자는지 알아내자 " 고는 안하니까. 이건 짝선택 시스템과 애착 시스템이 있어야 가능함.
다시 말해 아이돌은 단순히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 선망한다" 를 넘어, "잠재 연애 대상" 으로 보기에 "보고 싶고, 가까이 있고 싶은 대상" 으로서 작용한다는 것.
왜냐면 짝선택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건 크게 " 저 사람이 매력적인가? -> 관심을 더 줘라 -> 정보를 더 수집해라 -> 접근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라 " 는 평가.
실제 연애 가능성과 상관없이, 성적 매력 형질에 먼저 끌림. 성적 욕구가 활성화될수록 신체적 매력이 더 중요시되고. 그렇기에 아이돌과 사귈 확률이 0에 가깝다는걸 이성적으론 알아도 소용이 없음.
왜냐? 얼굴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많은 사람이 그런 외모를 원한다는 입력값이 뇌에서 사라지지 않거든. 다시 말해 인지적 판단과 동기 시스템이 동일하지 않다는 뜻.
한 예로, 음식 사진을 보고 "저건 먹을수 없다" 는건 알아도 맛있다고 생각할수 있듯이. 연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도 아이돌에게 매력을 느끼는건 당연한 거임.
그런데 아이돌 산업은 단순히 짝선택 회로뿐 아니라 애착회로도 건드림. 1대 1로 얘기하듯 카메라를 바라보고서 개인적 얘기를 하거나, 침실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 라이브를 하며 안부를 물음.
여기에 고민, 두려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잠들기 전 시점에서 하고 팬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 반복함. 이것들은 사실 옛 부족사회에서 연인들이 하는 행위에 가깝지.
하지만 그 시대엔 당연히 현대 미디어가 없었고, 뇌도 영상에서 보이는 매우 매력적인 아이돌의 그런 행위를 실제 대면에서 하는거랑 일일히 구분하진 않음.
그래서 짝선택 회로의 근본 질문이 " 저 사람을 원하냐? " 라면 애착 회로의 근본 질문은 " 저 사람과 가까이 있는가? " 와 " 저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는가?"
그렇게 처음에 " 정말 잘생겼다 " 였던 게 반복 노출을 거치며 "오늘 뭐하고 있지?" 가 되고, 이게 더 나아가면 "오늘 못 보니까 허전하다" 로 변하고 이건 단순 미적 끌림과는 다른 형태.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많이 받아서 대단하다란 권위와 저 사람의 외모가 매력적이다라는 짝선택과 저 사람이 보고싶다는 감정을 자극하는 애착회로가 사생팬 집착의 기반.
그리고 이런 회로들을 대거 증폭 및 강화시키는게 값비싼 신호 (costly signalling)과 간헐적 보상. 값비싼 신호는 그냥 비싸게 행동한다가 아니라 그 사람의 충성심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쉬운 예로, C란 사람이 "내가 이 집단에 충성한다" 라 말하는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값싼 신호. 그러나 매주 몇십 시간을 투자하고, 큰돈을 쓰며, 불편을 감수하는 건 다른 사람들이 흉내내기 어려움.
그러면 제3자는 이렇게 추론이 가능하지. " C는 실제로 충성도가 높고, 그 집단에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구나" 라고. 다른 예로 공작새 꼬리가 있음.
"내가 건강하다" 는 말을 하는 대신에 "건강하지 않으면 유지하기 힘든 비싼 형질" 을 보여주는 방식. 내가 부자다라고 말하는 대신 명품이나 최고급 서비스를 구매하고.
나는 용감하다라고 말하는 대신 실제 위험을 감수하며, 내가 신앙심이 깊다라고 말하는 대신 금식, 순례, 헌금으로 증명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로 하는 대신 큰 희생을 통해 보여주듯.
그래서 팬덤에서도 단순히 "나는 그 아이돌 A 열성팬이다" 하는것보다, 수백만 원을 소비하며, 해외 스케줄까지 따라가는데다, 남들이 모르는 정보까지 파내는것이 "나는 진정한 팬" 이라는 일종의 지위 신호를 보여주는 형태.
여기에 간헐적 보상이 더해짐. 예측적 보상이 아니라 가끔씩 예측 불가능하게 보상이 오는 것. 가령 빨간 버튼을 누르면 항상 초콜릿이 나올때보다, 누름 -> 없음, 누름 -> 없음, 누름-> 초콜릿이 훨씬 집착을 끈질기게 만듦.
좋은 예시가 슬롯 머신이고. 다음에는 나올지도 모른다는 이 기대 때문에 보상이 없어도 행동이 소멸하지 않음. 이걸 아이돌 사생팬에게 적용하면 굉장히 직관적.
사생팬이 공항에 따라간다고 해보자. 1번째는 못보고 2번째는 차만보고 3번째는 못보고 4번째에 우연히 눈 마주치고, 5번째 못보고, 6번째 못보고, 7번째 아이돌이 내 방향으로 손을 흔든거 같다.
이게 뇌에는 엄청난 보상임. 왜냐면 행동이 "따라가면 언제 엄청난 일이 터질지 모른다" 로 학습되서. 이렇게 불확실한 보상이 집착을 만드는 이유는 보상 예측 오류 (reward prediction error).
뇌가 보상을 100% 예상하는 상황에서 보상이 오면 예상대로라고 여기지만, 기대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큰 보상이 오면 예상보다 좋은 결과가 발생한 것이므로 보상감이 크거든.
그리고 이런 예상 밖의 보상은 특정 행동을 학습시키는데 강력하기에, 이런 행동을 계속 반복하면 언젠가 또 엄청 큰 보상이 올 수 있다고 뇌가 학습.
그런데 이건 스토킹 당하는 아이돌뿐 아니라 팬에게도 긍정적이지 않음. 왜냐? 사생팬이 궁극적으로 원하는건 "내가 아이돌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는것" 인데, 이건 굉장히 애매한 목표임.
아이돌이 한 번 쳐다봤다고 해서 아이돌의 연인으로 확정되지 않잖아? 우연히 보았을수도 있고, 이름을 기억해도 아이돌의 특별한 사람이 아닌 그저 많은 팬 중 하나로 기억할수도 있고, 말을 걸어준다해도 아이돌 직업상 예의로 할 수 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불확실성이 계속 남는다는 소리. 그러면 자연스럽게 오는 귀결은 "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확실해질 것이다 " 라는 식으로 정당화.
그러나 다음 단계에 가도 새로운 불확실성이 생긴다는 비극이 존재하지. 거리 감소 -> 불확실성 해소 대신에 거리 감소 -> 잠깐 만족 -> 새로운 기준과 새로운 불확실성.
그러면 그 다음에는 " 다음엔 말을 걸어줄지도 " 말을 걸어주면 " 다음엔 아이돌 A가 나를 기억할지도 " 기억을 하면 "호텔까지 찾아가면 특별하게 대해줄지도"
패턴이 보임? 보상의 목표가 계속 다음 단계로 이동함. 다시 말해 각각의 보상이 행동을 거기서 종결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보상이 가능해진다는 증거로 사용된다는 것.
이게 끝점이 명확한 목표와 아주 다른 점. 시험은 합격하면 합격했다로 종결되지만, 아이돌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목표는 거의 목표가 무한하게 세분화할 수 있음.
관계적 특별함을 확인한다는 자체가 추상적이고 끝없는 목표니까. 그리고 이는 수십만년 기간동안 유지되었던 소규모 공동체에 적응한 뇌의 회로와 현대 미디어 산업의 수익성 추구가 맞물리며 일어난 현상인거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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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돌돌이초밥 작성시간 26.09.30 오 이렇게 분석이 되는구나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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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tartaWar 작성시간 26.09.30 흥미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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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페퍼민트아이스 작성시간 26.09.30 재밌다 처음으로 왜저러는지 좀 이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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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승승짱구 작성시간 26.09.30 헐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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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Locket 작성시간 26.10.03 정독했는데 아이돌 뿐만 아니라 심각한 사생 아니어도 어느정도 유사 산업에 적용되는 이론같음 .. 인간은 어쩔 수 없나봐 그리고 유독 여자들이 더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